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강론자료

2018-11-18.....연중 제33주일 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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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8-11-17 ㅣ No.2276

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

다니엘 12,1-3           히브리 10,11-14.18           마르코 13,24-32

2018. 11. 18. 이태원. - 2017년부터 기념변경

 

주제 : 내가 하느님을 만나는 순간은 심판일까? 구원일까?

사람은 살면서 깜짝 놀랄 일들을 만납니다.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하여 예상하지도 않았고 준비하지도 않았는데 닥친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 놀라운 일입니다.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충격적이고 가장 놀랄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그렇게 말할 일을 아직 만나지 않았다면, 어떤 일에 부딪혔을 때 우리는 놀랍고, 충격적인 일이라고 표현하겠습니까? 놀랍고 충격이라고 표현할 일이려면, 한번 이루어지면 끝나는 일로서,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서 그 일을 다시 할 수도 없다는 의미일 것이고, 시간을 돌려서 내가 바라는 결과로 만들 수도 없는 경우일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일을 생각한다면 아무래도 그 일은 삶의 마지막에 만나는 죽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움직이는 동물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어느 강연회에 등장한 연사가 한 말입니다. 그 말도 그가 처음으로 한 것은 아니고, 유명한 철학자가 했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렇게 말한 사람은, ‘사람은 죽음이라는 순간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아는 존재이기에 위대하다고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죽음이라는 순간이 내게 다가온다는 것을 알면 사람은 위대한 존재가 되는 것일까요?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사람은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죽음을 만나게 돼 있습니다. 피하고 싶어도, 만나게 돼 있는 것이 그 순간입니다. 피할 방법이 없으니, 만나야만 한다면 그 만나는 대상을 우리가 어떻게 대하겠다고 준비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일이 많을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일인 죽음에 대한 설명은 세상의 얘기와 신앙의 얘기가 다릅니다. 사실은 만나는 일은 똑같은 것인데, 표현하고 설명하는 모습이 서로 달라서 다르게 대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자세가 다르면 결과가 달라지고, 결과가 다르게 되면 다음 순간에 해석하는 나의 삶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것입니다.

 

삶의 끝-날에 대한 세상의 논리는, 경험을 매개로 하여,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없으니,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하겠지만, 신앙은 다르게 말합니다. 정말로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면 다행입니다. 하지만 내 삶의 모든 결과를 갖고 하느님을 만나야 하는 순간을 신앙의 태도로 말하면 그 순간이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어떻게 생각하든지 사람의 자유입니다만, 내 선택에 따라 놀라운 순간이 되기 전, 내 삶의 모습은 달라집니다.

 

아직까지 겪지 않은 일을 만나는 것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일입니다. 준비할 수 있으면 환난이 없다고 하는 말[==유비무환(有備無患)]처럼, 예상하고 미래를 맞이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어떻게든 준비할 것입니다. 하지만 듣지도 못했고, 배우지도 못했으며 예상하지도 못한 일을 맞이하는 것이라면 어떤 준비가 필요하겠습니까? 그래도 준비할 일은 없다고 할까요?

 

세상의 끝-날에 일어날 일을 얘기하시는 예수님의 놀라운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가 가져야 하는 자세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는 날은 언젠가는 다가올 것입니다. 그 순간이 두려운 심판이 아니라 구원이 되게 하려면, 가져야 하는 올바른 삶의 태도는 무엇이겠습니까?

 

오늘은 프란체스코교황님께서 함께 지내자고 말씀하신 '세상의 가난한 이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가난은 세상의 물질에 관한 것일 수도 있고, 사람이 하느님을 잃어버리고 사는 다른 형태의 행동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물질에 많고 적음으로 생긴 가난이라면 이론이기는 합니다만, 나누고 함께 사용하는 것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신앙에서 말하는 내용처럼, 사람이 하느님을 잃거나 무시하고 살아서 생긴 것이 가난이라면, 개인의 변화를 앞세워야 할 일이지만, 내 주변에서 그런 곤란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내가 실천할 행동과 그 삶의 방법을 찾아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어느 쪽을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현실의 모습은 매일 매일이 달라집니다. 신앙인으로서 우리 각자가 하느님을 만나야 하는 순간은 심판과 두려움이 아니라, 구원의 때가 되게 해주시라고 청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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