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3일 (화)
(백) 부활 제4주간 화요일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종교철학ㅣ사상

동양고전산책: 동양의 덕목으로 풀어 본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5) 호의(친절)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7-11 ㅣ No.289

[최성준 신부와 함께하는 동양고전산책] “이웃 안에 예수님이 계시니”

- 동양의 덕목으로 풀어 본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 ⑤ 호의(친절)

 

 

간혹 카페나 식당에서 어린 종업원에게 함부로 반말을 하거나 무시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자기 자식이 저런 대접을 받는다는 걸 안다면 저렇게 행동하지는 않을 텐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학비에 보태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이거나 남들보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청년인 그들에게 같은 어른으로서 제가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입니다. 우리는 타인에게 호의를 품고 친절을 베푸는 행동을 보게 되면 자신의 일이 아니더라도 흐뭇한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무례하거나 불친절한 모습을 볼 때면 불쾌하고 화가 나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지요.

 

바오로 사도가 소개하는 다섯 번째 성령의 열매는 “호의(好意)”입니다. 그리스어로 “크레스토스(κηστοζ)”라고 하는데, “친절”, “인자”, “용서”, “자비”, “호의”라는 말로 번역되고는 합니다. 공동번역 성서에서는 “친절”이라고 했었지요. “이웃을 따뜻하고 우호적으로 대하는 것”인 친절은 그 사람 안에 계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 쉽게 실천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우리가 이웃에게 베푼 친절이 곧 주님께 베푼 것이라는 이 놀라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단순히 이런 이유 때문에 이웃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호의(친절)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 맺어 주시는 열매이기에, 밖에서 배워서 억지로 하는 행동이 아니라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행동입니다. 이런 생각은 유가(儒家) 전통에서 당연시되어 왔습니다. 맹자는 구체적인 예를 들면서까지 자세하게 이야기합니다.

 

“만약 지금 어떤 사람이 문득 어린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본다면 모두 놀라고 측은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어린 아이의 부모와 내밀한 관계를 맺고자 해서 그런 것이 아니요, 마을의 친구들에게 명예를 얻고자 해서 그런 것도 아니며, 그 울음소리가 듣기 싫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측은히 여기는 마음(측은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수오지심)이 없어도 사람이 아니며, 거절하고 양보하는 마음(사양지심)이 없어도 사람이 아니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마음(시비지심)이 없어도 사람이 아니다.”1)

 

어린 아이가 우물가에서 놀다가 우물에 빠지려고 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면 누구나 깜짝 놀라며 불쌍한 마음이 들 겁니다. 얼른 달려가 구해 주려고 하겠지요. 이는 어떤 의도가 있어서 하는 행동이 아닙니다. 계산적인 생각이 들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튀어나오는 행동입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사람은 마음 안에 선한 본성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맹자는 계속해서 강조합니다.

 

“인의예지가 밖으로부터 나에게 녹아 들어온 것이 아니다. 내가 본디 가졌던 것이지만 생각하지 않을 따름이다.”2)

 

어진 마음(仁)이나 정의를 추구하는 마음(義), 남을 배려하는 마음(禮)과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아는 지혜(智)는 학습을 통해 배웠거나 다른 외부적인 요인으로 어쩔 수 없이 행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내면에 원래 갖추어져 있다는 말입니다. 즉, 하느님께서 인간 내면에 깊이 심어 주신 본성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왜 이렇게 무례하고 불친절한 사람이 많을까요? 그리고 사람은 왜 그리 이기적이고 자기 욕심만 채우려 할까요? 어릴 때부터 무한 경쟁에 시달리다 보니 이웃은 호의를 베풀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이겨야 하는 대상이 되어 버린 건 아닐까요?

 

하지만 이웃은 경쟁 상대가 아니라 사랑을 베풀어야 할 대상이며,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나와 같은 피조물이고, 함께 주님의 성체를 받아 모시는 형제자매입니다. 수운 최제우 선생에서 비롯된 동학(東學) 사상은 “인내천(人乃天)”, 즉 사람이 곧 하늘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니 하느님을 섬기듯이 사람을 대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事人如天). “사람이 오거든 한울님이 온다고 하여라. 어린 아이를 때리지 마라. 이는 한울님을 때리는 것이다.”3) ‘모든 사람 안에 하느님이 계시다. 그러니 하느님을 모시듯 그 사람을 대해야 한다. 가장 보잘것없고 약한 어린 아이에게도 하느님은 똑같이 계시다.’ 이런 생각들이 일제 식민지 시절, 가장 어려운 시기에 우리 민족에게 심어진 사상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마태 18,4-5)

 

다른 이에게 호의를 베풀고 친절하게 대하는 것은 결국 하느님께 호의를 베푸는 것입니다. 바로 이 사실이 우리에게 희망이 되고 인내하며 꾸준히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줍니다. 하지만 이런 호의를 베푸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호의를 베풀어도 내 생각대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베푸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 없이 일방적으로 베푸는 것은 자기만족일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 또 다른 폭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공자도 인(仁)을 베푸는 이들이 꼭 명심해야 할 사항으로 타인에 대한 배려를 강조했습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도 베풀지 말라.”4)

“어진 사람은, 자기가 바로 서고자 하면 남도 서게 해 주고, 자기가 달성하고자 하면 남도 달성하게 해 준다.”5)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 7,12)

 

다른 이를 먼저 배려하는 마음은 동서양을 넘어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해당하는 황금률입니다. 가장 보잘것없는 이에게 친절을 베푸는 주님의 자녀가 되어야겠습니다. 

 

1) 『맹자(孟子)』 「공손추상(公孫丑上)」 6.“今人乍見孺子將入於井, 皆有출척惻隱之心, 非所以內交於孺子之父母也, 非所以要譽於鄕黨朋友也, 非惡其聲而然也. 由是觀之, 無惻隱之心, 非人也; 無羞惡之心, 非人也; 無辭讓之心, 非人也; 無是非之心, 非人也.”

2) 『맹자(孟子)』 「고자상(告子上)」 11. “仁義禮智, 非由外?我也, 我固有之也, 弗思耳矣,”

3) 최시형 『內修道文』 제4조.

4) 『논어(論語)』 「안연(顔?)」 2. “己所不欲, 勿施於人.”

5) 『논어(論語)』 「옹야(雍也)」 30. “夫仁者,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 최성준 신부는 북경대학에서 중국철학을 전공하고 현재 대구대교구 문화홍보실장 겸 월간 <빛> 편집주간으로 있다.

 

[월간빛, 2016년 7월호,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대구대교구 문화홍보실장 겸 월간 <빛> 편집주간)]



3,134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