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 (수)
(백) 부활 제4주간 수요일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성모 마리아 - 어머니 같은 하느님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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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9-14 ㅣ No.472

[레지오 영성] 성모 마리아 - 어머니 같은 하느님의 얼굴

 

 

안셀름 그륀 신부의 ‘내 마음의 거울 마리아’(분도출판사)에는 신부님의 개인적인 체험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내가 젊었을 때, 수도원 부원장 신부님이 내게 나흘간 성지 순례를 다녀오라고 지시하신 적이 있다. … 순례 길에서 신자들은 끊임없이 묵주기도를 바쳤고, 저녁이 되어 어느 성모 동굴에 도착하자 마리아 찬가를 불렀다. 당시 나는 비판적 신학에 마음을 두고 있어서 마리아 찬가를 들어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내 귀에는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들렸고, 그 안에서 신학적 내용을 찾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도 때마침 심리학을 공부한 덕에 남녀 신자들이 열렬히 찬가를 부르는 모습을 관찰해 보았다. 마리아 찬가가 그들의 내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싶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마리아를 찬미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하느님의 모성을 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곤경에서 구해 달라고 마리아에게 빌었지만, 실은 하느님께 빌고 있었다. 그들은 마리아의 표상에서 어머니처럼 자애로운 하느님의 모습을, 인간의 곤경을 어머니처럼 살피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직감했다. 인간을 감싸 보호하시는 하느님을 발견했던 것이다. 마리아 찬가는 그들의 믿음에 어떤 인간적인 요소를 부여했다. 그들은 마리아에게서, 그렇지만 결국에는 하느님에게서 이해받는 기분을 느꼈다”(36-37쪽).

 

교의신학은 마리아가 하느님의 모성을 반영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마리아에 대한 올바른 신학적 이해를 갖지 못하는 이들은 이런 신학적 진리를 의식하지 못합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마리아 성지를 찾아가 특별한 도움을 청하며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 기도가 이루어지면 마리아께서 도우셨다며 기뻐합니다. 그렇지만 신자들은 무의식적으로 결국 도와주시는 분이 늘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우리를 도우십니다. 사실 적지 않은 신자들은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편이 더 쉽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어머니 마리아가 곤경에 처한 자신들을 모성애 가득한 마음으로 보살피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 우리 모두가 체험하는 것은 마리아를 통해 건네시는 어머니 같은 하느님의 보호와 사랑입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우리를 도와주셔

 

이처럼 마리아를 상경하는 교회의 전통이 우리에게 전하는 하느님상은 더 자애롭고, 더 인간적이고, 더 온화합니다. 이런 하느님상은 하느님이 단지 모든 것을 통제하는 엄격한 모습이 아니라 다정다감하게 보살피는 어머니 같은 모습으로 우리 안에 자리 잡게 합니다. 물론 하느님상은 단순히 한 가지 모습으로만 특성 지울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은 여러 상반된 모습에서 인간의 인식을 뛰어넘는 완전히 새로운 상을 늘 소유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는 마리아를 통하여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을 지니신 하느님을 만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안식년 중에 루르드 성지에서 개인피정을 하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루르드 성지에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 있는데, 이 성당에는 한국 교회와 특별한 인연이 담긴 봉헌판이 있습니다. 성당의 중앙 제대 왼편 경당 벽면에 있는 제6대 조선교구장 리델 주교의 봉헌판이 그것입니다. 1876년 이 성당 축성 당시 리델 주교와 리샤르, 블랑 신부 이름으로 봉헌한 이 석판에는 한글로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셩총을 가득히 닙우신 마리아여 네게 하례ㅎㆍ나이다.” 아울러 “조선 반도의 선교사들이 바다에서 심한 풍랑으로 고생하던 중 원죄 없으신 동정 마리아의 도우심으로 구원되었음을 기념해 서약에 따라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루르드 대성전에 이 석판을 설치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 봉헌판은 조선교구의 암울했던 시기에 선교사들이 마리아에게 특별히 의지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그들은 교회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에게 자애로운 어머니의 특별한 보살피심이 조선교구에 드리워지도록 기도했을 것입니다. 마치 어린 아이가 곤경에 처했을 때, “엄마”라고 외치며 엄마의 품에 안기거나 엄마의 도움을 청하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더불어 이런 선교사들의 성모신심이 조선교구의 신자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음은 너무나 당연할 것입니다.

 

 

박해시기, 신앙 선조들은 성모님을 통해 하느님의 모성 체험

 

결국 조선교구는 긴 박해시기를 끝내고 종교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 기쁨의 순간에 선교사들과 신앙의 선조들은 성모 마리아를 통하여 드러난 하느님의 특별한 모성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즉, 하느님이 고난의 시기에 언제나 모성애 가득한 마음으로 위로해주시고 다정다감하게 곁을 지키시며 용기를 주시는 ‘엄마’의 모습으로 함께 하셨음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여전히 성모 마리아를 통하여 ‘엄마’의 모습으로 한 결 같이 우리 곁을 지키고 계십니다.

 

9월은 순교자 성월입니다.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순교하신 한국 순교 성인 성녀들을 특별히 공경하고 그 행적을 기림으로써 궁극적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하느님의 구원 은총에 감사하는 달입니다. 이번 순교자 성월 동안에는 조선교구의 박해시기 동안 신앙의 선조들이 성모 마리아를 통하여 하느님의 모성을 체험했던 바를 기억하면서 레지오 단원으로서 나의 신앙생활도 더욱 쇄신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6년 9월호, 이상구 토마스 모어 신부(의정부교구 애덕의 모후 Re. 담당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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