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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자료

[구약] 구약 성경의 물신: 이집트 탈출의 신이 된 바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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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8-18 ㅣ No.3781

[구약 성경의 물신] 이집트 탈출의 신이 된 바알

 

 

지난 호에서 이집트 탈출의 하느님을 부정하는 ‘반(反)탈출 이데올로기’의 중심에 바알 숭배가 있음을 보았다. 이집트 탈출 사건을 부정하는 주장은 탈출 직후부터 하느님 백성의 내부에 존재했으며 목이 뻣뻣한 백성의 내면을 요약하는 말이었다. 이번 호에서는 광야 시대 이후 바알 숭배의 질긴 생명력과 탈출의 하느님을 부정하는 새로운 논리를 살펴보겠다.

 

 

대립하는 바알 숭배의 생명력

 

고대 이스라엘은 한 분이신 주님을 믿는 하느님 백성이기에 극소수의 사람들이 몰래 바알을 숭배하였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바알 숭배는 상당한 수준의 체계를 갖추고 번성했다.

 

먼저 바알 신전과 바알 제단이 고대 이스라엘에 존재했다. 지난 호의 기드온 이야기를 보자. 그는 바알 신전의 제단을 허물었다(판관 6,25). 북왕국의 아합 임금은 “사마리아에 세운 바알 신전에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세웠다”(1열왕 16,32). 예후 임금도 사람들을 모아 바알 신전에서 바알 집회를 성대하게 거행했다는 기록이 있다(2열왕 10,20).

 

이런 형편이니 임금이 바알의 신탁을 청하였다는 기록이 낯설지 않다(2열왕 1,2). 임금뿐 아니라 평범한 백성들이 바알의 이름으로 맹세했다는 기록도 있다(예레 12,16). 바알의 예언자들도 존재했고(예레 2,8; 23,13), 바알의 사제도 있었다(2열왕 10,19). 마탄이라는 바알 사제는 아마도 당대 ‘이스라엘의 바알 진영’을 대표하는 인물이었으리라(2열왕 11,18). 바알의 의례를 소상히 알기는 어려우나 바알 신상에 절하고(1열왕 18,26.28)입을 맞추는 행위가(1열왕 19,18)전해진다. 바알의 축제일에 분향하고(호세 2,15) 바알 행진을 한 정황도 있다(예레 2,23).

 

엘리야는 아합 임금과 이제벨 왕비 치하에서 위기에 빠진 하느님 신앙을 지키고자 고난을 겪은 예언자다. 그는 “주님의 예언자라고는 나 혼자 남았습니다. 그러나 바알의 예언자는 사백오십 명이나 됩니다.”(1열왕 18,22)라고 울부짖었다. 임금도 왕비도 바알을 숭배하니 바알 예언자가 득세했을 것이다. 만일 순수한 역사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아합 치하의 이스라엘은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바알당’(黨)이 여당의 지위를 누렸다.

 

구약 성경에 많이 등장하는 바알 관련 지명과 인명을 거론하지 않고도 바알 숭배의 흔적을 쉽게 알 수 있다. 바알 숭배는 대낮에 떳떳하게 저질러진 일이다.

 

인간적 욕심을 자극하는 바알 숭배는 질긴 생명력으로 하느님 신앙과 대립하며 번성했다. 두 신은 근본적으로 달랐다. 바알 숭배는 반탈출 이데올로기의 근거지로서 하느님 신앙을 공격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명백한 대립의 시기’는 영원하지 않았다. 예로보암의 기점으로 대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통성과 대중성을 원했던 예로보암

 

종교사 학파의 대표적 학자인 알베르츠는 예로보암의 반란 이야기(1열왕 11-12장)와 탈출기의 모세 이야기가 많은 공통점이 있음을 날카롭게 관찰했다. 느밧의 아들 예로보암은(1열왕 11,26) 솔로몬 임금의 눈에 들어 비교적 높은 신분을 얻었지만(11,28)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11,29-39) 반란을 주도했다. 예로보암은 모세처럼 나라 밖으로 피신해야 했으며(11,40), 목숨을 노리던 통치자가 죽어서야(12,2; 탈출 4,19 참조)귀국할 수 있었다. 그는 백성을 위해 임금과 협상을 벌였지만, 임금은 노동 조건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12,4-14; 탈출 5,2-19 참조).

 

결국 예로보암은 ‘자신의 백성’을 데리고 새 공동체를 만들었다. 알베르츠는 예로보암의 반란이 “이집트의 강제 노역으로부터 해방된 조상들을 염두에 둔 채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추측했다. 어떤 면에서 예로보암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종교적 요소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줄 알았던 인물이었던 것 같다.

 

구약 성경은 남과 북의 여러 임금이 “예로보암의 죄”에 빠졌다고 거듭 보고한다(1열왕 16,31; 2열왕 10,31; 13,2; 15,9.18.24.28; 17,22; 참조 느헤 9,18). 그 구체적인 내용은 “베텔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 숭배”(2열왕 10,29)이다. 지난 호에서 본 대로, 황금과 소는 바알의 대표적 상징이다. 그런데 그는 왜 금송아지 숭배에 빠져 버린 것일까?

 

예로보암이 금송아지 숭배에 빠진 큰 이유는 아마 그의 정치적 욕심 때문일 것이다. 그는 예루살렘에 맞서는 새로운 정통성이 필요했다. 솔로몬의 예루살렘 성전을 뛰어넘을 수 있는 상징, 더 오래되고(고대성) 더 인기 있는(대중성)종교적 중심을 만들어 내야 자신의 권좌가 안정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알베르츠는 북왕국의 의례가 예루살렘보다 훨씬 대중적이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하느님께서 지성소 한가운데에 계시기에 사제들만 가까이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예로보암은 대중에게 하느님의 모습을 시원하게 드러내는 방법을 채택했다. 높은 곳에 금송아지상을 세워 멀리서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 대중이 가까이 접근해 만지거나 입을 맞추는 등의 행위를 허용했을지도 모른다. 예루살렘의 엄숙한 성전 분위기와 달리 더 요란하고 자극적인 의례가 거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탈출의 하느님이 된 바알

 

예로보암은 자신을 스스로 모세와 비교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베텔과 단에 금송아지상을 세우고 백성에게 이렇게 말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일은 이만하면 충분합니다. 이스라엘이여, 여러분을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여러분의 하느님께서 여기에 계십니다”(1열왕 12,28).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일은 이만하면 충분합니다.”는 말은 예로보암의 정치적 동기를 잘 드러낸다. 그런데 그다음의 말, 곧 “여러분을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여러분의 하느님”이라는 주장이 눈길을 끈다. 이 말은 일찍이 시나이산에서 아론과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며 한 말과 같다(탈출 32,1-6). “이스라엘아, 이분이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너의 신이시다”(탈출 32,4).

 

그동안 성서학자들은 두 본문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오래된 것인지 깊이 있는 연구를 해 왔다. 하지만 아직도 여러 의견이 존재한다. 탈출기의 ‘아론의 본문’이 더 오래된 것이라는 전통적 견해에 따르면, 이미 시나이산에서 십계명을 받을 때부터 백성들은 하느님을 오해했다. 이런 주장을 하는 학자들은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너의 신’이란 황소 숭배와 관련된 일종의 ‘전승된 선포 정식’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고대의 전승에 밝은 예로보암이 과거의 잘못된 전승을 부활시킨 셈이다. 하지만 예로보암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견해가 고대에 투사되었다는 의견도 무시할 수 없다.

 

필자는 이런 ‘역사적 질문’에서 조금 떨어진 ‘신학적 질문’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예로보암은 기존의 바알 숭배와는 다른, 새롭게 업그레이드된 반탈출 주장을 들고 나온 것이다. 곧 이집트 탈출 사건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바알이 이집트 탈출의 하느님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예로보암의 죄

 

예로보암의 주장은 이집트 탈출의 의미를 부정하는 ‘새로운 반탈출 주장’이다. 이렇게 되면 바알의 역할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다. ‘반탈출의 중심’이 ‘탈출의 주역’이 된 것이다. 이 주장은 이집트 탈출 사건을 부정하는 과거의 반탈출 이데올로기와는 전혀 다르다. 탈출의 하느님을 바알로 바꿔치기해 버림으로써, 가난한 사람을 선택하여 역사에 개입하신 하느님의 고유성을 삭제하고, 하느님의 가르침을 근본적으로 왜곡하는 것이다.

 

바알 숭배와 대립하는 과정에서는 하느님 신앙의 고유한 속성이 선명히 드러났다. 하지만 바알을 탈출의 하느님으로 만들어 버리면, 대립은 실종하고 바알과 하느님이 서로 뒤범벅된다. 자연의 풍요를 가져오는 바알과 역사에서 활동하시는 주님을 혼합시켜 버리는 것은 결과적으로 가난한 백성을 선택하시는 ‘역사의 하느님’을 흐릿하게 만든다.

 

예로보암은 고대의 전통에도 밝았고 신학적 지식도 많은 인물인 듯하다. 그런데 그의 정치적 동기가 이런 신학적 왜곡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도 성찰할 대목이다. 왕조의 정통성과 안정을 추구하는 인간적 의도는 결국 하느님의 가장 고유한 특징을 왜곡해 버렸다. 더 크고 번듯하며 안정된 체제를 갖추려는 ‘신학 전문가의 인간적 욕심’이 하느님 신앙 전체를 위기에 빠뜨린 것이다.

 

하느님 백성은 한편으로 나약한 인간들의 공동체라는 점을 묵상하며 자신을 돌아본다. 바알 같은 것으로 하느님을 대치하려는 시도가 우리 시대에는 없을까? 하느님의 자리에 성공, 돈, 무병장수 등을 올려놓는 일부 종교인의 세태를 보면서 예로보암의 죄를 떠올린다.

 

* 주원준 토마스 아퀴나스 -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고대 근동과 구약 성경을 연구하는 평신도 신학자이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이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 위원이다. 저서로 「구약 성경과 신들」과 「신명기 주해」 등이 있다.

 

[경향잡지, 2017년 8월호, 주원준 토마스 아퀴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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