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신앙] 생각하는 신앙: 하느님 나라의 신비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8-03 ㅣ No.1234

[생각하는 신앙] 하느님 나라의 신비

 

 

신앙을 생각할 때 하느님 나라의 신비는 놀랍게도 우리의 현실적 삶 안에 실제로 존재하는 나라로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성경이 펼치는 놀라운 세계

 

성경은 과거에 있던 하느님의 활약상을 담은 책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하느님을 만난 인간의 신비로운 체험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일상의 삶 속에서 하느님 신비를 접한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이야기’로 전해줍니다. 그리고 그 놀라운 신비의 체험 속으로, 하느님 나라라는 신비로운 세계 안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 복음 선포

 

하느님 나라에 관한 복음을 이해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며 가장 먼저 찾아가신 곳이 어디인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곳은 임금이 사는 화려한 궁전도, 정치인들이 모여 토론하는 곳도 아닌 가장 비참한 삶의 현실이었습니다. 죄와 악, 병과 죽음으로 삶이 파괴된 사람들이 살던 곳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곳에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느님 나라가 우리 각자의 삶, 비참과 행복이 교차하는 바로 그곳에서 시작되는 현실적인 나라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행적에 대한 새로운 이해

 

예수님께서는 병자를 고쳐주고 악령을 쫓아내시며 당신이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를 바로 그곳에서 실현시키셨습니다. 이 이야기를 오늘 새롭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적과 치유는 과학적으로 증명 불가능한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아니며, 정치적 영웅을 찬양하는 과장된 이야기는 더더욱 아닙니다. 그 이야기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물리적 차원을 넘어 삶의 깊은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에 눈을 뜰 필요가 있습니다.

 

 

삶을 파괴하는 것

 

예수님께서 만난 사람들은 질병과 고통, 더러운 악령과 죽음의 위협으로 사는 이들이었습니다. 그것들의 본질은 삶을 파괴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가령 벳자타 연못가의 병자는 “다시 건강해지고 싶으냐?”는 예수님의 물음에,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답하였습니다(요한 5,7 참조). 병은 소리 없이 그의 삶에 들어가 사랑과 희망과 믿음을 박탈하고, 그의 삶을 피폐하게 파괴시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말씀으로 시작되는 기적

 

아무런 희망도 없던 그 병자가 새롭게 살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말씀’이었습니다. 철저한 고독 속에 파묻혀 사는 그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그의 사정에 공감하고 그를 향해 건넨 주님의 말씀, 바로 그 말씀이 병자로 하여금 자신의 어둡고 꽉 막힌 삶에서 벗어나도록 합니다.

 

예수님의 기적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만남’ 그 자체입니다. 예수님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단 한 번의 손짓이나 주문으로 치유하지 않으셨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불러 그 앞에 서게 하십니다. 그의 눈을 바라보며 그의 영혼에 말씀을 건네십니다. 그리고 물으십니다.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마치 우리가 바라지 않으면 그분께서는 아무것도 하실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본질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접한 그들의 삶에 새로운 미래가 열립니다. 삶이 회복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 예수님과 함께 도래한 하느님의 나라는, 먼 훗날에나 들어갈 나라가 아닌, 지금 오늘 나의 삶을 망가뜨리는 죄와 악의 흐름에 맞서 삶을 회복시키는 하느님의 다스리심이었습니다. 복음서는 기적이나 치유가 아닌, 예수님과 만난 사람들 안에 새롭게 실현된 것에 주목하게 합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치유나 기적, 구마나 이적이 아닌 ‘사람’에 있었습니다. 그 안에 무너진 삶을 회복시키는 것이 그분의 관심사였던 것입니다.

 

 

사랑의 다스리심

 

하느님의 나라가 그분의 ‘다스리심’이라면, 그것은 무력이 아닌 사랑의 다스리심입니다. 사랑의 다스림으로 병과 죽음, 죄와 악이 힘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인격의 고귀함에 대한 공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상대방의 처지, 속박된 삶의 비참한 현실에 대한 공감이었습니다. “당신 역시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받아 마땅한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 사랑이 인격을 일깨우고 고귀함과 거룩함과 품위를 회복시킨 것입니다.

 

기적과 치유, 구마를 겪은 이들 안에 실제로 일어난 일은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회복이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과의 인격적 만남을 통해 가능했습니다. 그분의 사랑과 따뜻한 인격을 만남으로써 믿음이 회복되었고, 하느님과 이웃, 나 자신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으며, 이로써 진정한 의미에서의 새로운 삶이 가능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하느님 나라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는 어떤 것인가요? 먼 훗날에 들어갈 나라인가요? 지금 우리가 처한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현실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인가요?

 

복음서는 말합니다. 바로 우리의 가장 힘든 삶의 현실이 바로 하느님 나라가 실현되는 곳이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삶을 파괴하는 흐름에 맞서 새로운 삶을 살고픈 열망을 발견하고, 다가오시는 주님의 손길에 마음을 열고 손을 내밀 때, 분명 내 안에 믿음의 회복이라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어쩌면 그 나라는 이미 우리 안에 시작되었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마음을 먹고 그 나라를 향해 마음을 연다면, 곧 그 나라의 놀라운 결실이 맺어질 것입니다.

 

[외침, 2018년 8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한민택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1,800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