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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간추린 사회교리 제1장 인류에 대한 하느님 사랑의 계획: 그리스도인과 사회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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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1-23 ㅣ No.1712

[행동하는 양심 - 사회교리] <간추린 사회교리> 제1장 인류에 대한 하느님 사랑의 계획


그리스도인과 사회교리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사회 안에 살게 되면서 차차 이 사회의 구조가 부조리와 불평등, 불의가 만연된 사회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기쁨보다는 고통이, 정의로움보다는 불의함이, 도덕보다는 비도덕이 만연한 세상이더라도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은 언제나 절망 속에서 자랐다.

 

1784년 이승훈이 북경에서 베드로로 세례를 받고 돌아온 후 이 땅에서 겨자씨처럼 자라난 그리스도 신앙인 공동체인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가치를 믿고 실천해 왔기 때문에 박해를 받았고 순교했으며 모진 가난을 견디어 왔다. 성리학의 세계관과 지배이데올로기에 저항한 순교자들이 고백한 ‘영원한 생명’에 대한 믿음과 ‘양심과 사상과 신앙’의 자유는 새 하늘 새 땅인 ‘평등한 세상’을 향해 있었다.

 

200여 년 전 조선이라는 사회에 비춰진 그리스도교의 계시는 한민족에게 인간으로서의 ‘신원’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소명’과 영원한 생명이라는 ‘궁극적 운명’을 비추어준 사건이었다. 인간이 ‘하느님과 닮은 모습’으로 창조된 것을 이야기하는 성경의 첫 장(창세 1,26-27)은 인간의 신원과 소명에 관한 근본적인 가르침을 담고 있었기에, 이 땅의 신앙 선조들은 인간의 존엄성이 창조주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며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피조물인 인간을 수동적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공동 상속자로서 예수님과 동등한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임을 분명히 이해했다. 그렇기 때문에 ‘교우촌’은 신분제도를 넘어선 신앙인 공동체로서 ‘모두가 내 형제요, 내 자매인’(마르 3,34-35) 복음속의 ‘사랑’의 가치를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으로 실천했다. 또한 재화의 보편적 목적을 이해했기 때문에 굶주렸어도 콩 한쪽을 나누어 먹는 ‘나눔’을 실천했으며 자신의 내적 변화를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의 참된 변화로 실천했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성령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깨달은 신앙으로 은총의 성사들을 통하여 예수님의 사랑에 결합된다. 세례성사를 받아도 악으로 기우는 인간의 성향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자신의 옛 자아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음이 진정 그리스도인으로 ‘새로 태어남’이요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다. 이 새로운 삶은 실제로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사회적 변화를 가져와야 하고 그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정신적, 도덕적 노력과 함께 끝없는 내적 회개가 필요하다. 내적인 회개는 마음의 회개에만 최우선을 두는 것이 아니라 죄를 유발하는 제도와 생활 여건을 적절하게 개선하려는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 안에 있는 인간의 제도와 생활 여건들이 정의의 규범에 맞도록, 공동선에 해를 끼치지 않고 도움이 되도록 개선하는 것이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888항). 따라서 사회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다른 모든 사람들의 삶에 책임이 있다는 뜻이며, 모든 사람의 선익을 위하여 일하려는 ‘확고하고 지속적인 결단’ 없이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고 그 사랑을 꾸준히 행하는 것이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사회적 관심, 38항).

 

정치는 사회적 존재인 인간이 자신을 실현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권력의 배분과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나 자신이 사회적 존재임을 포기하지 않는 한 피할 수도 없으며 피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땅의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한국사회의 한 ‘시민’으로서 자연법인 양심의 원리에 기반을 두고 복음의 영감을 받아 성찰과 실천을 통하여 하느님 나라의 요구에 맞게 사회관계들을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는 일을 실행하여야 한다(간추린 사회교리, 53항 참조).

 

사회교리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는 결코 갈등상태가 아니라 사랑의 관계이며, 인간의 궁극 목적은 바로 하느님임을 가르친다. 그러나 하느님이 인간의 궁극 목적임을 스스로 거부한 현대사회를 향해 교회의 교도권은 현시대의 ‘시대의 징표’가 요구하는 해답을 제시하며 우리 시대에 근본적으로 필요한 ‘세상의 변화’를 위해 사람들 사이의 상호 사랑을 끝없이 강조한다. 우리의 종말론적 희망은 하느님께서 모든 피조물들을 죽음이라는 허무의 종살이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 희망은 죽음보다 더 강한 힘으로 현재의 삶에 필요한 활동에 대한 열정을 더욱 강화시켜 주는 힘이다. 다시 말해 ‘정의가 깃든 새 땅’에 대한 확고한 희망을 가지고, 이 땅에서 사랑의 실천을 통해 인간의 존엄함, 형제애, 자유, 그 외 지상의 모든 좋은 것들이 온갖 더러움에서 정화되고 빛나게 변모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 바치실 나라, 곧 진리와 생명, 거룩함과 은총, 정의, 사랑, 평화가 지배하는 나라에 속한 것들을 발견하고 체험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사회교리는 그리스도와 성령의 은총의 힘으로, 역사 안에서 정의와 평화를 통해 세상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으로 달성되는 인간의 완전한 실현이다.

 

[외침, 2017년 1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한만삼 신부(광교1동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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