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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ㅣ복음화

복음선교 - 나누며 커지는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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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5-05 ㅣ No.392

[복음선교교육] 복음선교 - 나누며 커지는 신앙

 

 

저는 ‘복음선교교육’의 탄생부터 줄곧 깊은 인연을 맺어왔으며 또 직접 교육에 참여했고, 또한 이 교육을 토대로 두 본당에서 ‘새 가족 찾기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직접 선교운동을 실시해본 경험을 나누어 봅니다.

 

우선 첫 번째 본당은 대전교구 내 농촌 지역인 전의에 위치한 공동체로 2010년 2월21일~5월3일까지 선교운동을 실시했습니다. 전의성당은 주일 미사 평균 참례자가 성인 기준 160명 수준의 작은 본당 중 하나입니다. 다음으로 궁동성당은 대전 시내에 있는 공동체로 주일미사 참례자 수가 평균 1200명 정도 되는 비교적 안정적인 중대형 본당입니다. 선교운동 기간은 2012년 6월25일~9월23일까지 거의 3개월에 이릅니다.

 

외견상 볼 때 두 본당은 선교운동 참가자 및 봉사자를 동원할 역량뿐만 아니라 경제 · 문화적 제반 여건이 현저하게 차이를 보이는 공동체들입니다. 따라서 그 진행 과정과 결과가 큰 차이를 보일 것이라 생각될 것입니다.

 

그러나 ‘새 가족 찾기 운동’을 하면서 느낀 점은 선교가 하느님의 일인 만큼 누가 어떻게 어떤 규모로 시행하느냐가 관건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선교는 성령께서 주도하시고 성령께서 열매를 맺으신다는 사실을 모든 공동체 성원이 느끼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확실히 선교운동으로 두 본당 모두 ‘제2의 성령강림’을 체험한 것이 가장 큰 보람이었습니다.

 

돌아가신 성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선교에 대해 당신의 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 2항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선교는 교회를 먼저 새롭게 하고, 신앙을 견고케 하고, 그리스도교의 정체를 확인하고, 새로운 열정과 자극을 주는 것이다. 신앙을 줌으로써 신앙이 견고해진다.”

 

 

복음을 전하면서 동시에 복음화 돼

 

전의와 궁동에서 선교운동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선교라는 것이 일방적으로 ‘복음’을 전달해주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서 동시에 복음화 된다는 사실입니다. 아니 엄밀히 말해서 복음선교는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더 많은 ‘남는 장사’입니다. 이런 점에서 성인 교황께서 선교행위가 우선적으로 우리 각자를 ‘쇄신’시키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나’의 정체를 확인시킨다고 말씀하셨나 봅니다.

 

처음으로 본당에서 대대적인 선교운동을 벌인다는 주임신부의 발표에 거의 모든 교우들의 생각은 부정적이거나 미온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점차 선교운동이 시작되면서 교우들의 신앙자세가 변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일례로 선교운동 중에 ‘가두선교’가 대표적인 반전의 사례입니다. 사실 가두선교는 ‘복음선교교육’에서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습니다. ‘복음선교교육’은 ‘관계선교’를 우선적으로 지향하기 때문에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가두선교와는 차이가 있으며, 사실 영세자들 중에 가두선교로 입교한 이들의 숫자도 미비합니다. 그럼에도 가두선교를 시행하는 이유는 신자들로 하여금 난생처음 길거리에서 나아가 복음을 전하는 체험을 해보는 데 있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용기와 힘이 솟아나는 체험

 

전의성당에서 가두선교는 사람들을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장날’에 실시했습니다. 처음 가두선교를 한다는 소식에 펄쩍 뛰던 교우들은 백주대낮 그것도 인근부락에서 모든 사람들이 모여드는 장날에 가두선교라니… 그 반대하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어깨띠를 매고 “예수 믿으라”는 구호를 외쳐야 한다니 반발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지요.

 

개신교도 아니고 점잖은 천주교에서 무슨 놈의 가두선교냐는 항의로 선교운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분위기는 폭발 일보 직전! 그래도 주임신부는 이미 뺀 칼이니 무라도 잘라야 할 판입니다. 징징거리는 교우들을 달래고 어르고 나중에는 협박(?)을 해대며 내보내니, 선교 나가는 교우들의 모습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주임신부는 반전을 경험합니다. 반나절을 장터에서 지내고 돌아오는 이들의 모습에서는 성당 문을 나설 때의 패잔병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개선장군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무슨 큰일이나 하고 온 사람들처럼 그 기세가 등등합니다. 교우들의 체험담을 들어보니 다음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혹시나 아는 사람을 만날까하는 두려움과 쑥스러움과 창피함에 소극적이던 이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용기와 힘이 솟아나는 것을 체험했다고 합니다.

 

수십 년 신앙생활을 하였지만 여태껏 자신들을 천주교 신자인지 모르던 지인들이 자신을 천주교 신자로 알아보게 되었다는 교우의 말을 들으며 사도행전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사도 11,26) 선교는 자신의 틀을 깨고나가는 일차적인 행위를 통해 자신이 누군지를 알게 합니다.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벗어나면서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세상을 통해 알게 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선교 통해 자신들이 천주교 신자임을 깨달아

 

확실히 “신앙은 줌으로써 견고해집니다.” 얼어붙은 대지에 새싹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습니다. 긴 겨울 모진 추위를 견디고 딱딱한 대지를 뚫고 나오는 생명들이 대견합니다. 그런데 이 생명들이 하는 첫 번째 일들이 놀랍습니다. 삐져나온 떡 잎을 나누는 작업입니다. 무릇 생명은 나누면서 성장하는 법입니다. 전의와 궁동, 두 성당의 교우들은 처음으로 진지하게 복음을 나누고 전하는 작업을 통해 자신들의 신앙을 되돌아보고 또 성숙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전의와 궁동에서 있었던 선교운동의 가장 큰 보람은 자신들이 천주교 신자임을 깨달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복음 선교가 자신들의 힘이 아닌 성령의 이끄심과 도우심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체험한 것도 큰 성과라 할 것입니다. 게다가 전의에서는 70여 명의 새영세자들이, 궁동에서는 200여 명의 새 식구들이 늘어나는 은총을 덤으로 받은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보람이겠지요.

 

“한 번 더 합시다!”

 

가두선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교우들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물론 가두 선교는 한 번이면 족했지요. 그러나 ‘한 번 더 하자’는 그들의 마음을 ‘새가족 찾기 운동’ 내내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 편집자 주 : 복음선교교육 원고를 써주시던 김석태 베드로 신부님께서 유학을 떠나시고 후임 정하상교육회관 관장으로 부임한 이상규 야고보 신부님께서 이어서 원고를 써주십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6년 5월호, 이상규 야고보 신부(정하상교육회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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