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영성ㅣ기도ㅣ신앙

[기도] 온전히 거룩해지는 나의 하루(성무일도, 시간전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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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7-04 ㅣ No.1217

[아름다운 가톨릭 신앙] 온전히 거룩해지는 나의 하루

 

 

예수님은 늘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계셨지만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일어나 외딴 곳으로 가시어 기도하셨다(마르 1,35 참조). 교회는 이러한 예수님의 기도를 이어받아 각자의 삶에 맞는 시간전례(성무일도)를 바친다. 같은 시간, 다양한 곳에서 드리는 기도는 천상에 울려 퍼지는 찬미가 된다.

 

24시간,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다. 이 시간 전체를 성화시키는 교회의 전통적인 기도가 있다. 바로 성무일도, 시간전례(時間典禮, Liturgia horarum)다. 유대인들은 하루 세 번 매일 시간을 정해서 기도했으며 예수님과 사도들도 기도시간을 지켜 기도했다(루카 2,49; 사도 3,1 참조). 초대교회 신자들도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여’(사도 2,46) 그리스도의 기도를 계속 했으며 하느님과의 사랑에 참여했다.

 

성무일도(시간전례)는 이렇듯 ‘언제나 기도하고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루카 18,1)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담았다. 또한, 교회 공동체가 하루 전체와 모든 인간 활동의 성화를 위해 아침기도부터 끝기도까지 8번의 시간에 함께 바치는 기도이다. 이러한 찬미의 기도를 매일 드리며,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을 만들어가고 있는 예수수도회 김문영 세라피나 수녀를 만나본다.

 

 

그분 안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예전의 순교는 피의 순교지만 지금의 순교는 백색 순교 즉 시간의 순교인 것 같아요. 내가 자유로이 쓸 수 있는 것이 시간인데 많은 사람들이 일의 효율성을 위해 시간을 쓰지요. 하느님이 우선이 되지 못할 때가 많지요. 생각의 전환을 하면 하느님과 함께 하는 것이 신앙이고, 내 모든 시간을 하느님으로 채워 줄 수 있게 이끌어 주는 것이 바로 성무일도인 것 같아요.”

 

김 수녀는 이어서 말했다. 김 수녀도 처음 수도원에 입회했을 때는 성무일도 하는 방법을 빨리 익히기 위해 애를 썼다. 성무일도의 맛에 점점 빠져들면서 이제야, 매일 먹는 밥처럼 소중한 의미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기도를 드릴수록 성경소구 하나하나가 2000여년이라는 시간을 거치면서 선별된 아름다운 말들이며 교회의 소중한 유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즈음은 성무일도 앱(APP)이 있어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바칠 수 있다. 그러나 그 깊은 맛을 음미하지 못하고 ‘휘리릭’ 눈으로만 읽고 지나가는 안타까운 일은 없었으면 했다.

 

“성무일도 제일 앞부분에 아우구스티누스의 시편 주해가 있어요. ‘우리는 그분 안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우리 안에서 그분의 목소리를 인식해야 한다.’ 우리 안에 담긴 예수님의 목소리를 인식하고 그분 안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우리 안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찾아야겠죠. 원래 찬미가도 공동으로 하면 더욱 역동적이에요, 그 시간 함께 기도 하는 분들 뿐만 아니라 천상교회의 성인성녀들과도 함께하고 있음이 느껴지지요. 시공간은 다르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구원의 하느님을 그리워하며

 

“제가 성무일도의 시편에서 제일 좋아하는 말씀이 시편 42장이에요. 인간의 희노애락이 다 담겨있는 시편이다 보니 많은 탄원의 시들이 있지요. 다들 신기하게도 처절한 탄원의 말이 계속되다가 어느 순간 찬양의 기도로 돌아서 있어요.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이토록 그리워합니다.’(시편 42,1) 이 구절에서 볼 수 있듯이 처절한 절망 중에서도 하느님께 희망을 두면 감사의 시편으로 들어갈 수 있지요. 내 마음도 내 생각도 죽음의 나락에 떨어져 있는 듯한 순간이 오면, 내가 바랄 곳이 하느님 밖에 없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탄원을 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하느님 안에서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니까요. 진짜 힘들 때는 그러한 탄원의 시들이 마음에 와 닿지요.”

 

김 세라피나 수녀는 말을 이었다. “하루의 삶 안에서도 희노애락이 다 녹아 있잖아요. 시편 42장 저자의 말씀처럼 다른 사람들은 나를 비웃지만, 나를 다시 일으켜 주는 이는 하느님 밖에 없구나. 솔직히 나를 하느님께 다 보여주고 그분에게서 구원을 받을 수밖에 없구나! 깨달으며 희망으로 돌아가죠. 탄원은 희망의 시작인 것 같아요.”

 

사도적 영성을 사는 수도회다 보니 매일 함께 성무일도를 바치지는 못하지만 일주일에 한 두 번은 꼭 함께 하는 시간이 있기에 더욱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청원기도의 시간에는 각자 부탁받은 기도들, 시국적인 기도들을 함께 하면서 우리 모두가 구원으로 초대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이들과 함께 우십시오’(로마 12,15)라고 말씀하셨던 예수님처럼 기도 안에서 함께 하는 교회 공동체를 느낄 수 있다.

 

 

나의 삶에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찬미

 

이러한 아름다운 기도를 사제나 수도자 뿐만 아니라 평신도들도 좀 더 쉽게 바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김 수녀는 바쁜 일상을 사는 평신도들이 부담 없이 성무일도의 맛을 느껴 갈 수 있도록 순차적인 조언을 주었다.

 

“교부들의 저서와 즈카르야의 노래(루카 1,68-79), 마리아의 노래(루카 1,46-55)같이 교회의 소중한 기도가 담긴 성무일도를 의무적으로 바치는 것은 피했으면 해요. 바쁠 때는 마음이 안 녹아 들어가죠. 첫 번째로 아침기도 전에 바치는 초대송을 하면 좋겠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기도 하기 전에 입에다 십자가를 그으며 ‘주님, 제 입시울을 열어주소서’라고 청하는 거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내 입을 성화시켜 달라고 청하는 기도, 이 마음만 가지고 살아도 하루의 삶이 성화된다고 생각해요.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하느님, 이 밤을 편히 쉬게 하시고 거룩한 죽음을 맞게 하소서’라고 기도 합니다. 이 두 가지부터 시작해도 내가 오늘 하루, 힘든 일을 겪든 좋은 일을 겪든 그 안에서 하느님을 놓치지 않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다음 단계를 제안했다.

 

“두 번째는 아침기도나 저녁기도 중 하나만이라도 정식으로 바쳐보는 거죠. 아침기도는 태양이 솟아오르는 새벽에 드리던 기도로 ‘우리를 찾아오시는 떠오르는 태양’(루카 1,28),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관되어 있어요. 저녁기도는 해가 들어갈 때 하는 거예요. 우리의 구속을 기억하고 그리스도의 수난을 상기시켜 주지요. 마지막으로 저는 끝기도도 꼭 바쳐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어요. 사실 성무일도에서 삶이 바뀔 수 있게 하는 힘을 주는 것은 끝기도라고 봅니다. 끝기도는 양심성찰을 하지요. 오늘 하루를 예수님 안에서 돌아보게 합니다. 이 성찰의 시간이 ‘보물찾기’, ‘이삭줍기’ 같아요. 하루가 지나가고 나면 어떤 때는 속상하기도 하고 후회스럽잖아요. 근데 예수님하고 돌아보면 해석이 달라집니다. 성령의 빛으로 보니까요. 그래서 매일매일 하게 되면 삶이 바뀌게 되지요.”

 

김 수녀는 성무일도 기도를 통해 모든 이가 자신의 내면에서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깨닫고, 일상의 삶으로 찬미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외침, 2018년 6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도희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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