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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하느님의 은총을 품은 죄의 이야기 - 원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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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9-30 ㅣ No.449

[윤주현 신부의 신학 이야기] 하느님의 은총을 품은 죄의 이야기 - 원죄론

 

 

죄의 신비를 예견하신 하느님

 

신학은 기본적으로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구세사에 대한 성찰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안에는 삼위일체 하느님을 비롯해 인간, 그리고 인간에 대한 그분의 계획, 나아가 역사 안에서 이루어지는 그 계획의 실현과정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습니다. 여기에는 죄악과 같은 부정적인 실재들에 대한 성찰도 포함됩니다.

 

하느님께서 인류를 위해 인간이 당신의 신적 생명에 참여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누리도록 마련하셨지만, 그것은 마치 자동화된 프로그램처럼 미리 준비된 프로그램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당신의 고귀한 품위를 담아 당신의 모습대로 창조하시며 인간을 참으로 인간이게 하는 소중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이름하여 ‘자유의지’가 그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인류를 위해 모든 선이 갖춰진 파라다이스를 마련하시고 그를 그 안에 두셨다 해도, 그에게 자유가 없다면 더 없이 불행할 것입니다. 그가 진심으로 원하고 선택해서 이루어지는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생명을 우리 손 안에 내어 맡기실 정도로 우리의 자유를 존중하시고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가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절대적 가치를 지닌 것은 아닙니다. ‘행위는 존재를 뒤따른다.’는 신학의 공리처럼, 우리 행위의 원천인 자유는 우리 존재의 궁극 목적에 맞게 선용될 때 비로소 그 의미가 있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가 언제나 존재의 목적인 하느님을 기준으로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 존재는 불완전하며 그의 자유 또한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본성적으로 하느님을 거스르고 그분한테서 멀어질 가능성도 함께 가진 존재입니다. 바로 여기서부터 우리는 죄의 신비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런 우리의 나약함에서 오는 죄에 대해서도 이미 예견하셨고, 그로 말미암아 인류를 위해 준비한 당신의 원대한 계획이 수포가 되지 않도록 섭리하셨습니다.

 

 

원죄란 무엇인가

 

실제로 인간은 죄를 지음으로써 하느님의 계획을 거부하고 결정적으로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려 했습니다. 인간이 지은 죄 가운데 인간 본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후손들에게도 죄의 결과가 전해지는 근원적인 죄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원죄(原罪)’라고 합니다.

 

죄는 본질에서 하느님을 제외한 채, 더 나아가 하느님을 부정한 채 인간이 자신만의 계획을 실현하려는 데 있습니다. 성경은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범한 죄가 바로 이것이라고 말합니다(창세 3장). 그들은 하느님처럼 되려고 금지된 열매를 따 먹었습니다.

 

이 죄로 말미암아 그들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을 뿐만 아니라 고통과 노동 그리고 죽음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들의 후손 또한 그들이 범한 죄에 엮여 들어갔습니다.

 

이 원죄에 대한 교리는 초세기부터 교회 공동체가 익히 알고 고백해 왔던 중요한 믿을 교리였습니다. 그리고 5세기부터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을 통해 교회 교도권의 가르침 안에 정착되면서 모든 교회 공동체가 시대를 초월해서 지금까지도 공적으로 고백하고 있는 핵심 교리입니다.

 

시대를 불문하고 대부분의 신학자는 원죄와 관련해서 다음의 사항에 동의하며 이를 바탕으로 원죄가 지닌 신학적 의미를 성찰해 왔습니다.

 

1) 원죄는 본질에서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 사건이다.

 

2) 인간이 하느님에게서 멀어졌음에도 그 안에 지닌 ‘하느님의 모습’은 파괴되지 않았다. 다만 크게 상처를 입었을 뿐이다.

 

3) 인간은 자신의 힘만으로는 이 죄에서 회복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가 원죄를 통해 하느님을 모욕한 죄는 무한하며, 그 자신의 힘만으로는 하느님께서 인류를 위해 준비하신 계획, 곧 인간이 그분을 닮아가기를 원하신 계획을 실현할 수 없다.

 

4) 원죄는 본성적 질서, 곧 하느님의 계획을 대신하는 인간의 계획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인간은 언제나 철학이나 정치, 윤리가 제시하는 유토피아를 완성할 수 없다. 원죄로 말미암아 인간의 본성적인 차원에서도 탐욕, 이기주의, 공격성, 질투, 폭력이 난무하게 되었다.

 

 

원죄에 대한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

 

역사상 원죄에 대해 처음 언급한 분은 바오로 사도였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로마 5,12에서 원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왔듯이, 또한 이렇게 모두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이 밖에도 바오로 사도는 로마 3,9.23 등에서 원죄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언급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원죄에 대해 언급한 것은, 모든 사람의 구원에 그리스도의 강생과 죽음과 부활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드러내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원죄 교리와 관련해서 강조되는 것은 ‘하느님의 자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죄 교리에 대한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공헌

 

이러한 원죄 교리는 초대교회 당시 널리 퍼져있던 신념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것이 교도권의 공식적인 가르침으로 들어와 문헌을 통해 인정되고 신앙의 유산으로 오래도록 자리매김하게 된 데에는 사실상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공이 컸습니다.

 

성인은 동시대에 살았던 아일랜드 출신의 수도승인 펠라지오의 이단에 맞서 구세사의 핵심적 가르침인 하느님의 은총을 수호하고자 했습니다. 펠라지오는 인간 본성이 본디 스스로 구원하고 성화될 수 있는 건강한 능력을 갖추고 있으므로 하느님의 은총은 부수적이거나 아예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그리스도교의 핵심 교리인 그리스도의 강생과 죽음과 부활의 근본적 이유를 무력화시키고 말았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런 이단에 맞서 그리스도께서 강생하신 근본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아담과 하와의 원죄로 말미암아 부패한 인간을 구원하려는 것임을 분명히 지적하면서, 그러한 구세사를 가능하게 한 하느님의 크신 은총을 강조했습니다.

 

성인은 이 과정에서 로마 5,12에 나타난 원죄에 대한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첫 인간이 범한 근원적인 죄와 그 죄로 말미암아 후손들이 받게 되는 해악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자유 사이의 관계, 그리고 원죄를 둘러싼 아우구스티노 성인과 펠라지오 사이의 논쟁은 결국 당시 교도권이 여러 차례 개입하면서 정리되었습니다.

 

 

원죄에 대한 교도권의 승인

 

이 논쟁과 관련해서 펠라지오를 단죄하고 원죄 교리를 교도권의 공식적인 가르침으로 천명한 중요한 공의회가 두 번 있었습니다.

 

먼저 418년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에서 개최된 제16차 카르타고 공의회입니다. 이 공의회의 결정문을 담고 있는 문헌은 분명하게 원죄를 언급하며, 이를 극복하고자 하시는 그리스도의 은총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이 문헌은 당시 조시모 교황님이 승인하시어 「Indiculus」라는 모음집에 들어와 보편 교회의 유산으로 정착되었습니다.

 

이것이 더 확정적으로 교회에 받아들여진 것은 그로부터 1세기 뒤인 529년 세미펠라지오 이단을 거슬러 지금의 프랑스 남부의 오랑주에서 개최된 제2차 오랑주 공의회를 통해서였습니다.

 

이 공의회의 문헌은 이전 공의회보다 한층 더 분명하고 결정적으로 원죄 교리를 승인했으며, 보니파시오 2세 교황님이 인준하심으로써 원죄 교리에 대한 모든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이후 이 가르침은 16세기 중반 트리엔트 공의회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핵심적 유산으로 전승되었으며,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다시 확인함으로써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 원죄 교리는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구세사에서 중요한 한 축을 이루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 저변에는 이 교리의 참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시대에 뒤떨어지는 잘못된 이론처럼 가르치거나 이야기하는 사제나 신자들이 없지 않습니다.

 

또한, 일부 현대 신학자들은 이점을 명시적으로 주장하며 물의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이는 분명 잘못된 태도입니다. 그 교리는 이미 오래전 신앙의 유산을 보존하고 가르치는 주체인 교황님과 주교님들, 대학자들이 장엄하게 선포한 가르침입니다.

 

이 가르침에 반대되는 가르침이 있다면 그것은 교도권의 가르침에서 크게 벗어나 있음을 이 기회에 다시 한 번 지적하고자 합니다.

 

 

현대적인 맥락에서 새롭게 바라보다

 

물론 현대인들이 어떻게 이 원죄 교리를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는지, 그래서 그 교리를 이해시키고자 현대인들의 사고방식에 맞게 어떻게 새롭게 해석하고 전할 수 있는지 하는 문제는 충분히 고려되어야 합니다.

 

이를테면, 현대철학 가운데 실존주의 철학이나 인격주의 철학 또는 전통적인 형이상학 그리고 샤르댕의 진화론적 사상을 바탕으로 원죄의 본의미를 재해석해서 전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원죄 교리는 2천 년 교회 역사상 추호의 의심 없이 믿어온 중요한 구원 진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 안에는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과 섭리, 그리스도의 강생과 수난, 그리고 죽음을 통해 드러나는 그분의 무한한 사랑과 은총이 담겨 있습니다.

 

* 윤주현 베네딕토 - 가르멜수도회 사제. 교황청립 데레사대학에서 신학적 인간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스페인의 아빌라 신비신학대학원 교수를 지냈다. 현재 가르멜수도회 대구수도원원장,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의신학 교수로 활동하며 다양한 저서와 역서를 펴내고 있다. 

 

[경향잡지, 2015년 9월호, 윤주현 베네딕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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