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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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12-11 ㅣ No.661

[레지오 영성] 감사합니다

 

 

강철왕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철강 재벌 앤드류 카네기(1835~1919)의 일화가 하나 떠올려집니다.

 

어느 날, 말이 거친 한 여성이 카네기에게 욕을 해대는 것입니다. 하지만 카네기는 그저 미소만 짓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옆에 있던 한 기자가 물었습니다.

 

“회장님, 정말 대단하시네요. 어떻게 그런 말을 듣고도 가만히 계실 수 있나요?”

 

그러자 카네기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여자가 내 아내가 아닌 것이 얼마나 고맙고, 또 얼마나 감사한지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직원을 거느리고 있는 높은 지위에 있던 카네기였습니다. 그렇기에 남들의 비판에 대해서 불쾌하고 화가 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감사의 이유를 찾고 있다는 말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어떠한 순간에도 감사의 마음을 품고 감사를 전하면서 살고 있습니까? 감사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 자녀에게 “감사합니다”를 알려주면서, 고마움을 표현하는 인사를 가르치지 않습니까? 성지에서 어린이들이 오면 초콜릿을 나눠줍니다. 이 초콜릿을 받을 때 아이의 엄마는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기를 기대하면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해야지.”라고 하면서 아이의 감사 표현을 돕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어릴 때 배운 감사의 마음을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기계적으로 “감사합니다”라고 의례적인 인사를 할 뿐 감사의 마음은 인색해진 지 오래입니다.

 

교회의 많은 성인·성녀들도 감사기도를 많이 바쳐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실제의 삶에서 감사기도 바치기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어떤 형제님께서 감사기도를 자주 바쳐야 한다는 신부님의 강론 말씀을 듣고는 미사 후에 친구에게 이렇게 신경질적으로 말합니다.

 

“감사할 것이 있어야 감사기도를 하지.”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감사기도가 절로 나와

 

자신이 받은 것이 있어야 감사할 수 있다는 생각은 어쩌면 우리의 일반적인 모습이 아닐까요? 그러나 이럴 때만 감사를 드리려고 한다면 불평불만만 커지고 더 큰 욕심과 이기심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감사할 것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 이런 마음으로는 결코 작은 것에 만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고대철학자 필론은 ‘감사’라는 용어를 자신이 받은 은혜에 대한 단순한 응답으로 제한하지 않고 ‘이상적인 종교 생활의 핵심’과 ‘희생 제사 행위’로 그 말의 심오한 뜻을 확장합니다. 즉, 인간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이고 진정한 표현으로서, 인간 안에 있는 하느님의 표현이고 하느님의 행위라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늘 먼저 감사기도를 바친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받은 은혜에 대한 보답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저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기도가 바로 감사기도였기 때문입니다.

 

어떤 부자가 아들을 데리고 가난한 친구가 사는 시골로 갔습니다. 아주 작고 허름한 집, 그리고 불편함이 많은 이곳에서의 생활을 통해, 아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며 살고 있는지를 그래서 지금 자신의 처지에 감사하기를 바랐습니다. 이 시골집에서 하루를 묵고 나서, 돌아오는 길에 부자 아빠는 아들에게 “무엇을 느꼈니?”라고 물었습니다. 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빠! 우리 집은 개가 한 마리인데 그 집은 개가 4마리나 있었어요. 우리 집은 뒷마당에 수영장이 하나뿐인데, 그 집 뒤에는 끝없이 이어지는 개울이 있었어요. 우리 집에는 전등이 있는데, 그 집에는 멋진 별이 있었어요. 우리는 밤에 제각각 텔레비전을 보는데, 그들은 모두 둘러앉아 재미있게 이야기했어요. 너무나 부러워요.”

 

아버지는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는 이 상황에 감사하리라 생각했지만, 아들은 가지고 있지 못한 것에 대해 부러움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부족한 것을 인식할 때는 불평과 불만이 마음속을 시끄럽게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에 초점을 두고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하면 마음은 다르게 움직이게 됩니다.

 

우리는 주변의 감사한 존재들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 감사할 가치를 느끼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작은 물건이라도 갑자기 사라진다면 어떻습니까? 휴대전화를 집에 놓고 나왔을 때의 불편함을 생각해 보십시오. 내 족쇄라고도 말하지만, 이 휴대전화 덕에 얼마나 편하게 살고 있는지를 알아차리게 됩니다.

 

 

감사할 수 없는 이유보다 감사할 수 있는 이유 찾는 데 더욱 집중해야

 

세상의 달력을 보면서 ‘2019년도도 한 달밖에 남지 않았구나.’라고 말하면서 아쉬움을 갖는 12월입니다. 그러나 교회력으로는 올 12월1일 대림 시기를 시작하며 새해를 맞이합니다. 세상의 달력으로는 마지막 달을, 교회력으로는 새해를 맞이하는 첫 번째 달을 사는 우리입니다. 바로 이때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은 ‘감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감사함이 한 해의 마지막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해주고, 새해를 활기차게 맞이할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입니다.

 

누구의 말처럼 생각해 보면 감사할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지만, 또 다르게 생각하면 감사할 것이 너무나도 많은 이 세상입니다. 따라서 감사할 수 없는 이유를 찾는 것이 아니라, 감사할 수 있는 이유를 찾는 데 더욱더 집중했으면 합니다.

 

‘사기병’의 저자 윤지회 작가는 위암 4기 판정을 받고서 생존율 7%의 확률을 바라보면서 투병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파지고 나서 감사할 일이 생겼다고 말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소중한 사람들이 자기 옆에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것과 세상을 너그럽게 보기 시작했다는 점을 꼽습니다. 아픈 것도 감사할 이유가 된다는 것이지요.

 

감사하면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기쁨을 간직하면서 행복의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그런 감사의 마음 안에 우리와 늘 함께하시는 주님이 더욱더 환하게 보일 것입니다.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바치는, 또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바칠 수 있는, 그리고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는 새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2019년 한 해를 사느라 정말로 수고하셨고요, 부족한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12월호, 조명연 마태오 신부(인천교구 갑곶순교성지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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