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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안동교구 점촌동성당: 100년 역사의 박해를 피하던 교우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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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12-12 ㅣ No.593

[신앙의 땅] 안동교구 점촌동성당


100년 역사의 박해를 피하던 교우촌

 

 

안동교구 문경지구 점촌동성당(주임신부 김종섭 갈리스도)은 1922년 9월23일에 건립된 성당으로 안동교구에서 상주지구 사벌퇴강성당과 더불어 100년을 눈앞에 둔 유서 깊은 성당이다. 점촌동성당의 역사를 살피는 일은 곧 우리 신앙 선조들의 삶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귀한 체험이 될 것이다. 문경지역의 마원성지를 비롯하여 성당과 공소, 그 외 관광 명소들을 볼 때 점촌․문경지역은 하느님이 만드신 복된 땅이다.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문경지역은 산세가 험한 곳이어서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를 피하여 타 지역 교우들이 이주하여 숨어 살던 벽촌이 많고 이를 통해 교세가 번져갔다. 병인박해가 끝나고 살아남은 신자들이 다시 모여 교우촌이 형성되었고, 사제가 방문하여 성사를 집전하고 건물이 지어지면서 공소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1877년에는 문경지역 최초의 표석골공소가 설립됐고, 1922년에 공평성당으로 승격되었는데 이것이 점촌동성당의 시작이었다. “훗날 성당에서 종을 찾을 것이니 잘 보관하라.”라는 부친의 유언에 따라 황병덕 도비아 형제님이 공평성당에서 사용하던 종을 반환한 일이 최근에 있었다.

 

공평성당은 사제의 부재로 공소로 격하되었고, 당시 점촌읍이 성장하면서 본당을 점촌읍으로 이전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옛 일본 신사터를 매입하여 터를 닦고 흙벽돌을 쌓아 1949년 11월 지금의 문경산재병원 자리에 성당을 건립하였다. 두 번째 성당이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발발하였고 신자들은 사제를 모시지 못한 채 피난길에 오르게 되었고 5년 후에야 주임 사제를 모셨다. 전쟁 중에 성당은 지붕과 바닥에 구멍이 뚫리고 유리창도 성한 것이 없을 정도로 많이 훼손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성당 안 입구 복도에는 당시 성당 제대에 있었던 성화를 걸어 두었는데 탄환의 흔적으로 구멍 난 곳이 몇 군데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성화는 100주년이 되는 날 안동교구 박물관에 보낼 계획이다.

 

점촌동성당은 1956년 7월 제6대 주임 노도주 아놀드 신부님이 사목하는 동안 크게 성장하였다. 성당은 낡고 비좁았으며, 변두리 산기슭에 위치하여서 도심 가까운 곳으로 성당을 옮길 계획을 세운 후 복숭아밭 오천 평을 새 성당 부지로 매입하였다. 1959년 6월 신축공사를 시작하여 1960년 12월에 지금의 점촌동성당이 완공되었다. 남쪽으로 경사진 땅 위, 하늘 높이 선 십자가, 새하얀 성당의 문을 열어 좁은 복도를 거쳐 안으로 들어서니 제대 십자가 둘레 유리창을 통해 빛이 쏟아졌다. 백 년간 우리의 기도를 대신 전구하시는 성모님 앞에서 한 자매님이 기도를 청하고 있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당 건립을 위해 일치를 보인 신자들

 

성당 뒤편에는 상지유치원과 나섬의 집이 위치해 있고, 성당 맞은편은 주택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성당 마당은 마치 골목마당 같다는 느낌을 주는데, 점촌지역 제2성당인 모전성당을 건립할 때 건립비 마련을 위해 부지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당시 성모회는 생필품 판매와 자선 바자회로 건립금을 모았고, 신자들은 세대별로 건립금을 봉헌하였는데 적금을 들기도 하고, 남의 집일을 하여 마련하기도 했다. 전세금을 빼내어 사글세로 옮기고 그 일부를 건립금으로 봉헌한 사례, 포장마차를 하며 어렵게 살아가던 자매가 익명으로 큰 성금을 봉헌한 사례도 있었다. 이런 사연들이 알려지면서 소극적이던 일부 신자들도 적극적으로 건립금 봉헌에 참여하게 되었다. 성당 건립을 위한 기도와 모금은 점촌동성당 신자들의 일치를 가져왔다.

 

점촌동성당 레지오는 평화의 모후 꾸리아(단장 안장수 요한) 소속 18개 쁘레시디움에 단원 243명(행동단원 150명, 협조단원 93명)이 활동하고 있다. 지난 10월25일에는 성모승천 Pr.이 3015차 주회를 가졌고, 10월3일 안동교구 레지오 도입 60주년 기념행사에서 50~60년 동안 장기 근속한 단원에게 주는 교황님 축복장 수여자 15명 중 6명이 점촌동성당 신자였다.

 

무료급식소인 ‘나섬의 집’에는 150명 어르신들이 점심식사를 한다. 탐방을 간 날은 노인대학 운영 일이었다. 레지오 단원을 포함하여 15명의 자매님들이 식사 준비를 위해 봉사한다. 또한 선종봉사회 활동이 활발한데 많은 레지오 단원들이 함께하고 있다.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소속 윤 안나 수녀님이 운영하시는 ‘바오로 배움터’에서는 지역사회의 다문화가정과 조손가정의 소외된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방과후 음악과 모래놀이, 상담과 심리 치료를 한다. 신자와 비신자 봉사자들이 도움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3개의 공소와 함께 깊은 신앙의 역사 보여줘

김종섭 주임신부님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신앙심 깊은 교우들도 많고 쉬는 교우들도 많아요. 본당 설정 100주년이 신자들에게 삶의 전환점이 기도하면서, ‘아버지 품을 떠난 아들 찾기 운동’을 지속적으로 해나가고 있습니다. 교구 설정 50주년을 맞아서 전개하는 ‘가정과 본당의 쇄신’을 위한 노력이 다가오는 본당 설정 100주년에도 큰 의미와 동기를 부여해 줍니다. 기도하는 가정만이 예수님의 현존에 열려 있을 수 있음을 믿으며 기도 안에서 쇄신을 이루어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가정의 성화와 본당의 쇄신을 위해서 가장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것은 ‘참여’를 통한 ‘협력’이라고 생각해요. ‘협력’과 ‘도움’과 ‘지원’은 우리 모두를 높은 차원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고 믿고, 주님 안에서 개인과 단체가 서로 깊이 연결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면 좋겠습니다.”라고 간절한 마음을 담아 말씀하신다.

 

성당을 떠나면서 점촌동성당 소속인 공소 세 곳을 둘러보았다. 선교사가 있어 매주 미사와 공소예절을 하는 산북공소, 칸나축제와 함께 작은 음악회가 열리는 창구공소, 60년 된 돌 벽돌 건물이 아름다운 동로공소는 점촌지역 신자들의 깊은 신앙의 역사를 보여주는 곳이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12월호, 배효심 베로니카(안동 Re.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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