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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알코올 중독: 여러분의 음주 습관,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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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1-09 ㅣ No.1461

[알고 싶어요] 여러분의 음주 습관,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약주(藥酒)’ 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약이 되는 술이라는 것이다. 과연 술이 약이 될 수 있을까?

 

대기업 임원으로 명예롭게 은퇴하신 김OO님은 스스로를 애주가라고 믿었다. 적당량의 술은 혈액 순환을 도와주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도 들은 바 있어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실상 음주로 인해 기분이 고양되면 몸을 가누지 못할 때도 있고, 물건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다음 날 약속에 지장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이런 일이 재차 반복되자 당연히 아내와 자녀들은 술이 과하다는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귀에 듣기 좋은 소리도 한 두 번이지 계속되는 잔소리는 은퇴하고 나이 들었다고 얕잡아 보나 싶은, 서운한 마음으로 이어졌고 가족과의 신뢰와 사랑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약주. 적당량의 음주는 대인 관계나 여가에 도움이 되고, 더 나아가 건강에도 이로울 것이라는 기대가 담긴 표현이다. 어디 이뿐이랴. 식사를 할 때 함께 마시는 술은 ‘반주(飯酒)’라 칭한다. 하여 어떤 이들은 술도 음식의 하나인데 가족들이 왜 이렇게 성화인지 모르겠다며 항변하기도 한다. 꽤 여러 해 전에 한두 잔의 술이 심혈관계 질환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아무리 적은 양의 술이라도 건강에 이로울 수는 없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최근 분당서울대병원 연구팀이 2300만 명을 5년 이상 추적한 결과에 따르면, 알코올 섭취량이 소주 1잔(알코올 10g) 미만 정도의 소량인 경우에도 비음주자에 비해 암 발생위험률은 식도암 20%, 위암과 대장암은 각각 8% 높았으며, 평소 과음을 하는 경우에는 비음주자보다 암 발생위험이 식도암 3.1배, 위암 1.2배, 대장암 1.3배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적당량의 음주라 할지라도 빈도가 잦으면 뇌위축을 유발하여 치매를 초래하고, 심방세동을 유발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음식을 많이 먹으면 과식으로 탈이 나듯이 술 또한 절제하고 경계하지 않으면 다른 질병의 발병 위험도 감수해야한다.

 

 

아무리 적은 양의 술이라도 건강에 해로와

 

지나치기 쉽지만 간과할 후 없는 더 큰 문제는 술을 즐기던 사람이 한두 잔 정도의 음주만이 가능할까하는 점이다. 우리나라 중년 남성 10명 중 3명은 알코올 중독에 대한 검사가 필요한 ‘고위험음주군’에 속한다. 이 정도는 누구나 다 마신다고 항변하지만 술을 즐기는 사람 주변에는 늘 ‘애주가’들이 모여드는 법이고, 그들이 속한 그룹에서는 늘 술은 관대해진다.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하고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그때서야 문제를 인식한 주변 사람들이 음주 습관에 대해 지적하거나, 절주를 권유를 한다. 이를 자각하여 본인 스스로도 술을 줄이려고 실제적인 시도를 한다. 며칠에서 몇 주간 술을 참아 보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원래 습관으로 돌아가 버린다. 이 순간 많은 사람들이 혼돈에 빠진다. “내가 알코올 중독자라는 말인가?”,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일까?”, “중독 수준은 아니겠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지 않을까?” 스스로 본인의 음주 습관에 대해서 문제점을 느끼기는 하지만 중독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만큼은 싫다. 아무리 이런 고민들을 해봐야 음주 문제를 바라보는 생각의 출발점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미처 깨닫지 못한다.

 

스스로의 음주 습관을 다시 한 번 점검해보자. 의도했던 것보다 더 않은 양의 술을 마시게 되거나, 술을 줄여보려는 노력에 반복적으로 실패하거나, 술로 인해 소비하는 시간이 많거나, 술에 대한 갈망감을 느끼거나, 음주 이후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어려움을 겪거나, 술로 인해 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기거나, 건강이나 안전에 위협이 되는데도 술을 마시거나, 술로 인해 예정된 업무나 여가 활동을 포기하는 일이 있거나, 술에 대한 내성이나 금단 증상이 나타나는 것들에 대해 가볍게 넘기지 말고 유심히 살펴보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술을 마시는 행위로 인해 나 자신이나 주변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데도 이에 대한 해결을 미루고 있다면 틀림없이 무서운 독이 온 몸 구석구석 스며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즐거워서 마셨던 ‘약주’가 술 없이는 즐겁지 못한 상태가 되면 ‘독주’가 되어 그로 인한 고통을 외면하게 만든다. 이미 독이 퍼져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절주는 불가능한 미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스스로 술 문제를 해결하고, 술을 줄이거나 끊는 것이 힘들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여기서 걸림돌이 되는 것은 알코올 중독자에 대한 전형적인 모습만을 우리는 생각한다는 점이다. 중독자는 매일 같이 술을 마시고 고주망태가 되어 행패를 부리는 사람들이라는 편견을 우리는 갖는다.

 

하지만 알코올사용장애는 술을 마시는 횟수나 양을 조절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되는 비교적 흔한 질병이다. 양은 많지 않지만 매일 같이 술을 마시는 유형도 있고, 평소에는 음주 충동을 자제할 수 있지만 한 번 마시면 행동이 통제가 안 될 때까지 폭음을 하는 유형도 있다.

 

또한 의지가 없어서 조절 음주에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뇌가 장기간 반복적으로 알코올에 노출되다 보니 이에 대한 뇌의 브레이크 장치가 마모되어 본인의 의지로는 음주를 조절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질병이다.

 

여전히 사태의 심각성을 회피하려는 몇몇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직은 괜찮은 것 같으니 더 심각해지면 치료를 적극적으로 받겠습니다.”, “아주 끊는 것은 힘들고, 서서히 줄이다가 나중에 끊겠습니다.”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조언은 확고하다. 술 문제가 심각한 단계에 이르기 전인 남용 수준일 때에 술을 더 경계하고 조심해야 한다. 중독 상태가 되면 술을 끊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 독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질병이 중독인데, 이후에도 그 독을 계속 사용하겠다는 것은 중독 상태에 머물러 있겠다는 말과 같다. 완벽한 논리적 모순이다.

 

우리의 뇌는 어떤 습성을 한번 체득하거나 손상되면 좀처럼 회복이 되지 않는 성향이 있다. 한 번 몸에 배인 음주 습관이 고쳐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러니 절주는 불가능한 미션일 뿐이다. 반복되는 과속으로 브레이크가 파열된 자동차가 있다면, 그 차를 안전하게 몰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할 리 없다. 그 차에 오르지 않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이러한 사실에 무지한 가족들은 ‘의지로 술을 적당히 마셔보라’ 조언 아닌 조언을 한다. 자신의 문제를 직면하지 않고 회피하는 이들은 의지로 음주를 자제해보겠다 답한다. 이건 몰라도 너무 몰라서 하는 말일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구하고 청하고 문을 두드리라 말씀하셨다. 음주 습관에 문제가 있다면 이를 인정하고 의료적 치료 방법을 찾고 올바로 회복되기를 희망하자. 구하지 않고 청하지 않는 자에게 주기란 어렵다. 이 땅에 중독으로 고통 받는 모든 이들을 함께 기억하며, 단순한 치료를 넘어 온전히 치유되고 하느님의 모상으로 빚어진 온전한 사람의 모습으로 회복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어머니 마리아께 특별한 전구를 청한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1월호, 하종은 테오도시오(정신과 전문의, 한국중독연구재단 카프성모병원 알코올치료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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