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강론자료

2019-06-28.....예수성심대축일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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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9-06-23 ㅣ No.2310

 

예수성심 대축일 (다해)           

에제키엘 34,11-16        로마서 5,5-11        루카 15,3-7

2019. 6. 28. 금요일. 06. 이태원.

 

오늘은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마음이 세상을 향해 어떤 의도를 가졌을지 함께 생각하고 우리가 그 뜻을 실천하자고 교회공동체에서 정한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성심대축일입니다. 이론을 말하기는 쉽습니다만, 사람이 예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을까요? 사람이 하느님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똑같이 마음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만, 사람이 헤아리는 마음과 하느님의 마음은 다를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마음을 알거나 짐작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럴 가능성은 얼마나 있겠습니까?

 

우리가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린다면 하느님을 얼마나 두려운 대상으로 생각해야 하겠습니까? 하느님의 앞에서 내가 감출 것이 많고, 하느님의 뜻과는 반대로 내가 가질 것이 많다고 생각하거나 살고 있다면, 하느님은 두려운 대상이 될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사는 옳지 않은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정말로 그렇게 살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들판에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내버려 두고 잃었다는 한 마리의 양을 찾아나서는 목자는 어리석은 사람일까요, 똑똑한 사람일까요? 양의 무리가 흩어지지 않도록 단속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입니다만, 일이 벌어졌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세상의 사람으로 사는 우리는 중요한 것을 구별합니다. 그렇다면 한 마리의 양보다는 아흔아홉 마리를 더 중요하게 여길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합니다만 예수님도 과연 똑같이 하실 것이냐 하는데 예수님과 우리의 행동의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우리처럼 행동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이 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입니다. 하느님의 본성이 그것이 아닌데, 하느님더러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라고 하는 것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과 인간은 얼마나 다르겠습니까? 인간으로 사는 우리는 그에 대한 차이를 어떤 표현으로 설명하겠습니까?

 

죄를 지었고 그 죄를 돌이킬 때까지 히브리민족을 강대국의 사이에 흩으셨던 하느님은 다시 그들에게 구원의 선물을 주시겠다고 예언자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하시는 하느님의 의도를 따라 사람들이 하느님 나라로 돌아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사람의 삶에 적용될 원칙과 실제의 사정의 차이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드러내실 마음을 기억하면서, 세상이 하느님나라가 되도록 사람들을 이끄는, 여러분의 앞에 선 저를 포함한, 사제들을 위에서 기도해주시기를 청합니다. 누구나 잘못 사는 사람은 있겠습니다만, 일부러 잘못 살려고 하지 않을 거라고 우리가 생각한다면, 기도를 통해서 사제들이 올바른 길을 따라 살도록 하느님께 청하는 일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의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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