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소공동체ㅣ구역반

왜 소공동체인가? - 소공동체가 안 된다?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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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8-16 ㅣ No.137

[특별기고] 왜 소공동체인가? - 소공동체가 안 된다? (11)


Ⅱ. 복음 중심의 교회

1. 복음에서 멀어진 교회

2. ‘말씀’의 중요성

6) 말씀은 힘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히브 4,12)

소공동체가 안 되는 이유 가운데 가장 큰 이유는 교회가 복음과 멀어져 있고 신자들이 말씀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가 복음과 멀어지면 교회의 정체성을 잃을 뿐만 아니라 교회의 성사성을 잃게 되고 교회의 역동성도 잃게 된다. 교회가 정체성을 잃게 되면 복음이 아닌 것을 복음으로 가르치고 복음보다 덜 중요한 것을 더 중요하게 가르치는 큰 잘못을 하게 된다. 그러면 생각이 있고 의식이 있는 사람들은 교회를 떠나게 된다.

말씀이 없으면 힘을 잃게 된다. 왜냐하면 말씀이 곧 힘이기 때문이다. 유럽은 물론이고 한국 교회도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그 위기는 냉담자의 급증으로 나타나고 있다. 주일미사에 참례하는 신자수가 본당의 전체 신자수 가운데 약 30%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70%는 주일미사에도 참례하지 않는다. 이들은 모두 냉담자들이다. 그들이 냉담하는 이유는 평소에 말씀 중심의 신앙생활, 복음 중심의 신앙생활과 반대되는 기복적인 신앙생활을 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냉담자들은 고통과 십자가의 의미와 가치를 모를 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어려움이 생기면 십자가를 지고 갈 힘이 없었던 것이다.


● 말씀은 창조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시편에 이런 말씀이 있다. “그분께서 말씀하시자 이루어졌고 그분께서 명령하시자 생겨났기 때문이네.”(시편 33,9) 또 창세기를 보면 하느님께서 이 세상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는 말씀이 나온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창세 1,3) 이 말씀들은 하느님께서 빛을 창조하실 때에만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도 똑같은 방법을 쓰셨다. 즉 말씀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는 말이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창세 1,3)이라는 구절이 창세기에 10번이나 나온다. 그리고 그 창조하신 만물을 당신의 말씀으로 지탱하신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히브 1,3)

창조는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 낸다는 것으로 없는 것을 있게 만든다는 말이다. 창조적인 힘이 가장 크고 무서운 힘이다. 그 창조적인 힘은 하느님의 힘이다. 우리 인간에게는 그런 창조적인 힘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 창조적인 하느님의 힘을 말씀을 통하여 얻어 누릴 수 있게 된다. 우리가 말씀을 따라 살면 내 안에 창조적인 힘을 가질 수 있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이 이 창조적인 힘으로 많은 기적을 이루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모세를 말하고 싶다. 모세는 이집트의 파라오 왕궁에 살다가 살인을 저지르고 겁이 나서 도망을 갔다. 도망자 신세로 떠돌이 생활을 하던 모세는 이방인 여자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량한 처지가 되었다. 그때 하느님께서는 모세로 하여금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파라오에게서 구해내라는 엄청난 명령을 내린다. “그러자 모세가 하느님께 아뢰었다.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낼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이것이 내가 너를 보냈다는 표징이 될 것이다.”(탈출 3,11-12) 그러나 모세는 하느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을 해냈다. 하느님의 힘을 받아 수많은 기적을 일으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파라오에게서 해방시켰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께서도 하느님의 힘으로 아기 예수님을 잉태하게 되었다. 천사가 말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루카 1,35) 그리고 또 천사가 말하였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 1,37)

성경이 말하는 많은 기적 사화들이 성경에만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오늘을 사는 나에게 그 기적의 말씀이 육화해야 한다. 그리고 그 말씀을 읽는 독자에게 일어나야 한다. 모세가 일으킨 출애급의 기적이 내 안에서도 일어나야 한다. 성모 마리아에게 일어난 성령으로 인한 예수님의 잉태가 내 안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나도 예수님처럼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21)라고 선언할 수 있어야 한다.


● 말씀은 부활의 힘을 가지고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발현하시어 당신에 관한 말씀을 풀이해주셨다. 그 제자들은 그분의 말씀을 통하여 부활을 체험하였다. 제자들은 고백하였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루카 24,32) 예수님께서 죽은 라자로를 살리실 때에도 당신의 말씀으로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큰 소리로 외치셨다.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요한 11,43) 바오로 사도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살리실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는 당신의 영을 통하여 여러분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로마 8,11) 말씀 속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살아 계신다. 말씀 속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가장 진하게 만날 수 있다.


● 절망은 없다!

말씀의 힘을 믿는 사람은 창조의 힘을 체험할 수 있다. 또 말씀의 힘을 믿는 사람에게는 부활의 힘이 주어진다. 이 말씀의 힘은 하느님의 힘이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말하였다.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다.”(2코린 4,7-9) 말씀 없이 사는 사람은 어려움을 만나면 쓰러진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은 절대로 쓰러지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휘몰아치자 무너져 버렸다.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마태 7, 24-27)

복음으로 복음화를 이루어야 한다. 다른 것으로 복음화할 수 없다. 새로운 복음화는 새로운 열정, 새로운 방법, 새로운 표현이다. 새로운 열정을 찾아야 한다. 그 새로운 열정도 말씀과 복음으로만 가능하다. 우리 신자들의 신앙생활은 힘이 없어 보인다. 생기도 없다. 사제들의 사목생활에도 힘이 없어 보인다. 특히 사제들의 강론에 힘이 없어 감동을 느끼기가 어렵다는 말도 많이 들린다. 교회는 역동성을 회복해야 할 중요한 과제를 안고 있다. 소공동체의 목적은 곧 ‘말씀’과 ‘복음’으로 교회를 살리기 위함이다. ‘말씀’과 ‘복음’으로 교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생기와 역동성을 찾기 위함이다. 말씀은 힘이다!

[월간빛, 2013년 8월호, 박성대 요한(제2대리구장, 주교대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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