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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동양고전산책: 동양의 덕목으로 풀어 본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4) 인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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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6-11 ㅣ No.286

[최성준 신부와 함께하는 동양고전산책] “‘빨리 빨리’를 외치는 세상에서 인내를 배우자.”

- 동양의 덕목으로 풀어 본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 ④ 인내

 

 

‘빨리 빨리’ 문화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게 묵묵히 내가 할 일을 하며 참고 기다린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사실 이는 이제 한국인의 문화만은 아니겠지요. 오늘날 무한 경쟁 사회에서는 ‘빨리’ 일을 처리하는 것이 미덕입니다. 빨리 사태를 파악해야 하고, 빨리 연구 성과를 내야 하며, 빨리 좋은 결과를 내서 빨리 성장할 것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인터넷 속도도 빨라야 합니다. 외국 여행을 가면 선진국인데도 인터넷 속도가 느린 것에 놀라고 답답해합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사람들은 기다림을 더 못 참는 것 같습니다. 문자를 보냈는데 바로 답이 오지 않으면 답답해합니다. 차가 많아 교통이 혼잡할 때 조금이라도 빨리 가기 위해서 난폭 운전을 하고 끼어들려는 차가 있으면 화가 치솟습니다. 온 세상이 속도를 내며 ‘더 빨리, 더 빨리’를 외쳐댑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성령께 ‘인내(忍耐)’의 열매를 맺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인내란 참고 기다릴 줄 아는 마음입니다.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때를 참고 기다리며, 마치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충실한 종처럼(마태 24,45-51 참조) 사랑의 계명을 지키며 성실히 살아가는 힘입니다. 하지만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았고, 나 자신이 준비되지 않았는데 억지로 효과를 내기 위해 무리하는 것을 “조장(助長)한다.”라고 합니다. 이 말은 『맹자』에서 유래했습니다.

 

“송나라 사람 중에 벼 싹이 자라나지 않는 것을 염려하여 뽑아 올린 자가 있었다. 그가 어리석게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에게 말하기를, ‘오늘은 피곤하구나. 내가 벼 싹이 자라는 것을 도와주었다.’고 했다. 아들이 놀라 달려가서 살펴보니 벼 싹은 이미 말라 있었다. 천하에 벼 싹이 자라는 것을 돕지 않는 자가 적다. 이익이 없다고 하여 버려두는 자는 김을 매지 않는 자요, 그것이 자라는 것을 돕는 자는 벼 싹을 뽑는 자다. 무익할 뿐 아니라 또한 해치는 것이다.”1)

 

정말 어리석은 사람이지요. 벼농사를 처음 지었는지, 어리석은 송나라 사람은 모내기를 하고는 매일같이 논에 가서 벼가 얼마나 자랐는지 지켜봤습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안에 눈에 띌 만큼 빨리 자랄 리가 없지요. 벼가 빨리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 사람은 벼를 조금씩 뽑아 올렸어요. 눈으로 보기엔 벼가 많이 자란 것처럼 보이겠지요. 하지만 무리하게 뽑아 올린 벼 싹이 제대로 뿌리를 내릴 수 없었겠지요. 그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 가족들에게 자랑하듯이 이야기하니 놀란 아들이 달려갔지만 이미 벼 싹이 말라죽은 후였습니다. 맹자는 덕을 쌓는 공부를 하는 사람이 빠지기 쉬운 유혹이 “조장(助長)”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꾸준히 공부하고 덕을 쌓으며 선을 행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성인의 경지에 오를 수 있을 텐데 인내하지 못하고 조급하게 결과를 바라다 보면 조장하게 되고 결국 다 망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시련이 닥치겠지만 실망하지 않고 인내를 갖고 꾸준히 일을 해 나간다면 목표한 바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부를 하거나 악기를 배우는 것에도 인내가 필요하듯이 신앙인의 삶에도 많은 인내가 필요합니다. 인내로이 주님의 말씀을 키우는 사람만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좋은 땅에 떨어진 것은,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다.”(루카 8,15)

 

꾸준히 선을 행하는 사람이 드뭅니다. 조금 해 보고 안 되면 쉽게 포기해 버립니다. 그리고 다른 것을 찾아 나서지요. 빨리, 바로, 즉석에서 해결되어야 합니다. ‘즉석(卽席)’이란 말이 ‘그 자리에서 바로’라는 의미입니다. 바쁜 세상에서는 식사도 즉석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인스턴트식품이 유행이지요.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 기도하고 바로바로 해결되어야 직성이 풀립니다. 기도했는데 당장 들어주지 않으시면 하느님께 실망한 채 떠나가 버립니다. 이러니 꾸준히 인내하며 충실히 주님을 기다리는 신앙인은 오히려 미련한 사람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야고보 서간의 말씀을 되새겨야 합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시험을 받으면 인내가 생겨납니다. 그 인내가 완전한 효력을 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면 모든 면에서 모자람 없이 완전하고 온전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야고 1,3-4)

 

동양의 성현들은 이렇게 쉬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를 자연의 운행에서 본받았습니다. 특히 하늘은 한결같이 우리 위에서 쉬지 않고 자신의 본분을 다합니다. 태양이 뜨고 지고, 사계절은 어김없이 돌아옵니다. 『주역』에서는 이런 하늘의 도를 보고 본받아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제시합니다.

 

“하늘의 운행이 굳건하니, 군자는 이것을 보고 본받아, 스스로 굳건한 마음으로 쉬지 않고 노력한다.”2)

 

여기서 나온 말이 “자강불식(自强不息)”입니다. 대자연의 변화는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한결같습니다. 그처럼 군자는 이것을 본받아 굳건한 마음으로 지치거나 게을러지지 않도록 노력하며 덕을 쌓아 나가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인내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회개를 인내로이 기다려 주시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하느님의 마음을 닮아 다른 이들의 잘못을 참아 주고 용서해 주는 마음입니다. 또한 나 자신도 인내로이 시련을 이겨 내며 하느님의 가르침을 충실히 지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내가 얼마나 소중한 열매인지 모릅니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어렵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열매 맺게 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인내를 뜻하는 한자 “인(忍)”은 칼날 인(刃)자와 마음 심(心)자가 합해서 이루어진 글자입니다. 인내란 칼로 마음을 도려내듯이 힘든 작업입니다. 하지만 마음에 칼로 새기듯이 강한 의지로 참고 이겨 나가야 하는 것이 또한 인내입니다. 세상은 빠른 것을 미덕으로 여기고, 사람들은 힘들고 어려운 것은 회피하려고 합니다. 이런 세상 안에서 우리 신앙인은 더욱 자신의 믿음을 굳게 하며 인내로이 주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비록 그 길이 힘든 십자가의 길이라 할지라도 그 길은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을 갖고 꿋꿋하게 사랑을 실천합시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로마 8,25) 

 

1) 『맹자(孟子)』 「공손추상(公孫丑上)」 2. “宋人有閔其苗之不長而 之者, 芒芒然歸,謂其人曰,‘今日病矣! 予助苗長矣!’其子趨而往視之,苗則槁矣.天下之不助苗長者寡矣.以爲無益而舍之者, 不耘苗者也,助之長者, 苗者也, 非徒無益, 而又害之.”

2) 『주역(周易)』 「건괘·대상전(乾卦·大象傳)」 “天行健, 君子以自强不息.”

 

* 최성준 신부는 북경대학에서 중국철학을 전공하고 현재 대구대교구 문화홍보실장 겸 월간 <빛> 편집주간으로 있습니다.

 

[월간빛, 2016년 6월호,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대구대교구 문화홍보실장 겸 월간 <빛>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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