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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73: 요셉 피츠마이어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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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1-12 ㅣ No.438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73) 요셉 피츠마이어 (상)

공의회 정신에 따른 성경 연구에 기여한 신약 성경 학자



미국 출신의 예수회 사제 요셉 어거스틴 피츠마이어(Joseph Augustine Fitzmyer, 94)는 신약 성경학자이자 아람어 학자이며 사해 문서 전문가다. 신약 성경의 배경이 되는 고대 유다 사상을 이해하는 데 큰 공을 세운 동시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따라 가톨릭 교회에서 성경에 대한 큰 관심과 연구가 이뤄지도록 견인차 역할을 했다. 피츠마이어 신부가 교회와 학계에 미친 영향을 소개하기 위해 먼저 학문적 배경과 학자로서의 경력에 대해 알아보겠다. 그리고 이어서 그의 주된 저서와 업적을 제시하겠다.


생애와 학문적 배경

피츠마이어 신부는 1920년 11월 4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38년 예수회에 입회했다. 인디애나주 예수회 신학교에서 그리스 고전 문학으로 문학석사 학위를 취득한 피츠마이어 신부는 벨기에 에겐호벤에 있는 예수회대학과 루뱅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1952년 루뱅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으로 고등석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피츠마이어 신부는 본격적인 성경 공부에 몰두했다. 그런데 그가 성경 공부를 시작했던 상황은 현재와는 사뭇 다른 환경이었다. 지금은 역사 비평적 연구 방법으로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역사 비평적 성경 연구를 위한 대헌장이라 불리는 회칙 「성령의 영감」을 발표한 비오 12세 교황. 교황은 이 회칙을 통해 가톨릭 학자들이 역사 비평적 연구 방법론을 성경 연구에 적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교회는 근대주의 위협 앞에서 한동안 비평적 성경 연구를 금지했다. 비평적 성경 연구를 위한 대헌장(Magna Carta)이라 할 수 있는 비오 12세 교황 회칙 「성령의 영감」(Divino Afflante Spiritu, 1943) 반포와 함께 교회는 역사 비평적 연구 방법론을 성경 연구에 적용하는 가능성을 가톨릭 학자들에게 열어줬다. 가톨릭 교회 보수 진영은 이러한 조처를 환영하지 않았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부들은 비오 12세 교황 회칙에서 지시하고 있는 바를 「계시헌장」(Dei Verbum)에 수용했다. 비오 12세 교황 회칙 반포에서 계시헌장 발표까지, 곧 1943년에서 1965년 사이에 로마에 있는 교황청 성경 연구소와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미국가톨릭대학교, 예루살렘에 있는 성경학교와 같은 가톨릭 고등교육 기관들이 회칙이 장려하는 바에 따라 새로운 성경 연구 방법을 익힌 성경학자들을 배출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배출한 성경학자들의 성경 연구는 근대주의에 저항하던 기존의 보수 진영, 곧 가톨릭 절대주의를 주장하는 이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히곤 했다. 피츠마이어 신부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성경을 공부했다.

피츠마이어 신부는 1953년 존스홉킨스대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시작했고, 곧이어 기록적인 시간 내에 박사 학위 과정도 마쳤다. 1956년 그는 유명한 성경 고고학자인 윌리엄 폭스웰 올브라이트(1892~1971) 교수 지도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학위 논문은 ‘이집트에서 발견된 문헌에 기초한 아람어 문법’에 관한 것이었다. 그의 지도 교수인 올브라이트 박사는 성경과 고대 근동학 연구에서 혁혁한 업적을 남긴 조지 어니스트 라이트(1909~1974), 레이먼드 브라운 (1928~1998), 그리고 데이비드 노엘 프리드먼(1922~2008)의 스승이기도 하다. 피츠마이어 신부는 1957년 로마 교황청 성경 대학에서 성경학 고등석사학위(S.S.L.)를 받았다. 같은 해엔 동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 고고학 박물관에서 사해문서 가운데 성경이 아닌 자료들의 목록을 만드는 작업에 참여했다.


연구 및 저술활동

이렇게 성경 연구에 필요한 전문적인 훈련 과정을 모두 마친 그는 메릴랜드 주 우드스탁대학에서 신약 성경 및 성경 언어를 가르치는 조교수가 됐고, 1964년 전임 교수가 됐다. 또한 존스홉킨스대학에서 아람어를 가르친 동시에 방문 교수로서 예일대학교에서 신약 성경을 가르쳤다. 이후 시카고대, 뉴욕 예수회 학교인 포담대, 웨스턴예수회신학교 등을 거쳐 1986년 미국가톨릭대에서 은퇴했다. 하지만 이내 명예교수로 복직, 1999년에서 2004년까지 신약 성경과 아람어를 가르쳤다.

앵커 바이블 시리즈로 집필한 「루카 복음 주석서


피츠마이어 신부는 이처럼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거의 온 생애를 교수직에 헌신했다. 그러나 그의 활동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교수직 외에도 미국성경학회가 펴내는 전문 학술잡지인 「the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미국가톨릭성경학회 전문 학술잡지인 「the Catholic Biblical Quarterly」 그리고 「New Testament Studies」와 같은 주요 성경 잡지의 편집자로도 활동했다.

뿐만 아니라 피츠마이어 신부는 1984년부터 1995년까지 교황청 성경위원회의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피츠마이어 신부가 성경위원으로 활동하던 때인 1993년 교황청 성경위원회는 성경 연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헌인 「교회 안의 성경해석」을 발표했다. 그는 이 문헌에 대한 주석서를 집필, 이 문헌이 널리 전파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피츠마이어 신부의 학문적 연구 활동 범위는 매우 방대하다. 그는 학문 활동의 초기부터 왕성한 연구 활동을 펼치며 구약성경, 신약성경, 사해 문서, 아람어 문서들에 관한 연구 결과를 꾸준히 책으로 발표했다. 그리고 다른 학자 작품에 대한 학문적인 대화와 비평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유명한 성서 주석서인 앵커 바이블 시리즈의 「루카 복음 주석서」를 집필했다. 앵커 바이블 주석서 시리즈는 그의 지도 교수였던 올브라이트 박사와 그의 또 다른 제자인 데이비드 노엘 프리드먼 박사가 1956년 함께 기획한 것이다. 그들은 이 주석서의 주된 독자층을 학자들과 상당한 교육을 받은 비전문가들로 정했고, 주석서 필진은 가톨릭 학자들과 개신교 학자들, 그리고 유다인 학자들을 두루 포함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현재 이 주석서 시리즈는 본문 이해에 필요한 자세한 입문 자료와 정확한 본문 번역, 그리고 역사 비평적 방법론에 따른 본문 주석을 제공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앵커 바이블 주석서 시리즈 가운데 신약 성경 주석서로는 「요한 복음 주석서」가 가장 먼저 출판됐는데, 이 주석서를 집필한 이는 피츠마이어 신부와 평생에 걸쳐 우정을 나눈 동료, 레이먼드 브라운 신부다. 두 신부는 학문에 있어서도 선의의 경쟁자였지만, 세계적 수준의 우편 수집가로서도 경쟁했다고 한다. 그러나 브라운 신부는 1998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

* 김영선 수녀(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 1999년 종신서원
- 2011년 미국 보스톤칼리지 구약학 전공(박사학위)
- 주요저서 : 「The Temple Administration and the Levites in Chronicles」 (Washington DC: Catholic Biblical Association of America, 2014)

[평화신문, 2015년 1월 11일, 김영선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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