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7일 (수)
(백) 부활 제3주간 수요일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본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성경자료

[신약] 신약 여행70: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2코린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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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0-24 ㅣ No.3867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70)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2코린 4,7)


질그릇같은 나약함 속에 드러난 주님의 능력

 

 

이방인의 지역에서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고 공동체를 세운 바오로 사도에게 가장 힘들었던 점은 그의 사도직을 인정하지 않던 무리였습니다. 바오로 서간에 간혹 이런 부분이 언급되지만 가장 구체적인 내용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입니다.

 

“우리도 어떤 사람들처럼 여러분에게 내보일 추천서나 여러분이 써 주는 추천서가 필요하다는 말입니까?”(2코린 3,1) 여기서 말하는 추천서가 무엇인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예루살렘 공동체에서 인정한 선교사들을 위한 추천서나 자격을 나타내는 문서였으리라 생각합니다. 

 

성장하는 교회와 함께 많은 이들이 복음을 선포하는 일에 나서게 되고 이런 상황에서 그들의 신원을 확인해 주는 어떤 장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예루살렘 교회의 추천서와 같은 형식이었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하지만 바오로 사도는 그런 추천서를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추천서는 여러분 자신입니다. 우리 마음에 새겨진 이 추천서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으며 또 읽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분명히 우리의 봉사직으로 마련된 그리스도의 추천서입니다.”(2코린 3,2-3)

 

 

사도직 인정 않는 반대파와의 갈등

 

바오로 사도가 겪은 그의 반대자들과의 갈등은 상당히 컸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표현을 따르면 그들은 사도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지만 실제로 그들이 한 일은 자신들을 드러내거나 자랑하는 일이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런 그들을 거짓 사도라고 비판합니다.(2코린 11,13) 

 

이 반대자들이 누군지에 대해 여전히 많은 견해가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보면 이들은 유다교 출신의 선교사들로 바오로 사도와는 달리 유다교의 전통들을 사람들에게 지키도록 요구하던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이 히브리 사람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입니까? 정신 나간 사람처럼 하는 말입니다만, 나는 더욱 그렇습니다.”(2코린 11,22-23)

 

 

대가없이 복음 선포 위해 몸바쳐

 

이들에 대한 비판과 함께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겪었던 일들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그는 죽을 위험도 감수하고 복음을 선포하는 여행에서 무수한 어려움들을 겪었습니다.(2코린 11,24-33 참조) 이러한 고난 속에서도 바오로 사도는 아무런 대가 없이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삶을 바쳤던 인물이었습니다. 

 

또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은 바오로 사도가 겪었던 개인적인 어려움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내가 자만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2코린 12,7)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4장 13-14절의 내용과 함께 본다면 바오로 사도는 육체의 병을 지니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쨌든 이 모든 내용을 통해 바오로 사도는 복음 선포를 위해 많은 어려움과 고난을 넘어서야 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이런 개인적인 어려움과 복음 선포를 위해 감수해야 했던 고난들, 그럼에도 복음을 선포해야만 했던 처지는 ‘질그릇에 담긴 보물’이라는 비유를 통해 가장 잘 드러납니다. 여기서 말하는 질그릇은 바오로 사도 개인을 나타내고 보물은 하느님의 구원 복음을 의미합니다.

 

 

고난 속에 더 굳건해진 선교 사명

 

이미 구약성경에서 질그릇은 인간의 나약함을 나타내는 데 사용됩니다.(시편 31,13; 예레 22,28) 쉽게 깨질 수 있는 특성을 통해 인간의 유한함과 한계 그리고 하느님 앞에서의 보잘 것 없음을 표현합니다. 반면에 보물은 복음의 선포에 담긴 구원을 가져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업적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충분히 할 만해서, 그럴 능력이 있어서 구원의 복음을 선포한 것이 아니라 자랑할 것 없고 부족하고 나약한 사람이지만, 그것을 통해 하느님의 업적이 더 잘 드러나도록 하는 사명을 받은 것으로 이해합니다. 역설적으로 질그릇 같은 바오로 사도의 나약함을 통해 하느님의 위대하심이 더욱 잘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2코린 4,7)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10월 22일, 허규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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