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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신심서적 다시 읽기: 사랑,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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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6-11 ㅣ No.287

[신심서적 다시 읽기] 사랑,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고 사랑 받기를 갈망합니다. 그 근원적 갈망은 시와 노래, 이야기와 그림, 조각 등으로 표현되어 왔으며 모든 예술은 사랑이라는 주제를 맴돌기 마련입니다. 사랑의 형태는 남녀 간, 친구 간, 이웃 간의 사랑과 자신에 대한 사랑,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 등 다양합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좋은 점에 마음이 끌리고 호감을 느껴서 그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고 다정히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 핵심을 욥은 ‘좋은 것’이라 했습니다. 그리스 인들은 ‘에로스’(욕망하는 사랑으로 남녀 간의 사랑) ‘필리아’(친구에 대한 사랑으로 친구가 있음을 기뻐함) ‘아가페’(이웃에 대한 사심 없는 사랑,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로 구분하였습니다.

 

코린토 전서 13장 7절에는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라고 나타냈습니다.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은 지나친 부담으로 여기지 않으면서도 많은 것을 참고 인내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부러지지 않으면서 많은 것을 견딜 수 있다고 합니다. 사랑은 그 자체로 어떤 것을 덮어 주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언짢은 것, 부담스러운 것, 우리 안에 벌거벗는 것, 우리를 얼어붙게 하는 것을 외투처럼 다정하게 사랑으로 바라보며 덮어 줍니다. 바오로 사도에게 사랑은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고귀한 은사이며 사랑은 그리스도교의 핵심입니다.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형성해야 할 본원적 은사라 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모든 것은 무가치합니다. 결국 ‘아가페’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비추어진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노아는 포도주를 마시고 벌거벗은 채 천막에 누워 있었습니다. 함은 아버지의 알몸을 보고 형제들에게 알렸습니다. 다른 두 아들은 겉옷을 집어 들고 아버지의 알몸을 덮어 드렸습니다. 아비의 벌거벗은 몸을 사랑으로 덮어 드렸습니다. 술에서 깨어난 노아는 함을 저주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퍼뜨리는 사람은 결국 그 때문에 자신도 해를 입습니다. 사랑으로 덮어 준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보호 아래 성숙하고 자신의 허물을 바로 잡으리라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초기 은수자인 대 마카리우스는 “하느님께서 세상을 보호하고 감싸 주시듯 당신이 본 결점을 마치 보지 못한 것처럼 덮어 두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것이 낸 상처를 하느님 사랑 안에서 치유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웃이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마음에도 없는 말들로 위로해 준다며 부산을 떠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조용히 곁에 있어 주는 것, 아무 말 없이 손을 잡아 주는 것, 아파하는 마음을 나누는 일이 도와주는 일이 아닐까요. 그 너그러운 마음이 주변을 안정시키고 해결의 실마리를 만들지 않을까요.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도 부모는 자녀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때까지, 성숙에 이를 때까지 기다립니다. 조급하게 서두른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정체성을 찾고 성숙에 이르는 게 아님을 모릅니까? 가끔 ‘현장르포 동행’이라는 프로그램을 봅니다. 남편이 실직했다고 아이들을 버려둔 채 집을 떠난 아내, 남편의 병간호에 지쳐 남편과 아이들을 버린 아내, 부도가 나고 생활이 어렵다고 노숙자가 된 아버지…. 배우자라면서 상대방의 모든 불행을 외면해도 될까요?

 

‘죄의 종’에 대한 얘깁니다. 마리아는 13살이고 요셉은 9살입니다. 아이들은 뛰어놀 마당이 없어 자주 할아버지 댁으로 갑니다. 하루는 요셉이 할아버지의 활과 화살이 거실에 있는 것을 들고 사냥을 나갔습니다. 숲에서 움직이는 것을 보고 화살을 당겼는데 토끼가 아니고 할아버지가 키우는 닭이었습니다. 요셉은 그것을 얼른 땅에 묻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뒤에서 마리아가 보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절대 할아버지에게 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녁에 닭국이 나왔습니다. 다행히 할아버지는 모르시는 것 같았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니 설거지는 마리아의 몫이었는데 마리아는 “요셉아, 할아버지에게 말할까?” 그래서 요셉은 혼자 설거지를 했습니다. 아침에 마당도 쓸라고 합니다. “요셉아, 쓸기 싫어? 말할까?” 그래서 혼자 마당을 쓸었습니다. 요셉은 할아버지에게 다 말하고 용서를 빌기로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요셉아, 잘 말했다. 나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단다. 다 용서했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성녀 모니카는 끊임없는 기도와 인내로 남편과 시어머니를 개종시켰습니다. 그리고 마니교와 이교 철학에 빠져 그릇된 길을 걷고 있던 아우구스티노를 위해 30년을 기도하고 참고 기다린 끝에 세례를 받게 하고 훌륭한 성인으로 태어나게 한 것은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와 인내와 기다림의 덕이 아닐까요?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사랑의 본질적인 속성은 참고 기다리며 친절한 것입니다. 그래서 누룩처럼 사회 속으로 작용해 들어가고 빛처럼 세상의 어둠을 밝힙니다. 또한 사랑은 자신에게 마음자리를 허락한 사람이 친절함을 발산할 수 있게 합니다. 사랑에 이끌린 사람은 어떤 선함과 친절함과 다정함과 정직함을 발산합니다. 이는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도 변화시키고 다른 사람을 치유합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우리는 다른 사람의 지배를 허락하지 않으며 스스로 인내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이 비난하더라도 우리는 사랑을 빼앗기지도 않고 굳건히 견디어 냅니다. 사랑은 우리가 안전히 서 있을 수 있는 바위와 같아서 우리에게 인내력을 줍니다. 바오로의 사랑 노래를 다시 새겨 봅시다.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 … 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1코린 13,3-13)

 

나오며 : 우리 안에 있는 사랑의 불길은 영혼과 육체를 사로잡고, 내면의 모든 것을 따뜻하게 하며, 말씨에도 온기가 돌게 합니다. 사랑의 샘은 우리가 인간적 사랑을 체험함으로써 쉼 없이 솟아오를 때 비로소 생동합니다. “사랑은 본디부터 참고 기다리며 친절합니다. 그리고 모든 존재의 근본 바탕이 되는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 - 《사랑,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는》 / 안셀름 그륀 지음 / 이종환 옮김 / 분도출판사 펴냄

 

* 약력 : 월간 『문예사조』 신인상, 월간 『수필문학』 천료. 한국문인협회, 대구수필가협회, 대구가톨릭문인회원. 수필집으로 《내가 선 자리에서》, 《하얀 바다의 명상》, 《느끼며 살며》 등이 있다.

 

[월간빛, 2016년 6월호, 강찬중 바오로(대명성당,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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