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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심리학이 만난 영화: 확신 편향, 더 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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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11-18 ㅣ No.880

[심리학이 만난 영화] 확신 편향, 더 헌트

 

 

“선생님이 싫어요. 선생님 고추를 보았어요.”

 

순진무구하게 생긴 다섯 살짜리 여자아이가 유치원 원장에게 말한다. 다른 아이들도 이 유치원 남교사의 집 지하실에 갔었다고 이야기한다. 아이들은 지하실의 벽지와 소파 색깔까지 기억하고 있다. 모든 원생을 조사해 보니 최근 들어서 악몽을 꾸거나 오줌을 가리지 못하는 아이들도 여럿 나왔다. 성추행을 당한 아이들한테서 관찰되는 전형적인 증상이다.

 

피해를 당했다는 아이가 구체적인 증언을 했다. 다른 원생들의 입에서도 성추행 가능성을 뒷받침할만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당신이 보기에 이 남교사가 실제로 성추행했을 확률은 과연 얼마나 될 것 같은가?

 

 

전형적인 성추행 이야기

 

이 남교사가 성추행범일 가능성은 거의 100%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은 결백하다고 주장한다, 아이들이 거짓말하고 있다며. 과연 누가 거짓말하는 것일까? 다섯 살짜리 꼬마들일까? 아니면 중년의 남자일까? 이 남교사에 대한 정보를 조금 더 주면 답이 명확해질지도 모른다.

 

먼저 이 남교사는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교사였다. 아이들의 장난을 다 받아 주었다. 여교사들과는 달리 그는 아이들과 몸으로 친밀감을 주고받았다. 끌어안고, 뒹굴며, 레슬링도 함께했다. 심지어 대변을 본 뒤 그에게 밑을 닦아 달라는 아이도 있었다. 물론 이런 요구도 눈살하나 찌푸리지 않고 흔쾌히 들어주곤 했다.

 

고추를 보았다고 말한 그 아이는 남교사 친구의 딸이다. 형제보다도 더 가깝게 끈끈한 우정을 나누던 사이다. 친구가 바쁘거나 아이를 직접 유치원까지 데려다주기 귀찮아하면 남교사가 아이와 함께 유치원까지 걸어갔다. 그뿐만 아니라 유치원이 끝난 뒤 집까지 바래다주기도 했다. 아이는 자신에게 친절하고 다정다감한 이 남교사를 무척 따랐다. 함께 걷는 동안 남교사의 손을 꼭 잡았다. 자신에게 무관심한 가족들보다 이 남교사가 더 좋았다.

 

이 남교사는 얼마 전에 이혼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과 함께 살고 싶었지만, 양육권을 가진 전처가 아이를 만나는 것조차 방해했다. 사랑하는 아들을 보려고 전처를 설득했지만, 온갖 노력에도 대화를 거부하며 아이를 보내 주지 않는 아내 때문에 좌절한 상태였다.

 

모든 정황은 이 남자가 성추행을 저질렀을 것이라는 확신을 강화시켜 준다. 아이들이 거짓말하고 있다는 이 남자의 주장은 성추행범들의 전형적인 거짓말처럼 들린다. 아이들과 몸으로 친밀감을 나눴던 행동은 이 남자가 매우 교묘한 방식으로 아이들을 성추행했다는 증거로 보인다. 그가 다정다감하게 행동했던 것은 아이들을 성추행하려는 구역질나는 위선으로 보이기에 충분하다.

 

겉으로는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는 유치원 교사였지만, 아이들과 나눴던 신체 접촉은 그의 변태적인 성욕을 충족시키려는 수단으로 보인다. 더구나 그는 이혼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성적 욕구를 제대로 해소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거기에 더해 자식을 보고 싶은 욕구가 결합해서 아동에 대한 성욕을 유발시켰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대표성 휴리스틱

 

덴마크의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의 2012년 작 ‘더 헌트’(The Hunt)의 루카스(매즈 미켈슨)가 바로 그 남교사다.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전형적인 아동 성추행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버렸다. 마을 사람들이 이 남자가 아이들을 성추행했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전형성에 근거한 판단이 얼마나 틀리기 쉬운 것인지를 보여준다.

 

2002년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심리학과의 다니엘 카네만 교수는 전형성에 근거한 판단을 ‘대표성 휴리스틱’(간편하게 사용하는 추론 전략)이라고 했다. 어떤 개인이 집단의 대표적인 또는 전형적인 모습과 얼마나 유사한가에 따라서 그 사람이 그 집단의 성원일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모든 정황이 성추행범의 전형적인 모습과 닮았다면 루카스가 성추행범일 확률이 높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추론 전략의 문제는 전형적인 정보 이외의 다른 중요한 정보를 무시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확신 편향

 

사람들은 자신의 가설을 지지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자신의 가설을 반박하는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자신이 맨 처음 세운 가설에 대한 확신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게 된다. 이를 ‘확신 편향’이라고 한다.

 

루카스의 집에는 지하실이 없다. 성추행을 확신하고 물어 보는 어른들의 질문(이를테면 “혹시 선생님이 너를 지하실 같은 데로 데려가지 않았니?”)이 존재하지 않았던 기억(이를테면 지하실)을 아이들의 마음 속에 심었던 것이다.

 

실제로 이런 일은 성인들에게서도 쉽게 일어난다. 일단 지하실이 머릿속에 만들어지면, 아이들은 지하실을 자신만의 모습으로 꾸미게 된다. 그러고는 자신의 상상이 만들어 낸 지하실을 다른 아이들에게 진실처럼 이야기하게 된다. 모든 유치원생의 머릿속에 실재하지도 않는 지하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문제는 어른들은 루카스의 지하실에 갔다는 아이들의 이야기에만 주목하고, 실제로 그의 집에 지하실이 있는지는 무관심했던 것이다. 원장을 포함한 마을 어른들이 루카스가 성추행범일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루카스가 아이들을 자기 집 지하실에 데려갔다는 이야기는 루카스가 성추행범이라는 가설을 지지하는 정보라서 곧바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루카스의 집에 지하실이 없다는 정보는 가설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주목받지 못한 것이다.

 

루카스 선생님의 고추를 봤다던 클라라(아니카 베데르코프)의 이야기도 거짓말이었다. 클라라가 루카스 선생님을 이성으로 좋아했던 것이다. 하지만 루카스는 그런 클라라의 마음을 알아채고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루카스 선생님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던 클라라가 충동적으로 원장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다.

 

클라라도 자신의 거짓말이 불러온 결과를 직감하고 어른들에게 고백한다, 루카스 선생님은 잘못이 없다고. 자신이 바보 같은 말을 했는데, 이제는 다른 애들까지 이상한 말을 하고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클라라의 진실된 고백을 어른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른들은 성추행의 끔찍한 기억을 클라라의 무의식이 차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루카스가 성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가 나왔는데도, 자신들의 확신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를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

 

또한 성추행을 당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갑자기 악몽을 꾸거나 오줌을 싸기도 한다. 하지만 어른들은 이러한 아이들의 모습을 루카스가 성추행범이라는 자신들의 판단을 뒷받침하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잘못된 판단에 대한 확신은 강화된다.

 

 

순수한 확신의 비극

 

루카스는 경찰 조사에서 무혐의로 풀려난다. 하지만 루카스를 아동 성범죄자라고 확신하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들의 확신은 루카스라는 한 선량한 시민의 삶을 사냥감으로 삼는다. 가족보다 더 끈끈한 우정을 나누던 친구들은 루카스에게 총구를 겨누는 사냥꾼으로 돌변한다.

 

성추행범이 분명하다는 확신이 루카스에 대한 그들의 무지막지한 폭력을 정당화한다. 착하디착한 그를 사냥하는 것은 악마의 사악함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순박하기 짝이 없는 마을 사람들의 잘못된 확신으로, 결코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다. 순수한 사람들의 확신이 비극을 만들어낸 것이다.

 

복잡하고 불확실한 인생에서 단순하고 확고한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만큼 매력적인 것도 없다. 확신이 들었을 때 우리의 마음은 평온을 찾는다. 문제는 확신이 늘 정확한 판단에 근거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확신은 우리의 믿음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한 덕에 얻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한 사회가 공유하는 잘못된 확신이 누군가를 사냥감으로 지목했을 때, 사냥감은 매우 쉽게 죽음의 언저리까지 내몰리기도 한다. 우리가 의심의 여지없는 확신에 찼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어쩌면 우리의 확신을 의심해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 전우영 - 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무료 온라인 공개강좌 서비스인 케이무크(K-MOOC)에서 일반인들을 위해 쉽게 디자인한 ‘심리학 START’를 강의하고 있다. 「나를 움직이는 무의식 프라이밍」, 「내 마음도 몰라주는 당신, 이유는 내 행동에 있다」 등을 펴냈다.

 

[경향잡지, 2018년 11월호, 전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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