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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 해설: 제5장 열매 맺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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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0-02 ㅣ No.794

[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 해설] (19) 제5장 열매 맺는 사랑 ① (165~177항)

 

가정, 하느님 선물인 새 생명 탄생 보금자리

 

 

제4장에서 혼인의 사랑 곧 부부애에 대해 할애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5장에서 이 부부애의 열매 혹은 결실인 자녀 출산과 부모의 역할을 다룬다.

 

 

새 생명의 환대(166~167항)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정이란 새 생명이 탄생하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또한 새 생명을 하느님의 선물로 기뻐하며 맞아들이는 장소라는 점을 강조한다. 사실 우리는 새 생명의 탄생을 기뻐할 뿐 아니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로 감사히 받아들인다. 교황은 어른들의 실수로 원치 않는 아기가 태어날 때도 부모를 비롯한 온 가족이 그 아기를 하느님의 선물로 받아들이도록 할 수 있는 것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생명이 하느님 사랑의 선물, 무상의 선물이라는 점에서 대가족을 환영한다. 그렇다고 무책임하게 자녀만 많이 낳는 것을 미덕으로 보지는 않는다. 책임 있는 부모라면 여러 가지를 고려할 것이다.

 

 

사랑과 임신(168~171항)

 

자녀는 부부 사랑의 결실이지만 이는 순전히 인간적 노력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하느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생명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생명의 탄생은 하느님 창조의 신비를 반영한다. 교황은 임신할 때마다 엄마가 하느님의 이 창조 신비를 공유한다고 말한다. 모성이 위대한 이유다. 생명의 탄생이 창조의 신비이기에, 우리는 인간 생명에 대해 하느님의 눈으로 볼 필요가 있다. 하느님은 “언제나 한낱 외모 저편을 보신다”(168항). 

 

임신한 엄마는 아이에 관해 꿈을 꾼다. 엄마만이 아니라 아빠도 마찬가지다. 몸속에 자라고 있는 아기를 두고 꿈을 꾸지 않는 가족은 없다. 교황은 “가족이 꿈을 꾸는 능력을 잃으면 아이들은 성장하지 않으며, 사랑이 성장하지 않고, 생명은 시들어 죽는다”(169항)고 지적한다. 그리스도 신자 가정이라면 배 속의 아이를 주님께 맡겨 드리는 것, 또 기도로써 아기의 세례를 준비하는 것도 그 꿈의 일환일 것이다. 

 

하지만 부모는 아이를 장식품으로, 필요의 산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아이를 받아들이는 이유가 우리의 꿈을 실현해 주기 때문이어도 안 된다. 아이는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닌 존엄한 존재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엄마들에게 “아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170항)고 당부한다. 또 “모성의 내적 기쁨을 그 무엇에도 빼앗기지 않도록 하라”며 “두려움이나 걱정이나 그 밖에 사람들의 말이나 문제들이, 새 생명을 세상에 주시는 하느님의 도구인 여러분의 기쁨을 줄어들게 하지 말라”(171항)고 요청한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172~177항) 

 

여기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기에 대한 엄마 아빠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서로 별개인 엄마의 사랑, 아빠의 사랑이 아니라 “한 인간 생명의 근원이자 가정의 확고한 토대인 엄마 아빠의 상호 사랑”(172항)을 강조한다. 교황은 이런 사랑이 없으면 아이는 한낱 노리개로 전락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물론 교황은 엄마의 특별한 중요성을 강조한다. 여자는 자기 안에 생명을 잉태하고 키우고 낳기 때문에 이 점에서 남자보다 앞선다는 것이다. 그래서 임신 중에만이 아니라 태어나서도 얼마 동안 엄마는 아기에게 정말로 필요한 존재다. 나아가 교황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따라 “엄마는 자기중심적인 개인주의의 확산에 대한 가장 강력한 해독제”(174항)라고 말한다. 엄마는 생명의 아름다움을 증언하며 “언제나 부드러움과 헌신과 윤리적 강인함의 증인”(174항)이다. 엄마가 없는 세상, 엄마가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세상은 비인간적 세상이 될 것이다. 교황은 세상 엄마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하지만 엄마의 사랑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빠의 사랑이 함께해야 한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모성적이고 부성적인 주님의 얼굴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부모는 함께 서로 내어줌의 가치를, 다름을 존중하는 것에 대한 가치를, 그리고 주고받을 수 있음에 대한 가치를 가르치기” 때문이다(172항). 그래서 불가피하게 부모 중 한쪽이 없을 경우,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하고 성숙하도록 그 손실을 보상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교황은 덧붙인다. 

 

아이는 엄마에게서 모성적 가치와 특징을 통해 올바로 성장하고 성숙하는 데 도움을 받으며, 아빠에게서는 부성적 가치와 특징을 배운다. 삶의 한계를 인식하고, 더 넓은 세상에 도전하며 끈기와 열성으로 일하는 것 등이다. 물론 구체적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엄마와 아빠의 이런 특징은 아이의 성장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아버지의 부성 혹은 남성성은 어머니의 모성 혹은 여성성과 함께 가정에서 자녀들과 더불어 모든 것을, 기쁨과 슬픔과 희망과 역경까지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바람직한 모습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함께하는 것이 자녀를 통제하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평화신문, 2016년 9월 11일, 이창훈 기자]

 

 

[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 해설] (20) 제5장 열매 맺는 사랑 ② (178~186항)

 

교황이 전하는 행복한 가정의 비결

 

 

결실의 확장(178~184항)

 

부부 사랑의 열매 혹은 결실이 자녀라고 했다. 하지만 자녀가 없어도 부부는 여러 형태로 사랑의 결실을 맺고 넓혀갈 수 있다. 여기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특별히 세 가지 측면을 언급한다. 입양, 대가족, 그리고 사회적 역할이다. 

 

자녀가 없다는 사실이 부부에게는 고통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혼인이 단지 자녀 출산만을 위해 제정된 것은 아니다. “간절히 바라는 자녀가 없더라도 혼인은 온 생애의 공동생활과 친교로서 지속되며, 그 가치와 불가해소성도 보존된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헌장」 50항). 프란치스코 교황은 나아가 “모성은 오로지 생물학적 실재만이 아니며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된다”(178항)는 점을 주목한다.

 

교황은 자녀가 없는 부부에게 입양을 권고하면서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179항)이라고 말한다. 입양은 가족이 없는 아이에게 가정을 선물하는 사랑의 행위다. 또 아무런 조건 없이 아이를 자녀로 받아들이는 부부는 이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 준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이사 49,15).

 

일정 기간 아이를 맡아 키우는 가정 위탁도 교황은 권고한다. 입양이나 가정 위탁 모두, 자녀 양육의 중요한 측면을 표현한다. 친자식이든, 입양 자녀이든, 가정 위탁 자녀이든 간에 모든 자녀는 가정에 받아들여지고 가족에게서 사랑받고 보살핌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사회에 일깨워 주는 것이다. 

 

대가족은 부부 사랑의 결실을 넓히는 또 다른 체험의 장이 된다. 그리스도인 가정은 그 사랑과 사랑의 결실을 세상 속에서 펼쳐 나가야 한다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강조한다. 가정은 사회로부터의 도피처가 아니다. 사람들과 연대하는 가운데 사회로 나아가는 출발점이다. 가정은 사회 통합의 축이 되고 접점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교황은 이렇게 언명한다. “부부는 그들의 사회적 의무를 분명히 의식해야 합니다. 이로써 그들의 애정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빛으로 흘러넘칩니다”(181항).

 

그런데 잘난 체하는 가정, 자기네 집안은 특별하다고 여기는 가정들이 있다. 교황은 그런 가정들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면서 이런 위험을 피하려면 이웃 속에서 평범하게 살아간 나자렛 성가정을 기억하라고 당부한다. 더불어 살아가면서 사랑을 나누는 모범을 본받으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가정은 이웃에게서는 물론이고 친척들로부터도 배척을 받을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하느님께서 세상을 “가정적으로 만들고” 사람들이 저마다 동료 인간을 형제자매로 보도록 도와주는 일을 각 가정에 맡기셨다며 가정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한다. 열려 있는 가정, 사랑으로 보살피는 가정은 가난한 이들에게 자리를 주고, 더 못한 이들과 우정을 쌓는다. 이런 가정들은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에게 해 준 것이 내게 해 준 것’(마태 25,40)이라는 말씀을 새기며 실천한다. 바로 여기에 “행복한 가정이 되는 비결이 있다”(183항)고 교황은 말한다. 

 

그래서 교황은 사회로 확대되는 그리스도인 가정의 역할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가정들은 그들의 말로만이 아니라 증거로써 예수님을 다른 이들에게 전합니다. 그들은 신앙을 전수하고 하느님께 대한 갈망을 일깨우며 복음의 아름다움과 복음적의 삶의 방식을 드러냅니다. 그리스도교적 혼인은 이리하여 형제애의 증거, 사회적 관심, 소외된 이들의 대변, 그리고 빛나는 신앙과 행동하는 희망으로 사회를 활기차게 합니다. 그들의 결실은 퍼져 나가고 무수한 방식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사회에 현존하게 합니다”(184항).

 

 

몸의 식별(185~186항)

 

하지만 부끄럽게도 신자들 사이에서 이와 반대되는 현상을 우리는 볼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의 신자 공동체에서 벌어진 상황을 예로 들면서(1코린 11,17-34 참조), 이 문제를 직시하고 경각심을 일깨운다. 코린토 교회에서는 성찬례를 마치고 식사를 할 때 부유한 사람들은 자기네가 갖고 온 것을 먹지만 가난한 이들은 굶주려 그냥 돌아간다는 내용이다.

 

성찬례에서 빵을 함께 나눠 먹고 잔을 나눠 마시는 것은 우리가 모두 한 몸의 지체임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빵을 나눠 먹으면서도 차별하고 분리시킴으로써 한 몸에 상처를 입히는 현상은 코린토 교회뿐 아니라 오늘의 우리 교회 공동체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문제를 사회로 확대한다. “성사의 신비는 사회적 성격을 지닌다”(「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14항)는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의 가르침을 인용하면서 “성체를 받아 모시는 이들이 가난한 이들과 고통받는 이들에게 눈을 감거나, 다양한 형태의 구분과 경멸과 불평등에 동의할 때에 자격없이 성체를 모시는 것”이라고 지적한다(186항). [평화신문, 2016년 9월 25일, 이창훈 기자]

 

 

[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 해설] (21) 제5장 열매 맺는 사랑 ③ (187~198항)

 

부모 공경 무너진 사회의 미래는 없다

 

 

대가족의 삶(187항)

 

핵가족과 개인주의는 현대 사회의 특징이다. 특히 개인주의는 다른 이들을 성가신 존재로, 나아가 위협으로 여기는 고립화로 이어질 수 있다. 교황은 이런 고립화가 평화와 행복을 주기는커녕 곤란에 처하게 하고 가정생활을 더욱 협소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핵가족은 삼촌과 고모, 사촌과 나아가 이웃까지 포함하는 대가족, 혹은 더 넓은 가족과 교류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녀 되기(188~190항)

 

우리 모두는 자녀로 태어났다.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고 노인이 된다고 해도 부모 앞에서는 여전히 자녀다. 우리 모두가 자녀라는 사실은 우리가 생명을 선사 받았음을 일깨워 준다. 사실 우리 생명은 부모를 통해 받은 첫 선물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십계명에서 하느님에 관한 첫 세 계명에 이어 바로 부모를 공경하라는 넷째 계명이 오는 것은 부모 공경이 다른 모든 인간 존중의 토대가 되는 신성한 뭔가와 관계가 있다고 본다. 부모 공경은 세대를 이어주며, 미래를 보증한다. 그럼으로써 참으로 인간다운 사회의 보증이 된다.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회는 공경이 없는 사회…무례하고 탐욕스러운 젊은이들로 가득 차게 될 사회”(189항)라고 교황은 지적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결혼한 부부가 남편이나 아내에게는 하지 않는 말을 친부모에게는 털어놓을 때다. 이때 친부모의 의견을 배우자의 의견보다 중요하게 여기면 문제가 될 수 있다. 부부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교황은 이런 문제를 직시하면서 “부부가 신뢰와 소통에서 성장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면서 부부는 자녀로서 역할을 하는 새운 길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190항). 이런 문제를 안고 있는 부부는 교황의 권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노인(191~193항)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난한 이들의 울부짖음을 외면하지 않듯이 노인들의 부르짖음을 듣는 것도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나이가 들었다고, 기운이 다했다고 노인들을 저버리지 말고(시편 71,9 참조), 감사와 존경과 환대를 통해 노인들이 공동체의 살아 있는 일원임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주들에게 해 주는 다정한 말이나 애정 표현, 심지어는 그들의 존재 자체가 손주들에게 앞선 세대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도록 도와준다. 따라서 노인들을 존경하고 배려하면서 노인들의 지혜를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사회는 발전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나아가 역사를 기억하지 못한 채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라는 식의 태도는 미성숙한 태도라면서 “과거의 사건들을 알고 판단하는 것이 의미 있는 미래를 건설하는 유일한 길”(193항)이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할머니 할아버지를 존경하고 소중히 모시는 가정은 미래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가정은 이미 쇠퇴하고 있는 것이다.

 

 

형제 · 자매 되기(194~195항)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정에서 자녀들 간에 형성되는 형제애의 중요성을 주목한다. 이 형제애가 교육적인 분위기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 열려 있게 된다면, 가정은 사랑과 평화를 배우는 위대한 학교가 될 수 있다. 가정에서 사랑과 교육을 통해 함양되는 형제애가 사회 전체에 형제애를 확산시키는 희망의 빛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정에서 자녀들은 서로를 형제자매로 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강조한다. 한 자녀만 있는 가정에서는 자녀가 고립돼 혼자서 성장하지 않도록 하는 길을 찾을 필요가 있다. 

 

교황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대가족으로 살아본 경험이 있는 이들은 가정이 사회성을 배우는 자연스러운 학교라는 사실을 체험적으로 깨닫는다.

 

 

넓은 마음(196~198항)

 

부부와 자녀로 이뤄진 좁은 범주로 한정하지 않는다면, 형제와 자매, 사촌 같은 가까운 친척들뿐 아니라 집안 일꾼이나 친구들까지 포함하는 더 넓은 가족을 생각할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대가족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한다. 미혼모, 고아, 싱글맘, 과부, 각종 중독에 노출되고 있는 젊은이들, 노인들, 장애인들. 혼자서는 자녀들을 부양할 수 없는 이들을 사랑하고 지원하는 더 넓은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교황은 사촌과 친척, 배우자의 집안까지 포함하는 더 넓은 가족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주의할 것을 당부한다. 특히 처가나 시댁 식구들과 관련해서 서로를 경쟁자나 위협으로 침입자로 여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상대 집안의 전통이나 풍습을 존중하고 비판을 삼가며 사생활을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꺼운 마음으로 이렇게 하는 것은 “배우자에 대한 관대한 사랑의 정교한 표현”(198항)이다. [평화신문, 2016년 10월 2일,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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