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강론자료

2018-11-25.....그리스도왕 대축일 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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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8-11-23 ㅣ No.2277

그리스도 왕 대축일 (=연중 제34주일 )

 

다니엘 7,13-14          묵시록 1,5ㄱㄹ-8              요한 18.33-37

 

2018. 11. 25. 이태원

주제 :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에!

교회공동체에서 사용하는 달력인, 전례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주간에 도착했습니다. 세상의 달력은 아직 11월을 마치지 않았고, 연말의 계획을 세우거나 송년을 말하는 때가 되었는데, 세상보다는 한 달쯤 빨리 교회에서는 한 해의 끝을 말합니다. 교회공동체의 한 해의 시작은, 성탄을 준비하는 대림절부터 시작하기에 그 시간이 조금은 빠릅니다. 오늘부터 시작하는 연중시기의 마지막주간과 그 주일을 교회공동체에서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는 대축일로 지냅니다. 이 표현의 의미는, 세상에 구원을 이루신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자는 뜻이고, 그 뜻을 기억하는 사람으로서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가르침에 따라 살자는 권고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번 주간은 성서주간으로 말하고, 성경에 대한 올바른 자세를 갖출 것도 권고합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만나는 일들의 끝과 시작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일은 시작하기만 하면, 동시에 끝을 향해서 간다고 말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끝을 말할 때는 서글픈 느낌을 갖고, 시작을 말할 때 희망을 갖는 것이 세상의 모습이고, 세상의 논리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하느님나라의 완성을 기대하고 그 모습에 함께 하는 사람으로서 같은 일에도 세상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는 다른 태도를 가져야 할 이유는 있을 것입니다.

 

교회전례에서 말하는 연중시기의 마지막주일에 갖기를 권고하는 삶의 뜻은 <하느님의 다스림과 그리스도왕의 심판>으로 영원한 구원을 향하는 길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고,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영광에 즐거움으로 참여하자는 의도를 담은 때입니다.

 

오늘 들은 복음말씀은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십자가죽음형의 심판을 받기 직전상황을 배경>으로 합니다. 예수님에게 준비된 십자가형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왕으로 고백하거나 그리스도-왕을 기억하는 우리의 삶에는 안타까운 일입니다. 로마제국황제의 신하로써, 제국의 동쪽변방, 현실의 이스라엘-땅을 총독으로서 다스렸던 빌라도의 처지에서는 황제에게 명령을 받은 위임통치의 편리성을 위하여, 예수님을 죽여야 할 이유를 찾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찾아낸 죄목이 유대인의 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세상의 심판을 받아야 할 만큼 잘못한 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우리에게는 빌라도가 내린 심판의 결과가 참혹한 것이고 잘못된 것이었다고 말할 것이고, 그 과정이 순리에 어긋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그것은 우리의 생각일 뿐이고, 로마제국의 유대인총독의 생각은 달랐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그 당시의 상황을 안다고 해도 우리가 무엇을 다르게 행동할 것인지 결정해야합니다.

 

당신은 유대인들의 임금이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어떤 대답을 듣기를 바라면서 질문한 것이었겠습니까? 심문자와 피-심문자의 싸움이니, 어느 한쪽이 자기의 생각대로 이겨야 하는 일이었기에, 무력을 동반하지 않은 예수님이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기도 했습니다. 현실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을 신앙의 핵심은 어떤 응답을 준비해야 하겠습니까? 사실 신앙으로 잘 무장했다고 해도, 신앙의 논리로서 세상의 싸움을 이길 방법은 많지 않습니다.

 

복음보다 먼저 들은 다니엘예언서의 말씀은 세상의 심판이 이루어지는 상황을 다니엘예언자가 보는 이야기입니다. 세상만민이 하느님의 앞에 서고 그 하느님의 앞에서 권능을 입은 예수님이 참된 심판자이시라는 소리를 듣게 될 사람으로서, 현실에서부터 우리가 행동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세상 끝-날이 어떠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그 끝의 모양을 말하지 않습니다. 신앙에서는 세상-끝의 내용을 말합니다만, 세상의 사람들은 내게 도달하지 않은 미래에 대하여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두 번째 독서인 요한묵시록의 말씀은 로마의 시스티나경당에 미켈란젤로가 그린 '최후의 심판'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내용입니다. 신앙인으로서는 여러 가지를 상상을 할 수 있지만, 심판이 어떻게 진행될지 예상할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심판과 그 결과가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말씀을 듣는 은총의 순간이 되게 해주시라고, 우리가 오늘 그리스도-왕 대축일에 청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삶에 심판자로 다가오실 예수, 그리스도님이여, 저희가 당신의 심판을 만나는 그 순간이 구원의 때와 영광이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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