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 (수)
(백) 부활 제4주간 수요일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평협ㅣ사목회

세상 속의 평신도: 교회 안에서 평신도의 자리, 어떻게 변화해 왔나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8-14 ㅣ No.27

[경향 돋보기 - 세상 속의 평신도] 교회 안에서 평신도의 자리, 어떻게 변화해 왔나

 

 

들어가는 말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끝난 지 벌써 45년이나 지난 남한 땅에서 다시 평신도가 교회 안에서 어떠한 위치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글을 부탁받고 고민에 빠졌다. 왜? 그리고 아직도 평신도인가? 평신도들이 문제라서 그런가? 그렇다면 상대적 개념으로 받아들여지는 성직자들은 문제가 없는가? 그들의 자리는 문제가 없는가? 필자는 그 둘 사이 기능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구분하고 구별하여 생각하고 계급의 차이처럼 인식하고 있는 양쪽의 잘못된 시각이 아직도 크게 존재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실감하면서 글을 시작하려 한다.

 

근본적으로 교회 내에서 평신도에 대한 개념은 교회론의 변화에 큰 영향을 받고 있기에 오늘날 남한 교회(한국 교회라는 용어 대신 사용하였다. 한국 교회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북한 교회를 배제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남북 모두를 지칭할 때에만 한국 교회라는 단어를 사용하겠다.)에서 평신도의 개념에 문제가 있다면 남한 교회가 바라본 교회론에 문제가 있다고 역으로 말할 수 있겠다.

 

최근 실용주의를 모토로 한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우리 사회와 교회는 모든 것을 실용의 잣대로 계산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양심, 자유, 인권, 생명, 자연, 교육, 인간의 존엄성 등등 하느님에게 속한 개념들까지도 경제적인 눈으로 판단하여 돈 이외의 가치는 무시되도록 강요받는 시대를 보내고 있다. 우리 모두가 경제적으로 좀 더 풍요해지려면 어느 정도는 하느님이 뒤로 물러나 계셔도 좋다고 생각한 결과라고 판단된다.

 

4대강 사업만 봐도 그렇다. 인간에게 비유하자면 강은 인간의 핏줄과 같다. 하느님은 육신의 구석구석을 살리시고자 온 몸의 핏줄을 구불구불 얼기설기 엮어놓으셨다. 들어오는 곳과 나가는 곳은 하나일지라도 피가 그렇게 돌아야 사람은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는 핏줄과도 같은 강을 파내어 직선으로 만들고 시멘트로 둘러쌓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얼핏 봐서 피는 도는 것 같지만 구석구석 흘러 휘감아 돌지 못하기에 죽은 세포들이 생겨나고 결국 온몸이 죽게 되는 형국이지만 경제적으로 볼 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은 모양이다.

 

교회라는 공동체도 이처럼 실용주의의 탈을 쓴 물신주의 물량주의를 배격하기보다 방관하거나 오히려 그렇게 움직이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볼 때 적어도 남한 교회에서는 평신도들의 사명과 책임이 더욱 막중하다고 할 수 있다.

 

 

1. 평신도에 대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생각들

 

초대교회 신자들과 교부들은 하느님 안에서 모두가 형제자매라는 인식을 가지고 세상 안에서 세상과는 구별되는 사회를 이루었다. 따라서 이때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분리나 구분에 앞서 하느님의 백성은 이교 백성들 중에서 선택되고 분리되었으며 성화되었다고 생각하였다.

 

사실 신약성경에서 하느님의 백성을 의미하는 ‘라오스(λαο?)’라는 단어는 지배자들이나 지도자들과 구분되는 일반 유다 백성을 의미하기도 했지만(루카 22,2),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을 언급할 때 사용하였고, 더 나아가 유다인과 이방인 모두를 포함하는 교회에 대해서도 사용함으로써 새로운 이스라엘을 의미하게 되어 보편적 교회관을 드러내고 있다(사도 15,14; 로마 9,25-26). 또한 ‘라오스’라는 단어는 오늘날과 같이 교회 내의 교역자들과 구별하고자 평신도 신분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면서 동시에 믿지 않는 사람들과의 구분을 위해 사용되었다(1베드 2,9).

 

이 ‘라오스’가 라틴어 ‘laicus(평신도)’로 정착되면서 평신도는 교역자가 아닌 비성직자의 개념으로 정립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초대교회에서 이 개념은 직무를 강조한 것일 뿐 성직자와 평신도가 이원론적으로 엄격하게 분리된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평신도들은 교역자들의 선출에도 관여했고, 교역자들은 공동체의 동의를 얻어 임명되었다. “디다케”는 신자들에게 “주님께 부끄럽지 않게 여러분의 주교와 부제를 선출하시오.”(15,1)라고 요구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초대교회의 모습이 결국 교회가 지향해야 할 모습이다. 잠시이기는 했지만 초대 한국 교회의 가성직제도 아래서는 신자들 사이에서 존경받는 분들이 성직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중세에 들어서면서 교회가 조직화되고 교황권과 교계제도가 중요하게 대두되면서 교회는 자신의 성화권(聖化權)보다 통치권이 강조되고 교회 공동체 그 자체보다 그 법적 지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교회론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성직자와 평신도를 교회 내의 서로 다른 두 개의 기능으로서의 지위로 바라보기보다는 분리된 상하 관계의 두 실재라는 이원론적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래서 복음과 은총, 그리고 가르치고 다스리고 성화하는 책임은 차츰 성직자들의 독점물이 되었고, 평신도들은 수동적으로 그들의 지도를 받고 다스림을 받으며 은총을 구걸해야 하는 존재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러한 구조는 근대에 들어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비오-베네딕토 법전’이라 일컬어지는 1917년 교회법전을 살펴보면 평신도의 위치나 위상을 곧바로 파악할 수 있다. 평신도에 관한 법조항의 위치는 성직자, 수도자를 다룬 다음 세 번째로 다루고 있는데 그것도 겨우 44개 조항(682-725조)만 규정되어 있을 뿐이다. 여기서 평신도는 교회의 규정에 따라서 성직자로부터 영적인 선익과 특히 구원에 필요한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규정한다. 대단히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존재로 인식되어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모든 신자는 성직자를 존경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규정하고(119조), 성직자의 묘는 신자들과 떨어져 따로 설치되어야 한다(1209조 2항)고도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법조항을 보건데 적어도 20세기 초까지도 교회는 ‘불공평한 사회’였던 것이다. 이러한 의식이 남한 교회를 아직도 지배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남한 교회에 과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영향이 있기는 했나하는 의문이 든다. 몇 가지 변화로 구색을 맞추기는 했지만 밑바닥 의식은 그대로인 듯 보인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앞두고 교회론과 평신도를 바라보는 시각에 큰 변화가 일기 시작한다. 특히 비오 12세 교황과 훗날 바오로 6세 교황이 된 몬티니는 모든 신자가 세례에 힘입어 교회의 사도직 활동에 참여할 능력과 의무가 있다고 강조하였고, 필립스 몬시뇰은 평신도들의 사명은 거룩한 사명이고 이것은 예외 없이 교회의 모든 구성원과 연결된다면서, 결국 교회의 세상에 대한 성화 임무는 구성원 모두에 해당하며, 구성원 모두의 힘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말하였다. 나아가 이브 콩가르는 세상 안에서 평신도는 세속을 그리스도교 정신으로 물들여가는 소명을 펼쳐나가는데, 교회와 세상은 둘 다 하느님의 나라에서 기인하였고, 평신도는 이 두 개가 공존하는 단일한 곳에 참여하고 있다고 언급하였다. 결국 평신도의 사명은 세상과 교회가 함께 공존하는 현재에 있기에, 그들의 사도직을 고유한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들은 결국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신학을 정립하게 만들었다. 마침내 요한 23세 교황은 “어머니요 스승”에서 교회의 새로운 통치방식을 선언하고, 다원화된 사회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면서 평신도는 자유로이 그리스도교적 책임감을 갖고 정치에 참여할 의무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이어 그는 공의회를 소집하면서 교회의 현대화(Aggiornamento), 곧 쇄신이 공의회의 임무임을 밝혔다.

 

 

2.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평신도

 

공의회는 초대교회의 삶과 신앙의 기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원천으로의 복귀’와 현재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교적인 이해를 이끌어내기 위한 ‘시대적 징표’를 통하여 교회의 본질과 사명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하고 있다. 그 결과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으로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그리스도의 가시적인 성사라고 밝히고 있다.

 

‘교회헌장’은 교회의 모든 구성원이 하느님의 백성 ‘라오스’에 속한다는 성경과 교부들의 생각을 복구하여 교회론의 변화를 가져왔다.

 

교회론의 변화는 평신도론의 변화를 가져왔는데, 특히 교계제도를 언급하기에 앞서 모든 믿는 이들의 ‘일반적 사제직’이 ‘특수 사제직’에 우선함을 천명하였다. 이는 성직자와 평신도라는 이분법적인 구별 이전에 교회의 모든 구성원은 하느님의 백성에 속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이룸으로써, 평신도는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에게 해당되는 보편성과 평등성을 지닌다고 선언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7,9,10,32항). 특히 평신도는 그들의 세속성으로 말미암아 세상 한가운데 있는 교회로서 능동적으로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존재라고 언급한다(31항).

 

특히 평신도를 축성된 자로서 그리스도의 사명을 부여받은 존재로 선언하고 있는데, 이는 평신도의 사도직이 교계에 의해서 주어지는 법적인 질서에 바탕을 두는 위임(mandatum)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는 존재 자체에 근거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평신도 사도직 교령’에서는 평신도와 세상의 관계에서 평신도의 고유한 특성을 언급한다. 곧, 평신도는 자신들의 삶의 자리가 세속이고 그 속에서 부르심을 받았으며 사도직을 수행하고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물론 이 세속성은 평신도에게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고, 세례 이전에 존재하는 조건이기에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존재한다. 공의회는 세계를 전체 교회의 활동 영역으로 보고 있으며, 교회는 세상을 위한 구원의 성사임을 강조한다. 따라서 교회가 세상에 관심을 갖고 잘못된 것들을 지적하고 수정해 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둘이 분리되어 각자의 영역만을 고집하는 이원론적 사고는 극복되었기 때문이다.

 

 

3. 남한 교회에서 평신도의 자리와 역할

 

지금껏 살펴본 바와 같이 교회 안에서 평신도의 위치는 역사적으로 교회론의 변화에 따라 자리매겨져 왔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교회론이 새롭게 정립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그 안에 존재하는 평신도를 바라보는 눈이 바뀌었다. 세상과 교회가 전혀 다른 존재이거나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세상에 교회가 존재하고 있으며, 세상 전체가 교회의 활동 영역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 존재하는 평신도들의 사도직이 매우 중요함을 인식하고 선언하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가 살고 있는 남한 사회를 생각해 보자. 나라는 강대국에 의해 분단되었고, 모든 구조적이고 사회적인 모순과 악은 분단에서 기인하고 있는데도 지금껏 교회의 지도자들은 반공 이데올로기에 경도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만이 교회를 안전하게 지켜주고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 결과 남한 교회는 무비판적으로 서구교회를 따라가는 한편 천민자본주의가 교회 내에 깊숙이 자리 잡았으며, 교회 내부의 목소리는 위로 잘 전달되지 못했고 민주 인권 정의 등의 가치를 가지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먼저 교회당국과 부딪히게 되는 상황도 나타났다. 남한 교회 내에서도 성장을 중시하고 조직을 지키는 것이 큰 일로 치부되어 왔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교회가 민주사회는 아니지만 적어도 절차적 민주성이 있어야 함에도 그것이 무시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나 그 사이 평신도들의 사회참여와 세상 안에서의 사도직 활동은 눈물겹게 이어졌다.  경제발전이 시작되면서 평신도들은 가톨릭노동청년회(J.O.C.) 등을 중심으로 노동의 가치, 노동의 존엄성을 강조하며 도시빈민들을 위한 노력을 경주해 왔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통일운동도 역시 선각자적인 평신도들에 의해서 시작되었고, 그들의 희생 위에 몇몇 성직자들이 각성하면서 교회에서도 겨우 통일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아닌가? 박정희 군사독재가 대를 이어 암울한 시대를 이어갈 때 불의에 항거해 감옥을 마다한 이들도 역시 평신도들이었지 않은가?

 

남한 사회에서 천주교가 그나마 신뢰를 받고 민중들의 희망이 된 것은 독재에 항거했던 이러한 평신도들과 그들과 함께한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노력이 있었다. 그들이 아니었던들 북한 교회가 존재하고 있음을 생각할 수 있었을까? 2010년을 살고 있는 지금도 뜻 있는 수많은 평신도들은 그들의 삶을 포기한 채 교회와 세상을 위해 살고 있다. 교회 당국은 그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으려 노력하고 있는가?

 

하긴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을 우려하는 주교회의의 성명서가 나온 상황에서도 극우 신자 단체를 자칭하는 이들과 그들의 심정적 동조자들은 사업 반대를 외치는 미사와 집회를 물리적으로 저지하면서 조롱하고 있는 상황이기는 하다.

 

이제 적어도 교의적으로 평신도가 세상 안에서 사도직을 수행하고 적극적으로 세상을 복음화시키는 데에 장애되는 것은 없다. 남한 교회 당국은 평신도들의 이러한 세상에 대한 사도직을 더욱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들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 그들을 백안시하고 물리칠수록 교회와 세상은 점점 그 거리를 멀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가는 말

 

예수 시대에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 호되게 질책을 받은 이유는 세상과 그들의 종교를 전혀 별개의 것으로 이원화시켰기 때문이다. 백성의 대다수가 글도 모르고 율법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들에게 맹목적으로 율법을 강요하고 지키지 못하는 이들을 구별하여 죄인이나 이방인 취급하면서 구원을 독점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에서 교회는 성장할 수 없다. 평신도들을 기도하고 돈 내고 복종하는 속된 존재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소수의 성직계급이 지배하고 절대 다수인 나머지 백성들은 그들이 주는 축복이나 얻어먹는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주신 분이 예수님 아니시던가? 할례를 받아서가 아니라 유다인이어서가 아니라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음으로써 구원된다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더욱 절절하게 다가온다.

 

* 김진화 마태오 - 전주교구 신부. 1988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로마 우르바노 대학에서 교회법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창성당 주임, 성소국장, 광주 가톨릭 대학교 교회법 교수를 거쳐, 현재 우림성당 주임신부이며, 전주교구 사법대리 겸 법원장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0년 8월호, 김진화 신부]



5,097 1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