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강론자료

2019-09-09.....연중 제23주일 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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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8-09-15 ㅣ No.2266

연중 제23주일 (나해)

이사야 35,4-7ㄱ       야고보 2,1-5       마르코 7,31-37

2018. 9. 9. 이태원.

주제 : 듣고 행동하는 것

사람의 삶에 듣는 일과 행동하는 일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학생이던 때 배운 것입니다만, 로마제국이 다스리던 영토가 한참 커졌을 때도, 문화와 문명은 정치체제와는 다르게 그리스문화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문명에 안다는 뜻을 표현하는 낱말은 있었지만 행동을 설명하는 표현은 없었고, 두 가지는 같은 말을 사용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생긴 일이 지금까지도 영향을 주고, 우리는 그 사실을 은연중에 깨닫습니다. 사람이 말을 정확하게 알아듣지 못하면 올바른 행동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듣는다는 것과 행동을 연결하는 이야기의 결론은 사람이 듣는다는 것은 귀에 닿는 소리가 어떤 내용인지 구별하는 의미를 뛰어넘는 그 이상의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안다는 것은 지식의 근원이 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지식은 다음 순간에 올바로 행동하는 일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귀로 들려오는 소리를 어떻게 대해야 올바른 행동의 바탕이 되겠습니까? 누가 알려주면 그 방법을 올바로 실천하겠습니까?

 

오늘 들은, 복음말씀은 현실의 이스라엘-국가의 북부에서 시작하여 요르단의 서부를 도는 예수님의 여행기록입니다. 복음말씀을 읽고 들으면서 지도를 상상한다면, 짧은 기간에 예수님은 먼 거리를 움직이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섰던 복음선포와 관련된 놀라운 기적은 갈릴래아호수주변에서 일어납니다. 그 기적은 듣는 일과 행동하는 일의 일치, 들을 수 없던 사람이었기에 행동하지 못했던 삶의 오류를 바로 잡은 일이었습니다.

 

기적을 행하시기 전, 예수님은 말 더듬고 귀를 먹은 사람을 군중에서 데리고 나가시어, 손가락을 귀에 넣었다가 침을 발라서 혀에 대셨다고 마르코복음사가는 기록합니다. 말로 하셔도 놀라운 일은 일어났겠지만, 예수님은 눈에 보이는 행동을 통하여, 당신의 행동은 하느님의 일을 하신다는 것을 보이셨습니다. 눈으로 보고 확인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의 처지를 생각한다면, 꼭 필요한 일이었기에, 예수님은 그렇게 하셨을 것입니다.

 

사람이 움직이는 행동의 의도를 물을 때, 대답하는 모양도 비슷합니다. 내가 행동한 모든 것은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도 같을 것입니다. 내가 움직인 행동은 미래를 위해서 아무런 결과도 없고 의미도 없는 것이라고 한다면, 처음부터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은 것이 가장 옳다고 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다음순간에 취소한다고 하더라도, 사람은 매 순간 자신이 하는 일은 의미와 목적이 있는 행동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무리에서 한 사람을 불러내어 놀라운 일을 하신 예수님이시지만, 예수님은 그 사람이 지키기 어려운 명령을 내립니다. 그에게 놀라운 일을 하셨는데,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명령하셨지만,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관해 가만히 있었을까요? 더더구나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좋은 것이라서 다른 사람도 알아듣도록 알렸다고 했겠지만, 그 사람이 한 일의 영향으로 예수님께서 하시던 복음선포의 외연(外延)은 줄어듭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일어난 놀라운 일을 말하지 말라고 하면, 우리는 그 말을 충실하게 지킬까요? 일반적으로는 따르지는 않을 일입니다. 다른 사람이 내 자유를 제한한 권리가 없다는 것이 첫 번째 모습일 것이고, 내가 말을 통해서 자랑하는 일은 상대방을 높이는 결과라서 괜찮다고 하겠지만, 그것은 말하는 사람의 생각이고, 내게 말하는 일을 금지한 대상의 의도는 달랐다는 것을 생각해야합니다.

 

세상에 사는 그 누구에게나 삶은 어렵고도 힘든 법입니다. 세상의 일은 내가 세운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서로 돕기도 하고 도움을 기대하며 삽니다. 그런데 내가 도움을 기대할 대상이 나와 마찬가지로 소멸(消滅)할 존재인 또 다른 사람이라면, 사람이 기대하는 효과는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하느님만이 올바른 길을 알려주시는 존재라고, 그리스말로 신약성경을 썼던 사람들은 하느님에 관한 기록을 남겼지만, 우리가 같은 하느님을 대하면서 어떤 마음자세를 갖는지는 구별해야 할 일입니다.

 

사람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멋있게 차려입고 힘이 있는 사람이 내 삶에 주는 영향이 크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우리나라의 요즘 현실을 보면, 권불십년(權不十年)이고, 부자의 재산도 3대를 유지하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 세상에서 우리가 삶의 기준으로 대하면서 살아야 할 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면 무엇인지, 묵상할 시간입니다.

 

우리는 듣는 일과 몸으로 움직이는 일에 얼마나 조화를 이루며 사는지, 내가 하는 일이 누구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지 잠시 생각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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