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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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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사목] 복음으로 세상 보기: 이주민, 난민과 더불어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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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2-03 ㅣ No.1189

[복음으로 세상 보기] 이주민, 난민과 더불어 살아가기

 

 

“이집트로 피신하는 나자렛의 성가정은 모든 난민 가정의 원형이다. 포악한 군주의 횡포를 피하여 이집트에서 피난 생활을 하는 예수님과 마리아와 요셉은 모든 시대 모든 곳에서 공포나 박해, 빈곤 때문에 그들의 고향, 사랑하는 부모와 친척, 가까운 벗들을 떠나 낯선 땅으로 떠나야만 하는 온갖 이민과 난민 그리고 이방인들의 전형이며 보호자이다.”<피난가정, 서문, 1952년>

 

우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자마자 유아기를 먼 땅 이집트에서 외국인으로서 살아가야 하셨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예수님의 성가정이 이민자이며 난민이셨다고 전하며, 주변의 이주민들을 환대하고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기를 권고합니다.

 

통계에 의하면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수가 2018년 기준 230만 명을 넘어서 국민 전체의 4.6%를 차지하는 것으로 집계되었고, 향후 5년 안에 300만 명(전체인구 대비 약 6%)까지 불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법무부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2018) 또한 지난 2007년 100만 돌파 이후, 10년 만에 2배 이상으로 양적인 글로벌화가 빠르게 진행 중입니다. 그 중 다문화 가족의 수는 96만 명이고, 결혼 이민자 및 혼인귀화자의 수는 28만3000명이라고 합니다.

 

이제 국제결혼은 흔해졌고, 3D 업종의 인력난 타개를 위해 우리가 아쉬워서 데리고 온 외국인과 섞여 일하는 일터도 많아졌으며, 대중교통을 비롯한 우리주변의 생활공간에서 다양한 나라 출신의 외국인들과 일상적으로 만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유창하게 한국말을 구사하는 외국인 출연자들을 TV를 비롯한 대중매체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한국사회가 이미 다문화사회로 완전히 진입하였음을 보여주는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외국인들은 이제 여러 가지 이유로 함께 살아가야 되는 이웃이 되었습니다.

 

 

한국사회는 이미 다문화사회로 완전히 진입

 

그동안 우리나라는 정부를 비롯한 이주민단체 그리고 다수 시민들의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로 이주민들에 대한 인식과 이해는 어느 정도 높아졌고, 다문화사회로의 변화에도 점차 익숙해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이주민 증가에 따른 내국인과의 일자리 경쟁, 위장 결혼․이혼, 문화 충돌, 범죄 등의 사회 문제가 등장하면서 이주민에 대한 분노와 혐오의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는 것도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사실입니다. 이제 한국사회의 다양성과 복잡성이 이전보다 더욱 가속화 될 것이라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앞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가 이러한 다양성을 받아들일만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얼마 전 ‘4개 종단(원불교, 불교, 개신교, 가톨릭) 이주 인권협의회’가 주최하는 이주민 관련 이야기마당에 다녀왔습니다. 각 종단을 대표하여 국내에 살고 있는 이주민과 그 이주민들을 위해 일하는 각 종단의 사목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습니다. 국내에 살고 있는 이주민들에 대해 이해하고 그들을 알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마음 아픈 사연이 기억에,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한 이주민 여성이 자신의 자녀 이야기를 하였는데, 아이가 학급에서 왕따를 당하였고 심지어 어느 한 친구에게서는 견디기 힘든 언어적 폭력으로 학교에 다니기 힘든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괴롭히는 친구를 자신의 아이에게 법으로 접근을 금지시키는 상황까지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하시는 말씀이 “우리 아이가 행복하게 학교에 다녔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이주민 아이들이 차별받지 않고 잘 지내야지 원주민의 아이들도 더불어서 같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주민 자녀들이 차별과 폭력과 박해로 인해 비뚤게 나간다면, 결국 한국사회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고, 그 악영향이 고스란히 한국 원주민들에게 돌아가는 일입니다.” 생각해 보니 그럴 것도 같았습니다. 주변의 고통 받고 어려움에 빠진 사람이 없어야 온 사회가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얼마 전 새롭게 바라본 성경의 이야기 하나가 생각이 납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길을 가시다가 나병환자 열 사람을 치유해 주시며, 가서 사제에게 몸을 보여주며 깨끗하게 치유되었음을 알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예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러 돌아온 사람은 누구였나요? 바로 외국인이었다고 전합니다.(루카 17, 11-19 참조)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 당시에 나병을 포함한 질병들의 원인은 죄로 인하여 하느님께 받는 벌이라고 믿었고, 그래서 죄인으로 취급되었던 병자들은 사람들로부터 버림받고, 미움 받고, 차별 받았습니다. 그런데 나병이 걸린 환자이며 거기에 더하여 이방인이며 외국인이니 그는 얼마나 더 많이 차별받고, 더 많이 미움 받았겠습니까? 그래서 어떻게 보면 외국인 나병 환자는 예수님의 치유를 더 필요로 했고, 더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과 환대가 필요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치유를 받은 외국인은 더 많이 감사하고,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인사를 드리러 왔던 것입니다.

 

 

환대와 배려, 존중으로 먼저 이주민들의 좋은 이웃 되어야

 

따라서 우리 주변에 함께 살아가는 이방인, 외국인, 난민들은 우리의 환대가 더 절실히 필요하고, 우리의 나눔과 선행과 도움에 더 절실히 그리고 더 많이 고마움을 느낄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환대와 나눔과 친절은 범죄증가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 실천으로 되돌아 올 것입니다.

 

반대로, 오히려 우리가 대하는 태도가 그들을 범죄자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과 신뢰의 문제입니다. 그것은 내국인거나 외국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처음부터 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내가 미움을 받고, 편견으로 의심받고, 고립되다 보면 악한 마음을 품게 되고, 또 분노가 가득하다 보니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인식이 외국인은 잠재적 범죄자이고, 특정 종교를 믿는 외국인은 무조건 범죄자라는 인식이 오히려 그들을 분노케 하고, 범죄를 저지르게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편견과 오해와 선입견이 오히려 범죄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주사목위원회에 부임 후 처음 방문한 곳은 이주민 모자 쉼터의 한 아기의 돌잔치였습니다. 돌잔치에서 아기 엄마의 소감을 들으며 생각했습니다.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이 다 똑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들은 자녀가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라고, 그리고 자녀들은 부모님의 사랑과 헌신으로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 속 익명의 어떤 한 사람도 소중하지 않은 생명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어느 한사람은 한 가정의 소중한 아들이고, 딸이고, 아버지이고 어머니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외국인도 우리와 똑같은 소중한 한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내국인과 똑같은 마음으로 대하고 도우며 함께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원주민의 환대와 배려와 존중으로 이주민들의 좋은 이웃이 먼저 되어 줄 때, 이주민들도 우리의 아주 좋은 이웃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울타리에서 나와 다른 이들과 결합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합니다. 자기 안에 갇혀 있는 것은 내재라는 쓴 독을 맛보는 것입니다.”(복음의 기쁨, 87항)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2월호, 이광휘 신부(서울대교구 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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