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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사] 성사, 은총의 표징: 성사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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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9-24 ㅣ No.183

[성사, 은총의 표징] 성사란 무엇인가?

 

 

성사(聖事), 하느님의 은총을 보이도록 전해주는 예식

 

인간은 하느님의 은총이 없으면 한시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 덕분에 세상에 태어나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이 소중한 은총을 가장 확실하게 받을 수 있는 통로가 바로 성사다. 그래서 가톨릭교회는 성사를 소중한 보화로 간직해왔다. 

 

성사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 은총을 보이도록 전해주는 예식이다. 세례성사를 예로 들어본다. 사제는 세례 대상자의 세례명을 부르면서 이마에 물을 세 번 부으며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줍니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물은 보이지 않는 성화(聖化)은총을 보이도록 표현해준다. 물이 더러운 것을 씻어주듯이 세례성사가 전해주는 성화은총은 우리 영혼에 묻은 모든 죄와 더러움을 씻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성사만이 아니라 인간 역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도록 표현한다. 인간은 육체와 정신으로 구성된 존재로서, 보이지 않는 내면의 상태를 몸짓으로 볼 수 있게 드러낸다. 이를테면, 마음에 가득한 기쁨은 환한 웃음으로 드러나고, 큰 슬픔은 울음으로, 분노는 불끈 쥔 주먹으로 표현된다. 사람들 간의 소통도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사람에게 다가가서 악수를 하거나 얼싸안는다. 슬퍼하는 사람을 위로할 때 흔히 손을 맞잡거나 어깨를 감싸 안는다. 

 

상대방에 대한 호의와 관심은 이러한 몸동작 외에도 물건을 통해서도 표현되기도 한다. 꽃다발이라든가 반지와 같은 선물로, 또한 식사 초대로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한다. 이런 몸짓이나 선물은 보이지 않는 마음을 담아 보여주는 표징이 된다. 그리고 사랑과 배려의 마음을 담은 표징은 상대편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체코 출신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젊은 시절에 파리에서 지낸 적이 있었다. 릴케는 매일 정오경에 젊은 여인과 함께 거리를 산보하였다. 산보길 중간에는 할머니 한 사람이 동냥을 하고 있었다. 그 할머니는 고개를 푹 수그리고 나뭇가지처럼 마른 손만 앞으로 내밀고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이 돈을 얹어 주면 고맙다는 말도 없이 그냥 챙겨 넣었다. 릴케를 동행하던 여인은 항상 동전을 준비했다가 그 거지 할머니에게 주었다. 그런데 정작 릴케는 아무 것도 주지 않았다. 함께 다니던 여인이 릴케에게 물었다. “저 사람이 불쌍하지 않느냐? 당신은 어째서 아무 것도 줄 생각을 하지 않느냐?” 릴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들은 저 사람의 손에다 돈을 쥐어 주지만 나는 마음에 무엇을 주고 싶다.” 그러고 며칠이 지난 다음 릴케가 여느 날처럼 산보하러 나오는데 하얀 장미 한 송이를 들고 왔다. 흰 장미의 꽃말은 존중이다. 산보를 하다가 거지 할머니 앞에 이르자, 릴케는 장미를 그 할머니의 손에 조심스럽게 쥐어주었다. 할머니는 고개를 들어 릴케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장미를 내민 릴케의 손을 잡고는 서서히 일어서서 흡족한 표정으로 그의 볼에 입을 맞추고는 자리를 떠났다. 그 할머니는 며칠 간 그 자리에 나타나지 않다가 다시 예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동냥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여인이 물었다. “저 할머니는 동냥을 하지 않았던 며칠 동안 과연 무엇을 먹고살았을까?” 즉시 릴케는 “장미의 힘으로!”라고 대답했다.

 

릴케가 말없이 거지 할머니에게 전해 준 한 송이의 흰 장미에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지금 당신은 초라하고 보잘것없게 동냥을 해서 살고 있지만, 이 장미를 받을 만한 사람입니다. 당신도 존중받을 만한 한 인간입니다.’ 그 장미는 할머니를 존중받을 만한 한 인간으로 대우해준 릴케의 따뜻한 마음을 보이도록 표현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 할머니는 ‘장미의 힘’으로 단 며칠 동안이라도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다.

 

이렇게 인간은 보이지 않는 마음을 볼 수 있는 방법으로 표현하면서 살아간다. 하느님은 이런 우리를 존중해주셔서 보이지 않는 당신의 은총을 보이는 방식으로 전해주신다. 그것이 바로 가톨릭교회의 일곱 가지 성사, 곧 세례, 견진, 성체, 고해, 병자, 성품, 혼인성사다.

 

 

성사와 우리의 인생여정

 

일곱 성사는 우리의 인생여정(旅程)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하느님은 우리 삶의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 하신다. 그런데 우리 인생에는 마치 대나무의 매듭과 같이 중요한 순간이 있다. 하느님은 이 중요한 순간에 좀 더 가까이에서 특별한 도움을 주시기 위해 마련하신 것이 일곱 성사다.  

 

사람이 어머니의 품을 통해서 태어나듯이 우리는 어머니이신 교회의 세례성사를 통해서 하느님의 아들, 딸로 새롭게 태어난다. 태어난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면 성인(成人)으로 인정받는다. 과거 우리에게도 성인식이란 것이 있어서 한 사람을 성인으로 인정해주었는데, 이와 유사하게 견진성사를 받음으로써 신앙적으로 어른이 되어 이웃에게 자신의 신앙을 증거하게 된다.

 

사람이 성장하려면 음식과 음료를 먹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영혼의 양식이 필요한데, 그 양식 중의 으뜸이 바로 성체성사다. 

 

그런데 세상에는 우리 육신 건강을 해치는 여러 가지 위험스러운 요소들이 있고, 영혼의 건강을 해치는 죄와 악의 세력이 도사리고 있다. 육신의 병이 들면 일반적으로 약국이나 병원을 찾아가서 도움을 받는다. 중한 병이 들면 우리 신자들은 병원에서 의사의 도움만이 아니라 교회의 도움을 청한다. 사제는 병자에게 병자성사를 베푸는데, 병자성사를 받으면서 하느님께 치유의 은총을 청하고, 또한 병고를 견디어 갈 힘과 용기를 청한다.

 

죄를 지어서 영적으로 병들어 있다면 고해성사를 통해서 용서의 은총을 받고서 다시 건강하게 된다.

 

사람이 성인이 되면 부모와 가정을 떠나 독립하여 살아간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배우자를 찾아 가정을 이루어서 자녀를 낳고 기르는 결혼의 소명을 받는다. 혼인성사는 부부의 연을 맺은 두 남녀가 그리스도께서 당신 교회에게 베푸신 헌신적인 사랑에 힘입어서 부부의 사랑을 완성할 수 있는 은총을 준다.

 

또 어떤 사람은 사제성소를 받아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 봉사하게 되는데, 성품성사는 이에 상응하는 은총을 전해준다.

 

 

성사의 효력

 

성사는 교회가 정한 규정대로, 교회의 지향대로 집전되면, 은총이 틀림없이 전달된다. 세례성사의 경우에 교회가 정한 규정은 자연수를 이마에 세 번 부으면서 삼위일체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세례성사가 지향하는 바는 세례를 통해서 사람이 모든 죄의 사함을 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이런 두 가지 사항을 지키면 세례를 통해 틀림없이 성화은총이 전달된다.

 

성사 집전에서 사제는 그리스도의 도구이고, 본래 성사 집전자는 그리스도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성사가 사제의 성덕에 좌우되어 은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성사 자체의 힘으로 은총을 전한다. 이것을 사효성(事效性)이라고 한다. 사제가 교회가 정한대로, 교회의 의도대로 성사를 집전한다면, 그 성사는 분명히 은총을 전해준다. 설사 사제가 인간적인 결함이나 과오가 있다고 해도 성사를 통해 은총을 전해줄 수 있다. 하느님은 인간을 극진히 사랑하시기 때문에 허물 있는 성직자가 거행한 성사를 통해서도 당신의 은총을 충만하게 전해주신다. 중세의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가가 말한 대로 병든 의사라고 해도 병자를 치유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다른 한편, 성사의 은총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우리의 합당한 준비가 필요하다. 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은총이 아무리 풍성하게 베풀어져도, 성사를 받는 사람의 준비 자세가 없다면, 그 은총은 효력을 내지 못한다. 아무리 따사로운 봄 햇살이 내리 쬐더라도 죽은 고목에는 효력을 미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비가 내릴 때 어떤 그릇을 놓느냐에 따라서 빗물을 많이 받기도 하고 적게 받기도 한다.

 

성사를 통해서 틀림없이 하느님의 은총이 전해지지만, 인간의 준비 여하에 따라서 은총의 많고 적음이 판가름 난다. 이것을 인효성(人效性)이라고 한다.

 

예수님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마르 4,1-9)를 들려주시면서, 좋은 땅에 떨어진 씨만이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거둔다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성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성사의 은총이 아무리 풍성해도 우리 마음이 돌밭이나 가시덤불과 같으면 그 은총의 결실을 맺지 못한다. 생존경쟁이 치열한 세상에서 이런저런 일로 바쁘게 지내다보면 우리 마음이 뒤엉클어지고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그런 마음은 돌밭이나 가시덤불에 비길 수 있다. 우리 마음이 좋은 땅으로 변화되지 않으면 성사의 은총이 풍성한 결실을 맺지 못한다. 

 

기도로써 마음을 가다듬은 다음에 귀 기울여 성경 말씀을 듣고 마음에 간직하여 되새기는 시간을 자주 갖게 된다면, 우리 마음이 좋은 땅으로 변화될 것이다. 그러면 성사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은총의 씨앗이 잘 심겨지고 뿌리를 내려서 풍성한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성실하게 준비해서 성사 은총의 풍성한 결실을 맛보는 신자들이 좀 더 많아지면 좋겠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4년 1월호, 손희송 베네딕토(신부, 서울대교구 사목국장, 서울 Se. 담당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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