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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신학ㅣ사회사목

[노인사목] 노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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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0-19 ㅣ No.955

[경향 돋보기 - 우리 사회 속의 노인은] 노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

 

 

지하철을 타보면 그 나라의 문화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붐비는 지하철에서 한 청년이 “아침 일찍 노인네들이 어딜 가시나?”하고 투덜거리자 한 노인이 즉각적으로 “아, 볼일이 있으니 가지. 뭘 안다고 지껄여!”라며 언성을 높인다. 바로 세대 간의 갈등을 단적으로 보는 것 같다.

 

노령인구의 증가로 공공장소나 대중교통에서 이런 상황을 자주 마주치다 보니 노인의 행동 특히 부정적인 모습은 눈에 띄기 쉽고,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더해진다. 그러나 노년층 대부분은 젊은 시절 자녀를 양육하고 직장생활을 하며 삶의 질을 높이려고 열심히 살아온 세대이며, 이제는 자신의 노화와 급속한 사회변화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며 살아가려고 한다.

 

최근 신조어가 된 ‘가스통 할배’ 이야기처럼 일부 노인의 특별한 행동에 대해 섣부른 해석과 판단으로 상황을 확장시키고, 또 그 흐름을 타고 행동을 강화하는 이들도 있다. 이 모두 아이티(IT)기술이 낳은 부정적 결과의 일부가 아닐까?

 

정치적으로나 사회적 경제적 그 어떤 측면에 따른 것일지라도 그들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들로 세대 간 소통이 어렵게 되어 노인 모두를 힘들게 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현대사회에서 노인은 어떤 존재인가

 

우리 사회는 2000년부터 고령화사회로 진입하여 고령화사회에 대한 다각적인 대비와 실천을 해오고 있다. 그러나 출산율 저하로 10여 년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국가 가운데 최저 출산율 1위를 유지하며, 가파른 고령화 속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제 전체 인구 대비 노인(65세 이상)인구 비율이 14%이다. 곧 20세 이상 성인 약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이 노인인 고령사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 같은 높은 노인인구 비율은 정치와 경제 그리고 문화와 과학기술 등 여러 분야에 영향을 미치며 세대 간의 이해와 적응을 어렵게 하고 있다.

 

특히 기계적이며 이분법적인 사고로 수직적 관계 체계에 익숙한 남성 노인들에게 현대의 다원화적 사고와 수평적 관계의 요구는 혼란과 부담감을 갖게 한다. 또한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 새로운 체계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아서 절망과 소외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그들이 겪는 어려움 또한 적지 않다. 수동, 반자동, 완전자동의 적응을 거친 세대에게 속도와 효율성을 추구한 첨단기기의 자동화, 문화의 세계화는 단숨에 따라갈 수 없는, 먼 나라 같은, 모방하려면 더욱 어지러운 일상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내뿜는 분노의 표현은 이러한 맥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노년기에 들어 줄어든 경제 능력은 ‘100세 시대’라는 주제만 나와도 불안을 가중시키는 게 현실이다.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장년층마저도 지갑을 닫는다고 한다. 2010년 기준 노인 한 사람의 소득은 월 70.8만 원으로, 공적 사적 연금이 주요 소득원이고, 노후 생활비를 마련하면서 가족에 대한 기대는 감소하고 있다.

 

반면 노인들의 절반 정도는 사회에서 일정 부분 부양책임을 져줄 것을 요구한다. 또한 46.6%는 자신들의 생활수준이 낮다고 생각하고, 6%만이 높다고 생각한다(2011년 노인 실태조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소득의 양극화와 가파른 소비경제의 상승은 이러한 노인들을 더욱 위축시키며 삶에 대한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노후생활을 계획할 여유도 없이 자녀양육과 교육에 헌신해 온 많은 노인이 자녀의 지원을 받지 못해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스스로 독립적으로 살아온 노인들이 더 이상 사회 구성원으로서 필요 없는 무용지물일 뿐이며 자식들에게 짐이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더욱이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이러한 생각은 더욱 가속화된다. 그들의 삶에 대한 이러한 회의적인 생각은 자신들의 존재가치나 존엄성 자체를 훼손할 수 있으며, 극단적인 경우 자살을 선택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할 것이다. 현대사회의 노인 자살의 문제가 단순히 빈곤과 질병이 그 원인이라기보다 사회적 변화의 이면과도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노인들은 경제적 어려움, 건강 문제, 외로움, 가족, 친구와의 갈등과 단절 등으로 10.9%가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고, 그 가운데 12.5%가 자살을 시도했다고 한다(2014년 노인 실태조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노인 자살 사망률은 2014년 인구 10만 명당 55.5명으로 2010년 80.3명에 비해 감소하였다(사망원인통계연보, 통계청). 이는 노인 자살 예방을 위한 사회의 다각적인 노력의 결과로 볼 수 있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어 보인다. 그러나 신노인 세대라 일컫는 일부 노인은 노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유연하고 합리적인 사고로 독립을 추구한다. 또한 폭넓은 대인관계와 여가를 즐기며 부부 중심의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어느 기업에서 부회장으로 은퇴한 뒤 호텔 웨이터로 제2의 삶을 시작해 화제가 되었던 분, 젊은 시절 꿈꾸던 사진작가의 길을 은퇴하여 시작한 분, 퇴직하여 전문기술을 바탕으로 사업을 시작한 분, 부부가 은퇴 뒤 스포츠댄스를 함께 배워 강사 활동을 하는 분 등 신노인층의 증가는 고령사회를 맞는 우리에게 매우 희망적인 메시지이다.

 

 

현대 가정에서 노인은 어떤 존재인가

 

우리나라는 성장과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며 국민소득 2만 달러가 넘는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려고 질주해 왔다. 그러나 이로 말미암아 지나친 경쟁을 조장하여 삶의 질적인 면을 간과했으며, 지나친 상품화 현상으로 물신주의 가치관을 조장하고 인간관계를 황폐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했다.

 

사회 변화에 따른 급속한 가족 가치관의 변화는, 효 사상을 바탕으로 한 가족 중심의 가치관과 개인의 자율성과 평등성이 강조되는 다원주의 가치관 등 사회 내 가치관의 혼재와 함께, 유례없는 세대 간 갈등을 드러내고 있다. 그 결과 연령적 분절과 문화적 단절에 따른 세대 간 차이는 가족 간의 심각한 갈등을 초래하여 상호작용을 어렵게 하며, 결국 가족 해체를 가져오기도 한다.

 

안방까지 침투한 정보통신의 발달은 가치관만이 아니라 생활양식까지도 변화시키고 있다. 가정에서 가족 간의 의사소통도 스마트폰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또한 자녀교육이 최우선시되면서, ‘할아버지의 재력, 아빠의 머리, 엄마의 정보력’이 있어야 자녀의 노력이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유머에 실린 가족들의 요구는 더 이상 노인이 가정의 중심이거나 위계의 상위에 존재하기 어렵게 한다. 오히려 눈치를 보는 주변인으로 물러나게 할 뿐이다.

 

“3번(아빠)아, 잘 있어라. 6번(조부)은 간다.”는 유행어는 가정 내 노인의 존재가 어떠한지 잘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현상으로 전통사회에서 효의 개념으로 노인을 모시는 것은 이제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노인교육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노후보험을 자식에게 들었다고 했다. 곧 모든 재산과 노력을 자녀에게 쏟았는데 그 보험이 부도가 나서 이제 탈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통계적으로 2016년 생산인구 5.5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한다(장래추계인구, 통계청)고 나타나 고령화로 노인 부양의 어려움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불안정한 직업생활을 하며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가는 자식에게 폐가 되지 않겠다는 것이 노인들의 마지막 자존심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일부 노인은 사별하거나 이혼하고 돌아온 성인 자녀의 손주를 돌보거나, 맞벌이로 자녀 양육 시간이 부족한 자녀를 위해 손주의 양육을 도와주며 본의 아니게 제2의 부모기를 보내고 있다. 이들은 노년기 만성질환에 노출되기 쉬우며 부모 자녀의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자녀와의 관계와 건강에 대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핵가족화에 따른 가족 규모의 축소로 노인 가구 형태도 변화했다. 2014년 노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자녀와 동거하던 노인 가구는 20년 전에 비해 절반 정도로 줄었고, 노인부부 단독가구는 두 배가량 증가했다. 이는 인구의 노령화로 노년기 부부가 증가하고 있음을 나타내며, 노인들이 자녀와 동거하기보다는 별거를 더 선호하는 것을 보여준다.

 

성인 자녀들과의 관계도 일방적이 아니라 상호 원조를 주고받는 것이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고 한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또한 노인들이 배우자 말고도 주로 교류하는 사람은 자녀, 손주, 형제자매, 친한 친구와 이웃, 가까운 친인척의 순으로 나타나(2014년 고령화연구 패널 조사, 한국고용정보원) 가족 가치관의 변화에도 노인들에게는 가족이 가장 중요함을 볼 수 있다.

 

 

신노인 세대로 가는 길

 

노인들은 장유유서와 효의 개념 아래 성장하였고, 60-70년대 학생운동으로 불의에 맞서 정의를 찾고자 했으며, 가장이 되어 산업역군으로서 나라와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왔다. 나라의 경제적 위기(IMF)에 일부는 일자리를 잃고 휘청거리기도 했던 사람들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고 현대의 어떤 변화에도 적응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젊은이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100세 시대가 눈앞에 펼쳐져 있기 때문에 이제부터 시작해도 결코 늦지 않다. 신노인 세대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필자의 소견을 몇 가지 펴보고자 한다.

 

첫째, ‘나’를 지금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이 주위의 영향을 받지 않고 나답게 살 수 있는 최고의 자원이다.

 

둘째, 부부관계의 재정립이다. 서로 배우자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부부관계야말로 노년의 가장 든든한 자원이다.

 

셋째, 성인 자녀들과의 관계를 성인 대 성인의 수평적 관계로 독립과 의존의 심리적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넷째, 친구를 사귀자. 황혼기의 우정관계는 인생의 보너스 시간을 잘 유지할 수 있는 사회적 자산이며 노년의 삶을 꽃피울 수 있는 좋은 자원이다.

 

다섯째, 신앙생활은 다양한 상실감을 갖기 쉬운 노년기에 가장 든든한 지지 자원이 될 수 있다. 삶의 여러 집착을 내려놓고,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내맡김으로써 평화로움을 체험할 수 있으며, 또한 신앙 공동체는 사회적 관계의 즐거운 장이 될 수 있다.

 

여섯째, 도전하는 삶이 되자. 미래는 모두 모험의 장이다. 지금이야말로 자신을 위한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다. 취미든 여가생활이든 하고 싶은 일을 지금 시작해 보는 것이다.

 

“마음의 기쁨은 곧 사람의 생명이며, 즐거움은 곧 인간의 장수이다”(집회 30,22). 주님의 축복 속에 오늘도 깨어있음에 감사하며, 우리 앞에 펼쳐지는 오늘 하루를 행복한 미소로 함께하자.

 

* 이동숙 안젤라 - 서울대교구 노인사목부 노인사목 연구위원. 이화여자대학교 의류직물학과와 명지대학교 사회교육대학원 아동심리치료학과 객원교수를 맡고 있다. 성신여자대학교에서 가족학 박사를,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가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가족치료 슈퍼비전의 이론과 실제」, 「인지행동 상담과 심리 치료기법」이 있다.

 

[경향잡지, 2016년 10월호, 이동숙 안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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