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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를 읽어 주는 남자: 그랜토리노 - 희생과 사랑으로 완성되는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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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2-01 ㅣ No.971

[영화를 읽어 주는 남자] 희생과 사랑으로 완성되는 화해

 

 

이번에 소개할 영화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2008년 작, 「그랜토리노」입니다. 영화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직접 연기한 월터 코왈스키가 자신의 아내 도로시의 장례미사에 가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모든 것이 월터의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삶과 죽음에 대해 현학적인 강론을 하는 젊은 신부도, 할머니의 장례식에 나타난 손주들의 옷차림도 말이죠. 그런 그를 자식들과 손주들도 싫어합니다. 이들 사이에는 깊은 골이 있는 것처럼 보이네요. 가족들이 그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그에게 원하는 것이 있을 때 뿐입니다. 장례식이 끝나고 사람들이 모였을 때 그 젊은 신부, 야노비치는 월터에게 고해성사를 권합니다. 아내 데이지의 유언이었다고, 신부는 그녀와 약속을 했노라고 말합니다. 월터는 아내에게 잘 해준 것은 감사하지만 자신에게는 신앙이 없거니와 신학교를 갓 졸업한 애송이 신부에게는 더욱 그럴 생각이 없다는 말로 신부를 무시합니다.

 

월터는 한국전쟁에 참전해 은성 무공훈장을 받았지만 투항하는 소년병을 죽인 것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외로운 노인입니다. 전쟁 후에는 포드 자동차의 조립라인에서 일했고, 자신이 조립한 1972년형 그랜토리노를 차고에 고이 모셔 두고 과거를 그리워하는 은퇴자입니다. 그가 50년 넘게 살아온 마을은 변했습니다. 미국인들은 떠났고 베트남과 라오스 등지에서 망명해 온 몽족들이 이사해 왔습니다. 이제는 몽족들이 다수가 된 그 마을에서 입만 열면 인종차별과 편견에 찬 욕설을 내뱉는 고집스럽고 편견에 차 있는 월터는 불편한 존재입니다. 절대 서로 관계를 맺을 것 같지 않던 그들은 뜻밖의 사건으로 얽히게 됩니다.

 

옆집에 살고 있는 몽족 소년 타오가 몽족 갱들의 강요로 그랜토리노를 훔치기 위해 월터의 차고로 숨어 들어갑니다. 도둑이 든 것을 안 월터는 자신이 한국전쟁 때 사용했던 소총을 들고 소년 타오를 쫓아냅니다. 며칠 후, 몽족 갱들은 다시 타오를 찾아와 억지로 차에 태우려 합니다. 이 과정에서 갱들이 월터의 앞마당까지 들어오자 그는 다시 그 소총으로 쫓아냅니다. 이에 몽족 이웃들은 월터에게 감사를 표하지만 월터의 행위는 그들을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을 뿐입니다. 그들의 감사는 월터의 쓰레기통으로 직행합니다.

 

야노비치 신부는 늘 무시당하면서도 끈질기게 월터를 찾아옵니다. 하지만 그런 신부를 월터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노인들의 손을 붙잡고 영생을 남발하는 지나치게 교육받은 젊은 숫총각이라고 비하하고, 네가 말하는 삶과 죽음은 결국 신학교에서 배운 것에 불과하지 않느냐며 비아냥거립니다. 그리고 자신은 한국전쟁에서 수없는 경험을 통해서 죽음을 배웠다고 합니다. 신부는 월터에게 그가 아는 것은 결국 죽음에 대한 것일 뿐 그것에 사로잡혀 삶에 대해 알지 못하고 살아 왔음을 일깨웁니다. 그리고 명령에 의해 작전을 수행한 군인에게 그것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이라고, 그런 상처를 경험한 사람들도 다시 평안을 찾을 수 있다고 위로합니다. 하지만 월터는 자신을 괴롭히는 것은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방아쇠를 당겨 목숨을 빼앗았던 소년병의 얼굴이라 말합니다.

 

이제 더 이상 나빠질 것조차 없어 보이는 월터와 이웃들간의 관계가 열리기 시작하는 것은 타오의 누나 수 덕분입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남성들에게 둘러싸여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당당하게 맞서는 수를 보며 월터의 생각은 바뀌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수와 함께 집으로 오는 길에 나눈 대화 속에서 월터는 몽족이 미국의 배신으로 그들의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일에 몽족의 파티에 초대되어 그들의 전통과 문화를 서서히 존중하게 됩니다. 타오의 가족들이 월터에게 타오가 속죄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을 부탁합니다. 월터는 처음에는 거절하지만 몽족이 가족의 명예를 중시하는 부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마지못해 수락합니다.

 

월터는 타오에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칩니다. 집을 고치고 가꾸는 법을 가르치고 일을 구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대화법도 알려줍니다. 이들은 마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처럼 제시됩니다. 타오에게 부재한 아버지의 자리와 월터를 떠난 자식들의 자리가 합쳐져서 그들은 비로소 가족을 이룬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들의 행복은 길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일터에서 돌아오는 타오를 몽족 갱들이 막아섭니다. 그리고 함께 어울릴 것을 완강히 거부하는 타오의 얼굴을 담뱃불로 지지고 연장을 부숩니다. 이를 알게 된 월터는 자신의 방식으로 복수합니다. 그들의 아지트로 찾아가 그놈을 찾아내어 묵사발을 만들고 다시는 접근하지 말라고 협박합니다. 하지만 이 폭력은 다시 복수를 부릅니다.

 

그들은 타오의 집에 기관총을 난사하고 수를 강간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분노했습니다. 타오는 당장 복수하겠다고 길길이 날뛰기 시작합니다. 말리는 월터에게 타오는 자신에게 가족을 지키는 법을 알려준 사람이 당신이지 않느냐고 울부짖습니다. 월터를 찾아온 신부 역시 분노를 감추지 못하지만 월터가 또다시 피의 복수를 하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월터는 신부에게 갱들이 영원히 사라지기 전까지는 수와 타오가 행복해질 수 없음을, 그리고 자신은 그 방법을 반드시 찾을 것이라고 다짐합니다. 계속해서 타오가 찾아와 복수를 종용하자 그는 못이기는 척 약속시간을 잡습니다. 이들의 작전 개시 시간은 오후 4시입니다. 그동안 월터는 잔디를 깎고, 목욕을 합니다. 그리고 단골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자르고 팁도 두둑히 줍니다. 난생 처음으로 맞춤 양복도 한 벌 맞추고 나서 성당으로가 야노비치 신부에게 고해를 청합니다. 평생 그의 마음을 무겁게 한 죄는 자신의 두 아이들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오후 4시가 되었습니다. 월터는 타오와 함께 지하실로 가 그의 가슴에 자신의 훈장을 달아줍니다. 그리고 나서 타오를 남겨둔 채 지하실 문을 잠급니다. 반항하는 타오에게 사람을 죽여야만 했던 자신의 비참한 경험까지 물려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월터는 그의 애완견 데이지를 옆집 마당에 묶어 두고 홀로 갱들의 아지트로 갑니다. 그곳에 도착해 담배를 꺼내 물고 가만히 서 있습니다. 그들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월터에게 총을 겨눕니다. 월터도 자신의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려 합니다. 보속으로 받은 성모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자신의 주머니에 손을 넣는 순간 갱들의 총은 불을 뿜고 월터는 그 자리에서 목숨을 거둡니다. 그리고 월터의 손에서 나온 것은 제1기병사단의 마크가 새겨진 라이터였습니다. 갱들은 비무장한 사람을 무차별 사격했다는 이유로 모두 검거됩니다. 월터의 장례미사가 거행됩니다. 야노비치 신부는 월터가 자신을 비난했던 말을 인용하며 그가 자신에게 삶과 죽음을 가르쳐 주고 떠났다고 말합니다. 영화는 월터에게 물려받은 그랜토리노를 타고 달리는 타오와 데이지의 모습으로 끝맺습니다.

 

영화 「그랜토리노」는 우리에게 증오나 복수가 아닌 희생과 사랑으로 완성되는 화해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계승해야 할 영원한 가치임을 외치고 있습니다. 마치 예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희생을 통해 완전한 사랑을 보여주신 것처럼 말이죠. 우리는 과거에 얽매여 살아가기 쉽습니다. 나의 실수로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는 것도, 나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도 모두 힘든 일이지요. 혹시 지금 마음속에 해결되지 않은 그러한 감정들이 있다면 이 헐리우드의 노장이 제시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감상해 보시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어느새 가을이 왔습니다. 이 아름다운 계절을 살아가는 여러분들의 마음에 화해와 사랑의 열매가 맺히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제가 소개해 드리는 이 영화가 그 열매 맺음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16년 가을호(Vol. 35), 이창민 세례자 요한(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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