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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사목] 전쟁과 평화: 한반도에서 전쟁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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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1-22 ㅣ No.1075

[경향 돋보기 - 전쟁과 평화] 한반도에서 전쟁은 안 된다

 

 

전쟁은 결코 안됩니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핵의 위협과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세계적인 냉전 종식에도 한반도는 군사적 대치로 불안정한 가운데 그나마 평화가 유지되어 왔습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 정책으로 조금씩 풀려 가던 남북 관계가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경색은 깊어졌습니다. 그 결과 남북 관계의 인도적인 장이 되었던 이산가족 상봉과 남북 서로에게 경제적인 희망을 줄 수 있었던 금강산 관광이 중지되고, 급기야 개성 공단마저 폐쇄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시작부터 남북 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대화와 다양한 교류를 통한 남북 관계 개선의 신호를 북한에도 보내며 남북 관계의 희망적인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정부의 이러한 구애에도 북한은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새로 출범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거칠고 과격한 발언으로 북한을 위협하였고, 북한의 김정은도 이에 못지않게 응수하였습니다. 특히 화성-15형 발사 이후 더욱 악화된 상황에서는 자칫하면 그동안 수차례 언급한 트럼프 대통령의 선제공격이 있을지 모르겠다는 불안감마저 들게 되었습니다.

 

한반도에 드리워진 전쟁의 그림자는 많은 사람에게 6·25 전쟁의 참상을 떠오르게 합니다. 6·25 전쟁을 겪은 사람들에게 전쟁은 참혹하고 잔인한 기억으로 각인되어 지워지지 않습니다. 전쟁을 겪지 않은 많은 세대도 가슴 깊은 곳에는 전쟁의 참혹함이 새겨져 있습니다. 전쟁이 한반도에 남긴 엄청난 피해와 고통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전쟁은 결코 안 된다.’고 단호하게 외치는 것은 이 땅에 사는 우리 모두의 외침이자 결의입니다. 더욱이 핵이 사용되는 전쟁은 참혹하기 짝이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 가고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리는 재앙을 낳습니다. 우리는 일본 여행이나 성지 순례를 통해 일본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 폭탄의 엄청난 재앙을 잘 보아 왔습니다.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앗아 가는 핵전쟁이 두 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평화를 위한 교회의 역할


동북아 평화에 관한 심포지엄에서

 

2017년 12월 1일에는 파주에 있는 참회와 속죄의 성당에서 의정부교구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가 마련한 국제 심포지엄이 ‘한반도와 동북아평화를 위한 교회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열렸습니다. 한국을 비롯하여 미국과 일본, 교황청에서 온 주교들과 신부들, 그리고 실무자들이 참석하여 평화의 소중한 가치를 공유하였습니다.

 

참석자들은 한반도 상황이 매우 엄중하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는 북한의 핵무기가 폐기되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또한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말씀하신 핵 없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데에도 공감하였습니다. 북한이 핵무기에 집착하는 이유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는데,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과 북한에게 큰 위협이 될 수 있는 한미 연합 훈련의 규모와 횟수도 줄여야 한다는 데 동의하였습니다.

 

무엇보다 평화 협정 체결, 북한과 미국의 관계 정상화, 동북아시아의 안보 협력과 질서 구축 등 한반도의 평화를 구축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논의도 시작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평화를 위한 끊임없는 기도

 

지난 2014년에 방한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온 민족이 함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간청을 하늘로 올려 드릴 때, 그 기도는 얼마나 큰 힘을 지니겠습니까?” 기도야말로 하느님의 자녀들인 우리가 아버지께 조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가정 또는 성당에서 교회의 온 공동체가 우리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 또다시 기도의 목소리를 높여야 합니다. 미사 전후에 ‘우리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를 바치고, 날마다 밤 9시에 주모경을 바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참회와 속죄를 해야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봉헌된 성당에는 그 이름에 우리 민족이 해야 할 ‘참회와 속죄’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참회가 어떤 것이 있는지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첫째, 이 참회와 속죄는 6·25 전쟁 중에 서로 형제를 죽였던 죄에 대한 참회와 속죄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전쟁을 겪은 분들의 가슴에 응어리진 미움뿐 아니라  대물림해 남아 있는 미움과 아픔까지도 용서해야 합니다.

 

이제는 많이 나아졌지만, 그동안 지나친 반공 교육으로 북한을 너무 왜곡하였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심한 편견을 갖고 북한 사람들을 대하여 마치 북한 사람은 흉악하고 심성이 비뚤어진 사람인 빨갱이로 매도하였던 점도 반성하여야 합니다.

 

그동안 안보를 최우선 정책으로 삼았던 정권에서, 북한을 이해하려 하거나 도와주어야 한다거나 화해를 외치는 사람들을 용공 세력으로 몰아 배척하였던 점도 크나큰 아픔이고 잘못이었습니다.

 

둘째, 과거사에서 교회가 저지른 잘못도 속죄해야 합니다.

 

분단과 전쟁이라는 시련 속에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평화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기보다는 교회의 생존과 안전에 더 집착한 적이 있었습니다. 2000년 대희년을 맞이 하면서 교황청을 시작으로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시작되었습니다. 한국 천주교주교회의에서도 2000년 11월 대림 제1주일을 맞아 과거사 반성 문건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반성 문건에는 일제 식민지 시대와 해방 공간에 대한 반성이 들어 있었습니다. 열강 침략과 일제 식민 통치로 민족이 고통당하던 시기에 우리 교회는 정교의 분리를 이유로 독립에 앞장서는 신자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때로는 제재하기도 하였음을 아파하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분단 상황의 극복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노력에 적극적이지 못했음을 참회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셋째, 한국 사회 안에서 하느님의 부르심이신 평화와 정의를 위한 사도로서 하느님 백성이 얼마나 이바지하였는지에 대해서도 성찰하고 참회해야 합니다.

 

이 부르심은 개인이나 공동체 차원에서 불우한 이들, 소외된 이들,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무관심의 반성으로 시작되어야겠습니다. 또한 우리 사회의 갈등의 요인이 되는 정치적인 이념이나 지지하는 정당의 다름과 세대 간 갈등을 비롯하여 나와 다른 것을 가진 사람들을 인정하지 못하거나 이를 존중하지 못하고 살아왔던 것에 대해서도 참회해야 합니다.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려는 평화 연대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연대

 

그리스도인은 평화의 사도로 부름받은 사람입니다. 평화를 이루려 노력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은 하느님 자녀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마태 5,9 참조). 특히 증오와 두려움이라는 분단의 현실을 살고 있는 한국 교회에 ‘평화’는 소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평화는 더욱 많은 사람이 평화의 대열에 참여하여 기도하고 평화와 용서, 참회의 길로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더욱 많은 그리스도교 신자가 평화를 위한 자신의 사명을 자각하고 평화를 교육하고 실천하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신자들이 평화의 연대에 함께하는 데 한국 주교회의에서 결정한 본당 사목 구조 안에 설치하기로 한 민족화해분과위원회가 큰 역할을 하기를 바랍니다.

 

또한 몇몇 교구에서 실시하고 있는 화해 학교가 신자들이 평화를 배우고 삶 속에서 실천하도록 가르치는 좋은 장소가 되기를 바랍니다.

 

보편 교회 안에서의 국제적인 연대

 

한반도의 문제를 진단하면서 전문가들 대부분은 분단 문제가 민족 문제이면서 동시에 주변 열강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국제 문제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복잡하게 얽힌 상황 속에서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찾아 연대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지난 심포지엄을 통해 미국 주교회의도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문제에 관심이 깊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미국 주교회의는 북한의 핵 문제 해결의 당사자가 되는 미국 교회의 대표이므로 미국 교회가 핵 문제와 한반도 평화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미국 주교회의를 비롯하여 평화 운동을 하는 주변국의 여러 단체와 연대를 갖고 평화의 목소리를 높이며 전쟁의 불가함을 주장한다면 큰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뿐 아니라 가톨릭교회는 평화의 연대를 촉구하고 실행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기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류의 평화와 특히 한반도 평화를 위해 기도하시는 교황님의 뜻을 중심으로 국제적인 연대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한국 교회는 주어진 보편 교회의 기반을 통해 지지를 받으며, 분단의 땅 한반도가 평화의 발신지가 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인도적인 지원과 사랑의 실천

 

신앙과 인도적인 사랑 실천은 국경과 이념을 뛰어넘는 고귀한 가치입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 교회는 북한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과 종교적 교류, 대화와 협력을 끊임없이 이어 가야 합니다.

 

이는 주님께서 남겨 주신 사명과도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또한 민간과 종교 차원의 교류와 협력은 갈라진 민족의 통합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통일 시대를 대비한 중요한 기반 형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경직된 남북 관계가 풀려 북한과의 왕래와 교류가 잦아지면서 2000년 대희년에 북한 지역과 자매결연을 한 각 교구의 교류와 지원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이기헌 베드로 주교 - 의정부교구장으로,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8년 1월호, 이기헌 베드로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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