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종교철학ㅣ사상

과학 시대의 신앙: 양자 텔레포테이션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7-29 ㅣ No.376

[과학 시대의 신앙] 양자 텔레포테이션

 

 

1960년대에 시작된 공상 과학 외화 시리즈 ‘스타 트렉’에 나오는 순간이동 장치인 ‘트랜스포터’(transporter)는 사람이나 물체를 분해하여 목적지로 쏘아 보낸 뒤 목적지에서 재조립하는 장치를 말한다. 주로 행성 근처에 도달한 우주선에서 사람을 행성으로 내려보내거나, 수백 내지 수천 킬로미터의 거리를 순간적으로 이동하는 데에 트랜스포터를 사용한다.

 

카운트다운이나 로켓 발사, 착륙 등 번거로운 이동 장면을 일일이 보여 준다면, 한 시간도 채 되지 않는 드라마의대부분을 차지하여 내용 전개에 도움이 되지 않고 촬영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고자 고안된 기법이 바로 이 ‘트랜스포터’이다.

 

 

트랜스포터의 한계

 

흔히 생각하듯이 순간 이동은 물체가 한곳에서 사라짐과 동시에 다른 곳에 나타나는 것일까? 특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어떠한 방법을 쓰더라도 빛보다 빨리 갈 수 없기 때문에 짧은 거리라도 이동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트랜스포터의 구현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아무리 과학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예컨대 몸무게가 70kg의 사람을 분해하여 빛과 같은 에너지로 만든다면, 아인슈타인의 질량 에너지 등가 공식 E=mc²에 따라 히로시마에 떨어진 핵폭탄 수백 개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된다. 물질을 빛으로 바꾸지 않고, 있는 그대로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하려고 하더라도 또한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더구나 사람이 그런 가속도를 견뎌낼 수조차 없다.

 

해당 목적지에서 재조립하려면 본디 사람이나 물체가 가지고 있던 정보가 필요하다. 10의 28제곱, 곧 1조의 1경배 만큼에 해당하는 원자 정보를 측정하여 이를 내보내 이 정보를 재조립에 적용해야 하는데, 이 정도의 정보량은 인류가 현재 지구에 저장하고 있는 총정보량의 만 배 정도에 해당한다. 이를 순식간에 전송하고 처리하는 것 또한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트랜스포터 과정을 설명하며,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물질 또는 질료’(matter)에 ‘정보’나 ‘형상’(form), ‘패턴’(pattern)이 합해져서 물체가 된다. 어원적으로 ‘matter’는 ‘mother’와, ‘pattern’은 독일어로 pater, 곧 ‘father’와 연결된다.

 

트랜스포터에 대한 아이디어는 스타트렉 말고도 수많은 공상 과학 소설과 영화에서 다루고 있다. 이들 가운데 정보 전달이 잘못되어 두 사람이 생기는 경우도 나온다. 또 트랜스포터 내에 있던 파리의 유전 정보와 뒤섞여 파리 인간이 되기도 한다. 앞서 말한 대로 트랜스포터는 불가능한 것이므로,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부닥칠 리가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텔레포테이션에 대한 이론들

 

상당히 과학적 업적을 이룩한 과학자들 가운데에도 이와 유사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이들이 있다. 예수회 신부이자 고생물학자인 테이야르 드 샤르댕의 ‘오메가 포인트 이론’에 영향을 받은 프랭크 티플러는 「불멸의 물리학」(physics of immortality)이라는 책에서 ‘인간의 정신을 정보로 추출하여 몸 없이 정보만 저장 장치에 담아 우주여행을 하고, 목적지에 도달하면 그 정보를 재생하는 방식으로 영원히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스티븐 호킹도 비슷한 방식으로 지구 멸망을 피하고자 우주를 개척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인간의 정신을 육체에서 완전히 분리할 수 있다는 생각은 철학적으로나 신학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원자들의 정보를 측정하는 것에도 양자 물리학의 ‘불확정성 원리’ 때문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트랜스포터처럼 ‘물체’나 ‘사람’을 ‘물질’과 ‘정보’로 분리하는 데에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1993년 IBM의 찰스 베넷은 완전히 새로운 공간 이동 방식을 제안했다.

 

바로 ‘양자 텔레포테이션’(quantum teleportation)이라는 것이다. 이를 같이 연구한 애셔 페레즈는 “‘텔레’(tele)는 그리스 어원이고, ‘포트’(port)는 라틴어에서 온 것이라 잘못된 조어”라고 밝혔지만, 오늘날 ‘텔레포테이션’이라는 이름으로 정착되었다. 나는 이를 ‘양자 원격전송’이라고 번역하지만, ‘양자 순간 이동’ 등 다양한 표현으로 번역되고 있다.

 

 

‘양자 얽힘’이란

 

텔레포테이션을 하려면 출발지와 목적지에 ‘양자 얽힘’(entanglement)이라는 쌍둥이 양자 상태가 필요하다. 출발지의 양자 상태 측정 결과가 목적지의 양자 상태 측정 결과와 상관관계를 가지게 되는데, 아무리 떨어져 있어도 쌍둥이처럼 운명적으로 얽혀 있어서 양자 얽힘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제 텔레포테이션하고자 하는 물체를 출발지에 있는 양자 얽힘의 한 쪽 부분과 새로이 얽히도록 하는 ‘얽힘 측정’을 하여 결과를 얻으면, 기존의 얽힘은 끊어진다. 곧 출발지와 목적지의 쌍둥이 관계는 끊어지고, 보내려는 물체와 출발지의 얽혔던 한 쪽 사이에 새로운 쌍둥이 관계가 만들어진다. 이제 얽힘 측정에서 얻어진 숫자들을 목적지로 보내어, 이 숫자에 따라 목적지에 있는 한쪽을 조작하면, 본디 물체의 상태로 변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얽힘 측정으로 본디 물체는 출발지에서 사라진다. 얽힘 측정 결과를 나타내는 숫자들은 본디 물체의 상태를 표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목적지의 한 쪽을 본디 물체의 상태로 변환하는 데에는 충분하다. 숫자들을 출발지에서 목적지로 보내야 하기 때문에 텔레포테이션은 빛보다 빠른 송신이 아니다. 목적지에서 본디 물체가 사라지므로 양자 상태가 복사되는 것도 아니다. 또한 얽힘 측정은 본디 물체의 상태를 측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물체의 상태를 전혀 모르면서도 온전히 보낼 수 있게 된다.

 

 

인간의 순간 이동은 가능할까

 

그렇다면 텔레포테이션으로는 사람을 전송할 수 있을까? 광자 또는 원자 상태를 텔레포테이션하는 실험은 여러 차례 성공했지만, 사람은 어림없는 일이다. 먼저 얽힘을 쌍둥이로 표현하긴 했지만, 두 사람을 양자 얽힘으로 만든다는 것은 사람이 지닌 그 어마어마한 정보의 규모 때문이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람을 텔레포테이션할 수 있다고 가정하면, 트랜스포터보다 다행스럽기는 하다. 사람의 마음을 포함한 상태를 ‘모르는 그대로’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를 먼 곳으로 보내고자 내 마음을 송두리째 열어 남에게 보여야 한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그런 의미에서 사람의 마음은 트랜스포터가 다루는 고전 물리학의 정보, 곧 ‘비트’(bit)보다, 텔레포테이션에 나오는 양자 물리학의 정보, 곧 ‘양자 비트’ 또는 ‘큐비트’(qubit)로 다루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다.

 

그렇다면 형상에 해당하는 것을 더 나아가 우리의 ‘마음’(mind)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사람의 마음은 육체에서 분리하여 온전히 읽어낼 수도 없고, 복사할 수도 없는 ‘양자’ 상태와 같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은 프랭크 티플러가 상상했던 것처럼 몸에서 떼어 내어 컴퓨터 칩에 온전히 담을 수 있는 고전적인 디지털 정보도 아니라고 믿는다.

 

* 김재완 요한 세례자 - 고등과학원(KIAS)계산과학부 교수로 양자 컴퓨터, 양자 암호, 양자 텔레포테이션 등을 연구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9년 7월호, 김재완 요한 세례자]



1,742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