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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부활 제3주간 목요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성경자료

[구약] 성경 속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 제2이사야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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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6-09 ㅣ No.3426

[성경 속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 제2이사야의 메시지?

 

 

제2이사야는?

 

바빌론 유배지에 끌려와서 몸과 마음이 지쳐 있는 이스라엘인들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내가 너를 구원하였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이사 43,1ㄷㄹ) 이스라엘 백성이 “너는 나의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들었을 때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그 누구의 위로보다도 큰 위로를 받았을 겁니다. 예언자를 통하여 하느님 말씀을 접하는 신앙인들에게 그 무엇으로도 대치할 수 없는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너는 나의 것이다(You are mine)”가 뜻하는 바는?

 

다음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네가 물 한가운데를 지난다 해도 나 너와 함께 있고 강을 지난다 해도 너를 덮치지 않게 하리라. 너는 나의 것이다. 네가 불 한가운데를 걷는다 해도 너는 타지 않고 불꽃이 너를 태우지 못하리라.”(43,2)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하느님 친히 당신 백성을 곁에서 보살펴주신답니다. “나는 주 너의 하느님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너의 구원자이다.”(43,3ㄱ)

 

 

사실 이스라엘은?

 

한편으로 하느님 눈에 한낱 벌레와 같은 존재라고 예언자는 선언합니다. “벌레 같은 야곱아 구더기 같은 이스라엘아!” 그러나 그 앞에 나오는 “두려워하지 마라.”와 뒤따라 나오는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는 표현이 눈길을 끕니다. 이어서 이사야는 주님이 누구신지를 다시금 밝혀줍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 너의 구원자이다.”(41,14)

 

아주 어릴 적에 아버지와 함께 눈 내리는 밤에 첩첩산중을 걸어 집으로 향하던 밤이 기억납니다. 캄캄한 어둠 속 눈길을 대충 더듬어 가는 밤이라 오싹오싹하는 두려움이 엄습해왔지만 아버지가 나를 지켜주신다는 믿음 때문에 나름 든든했었습니다. 먼 타향에 와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앞이 보이지 않는 고생 속에서도 이스라엘은 이사야가 선포하는 하느님 말씀으로 큰 위로를 받고 절망 속에서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와 젖먹이?

 

제2이사야는 하느님 사랑을, 이 세상에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어머니와 젖먹이의 관계’에 견주어 설명합니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49,15) 이스라엘은 벌레와 같은 인간이라서 창조주 하느님께 사실 아무 것도 요청할 권리가 없지만 무한한 사랑을 지니신 그분께서는 비천한 인간에게 더없이 큰 자비를 베푸신다고 제2이사야는 선언합니다.

 

 

우리 모두를 초대하는 제2이사야?

 

제2이사야는 바빌론 유배지에서 희망을 잃고 어둠 속을 헤매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너희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죗값이 치러졌으며 자기의 모든 죄악에 대하여 주님 손에서 갑절의 벌을 받았다고 외쳐라.”(이사 40,1-2)

 

제2이사야는 이제 자신의 예언을 마무리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초대합니다. 오늘날 우리 입장에서 볼 때, 제2이사야가 선포하는 주님께서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 특히 레지오 단원들을 초대하는 것입니다. “자, 목마른 자들아, 모두 물가로 오너라. 돈이 없는 자들도 와서 사 먹어라. 와서 돈 없이 값없이 술과 젖을 사라.”(이사 55,1) 그런데 이 구절을 자세히 읽다보면 아주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돈 없이 값을 치르지 않고서 ‘사 먹으라’는 말씀이 언뜻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어떻게 좋은 음식물을 ‘값을 치르지 않고서’ 나아가 ‘그것을 사 먹고 마실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이 구절에 힘입어 성서 강의나 피정 강론 때, 가끔 자랑을 합니다. 제가 다녀본 나라들이 아주 많다고 말입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터키, 그리스, 유럽 여러 나라들, 몽골, 인도, 파푸아 뉴기니, 호주, 미국 등등 수많은 나라들을 고루 다 다녀 보았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그것도 거의 경비를 들이지 않고 주로 공짜 여행을 했다고 확실하게 주장합니다. 그럴 듯하게 뽐내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듣는 분들의 반응은 삽시간에 확 바뀝니다. 눈을 휘둥그레 뜨고 제게 묻습니다. ‘그렇게 많은 나라들을 어떻게 돈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여행할 수 있을까?’ 이때 저는 제안합니다. 방법을 가르쳐 드릴까요? 청중은 합창을 합니다. “예~ .” 그것에 그치지 않고 저는 한 수 더 뜹니다. 스위스 중앙 알프스 지역에 제 땅이 몇 곳 있다고 귀띔해줍니다.

 

사실 우리는 그 모든 나라들을 비행기나 배편으로가 아니면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비행기나 배편이 아니라 지도를 보면서 지도 속에서 여러 나라들을 돌아봅니다. 실제로 갈릴래아, 예루살렘, 요르단 강, 사해, 소돔, 네겝, 헤르몬 산 등등, 곳곳을 꼭 비행기나 배를 타고 가지 않더라도 지도책 안에서 수도 없이 다녀오곤 합니다.

 

그와 같은 답을 저는 제2이사야의 교훈에서 찾았습니다. “자, 목마른 자들아, 모두 물가로 오너라. 돈이 없는 자들도 와서 사 먹어라. 와서 돈 없이 값없이 술과 젖을 사라.”(이사 55,1) 이사야의 깊은 영성 안에서 우리는 돈 없이 값없이 맛있는 음식을 ‘사 먹고 마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한없는 영적 목마름을 달래고 배고픔을 채우려면 먼저 주님 초대에 응답해야 합니다. 그 응답은 욕심과 허영을 버리고 그분의 초대에 장애가 되는 모든 미움과 교만의 옷을 벗어 버림으로써 시작됩니다. 가식과 죄악을 깨끗이 씻어버리는 회개가 돈 없이 값없이 그분이 베푸시는 잔치에 참여하여 갖가지 맛난 것을 즐기며 축제에 참여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아름답고 신비로운 알프스가 꼭 내 이름으로 등록된 내 재산이 아니라고 해도, 시골이나 도시에 내 이름으로 된 땅이 없다고 해도 내가 가는 곳마다 주님께서 축복해주신 ‘우리들의 기름진 땅이요 비옥한 주님 자비의 옥토’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이 또한 크나큰 은총이 아니겠습니까? 세상 곳곳을 고루 다녀보지 못한다 해도 내 마음으로, 또 지도나 화면을 통해서 내 머릿속에서 내 생각으로 이곳저곳을 가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절약한 것으로써 곳곳에서 내 손길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주님 자비의 손길이 되어줄 때 우리는 우리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목마름과 배고픔을 달래게 됩니다.

 

 

만나 뵐 수 있을 때?

 

제2이사야는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어줍니다. “만나 뵐 수 있을 때에 주님을 찾아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분을 불러라.”(이사 55,6) 우리 생각을 조금만 바꿀 수 있다면! 내 마음을 조금만 비울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 여기서 천국을 손톱만큼이라도 맛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 자비를, 창조주의 위대하신 생명력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만나 뵐 수 있을 때는?

 

바로 지금이요 오늘입니다. 오늘이 바로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그분께 돌아서서 조용히 내 죄를 고백할 때입니다. 제2이사야의 예언은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루카 11,20)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6년 6월호, 글 신교선 가브리엘 신부(인천교구 용현5동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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