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8일 (목)
(백) 부활 제3주간 목요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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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이스라엘 성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다, 엠마오와 티베리아 호숫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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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11-14 ㅣ No.1873

[예수님 생애를 따라가는 이스라엘 성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다, 엠마오와 티베리아 호숫가

 

 

- 라트룬 엠마오 기념성당.

 

 

“서산에 노을이 고우나/ 누리는 어둠에 잠겼사오니// 우리와 함께 주여 드시어/ 이 밤을 쉬어 가시옵소서….”

 

20년 동안 한국에서 선교사 생활을 보낸 후 아프리카 선교를 자원해 40년 가까이 아프리카 케냐와 수단에서 살고 계시는 살레시오 수도회 원선오 신부님이 작곡한 ‘엠마우스’라는 노래의 첫 소절입니다. 서정적이면서도 격정적인 정서를 띠는 이 노래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루카복음 24장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그날, 곧 주간 첫날에 두 제자가 실의에 차서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지요.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어 그들과 동행하시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엠마오에 도착한 그들은 예수님께서 더 가시려는 듯하자 날이 저물었으니 묵고 가라고 붙잡습니다. 예수님께서 식탁에 앉아 빵을 떼어 그들에게 나눠 주시자 비로소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님이심을 알아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미 사라지셨습니다(루카 24,13-35).

 

루카 복음서는 엠마오가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한 스타디온은 185m) 떨어진 마을이라고 전합니다. 하지만 복음서 속 다른 지명들과는 달리 엠마오가 어디인지는 아직도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선지 성지순례 여행사들이 순례 일정에 엠마오를 포함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 라트룬 엠마오 트라피스트회 수도원성당.

 

 

아직 정확한 위치가 확인되지 않은 ‘엠마오’

 

오늘날 학자들이 엠마오라고 추정하는 곳은 네 군데 정도입니다. 하나는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30km쯤 떨어진 라트룬입니다. 라트룬 근처에 폐허가 된 ‘니코폴리스’라는 옛 도시가 있는데 아랍 사람들은 이곳을 ‘암바스’라고 부르지요. 암바스는 그리스말 엠마우스를 아랍말 식으로 잘못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곳은 초세기부터 순례자들이 엠마우스로 여겨 찾아왔다는 기록이 있고 로마 제국이나 비잔틴 시대 건축물 흔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예루살렘에서 60스타디온이 아니라 160스타디온이나 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 엠마오가 아니라는 반론도 제기되지요. 하지만 루카 복음의 60스타디온이 160스타디온을 착각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어서 이를 받아들이면 암바스를 엠마오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라트룬에는 트라피스트 수도회에서 세운 기념 성당이 있지요.

 

이밖에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15km쯤 떨어진 시골 마을 ‘아부고쉬’, 6km가량 떨어진 작은 마을 ‘칼로니에’(콜로니아),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11km 남짓 떨어진 시골 마을 ‘엘 쿠베이베’도 엠마오일 가능성이 있는 곳으로 추정됩니다. 엘 쿠베이베에는 20세기 초에 프란치스코회가 세운 기념 성당도 있습니다만, 이곳은 십자군 시대까지는 엠마우스라고 불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이유로 엠마오 후보지에서 배제되기도 합니다. 더욱이 검문소를 거쳐야 하는 팔레스타인 지역이어서 순례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비록 현장의 엠마오는 순례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엠마오 이야기를 통해 두 가지는 묵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말씀과 성체 안에 살아 계시는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날마다 마주치는 사람들, 만나는 사람들 가운에서 주님의 얼굴을 보는 것입니다.

 

- 베드로 수위권 성당.

 

 

“내 양들을 돌보아라” 베드로 수위권 성당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뵌,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곳이 있습니다. 티베리아 호수 곧 갈릴래아 호수 북단 ‘타브가’에 있는 베드로 수위권 성당입니다(2018년 11월 호 참조).

 

요한복음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베드로를 포함한 일곱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그들과 함께 식사하시고 베드로에게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 하고 당부하시는 일화를 전합니다(요한 21,1-19). 갈릴래아 호수와 맞닿아 있는 베드로 수위권 성당은 이 일화를 기념해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1934년에 현무암으로 아담하게 지은 성당입니다. 성당 안에는 ‘그리스도의 식탁’(Mensa Christi)이라고 불리는 바위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아침 식사를 차려 놓은 바위라고 해서 중세기부터 순례자들이 그렇게 불렀다고 합니다.

 

- 베드로 수위권 성당 내부와 그리스도의 식탁 바위.

 

 

성당 밖 호숫가에 서서 예수님처럼 호수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100m쯤 떨어진 호수에서 고기를 잡던 베드로가 물속에 뛰어들어 헤엄쳐 나오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뭍으로 나와서 보니 예수님께서는 아침 식사를 준비해 놓고 계셨습니다. 사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실의에 차서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어 아침 식사를 차려 주신 것입니다. 그때 제자들의 심경은 어떠했을까요?

 

성당 맞은편에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머리 위에 손을 뻗어 축복하시고 베드로는 무릎을 꿇고 예수님을 쳐다보고 있는 청동상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수위권을 주시는 모습을 표현한 상입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아침 식사를 마친 후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이나 물으시고는 “내 양들을 돌보아라”라고 당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물으실 때, 베드로의 심경은 어떠했을까요? 요한 복음사가는 “슬퍼했다”고 전합니다.

 

- 베드로 수위권 성당 앞에서 본 갈릴래아 호수.

 

 

하지만 그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어쩌면 자신이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던 일이 떠올랐을지 모릅니다. 단순한 슬픔 이상으로 부끄러움과 스승에 대한 미안함이 뒤섞여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요한 21,17)라는 베드로의 마지막 답변에는 힘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내 양들을 돌보아라” 하고 다시 당부하시고는 베드로가 앞으로 어떤 길을 겪게 될지 말씀하십니다. 그러고는 다시 이르십니다. “나를 따라라.”(요한 21,19)

 

호숫가에 서서 나도, 우리도 그 길을 따르겠다고 다짐합니다. 아침 햇살에 호수 물결이 영롱하게 반짝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11월호, 이창훈 알퐁소(가톨릭평화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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