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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Redemptoris M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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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0-06 ㅣ No.470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Redemptoris Mater)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소명은 세례받은 모든 사람과 친교를 이루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교회에서 하느님 말씀과 신앙의 나그넷길을 지탱해주는 성사의 은총을 받는다. 나아가 성덕의 모범을 배우며,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 마리아 안에서 성덕의 본보기와 근원을 알아보고, 성덕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참된 증거에서 성덕을 감지한다. 그리고 세상을 앞서 살다간 성인들과 교회가 전례력(典禮曆)에 맞추어 기념하는 성인들의 영성전통과 오랜 역사에서 성덕을 확인한다.

 

가톨릭 교회는 전통적으로 성인(聖人) 중의 성인이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 마리아를 각별히 공경해 왔다. 신학적으로는 교회의 역사 과정에서 4가지 마리아 교의(하느님의 어머니, 평생 동정 혹은 평생 동정성, 원죄 없으신 잉태, 성모 승천)가 형성되었다. 신심 측면에서 성모 마리아는 모든 성인의 으뜸으로서 특별한 공경의 대상이다.

 

삼위일체 하느님께 바치는 ‘흠숭지례’(欽崇之禮)보다는 낮지만, 성인들에게 드리는 ‘공경지례’(恭敬之禮)보다 한층 높은 ‘상경지례’(上敬之禮)로써 마리아를 공경하는 것이다. 이러한 마리아를 공경한 성인들은 교회 역사상 방대한 비중을 차지하며, 마리아의 덕행을 기초 삼아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완덕의 삶을 보여주었다.

 

생전에 마리아에 대한 특별한 신심과 공경으로 ‘마리아의 교황’이라 불리던 요한 바오로 2세 역시 요한 23세와 함께 성인으로 추대되어 2014년 4월 27일 현 교황 프란치스코에 의해 시성 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최를 통해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Lumen Gentium Ⅷ)에서 바람직한 마리아론 전개를 시작할 수 있게 한 요한 23세와 교황 문장과 표어를 통해 마리아 신심을 드러내며 마리아론을 진일보하게 한 요한 바오로 2세의 시성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의도는 교회의 신비 안에서 마리아의 역할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구원 계획안에서 인간이자 주님의 어머니로서의 성모 마리아가 중재자이며, 협력자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특히 요한 바오로 2세는 카롤 유제프 보이티와(Karol Jozef Wojtyła) 주교 시절, 공의회의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에 마리아 교의가 포함되는 것을 찬성하였다. 이후 그는 교황으로서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서 마리아의 존재는 “공의회로부터 새로 생겨난 근본적인 차원이다”라고 선포하며 그 의미를 명확하게 밝힌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러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새로운 차원의 조명을 받아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라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 안에 현존하는 마리아에 관하여 논한다. 회칙은 주님의 어머니에 대한 현대의 질문들을 다루고 있다.

 

당시 신앙 교리성 장관 라칭거 추기경이었던 베네딕토 16세는 요한 바오로 2세의 올바른 마리아론이 마리아의 활동과 임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에서 특별히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마리아는 구원의 역사 안에서 구체적인 중재를 통해 명확히 드러나게 되었다. 여기서 다룬 것은 단지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서 이론적 현존이 아닌 구원의 역사 안에서의 역동적 활동을 말한다.

 

제삼천년기라 불리는 새 천년기(千年期)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인이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를 통해 하느님의 구원 경륜 안에서 구세주의 어머니 마리아를 올바로 이해하고 공경하며, 그 신앙의 모범을 본받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것은 요한 바오로 2세의 성숙한 교회를 위한 사목적 지향 즉, 마리아의 복음적 일생을 조명함으로써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이해를 가능케 하기 때문인 동시에 그리스도 신앙인으로서 나아가야 할 영적 좌표를 마리아가 미리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회칙은 마리아를 통하여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안에서 동방교회를 비롯한 서방교회의 갈라진 형제들과 함께 같은 믿음으로 재일치를 모색할 수 있음을 언급한다.

 

회칙은 요한 바오로 2세의 깊은 숙고와 묵상의 형태를 띤 영성적이고 사목적인 마리아의 교리를 피력한 신학적인 특성을 보존하고 있다. 하지만 회칙을 표면적으로 이해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일 경우 요한 바오로 2세 개인의 단순한 묵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할 위험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회칙은 신학 연구 방법론상 엄격하게 교리를 표현하고 있으므로 그 내용이 분명하다. 회칙이 지닌 어조는 쉽게 표현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깊이와 내용 면에서 엄격성을 지니고 있기에 쉽게 이해되지 않는 한계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성인이 된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의 고찰을 통하여 회칙에 내재된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 안에서 특별하게 현존한 구세주의 어머니 마리아를 이해하고자 한다.

 

또한 회칙을 통하여 새 천년기 교회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인이 구세주의 어머니 마리아가 앞서 걸었던 그리스도께로 향한 신앙의 나그네 길에 동참하여 완덕의 모범을 따르는 일에 협력하고자 한다. 더불어 구세주의 어머니를 통하여 삼위일체 하느님 안에서 동방교회를 비롯한 서방교회의 갈라진 형제들과 재일치를 이루는 그리스도교 일치를 도모하고자 한다.

 

* 권정대 베드로 -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부제. 로마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영성신학을 공부하고 있다. [성모기사, 2017년 2월호, 권정대 베드로]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Redemptoris Mater)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의 역사적 고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이며 세계 평화의 날인 1987년 1월 1일 미사 강론을 통해 교회의 역사상 두 번째 “마리아의 해(Annus Marian Year)”*를 선포하였다. 이 마리아의 해 기간은 1987년 6월 7일 성령강림 대축일부터 1988년 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까지 14개월이었다.

뒤이어 제2차 마리아의 해 선포의 의미와 그리스도인 생활의 촉진에 대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뜻이 담긴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Redemptoris Mater, 1987.3.25.)를 반포한다. 우선 회칙에 대하여 자세하게 맥(脈)을 밝혀 놓은 역사적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겠다.


회칙 성립의 배경

당시 신앙 교리성 장관 요셉 라칭거 추기경이었던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를 발표하는 기자 회견에서 이 회칙의 저류에 깔린 역사의식을 가장 큰 특징으로 꼽았다. 훗날 그는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살(H.U.von Balthasar)과 함께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를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응답’이란 주제 아래 해석하였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회칙이 성경에 의지하여 역사적인 역동성의 관점에서 마리아를 조명했다고 평가하였다. 그는 자신의 주체적인 결단을 통해서 신앙의 모델이 되는 마리아가 전례 안에서 기쁨으로 반복되며 기억되고, 이러한 순환 안에서 그리스도의 신비는 시간 안에서 기억되는 동시에, 시간을 넘어서 순간에서 영원을 실현할 가능성으로 열려있다고 보았다.

아름다움을 통해서 하느님의 구원경륜을 조명했던 발타살은 교회의 원형을 마리아에게서 재확인하였다. 그에게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신비와 연관하여 순례하는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구원이 교회뿐 아니라, 인류 전체에게 이르도록 모성으로 중재하는 분이시다. 이는 마리아가 아브라함의 신앙 전통 안에서 그리스도의 육화를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자신의 신앙 안에서 인류 전체의 구원을 감싸 안으며 기쁨으로 찬미의 노래를 부르는 것에서 드러난다고 보았다.

마리아는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경험한 모든 어려움과 수난의 기억을 교회에 고스란히 전하였으며, 교회의 영원한 모델이다. 곧, 마리아의 신앙과 전승을 통하여 교회는 비로소 그리스도 예수의 역사적 삶을 통하여 교회의 삶을 재구성할 수 있었다. 또한 여성들은 마리아를 통하여 자신의 존엄성을 확인하고, 그분의 여성성 안에서 희망의 징표를 재확인할 수 있다고 전망하였다.

회칙이 반포될 당시는 10여 년 후 맞이하게 될 서기 2천 년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이후 인류가 두 번째의 천년기(千年期)를 종결하는 순간인 동시에 세 번째 천년기가 도래하는 시점이었다. 사람들은 남다른 민감성으로 인류의 장구한 역사 속에서 우리가 사는 이 시대와 역사의 미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현시대의 여러 분야의 발전과 복잡한 문제들을 거론하면서 역사의 현시점이 내포하고 있는 양면성을 지적하였다. 그는 이미 회칙 「자비로우신 하느님」 2항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 헌장」 9항을 인용하여 언급하고 있었다.

“현대세계는 동시에 강하면서도 약하고, 최선을 이루거나, 최악을 저지를 수 있으며, 자유와 예속, 진보와 퇴보, 형제애와 증오의 길이 열려있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은 스스로 불러일으킨 힘들이 인간을 억압할 수도 있고 인간에게 봉사할 수도 있으므로 그 힘들을 바르게 다스리는 것이 인간 자신의 책임임을 깨닫게 된다. 여기에서 인간은 스스로 묻는다.”

천년기가 전환되는 서기 2천 년이라고 하는 시점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충분하기에, 교황은 신앙의 여정에서 바른 길을 제시하면서 새로운 천년기가 희망의 약속으로 가득 차 있음을 상기시킨다.

“우리는 어느 면에서 새로운 대림(待臨)의 계절, 기다림의 계절을 맞고 있다.”(인간의 구원자 1항)

교회의 전례력에서 대림 시기는 마리아의 시기이다. 이 시기는 마리아가 구세주를 자신의 태에 받아들인 시기이며, 마리아가 모든 인류의 기대와 희망을 자신 안에 간직했던 시기이다. 이에 교황은 긴 여행을 하고 있는 교회가 그 방향을 잘 잡을 수 있도록 비춰주는 ‘바다의 별’로서의 성모 마리아를 제시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여섯 번째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는 교황의 첫 번째 회칙 「인간의 구원자」(Redemptor Hominis, 1979.3.4)**와 신학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교황은 회칙 「인간의 구원자」에서 ‘인간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사업 그리고 보편적 사명을 논했다.

그는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의 반포와 함께 제2차 마리아의 해를 선포한다. 회칙은 그리스도의 유일하고 단일한 중개성에 예속된 성모의 중재성과 교황 바오로 6세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제3회기 폐막 연설에서 예수의 어머니를 ‘교회의 어머니(Mater Ecclesiae)’로 선포(1964. 11. 21, 성모자헌 축일)한 것의 구심점을 이루게 된다.

나자렛 동정녀에 관한 이 회칙은 회칙 「인간의 구원자」에 자연적으로 따라온 결과이다.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는 우리 신앙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신앙을 바라보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또한 회칙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안에서 마리아의 사상을 표현한 공의회 교부들의 풍요로운 사상에 감사하고 있다.

이후 교황은 교서 「제삼천년기」에서 예수 그리스도 탄생 2천 년을 기념하며, 신자들뿐만 아니라 온 인류가 구원의 기쁨에 참여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교회의 준비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그의 사목 활동 전체가 새로운 천년기, 곧 2000년 대희년(大喜年)을 지향하고 있다. 제3천년기를 사는 오늘날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따라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서의 마리아의 신앙 여정을 자기화(自己化)하여, 그리스도와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 마리아와 함께 순례의 여정을 가야 할 것이다.

“그때 발표한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 안에 계시는 하느님의 어머니의 현존에 대한 공의회의 가르침에 관심을 집중시켰습니다. 2000년 전에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성령의 힘으로 인간이 되시어 원죄 없으신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마리아의 해는 말하자면 미리 앞당겨 지내는 희년의 전취였으며, 2000년에 더욱 충만하게 표현될 많은 것을 내포하였습니다.”(제삼천년기, 26항)

*첫 번째 마리아의 해는 1954년이었다. 교황 비오 12세는 성모의 원죄 없이 잉태되신 무염시태(無染始胎) 신앙교의를 선포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여 마리아의 해, 임시 희년을 선포했다.

**「인간의 구원자」의 주제의 일관된 흐름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은 자신의 존엄성을 온전히 깨닫게 되었다’와 ‘교회가 걸어갈 모든 길은 인간에게로 통한다’이다. [성모기사, 2017년 3월호, 권정대 베드로]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Redemptoris Mater)

 

 

교회 일치 관점에서의 회칙

교황은 새로운 천년기가 다가오는 이 중요한 시기에 교회가 주님께 바치는 가장 열렬한 청원 기도의 하나가 여러 교파의 모든 그리스도인의 일치가 증진되어 완전한 친교에 이르게 해 주시기를 청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앞서 그는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 제2부 “순례하는 교회의 한가운데 계시는 하느님의 어머니”의 장에서 ‘교회의 여정과 모든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주제로 삼고 있다.

회칙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따라 새로운 관점에서 교회의 일치에 대한 새로운 자각과 더불어 우리 신앙에 대한 모든 관점의 보다 완전한 가르침을 위해 본질적인 역할을 한다.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가 반포된 1987년은 제2차 니체아 공의회가 개최된 지 1,2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했다. 회칙은 가톨릭교회가 그리스도인들의 불일치라는 부끄러운 유산을 간직한 채 2천년대를 맞을지도 모르는 불안한 시점을 역설(力說)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그 어느 공의회보다 일치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했기 때문에, 교황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요구를 수용하고 이 요구를 실천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인 형제들 간의 일치를 위한 노력의 한 방편으로 이들 사이의 공통 기준과 유산에 대해 성찰한다.

가톨릭교회와 정교회, 동방교회 모두가 실천하는 것이 성모신심이기 때문에, 교황은 이것이 일치의 가장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는 점에 착안하게 된다. 그는 성화상 논쟁을 끝내고 공통 유산을 간직하게 만든 계기인 제2차 니체아 공의회의 개최 1,200주년이 되는 시점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러한 교황의 의도는 “교회의 다양한 전통들에 의해 이루어진 이러한 찬미의 보화는 교회가 다시 자신의 두 허파, 곧 동방과 서방이 같이 완전히 숨 쉴 수 있도록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구세주의 어머니, 34항)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을 통해 드러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비롯된 「구세주의 어머니」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변호하고 옹호하는 ‘마리아 신앙의 여정’ 안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에서 ‘그리스도의 어머니(Mater Christi)’에 대한 교리와 ‘교회의 어머니(Mater Ecclesiae)’에 대한 교리를 분명하게 종합하고 있다. 따라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마리아 교의에서 진전된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의 근거에 관하여 논하고자 한다.


「교회 헌장」 8장의 마리아 교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1964년 11월 24일 선포된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Lumen Gentium) 8장에서 마리아에 관해 구분하여 집중적으로 다룬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 안에 계시는 천주의 성모 복되신 동정 마리아”라는 제목의 이 장은 하느님의 어머니 동정 마리아를 어떻게 이해하고 표현할 것인가에 대해 연구한 문헌이다.

“그 동정녀께서는 당신의 생애에서 저 모성애의 모범이 되셨으며, 그 모성애로 교회의 사도직 사명 안에서 사람들이 새로 드러나도록 협력하는 모든 이가 활력을 찾아야 한다.”(교회 헌장 65항)

공의회의 목적은 교회의 신비 안에서 마리아의 역할을 강조하고, 하느님의 구원 계획안에서 주님의 어머니로서 또한 인간으로서 도구가 되시고 협력하심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거룩한 공의회는 하느님이신 구세주께서 구원을 이룩하시는 교회에 관한 교리를 설명하면서, 한편으로는 육화하신 말씀과 그 신비체의 신비 안에서 복되신 동정녀의 임무를, 또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시고 인류의 어머니이시며 특히 신자들의 어머니이신 천주의 성모님께 대한 구원받은 사람들의 의무를 성실하게 밝히고자 한다. 그러나 마리아에 관한 완벽한 교리를 제시하거나 신학자들의 노력으로도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는 문제들을 종결시킬 마음은 없다. 그러므로 거룩한 교회 안에서 가장 높으신 그리스도 다음으로 높고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자리를 차지하고 계시는 그분에 대하여 가톨릭 학파들에서 자유로이 제시되는 견해들은 당연히 유지된다.”(교회 헌장 54항)

마리아에 대한 공의회의 기본적인 관점은 하느님의 가장 고귀한 축복을 받는 특전을 누린 바로 이 여인이 성부께서 당신의 성자를 통해 완수하신 구속의 최고사업이라는 점이었다. 공의회는 마리아에 대한 교리 발전을 추진하거나 새로운 교의를 제시할 의도가 없었다.

그보다는 전통으로 존립하는 교리를 새로이 표현하고, 마리아 교리와 마리아 공경을 위한 나침반으로 제시하고자 하였다. 곧, 보다 성경적이고 교부학적인 주제를 방향으로 하여 신앙의 원천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공의회가 목표로 한 것은 마리아의 찬미 자체가 아니라 마리아의 구세사적 기능을 밝히는 것이었다.

「교회 헌장」 8장은 이제까지 공의회가 편찬한 성모에 관한 가장 완벽하고 권위 있는 가톨릭 교리의 종합이다. 이로써 마리아 영성과 마리아 교리가 공의회로 통합되게 되었다. 마리아를 향한 올바른 공경은 참된 교리에 근거를 두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자신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마리아 교리와 마리아 공경에 대해 큰 발전을 하게 하였다고 증언한다.

「교회 헌장」 8장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 안에서 마리아의 역할을 고찰하려는 교도권의 처음이자 특별하고 장엄한 신앙고백을 담고 있다. 이것은 언어의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교리의 질적 진전을 의미한다. 우리 신앙의 중심이 되는 교의에 마리아를 더욱 밀접하게 함으로써, 또한 성경과 교부들 그리고 전례의 언어로써 마리아에 대한 진리를 표시함으로써 신학과 교회생활 안에서 마리아의 위치를 깊게 하였다.

신앙의 가장 순수한 원천에 대한 연관성은 그리스도인 생활에 있어서 마리아의 위치를 감소시키거나 마리아에 관한 가르침의 전통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삼위일체 신비에 대한 보다 밀접한 관계로써 공의회는 우리 시대에까지 지속되고 있는 구원 계획 안에서 마리아의 위치가 그리스도인 신앙에 중요하고 본질적이라는 것을 제시한다.


공의회의 사상적 기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에 제시된 마리아에 대한 역동적인 비전과 심도 깊은 연구는 주로 성경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교회 헌장」 8장과 교부학에 의존한다. 특히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 안에 계시는 하느님 어머니의 현존에 대한 공의회의 가르침에 관심을 집중시켰다.’(제삼천년기, 26항)라는 진술에서 드러난다.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는 교황 바오로 6세의 사도적 권고 「마리아 공경」과도 밀접히 연결되어 있으며, 마리아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확고하게 천명하고 있다. 공의회의 위대한 문서 「인류의 빛」의 마리아에 대한 부분과 “마리아와 교회”라는 교황의 개인적 통찰은 전적으로 최초의 통합임을 드러낸다. 회칙은 좀 더 깊이 있게 다가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심도 있는 움직임은 모호하거나 명확한 방향 없이 된 것이 아니라 확신 있고 명확하게 공의회 가르침을 깊이 통찰한 데서 나온 것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는 「교회 헌장」과 공의회 후의 교도권의 문서에서 나온 것으로서 마리아론의 그리스도론 및 교회론적 방법을 확인하고 마리아론의 내용을 광범위하게 밝혀주고 있다.”(사제양성, 590)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 안에 마리아의 현존

「교회 헌장」 8장은 그리스도 및 교회의 신비와 관련시켜 동정 마리아에 관한 교리의 공식화 및 교리적 종합에 중요성을 두고 있다. 그리하여 공의회는 구원사를 모든 신학적 발자취의 모델로서 높은 위치에 두는 교부적 전통과 결부된다. 이로써 「교회 헌장」은 성모가 우리의 신앙과 신학의 파노라마에서 주변 인물이 아니라 오히려 구원사(救援史)에 친밀히 참여함으로써 신앙의 핵심 진리들을 어떤 의미로 자기 안에 종합하여 반영하는 인물임을 강조했다.

마리아 문헌인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 마지막 부분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무엇보다 먼저 마리아 교리를 그리스도 및 교회와 연결시키고 있는 교황 바오로 6세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에 관한 가톨릭 교리의 참다운 인식은 언제나 그리스도의 신비와 교회의 신비를 정확히 이해하는 열쇠가 될 것이다.” 따라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노선과 완전한 조화를 이루면서 자신의 신학적이고 교회론적인 사상의 전모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제 본인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방향을 따라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의 신비 안에 드러나는 하느님 어머니의 특별한 현존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구세주의 어머니, 48항) [성모기사, 2017년 4월호, 권정대 베드로]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Redemptoris Mater)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그의 신학 사상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황명은 선임 교황의 뜻을 이어나갈 의지를 표명한 것이었다. 선임 교황 요한 바오로 1세는 두 선임자 교황들에 대해 존경심을 표현하고, 이들이 행한 일을 계속해 나갈 원의를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추기경들 앞에서(1978.8.27.)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계속해서 실현시켜가면서 교회의 규율이 사제들과 신자들의 삶 속에서 계속해서 지켜지도록 할 것이라는 자신의 원의를 발표하였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역시 추기경단 앞에서(1978.10.17.)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온전한 실현에 헌신하겠다고 선포했으며, “요한 23세와 바오로 6세는 내가 직접 계승하여 일을 시작하려는 발판이 되신다.”(인간의 구원자, 2항)고 하였다. 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걸작인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과 전임 교황들의 뒤를 이어 공의회의 기본정신을 세상에 알리며 사목해야 한다는 굳은 의지를 드러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선임 교황의 교도(敎道)를 이어 3000년대를 향한 교회의 행보를 이룬 교황이다. 구세사적 사명을 안고 세상에 육화하여 구원을 이루신 주님으로부터 그 사명을 이어받은 교회의 교도 책임을 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의 교황명(敎皇名) 자체에서 그 의지와 사명을 드러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재위 28년 동안(1978.10.16.~2005.4.2) 그의 사목적인 일을 제외하고 신학적인 영역에 있어서 많은 문헌을 발표하여 하나의 문헌집에 큰 영향력을 나타냈다. 그의 약력(略歷)을 크게 세 가지 근본 의미로 구분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삼위일체론 재발견

첫째,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인 삼위일체론적 깊이의 회복이다. 곧 그리스도교의 사상과 실천에 있어서 삼위일체를 떠나는 모든 것을 막고 이를 확립시켰다. 칼 라너(Karl Rahner)는 대부분 그리스도교 신학이 그리스도교인들의 생활에 변화를 가져다주지 못하는 이유가 삼위일체 신학을 떠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공헌은 바로 삼위일체의 심도(深度) 위에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이루고 있음을 확인하고 이에 대한 특별한 뜻을 전함으로써 삼위일체론적 신앙과 구심점을 확립하였다는 점이다.

그의 메시지와 연결시켜 볼 때 그는 교회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일치 안에 집결된 백성으로 말하였고(카르타고의 성 치프리아노), 성령의 작용에 대한 재발견에 대하여 거듭 강조하였다. 그의 가르침의 깊이는 의미와 발전을 표현하고 있다. 그의 신학 사상 안에 삼위일체론적 관점은 다음과 같다.

최우선으로 그는 그의 첫 번째 회칙 「인간의 구원자」를 통해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중심성을 강조한다. 이 회칙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그리스도론적 핵심을 요약한 회칙이다. 또한 아버지의 신비를 탐구한 회칙 「자비로우신 하느님」(Dives in Misericordia, 1980.11.30)은 하느님 자비의 깊은 신비를 말한다. 그리고 성령의 신비를 언급한 회칙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Dominium et Vivificantem, 1986.5.18.)이다.

이 회칙은 오래 기다렸던 문헌이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의해 시작된 우리시대의 신학 탐구의 혁신적 재발견으로 지목되고 있는 문헌이다. 이 회칙은 성 금요일 사건을 삼위일체적 사건으로 ‘의탁의 신비’안에서 보고 있다. 성부께 순명하여 성자가 죽음에 부쳐지고 있고, 성부께서는 그에게 성령을 보내신다. 십자가 위에 달려 창에 찔려 운명하시는 그리스도의 심장(Cor)은 하느님의 심장 자체의 계시로 나타난다. 이 삼위일체의 재발견은 그리스도인 생활과 영성, 신학, 윤리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인간의 재발견 : 인간학

삼위일체론의 재발견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상인 인간의 재발견과 연결되어 있다. 인간의 무한한 품위(品位)는 피조물에 대한 넘치는 성삼위 사랑의 역사 앞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상과 직결된다. 또한 교황의 인간에 대한 관심은 이른바 현대 신학의 인간학적 전환점으로 이어지며 그 뜻이 전해지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현대 신학은 인간의 요구에서부터 출발하려는 특별한 관점을 비추어 놓은 것이다. 회칙 「인간의 구원자」 안에서 “인간은 교회의 길”임을 확언한다. 그의 인간에 대한 강력한 집념은 사회와 정치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에서 나타낸 회칙 「노동하는 인간」(Laborem Exercens, 1981.9.14), 「사회적 관심」(Sollicitudo rei Socialis, 1987.12.30). 인간의 고통의 의미와 품위에 대한 탐구에 있어서 회칙 「구원에 이르는 고통」(Salvifici Doloris, 1984.2.11)에서 다루며, 그 외에 보다 보편적인 의미로 종교적 차원에 대한 가치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여기서 인간은 자신의 무한한 절대자이자 초월자에게 자신을 개방함으로써 하느님을 공경하게 되고, 하느님께서 창조한 모든 피조물과 만날 수 있게 된다. 인간 자신의 완전성에 있어서 가치로서의 인간은 여성의 존엄과 의미에 대한 명확한 태도에 있음을 교황은 그의 사도적 서한 「여성의 존엄」(Mulieris Dignitatem, 1988.8.15.)에서 밝힌다.

인간 자체로서만 그 존엄과 의미를 부각시키는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인간이 그의 신학적 열쇠이다. 하느님의 신비의 심오성과 인간의 품위와 가치에 대한 이 두 가지 강조로 교회 사상의 두 가지 동맥을 보게 된다. 곧 그리스도인과 하느님의 존재가 무조건적으로 연결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느님을 떠나서는 자신의 목적을 실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인간의 죽음이 아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의 영광은 살아있는 사람이고, 리옹의 성 이레네오의 말처럼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의 시야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인간적인 모든 것에 대한 감수성과 세상 도처에 존재하는 종교 형태의 가치는 그리스도적이고 교회적인 정체성을 강조하였다. 교황의 교도 안에는 그리스도 중심성과 구원의 필요성,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의 공동체적 가치를 주안점에 두고 있다.


신학 : 교회에 대한 관심과 재일치적 차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신학 사상 주요 주제는 하느님의 계획과 역사 안에서의 ‘교회에 관한 주제’이다. 그의 신학 사상의 탐구는 지역 교회에 대한 의미와 가치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란 점에서 존중된다. 이 관점은 그의 ‘사목 여정(pregrinatio pastoralis)’에서 그 윤곽이 확연하다. 그가 여러 나라와 대륙의 교회들을 방문한 사실은 특히 신학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금까지 열거한 그의 신학 사상 안에 삼위일체, 인간학, 신학은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에 대한 영상으로써 성경의 영상을 전개하고 있다. 그는 교도의 방향을 특히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 안에서 전개한다. 마리아는 모든 인간 존재의 모델인 여인일 뿐아니라, 또한 하느님 백성의 소명과 목적을 아주 명백하게 다시 반영시켜 주는 동시에 당신의 모성적 현존과 전구로 시간 안에 나그네 교회를 돕고 계시는 육화하신 구세주를 낳은 모성이다.

그리스도 구원의 보다 찬란한 승리이고 교회가 희구하는 영성의 가장 완전한 이상인 마리아는 교회 안에 한 지체임과 동시에 온 교회가 “티나 주름이 없는(sine macula et sine ruga)” 마리아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게 되는 원형이다. 온 생애를 하느님의 겸손한 여종으로 살며, 전능하신 분의 뜻에 순종하였듯이, 그리스도의 무죄한 신부(新婦)인 교회는 동정녀이자 어머니인 마리아가 세기를 통하여 바치는 피앗(Fiat=예)을 그리스도의 몸의 온 지체가 반복하고 있음을 밝힌다.

교회는 신앙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완전한 실현을 향하여 걸어가면서 자신의 천상 신랑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영광 중에 앞서 가신 마리아를 바라보고 있다. 이렇게 마리아는 우리가 사는 시대 안에서 천상 교회의 문을 여는 모형적인 열쇠로, 지상 교회가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도록 촉구하며 영원한 영광으로 부르고 있다.

그리하여 교황은 신학적인 교도 전체와 관련된 최종적 강조점을 그리스도교 재일치 목표에 두게 된다. 그는 거듭 그리스도교 재일치를 위한 출발은 취소할 수 없다는 결단을 표명한다. 교황의 신학적인 관점의 메시지는 지속적으로 성경으로 회귀하는 것과 복음 전파에 대한 갈망이라 할 수 있다. 곧 현대와 후대에 따라오게 될 세속화와 불안에 도전하는 그리스도인 전체를 일치시키려는 복음적 열망이다. [성모기사, 2017년 5월호, 권정대 베드로]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Redemptoris Mater)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에서 나타난 마리아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마리아론은 그의 신학 사상과 신심에 기반을 두었으며, 교황명이 시사(示唆)하는 대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사명과 목적을 구현하는 것에서 비롯한다고 할 수 있다.

교황의 마리아론은 특히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에서 살펴볼 수 있다. 교황의 마리아론은 문헌을 통해 그리스도의 구원 활동 안에 마리아의 역동적 현존의 구조를 이루고 있음을 하나의 깨달음으로 해석하였다. 만일 마리아가 그의 신학적 생각에서 지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교황직 표어로 ‘Totus Tuus’(오 성모님! 저는 온전히 당신의 것입니다)를 선택했을지라도 교황이 신학을 마리 아론으로 가치를 떨어뜨린 것은 아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의 임기 중 이 개념을 끊임없이 생각하였고, 여러 다른 각도에서 분석하였으며 다수의 신학적 교리들과의 관계 또한 분석하였다. 그의 발표 자료의 현상학적 방법을 고려할 때, 그의 사고가 너무 반복적이라고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언뜻 개념을 반복하는 듯 보이나 좀 더 자세히 읽어보면 그것은 교황이 여러 다른 관점들 중에서 하나의 개념을 찾기위해 시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불필요한 자료를 제시하지 않으며, 교황은 「교회 헌장」 8장보다 더 근본적으로 성경자료들을 해석하였고 공의회 이후의 마리아론이 새롭게 발전하는데 기여하였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마리아에 대한 관심은 많은 신학자와 신자들로부터 그가 ‘마리아의 교황’으로 보이게 하였다. 우리 동시대인들 모두 교황이 마리아에게 특별한 신심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세례성사 때 한 약속에 따라 충실히 살 수 있기 위한 효과적 수단으로 마리아의 손을 통하여 자신들을 그리스도께 봉헌할 것을 제안한 성 루이 마리 그리뇽 드 몽포르(St. Louis Marie Grignion de Monfort)를 상기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전체적인 생각을 분석해보아야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마리아론이 그의 임의적인 정서에서 비롯된 피상적인 성모 신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신학과 철학에 관한 깊은 학식이 마리아 통찰에 영향을 주고 그의 그 어려운 ‘몸의 신학’ 논리에 마리아론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므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회의 사명을 달성하기 위해 발표한 교도지침은 곧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라 할 수 있다. 회칙은 문장에 표현된 그의 사목 계획을 장황하게 신학적으로 주석하고 있으며, 공의회의 지침을 해설함은 물론 교황의 신학 사상을 심도 있게 파헤치고 있다. 한마디로 이 회칙은 인류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께로 향한 신앙의 나그넷길 안에 신앙의 여인, 십자가의 마리아와 교회에 대한 이야기이다.


회칙의 특성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논리적 사고를 지니고 있는 문헌으로 신약성경과 교부들에 의해 발전된 마리아 교리를 성경·신학적으로 깊이 다루고 있다. 동시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새로운 빛으로 조명을 받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이라는 표현을 통해 천사가 “은총이 가득한 이여(루카 1,28)”로 찬미한 마리아의 가장 내밀한 실재를 이해하는 일종의 열쇠를 발견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 또한 교황은 신앙의 나그넷 길에 있어서 동정 마리아의 모성적 현존을 두 가지 방향, 곧 신학적 방향과 사목 및 영성적 방향에 따라 설명한다.

동정 마리아는 실제로 교회 생활 안[곧 교회 생명의 시작(육화의 신비)과 생명 형성 과정(가나 및 십자가의 신비) 및 생명의 표현(오순절의 의미)]에서 현존한다. 다시 말해 그는 “순례하는 교회의 중심부”에 있으면서 교회사를 통해 실재적인 현존이 되고, 은총 생활 안에서 신앙인의 출생에 협력한다. 이는 그리스도를 따름에 있어서 모범이 됨과 “어머니의 중재” 역할의 수행이다.

예수께서는 사랑하시는 제자(요한)를 어머니께, 또 어머니를 제자에게 맡기신 행위(요한 19,25-27)로써 마리아와 교회 간의 긴밀한 관계를 확립하였다. 주님의 뜻은, 마리아의 특징을 교회의 특징(physiognomy), 교회의 여정 및 교회의 사목 활동으로 보았다. 따라서 교황은 ‘마리아의 차원’(Marian dimension)이 각 제자의 영성 생활에 본질적(고유적)인 것임을 언급한다.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는 전반적으로 교회 생활 안에서 신앙의 여정과 주님께 대한 경배, 복음화 작업과 점차적인 그리스도에로의 동화 및 일치의 열정에 있어서의 마리아의 능동적 현존에 관한 것으로 간주된다. [성모기사, 2017년 6월호, 권정대 베드로]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Redemptoris Mater)

 

 

회칙의 구성과 내용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는 3부, 52개의 소(小)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회칙의 세 부분을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주제를 이끄는 구성과 정교함에 확고한 논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서론(1-6항)은 회칙 반포의 배경과 상황을 설명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서론에서 그의 교회관을 압축하며, 바티칸 공의회 교회헌장의 전통을 따라서 마리아와 교회의 관계를 재확인하였다.

‘충만한 때’를 알아채는 것은 영원이 시간 안에 들어와 그리스도의 신비로 채워져 ‘구원의 때’로 전환되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며, 마리아가 ‘그대로 이루어지소서’(Fiat)라는 확언을 통하여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동참한 것은 감추어진 교회의 여정이 그리스도의 강생과 함께 시작된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전례에서 나자렛의 마리아를 교회의 시작으로 찬미하며(1항),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전통에 따라 역사 안에서 적극적이고 모범적인 현존을 살아낸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 마리아를 종말을 향해 순례의 길을 걷는 교회를 앞장서서 이끄시는 분으로 공경한다.(2항)

곧, 천주의 모친(Theotokos)이란 칭호에 담긴 마리아의 신비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통해서 밝혀지며, 이 신비 안에서 교회는 자신의 존재와 신비를 보다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음을 분명히 하였다.(4-5항)

더불어 마리아가 신앙의 여정에 있는 이들에게 항구한 기준이 되는 의미와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그 이유는 그분이 낳은 아들이 하느님께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이로 삼은 분이고, 마리아가 형제자매들을 기르는데 모성애로 협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6항)

제1부(7-24항)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서의 마리아”는 성경에 광범위하게 나타나 있는 마리아의 모습을 조명한다. 또한 복음서의 흐름을 따라서 마리아의 역할을 살펴보고, 신학적 재해석을 통해 그리스도 신비의 구원사적 의미를 알린다.

1. ‘은총이 가득하신 분’(7-11항)에서 마리아는 자신을 선택한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당신의 의지를 드리어 신성과 인성의 결합이 이루어지고 완성되도록 도운 분이다.

2. ‘행복하십니다. 믿으신 분!’(12-19항)에서 마리아는 아브라함의 신앙을 따라서 세상에서 살아가고, 하느님의 백성을 대표해서 아드님의 희생제사에 어머니의 마음으로 당신을 결합시키신 분이다.

3. ‘이분이 네 어머니이시다’(20-24항)에서 카나의 예수님이 당신의 때를 시작하도록 매개하신 마리아는 ‘말씀의 강생’ 순간과 ‘교회의 탄생’ 순간의 고유한 일치 안에서 성령의 길을 가르치신 분이다.

복음서는 마리아를 신앙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신앙을 따라 그리스도의 신비에 결합한 하느님의 백성을 대표하며(루카 1,46-55), 은총을 입으신 처녀로서(루카 1,28) 구원의 약속을 믿고 부름에 응답함으로써 하느님의 짝이 되신 분이며(루카 1,38), 십자가 위의 아들의 요청으로 교회의 어머니가 되신 분(요한 19,25-27)으로 소개한다. 곧, 교회는 마리아에게서 ‘성령에게서 태어나는’ 길을 배움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이며 신부로서 마리아의 현존을 살아낼 수 있는 것이다.(24항)

제2부(25-37항) “순례하는 교회의 한가운데 계시는 하느님의 어머니”는 지상 교회의 여정에서 하느님 백성을 지켜주시고 인도하시며 위로해 주시는 마리아의 현존을 설명한다. 특히 마리아에 대한 동방교회의 놀랄만한 증언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제2차 니체아 공의회(787년) 1200주년과 고대 러시아인들의 그리스도교 개종 1000년을 기념하며 그리스도교 재일치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마리아는 지상에서 순례하는 하느님 백성에게 확실한 희망과 위로의 표시이기 때문에 교회 일치에 걸림돌이 되지 않고, 오히려 갈라진 형제들 사이에 일치의 근거가 된다. 또한 교회 일상의 찬가가 된 마리아의 노래(Magnificat)에 비추어 현대의 특정 문제들을 다루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우선적인 사랑을 강조한다.

제3부 “어머니의 중재”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을 확인하면서 그 문헌을 주의 깊게 다시 읽도록 요청한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하고 단일한 중개자이신 그리스도의 단일 중개성을 역설함으로써 갈라진 형제들의 오해를 풀어주기 위한 세밀하고도 명확한 성경적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21-23항) 여기서 교황은 마리아의 해 의의에 대해 다시 한번 설명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에서 그리스도론적이고 교회론적인 내용 안에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모상을 깊게 함으로써(25-28항),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신자의 일치를 위해 가능한 한 적극적인 발전을 명시했다.(29-34항)

그는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서 마리아(제1부)”와, “교회의 신비 안에서 마리아(제2부)”를 다루고, 이 두 주제를 제3부 “주님의 여종인 마리아의 모성적 중재”로 결합하여 회칙 전체를 완성한다. 이로써 마리아는 시간 안에 모형(模型, figura)이고, ‘영원한 모델’로 제시되었다.(42항)

결론(51-52항)은 회칙의 내용을 종합하며, 교회가 믿는 이들의 공동체와 함께 선의의 모든 사람과 일치하기를 바라는 희망을 담고 있다. 그리스도 강생의 신비에 참여한 첫 사람 마리아는 ‘위대한 변화’를 경험한 구세주의 어머니로서, 교회는 현재에도 죄 안에 있는 인간들이 변화하여 은총과 정의 안으로 들어오는 삶을 이루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한다.(52항)

이는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인간의 영원한 소명 안에 있는 마리아를 따르며 그분의 도움을 청하는 것으로, 마리아를 통하여 역사 안으로 들어오신 그리스도에게 기도하는 것이다.

회칙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노선을 따라 전통적인 교의를 반복하기보다는 마리아의 구세자적 역할, 곧 마리아의 중재 기능과 성모 신심이 교회 일치의 공통 뿌리임을 강조하는데 비중을 두었다. 그래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아온 한 인간, 한 여인, 본연의 모습을 갖는 참 인간으로 마리아를 역설한다. 더불어 삼위일체 하느님을 관상하고 중개자인 성자께 종속되는 것임을 거듭 천명함으로써 올바른 기준을 잃지 않고 있다.

“교회는 인류 역사 안에, 하느님께서 인간을 위하여 영원히 제정하신 하느님 섭리의 계획에 따라 인간의 영원한 소명 안에 깊이 자리하고 계시는 마리아를 봅니다. 교회는, 오늘날 개인과 가정과 국가를 괴롭히는 많은 복잡한 문제들 가운데 어머니로서 함께 계시면서 선과 악의 끊임없는 투쟁 속에서 그리스도교 백성들을 도와 ‘넘어지지 않게’ 하시고 넘어지면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마리아를 바라봅니다.”(구세주의 어머니, 19항)

그러므로 마리아의 믿음, 그리스도의 교회 창설에 “앞선” 마리아, 그리고 동정녀이며 어머니로서의 마리아 등 세 가지의 구분을 염두에 두고 회칙의 기초를 확인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 세 가지 사상은 각각 따로 구별해서 생각해서는 안 되며, 또 단순히 서로 관련이 있다고만 생각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이 사상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결국에는 같은 사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마리아는 절대 기만하는 분이 아니며, 복음적으로 “단순함”을 지니신 “마음이 가난한” 참 행복(眞福八端)의 전형적인 표본이다. [성모기사, 2017년 7월호, 권정대 베드로]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Redemptoris Mater)

 

 

제1부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 계신 마리아

제1부는 7항부터 24항까지이다.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 계신 마리아라는 주제로 마리아에 관한 세 가지 성경구절, “은총이 가득한 이여(루카 1,28; 7-11항)”, “행복하십니다, (…) 믿으신 분!(루카 1,45; 12-19항)”, “이분이 네 어머니이시다.(요한 19,27; 20-24항)”가 특수한 시각에서 해석되고 있다.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 계신 마리아”는 그리스도론 안에서의 모든 마리아론이 적합한 자리에 놓여있음을 명확하게 언급한다. 곧 그 위치에서만이 마리아론은 정당화되고 이해된다.

“오직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서만 성모님의 신비가 충만하고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4항)

회칙은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 계신 마리아의 신비를 밝히기 위해 7항에서 에페 1,3-7을 인용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 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주셨습니다.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들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에페 1,3-7)”

만일 그렇다면, 자연스레 ‘어떻게 이 사랑받는 아들이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자신의 피를 흘리기 위하여 인간이 되셨을까’ 하는 질문이 생긴다. “그러나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갈라 4,4)”라고 사도 바오로가 기술했듯 그는 ‘여인에게서 태어나’야만 하셨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합당하게 그를 잉태하시었기에 죄가 있을 수가 없고 불순종이 있을 수가 없다. 비록 마리아 역시 구원받아야 할 한 인간이지만 마리아는 선행구속을 받아야 했었다. 왜냐하면 마리아는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고 이것이 예수의 육화 요건 중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회칙이 마리아에 관한 세 가지 성경 구절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는 제1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은총이 가득한 이여

“은총이 가득한 이여(루카 1,28)”라는 인사와 이름은 하느님 아들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선택과 관련이 있고, 하느님의 아들이 마리아 안에서 인성과 실제로 일치되었기 때문에 은총이 가득하신 분이라고 한다.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에게 “은총이 가득한 이여”라고 불린 주님 탄생 예고 사건을 통하여 결정적으로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 들어가게 된다. 또한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루카 1,42)”라는 명칭은 아버지 하느님께서 주시는 충만하고 보편성(모든 복)을 지니는 영적인 복 때문이었다.

마리아는 하느님 아들의 어머니로 선택되신 분이자, 아들도 마리아를 선택하시어, 거룩하신 성령께 영원히 위탁되신 분이었다. 그래서 마리아는 아주 특별하고 예외적인 방법으로 그리스도께 결합되어 있다.(8항)

“은총이 가득한”이라는 말은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어머니로 선택되고, 예정됨으로써 받는 모든 초자연적 은혜를 가리킨다. 곧 하느님의 특별한 선물을 받은 분, 말씀의 육화가 이루어지도록 협력한 태, 그리스도의 구속 공로를 통한 원죄로부터 보호를 받은 분, 자신의 출산으로 생명을 주신 분의 어머니가 됨으로써 신성에 참여하게 된 분이라는 사실을 포함한다.(9-10항) 그러므로 마리아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동정녀로서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말씀을 잉태하고 낳은 어머니일 뿐만 아니라 구세주의 모친이 된다.


행복하십니다, 믿으신 분!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때, 엘리사벳은 마리아에게 성령의 힘으로(루카 1,40)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이라고 외친다. 회칙은 엘리사벳의 이 말을 토대로 인류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 신비에 참여하는 마리아의 신앙에 대해 언급한다.(18항)

회칙의 “은총이 가득하신 분”에 대한 부분(7-11항)과 “행복하십니다. (…) 믿으신 분!”의 부분(12-19항)은 그 맥락을 같이한다. 마리아의 신앙 응답은 손수 이끌며 도와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에 완전하게 협력하고 끊임없이 당신의 선물로 신앙을 완성시키는 성령의 활동에 자신을 개방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 두 부분 모두 마리아의 본질적인 내용, 곧 신앙으로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 현존하게 된 마리아에 대한 진리를 드러내며, 순종으로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마리아에게 달려있던 성자의 원의가 실현됨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마리아가 복된 이유이다.(12-13항)

마리아는 신앙 안에서 자신을 하느님께 온전히 바쳤다.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 뱃속에서 잉태하기 전에 이미 마음 안에, 다시 말해 믿음 안에 잉태하고 있었던 것이다. “행복하십니다.1) (…) 믿으신 분!”이라고 한 엘리사벳의 말은, 마리아가 주님 탄생 예고의 특별한 순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 순간이 마리아의 믿음의 정점이지만 동시에 하느님의 모든 신앙의 순례가 시작되는 출발점이다.(14항)

마리아는 아들 예수와 함께 요셉의 보호 아래 이집트로 피신해야 했을 때에도(마태 2,14-15), 이후 드러나지 않은 나자렛 생활 동안에도 믿음을 통하여 하느님의 신비와 접촉한 상태에 있었다. 아들의 공생활 중에도 신앙의 나그넷길을 충실히 걸었고,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때 들었던 믿음의 축복이 마리아 안에서 성취되었다.(16-17항) 마리아의 신앙이 완전히 드러난 곳은 당신 아들의 십자가 아래에 서 계실 때(요한 19,25)다.(18항)

“성모님께서는 당신 외아들과 함께 심한 고통을 겪으시며 당신에게서 나신 희생 제물에 사랑으로 일치하시어 아들의 희생 제사에 어머니의 마음으로 당신을 결합시키셨다.”(교회헌장, 58항)

이 결합은 주님 탄생 예고 때, 천사의 계시를 받아들인 바로 그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십자가 아래에서 마리아는 믿음으로 자기 비움(kenosis)의 놀라운 신비에 참여한다. 곧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주는 당신 아들의 죽음에 동참한 것이다.(18항) 마리아가 믿음을 통해 당신 아들의 구원사업에 동참하게 된 사건을 설명하면서 공의회와 교부들은 원 복음을 인용한다.(교회헌장, 56항)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창세 3,15)” 교부들은 원죄 이후 뱀에게 내려진 이 심판을 구세주의 첫 번째 약속으로, 뱀의 머리를 쳐부술 자손의 예표로 받아들였다.

이 후손은 축복과 자유를 약속한다 : 그는 뱀의 머리를 치신다. 그러나 저주, 속박은 그 힘을 보유한다: 뱀이 그의 발꿈치를 친다. 축복과 저주, 구속은 그 힘을 보유한다: 뱀이 그의 발꿈치를 친다. 축복과 저주는 균형 잡힌 상태로 남아있는 듯하지만 그 결과는 확실하지 않다. 요한 묵시록에는 이 세 등장인물들(여인, 여인의 아들, 뱀)이 다시 나타난다.(묵시 12) 역사의 드라마는 이제 정점에 이르렀다. 그러나 결과는 이미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하며 천사가 축복으로 가득 찬 여인으로 다시 나타난 마리아를 경배한 나자렛 사건에 의하여 결정되었다.

성 이레네오 교부의 가르침에 따르면 “하와의 불순종으로 묶인 매듭이 마리아의 순종을 통하여 풀렸다. 처녀 하와가 불신으로 묶어 놓은 것을 동정녀 마리아께서 믿음을 통하여 풀어주셨다.”라고 하였다.(교회헌장, 56항) 또한 마리아는 “순종하시어 자신과 온 인류에게 구원의 원인이 되셨다.”2)라고 말한다. “행복하십니다, (…) 믿으신 분!”이라는 엘리사벳의 외침처럼 마리아는 신앙의 나그넷길을 걸으면서 인류에게 그리스도의 신비를 드러냈다고 추론할 수 있다.(19항)


이분이 네 어머니이시다

“이분이 네 어머니이시다.(요한 19,27)”라는 십자가 위에서 예수의 말씀은 마리아의 모성에 대한 언급이다. 예수께서는 마리아의 육체적 모성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킴으로써 발전하는 신비로운 영적 유대로 관심을 향하게 한다.(20항)

곧 예수께서는 마리아가 당신을 낳고 젖을 먹인 육적인 어머니의 인연을 넘어서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지키는(루카 11,27-28) 영적인 어머니의 인연을 맺었음을 제시하였다. 같은 맥락에서 예수께서는 당신 어머니와 형제들이 당신을 만나려고 밖에 서 있다는 말을 듣고서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루카 8,21)”라는 말씀을 통해 육적인 인연을 뛰어넘는 신비로운 영적 인연에 주의를 돌리게 하였다.

이 내용에서 설명하듯 마리아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루카 11,28) 첫 번째 사람이다. 마리아는 자신의 믿음을 통해 영적으로 예수의 어머니가 된다. 가브리엘 천사의 인사를 받았을 때 믿었던 것처럼 마리아는 메시아적 사명 기간 중에 계시하신 모성의 다른 차원을 깨닫고 받아들인다.

마리아는 맨 처음부터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는 하느님께 대한 순명(Fiat)을 신앙의 여정 중에서도 발하며 당신의 모성적 사명을 수행한 것이다.(20항)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마리아는 어머니로서 전구했고,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4)”라는 말로 당신 아들의 뜻을 대변하여, 메시아의 구원 권능이 드러날 수 있도록 해야 할 일들을 지시했다.(21항)

그리스도는 십자가 아래에서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7)”라는 유언으로 파스카 신비의 결정적인 성취에서 비롯된 마리아의 모성을 확인할 수 있다. 각 개인과 온 인류를 포괄하는 신비의 한가운데 서 계신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모든 개인과 온 인류의 어머니가 되시는 것이다.(23항) 십자가 위에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그리스도를 낳은 마리아의 모성이, 요한으로 상징되는 교회 안에서 교회를 통하여 ‘새롭게’ 지속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24항)

주1) Augustinus, De Sancta Virginitate 3,3(PL40,398): “ergo Maria percipiendo fidem Christi quam concipiendo carnem Christi.”; Sermo 215,4(PL38,1074).
주2) Ireneus, Adversus the Haeresis 22,4(PG7,959): “obediens, et sibi et universo generi humano causa facta est salutis. [성모기사, 2017년 8월호, 권정대 베드로]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Redemptoris Mater)

 

 

제2부 순례하는 교회의 한가운데 계시는 하느님의 어머니

25-37항으로 구성된 “순례하는 교회의 한가운데 계시는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주제를 다룬 제2부는 마리아가 순례자로서의 교회 안에서 차지하시는 위치를 다루고 있다. 제1부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 계신 마리아와 제2부 교회의 신비 안에 계신 마리아가 연결되고 있으며, 갈라진 모든 그리스도인과의 일치 또한 함께 거론된다.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와 마리아

“교회는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십자가와 죽음을 전하며(1코린 11,26), ‘세상의 박해와 하느님의 위안 속에서 나그넷길을 걷습니다.’”(25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순례하는 교회를 언급하면서 사막을 헤매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에 비유하고 있다. 이 순례는 시간과 공간 안에서 외적으로 드러나지만 동시에 시대와 민족의 경계를 초월한 것이다.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하면서 신앙의 순례를 앞서가신 분으로 현존한다.(25항) 또한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로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어머니로서 그들 가운데에서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였다.”(사도 1,13-14)

신앙 안에서 “구원의 주인이신 … 예수”를 바라보던 이들의 첫 무리는 예수께서 마리아의 아들이라는 것과, 마리아가 예수의 어머니로서 잉태와 출산의 순간부터 예수의 신비, 그들이 보는 앞에서 십자가와 부활에서 밝히 드러나고 확인된 그 신비의 유일한 증인임을 알고 있었다.(26항) 따라서 마리아는 구원 역사 속에 깊이 참여하고 교회와 함께 순례의 여정을 지금도 계속해서 가고 있다.

마리아는 교회가 나아가야 할 신앙의 나그넷길을 먼저 걸었고,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아들과 당신의 결합을 충실히 견지하였다.(교회헌장 58항) 마리아는 분명히 교회의 한 구성원이지만, 마리아의 선행구속 때문에 구세주의 어머니로서나, 교회 안에서 진정한 삶의 신앙인의 모델로서 정체성을 잃은 것이 아니다. 교회의 완전한 실체는 십자가, 부활, 성령의 발출로부터 비롯된다.

교회는 마리아와 함께 자신의 모든 생활 속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잇는 구원의 신비를 간직해 오고 있다. 곧 마리아는 신앙 여정의 승리자로서 교회를 앞서갔고, 지금은 영광 속에서 전 인류를 부르고 있다.

주님 탄생 예고부터 십자가 사건까지 마리아의 살아있는 신앙은 십자가, 부활, 성령강림에서의 교회의 실제 ‘탄생’보다 시간적으로 선행한다. 단지 시간적으로뿐만 아니라 영성적으로도 선행되는데 그것은 마리아의 살아있는 신앙이 교회가 이 세상 끝 날까지도 결코 따라갈 수 없는 완벽하고 전형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마리아는 신앙인들이 나그넷길을 걸으며 끊임없이 바라보아야 할 좌표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교회는 하느님의 어머니와 함께 자신의 모든 생활 안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잇는 구원의 신비를 간직해오고 있으며, 마리아를 인류의 영적 어머니와 은총의 중재자로 공경하고 있다. 그러므로 동정 마리아와 교회는 서로 나누어질 수 없는 하나의 관계로 맺어져 있다. 동정 마리아는 빛을 향한 교회의 여정에 항상 함께하기 때문이다. 이는 ‘마리아의 노래(루카 1,46-55)’에 잘 나타나 있다.

따라서 첫 순간부터 교회는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를 ‘보았듯이’ 예수를 통하여 마리아를 ‘보았던’ 것이다. 그때의 교회와 모든 시대의 교회에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고(루카 2,19.51) 나자렛에서 보낸 예수의 유년기와 드러나지 않은 생활을 알고 계신 유일한 증인이라 할 수 있다.”(26항)

“지상에서 순례하는 하느님 백성을 끊임없이 ‘앞장서 가시는’ 마리아의 신앙 안에서 교회는 끊임없이 온 인류가 …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그분 성령의 일치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려고 힘껏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28항)

그러므로 지상의 모든 나라 안에 현존하는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25-28항)에서 사도들의 믿음에 앞서는 마리아의 믿음을 성령강림을 통하여 재확인한다. 곧, 마리아는 ‘새 이스라엘’을 이루는 이들과 더불어 새로이 맺어질 계약을 앞장서 이끄시는 ‘주님의 여종’으로서 주님 탄생 예고에서 성령의 정배가 되어 말씀을 받아들였듯이, 교회의 여명에 그리스도의 신비에 대한 특별한 존재로서 교회의 신비에 속함으로 교회가 마리아의 믿음 위에서 세워진 것을 재확인하였다.(25항)

또한 이천년을 맞이하는 기간에 이르기까지 마리아는 개인과 교회공동체의 여러 전통에서 그분의 모성적 현존을 드러내며 모든 영적 축복과 인류의 일치가 이루어지는 내적 공간이 되었다.(27-28항)


교회 일치 관점의 마리아

“저는 이들만이 아니라 이들의 말을 듣고 저를 믿는 이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요한 17,20-21)”

요한복음에서 전해지는 이 기도는 성자(聖子)께서 수난하시기 직전에 성부(聖父)께 바치신 기도이다. 이 기도를 통해 모든 그리스도인의 일치는 온 교회의 희망이라는 것을 추론하게 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에 따라 교회는 온 세계에 하나뿐인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흩어진 모든 신자가 성령 안에서 결합해야 함을 절실히 깨닫고 있다. 특히 오늘날, 순례하는 교회의 이러한 깨달음은 교회 일치의 열망으로 나타나고 있다.

회칙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이룩해야 한다는 절실한 요구에 대해 마리아가 가장 먼저 분명한 모범으로 보여준 “순종하는 믿음”을 자신과 각자의 공동체 안에 깊이 새겨야 함을 제시한다.(29항)

서방의 갈라진 교회와 가톨릭교회 사이에는 마리아의 역할에 관한 교리의 가볍지 않은 차이가 있다.(일치교령 20항) 교회의 신비와 사명 그리고 구원에 있어서의 마리아의 역할 등에 대한 차이점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그러나 한편, 갈라진 교회들과 교회 공동체가 마리아를 주님의 어머니로 인정하며, 이 사실이 참 하느님이시며 참사람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그리스도교 신앙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교회들과 교회 공동체들이 동정녀 마리아에 관한 문제들을 포함하여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 요소들에서 가톨릭교회와 합일점을 발견하고 있다는 사실은 희망적인 표지이다.(30항) 마리아는 하느님의 옛 백성과 새 백성을, 이스라엘과 그리스도교를, 유대교회당과 교회를, 서로 떨어질 수 없도록 하나로 묶어주고 있는 연결고리인 것이다.

그리하여 오랫동안 지속해온 교회 일치 운동 규칙의 정당함이 다시 한 번 입증된다. 각 교파는 교세를 확장하기보다 우선 그들의 같은 믿음의 깊이를 추구해야한다. 이 믿음의 깊이가 다른 교파들이 만날 수 있는 공통의 장을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되신 말씀의 신비로 하느님 어머니의 신비를 엿볼 수 있다면, 그리고 반대로 하느님 어머니에 대한 묵상이 육화의 신비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다면, 이와 똑같은 원리가 교회의 신비와 구원 활동에서 마리아의 역할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30항) 교황은 마리아를 본받음이 오히려 교회 일치에 도움이 되는 요소임을 역설하며, 가톨릭교회와 정교회 및 오래된 동방의 교회들이 하느님의 어머니(Theotokos)에 대한 사랑과 찬미를 통하여 얼마나 깊이 결합해 있는지 강조하고 있다.(31항)

교회가 인류를 성령 안에서의 일치를 통해 머리이신 그리스도께로 모으려 애쓰는 것처럼 하느님의 어머니가 교회와 맺는 관계도 동일하다. 마리아는 지상에서 순례하는 하느님 백성에게 확실한 희망과 위로의 표시이기 때문에 갈라진 형제들 사이에 일치의 근거가 된다. 이러한 교회를 위한 마리아의 모성적 역할은 아직도 갈라져 있는 여러 그리스도교 교파들이 한 교회로 일치되도록 비는 마리아의 기도를 통해 지속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의 여정과 모든 그리스도인의 일치(29-34항)는 순례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마리아가 희망과 위로의 표지로 빛나는 분임을 전제로 하고, 일치를 위해 서구교회들과는 교회의 신비와 직무, 마리아의 역할에 관한 교리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29항), 정교회와 오랜 동방교회들과는 공유하는 전통과 역사를 기억하고 천주의 모친(Theotokos)을 중심으로 하는 유대를 위해(31항) 노력하는 것이 필요함을 확인하였다. 또한 대화를 통해서 동방교회의 풍부한 성모신심이 전례와 성화 안에 담긴 것을 새롭게 받아들임으로 다양한 교회의 전통들을 공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하였다.(32항)


순례하는 교회의 ‘마니피캇’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루카 1,46-55)

제2부는 ‘순례하는 교회의 마니피캇’이라는 주제로 교회의 신비 안에 계신 마리아에 대한 논의를 마무리한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의 집을 들어서면서 하신 말씀은 성령의 영감을 받은 마리아의 신앙 고백이자 하느님을 향한 마리아 전 존재의 영적, 시적 찬미를 표현한 것이다.

마리아의 노래에 담긴 계시를 통하여 실제로, “하느님과 인간 구원에 관한 심오한 진리가 중개자이신 동시에 모든 계시의 충만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밝혀진다.” 또한 마리아는 찬미가를 통해 자신이 그리스도의 이 충만함 한가운데에 있음을 고백한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어머니인 자신 안에 구원 섭리 전체가 집중된다. 이 구원 경륜 안에서 ‘대대로’ 계약의 하느님께서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나타나신다는 사실을 마리아는 깨닫게 된다.(36항)

‘마니피캇(Magnificat)’으로 모든 세대가 마리아의 믿음을 찬미하고, “마리아의 믿음 안에서 우리 자신의 믿음이 북돋아지기를 청한다.” 또한 처음부터 하느님의 어머니의 여정을 본받아 자신의 지상 나그넷길을 가고 있는 교회는 끊임없이 이 노래를 되풀이한다.(37항)

‘마니피캇’에 표현된 진리는 예수께서 당신의 말씀과 행적으로 보여준 사랑, 곧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위한 우선적인 사랑과 분리될 수 없다. 교회는 시대와 시대를 넘어 마리아와 함께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끊임없이 이 노래를 불러왔다.

회칙은 ‘마니피캇’으로 가난한 이들을 우선시하는 사랑을 제시함으로써 살아계신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받들며, 그 말씀을 살아가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내면성을 교도한다. 마리아는 주님의 가난한 이들 가운데 뛰어나게 드러나 있는 가난한 여인이다.

이 가난한 여인을 하느님이 당신의 궁궐로 삼게 되신 성경의 경륜은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겸손되이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생의 보증과 승리의 길을 밝혀 주고 있으며, 이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인생의 나그넷길을 가면서 가난한 여인의 노래인 마니피캇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므로 회칙은 순례하는 교회의 ‘마니피캇’(35-37항)을 통해서 그리스도 신앙인들의 일치를 재발견하고 아브라함의 전통이 마리아를 통해서 새로운 계약으로 성취된 것과 하느님의 자비를 기억한다.

또한 교회는 하느님 백성의 여정에 현존하는 마리아와 함께 마니피캇(마리아의 노래)을 부르며 가난한 이들에 대한 교회의 우선적 사랑이 하느님의 우선적 사랑에 따른 것임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다.(37항) 이는 완전한 자유와 해방의 모습으로 찬미하는 마리아에게서 교회의 전형이며, 교회의 어머니로서의 모습을 재발견하고 교회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성모기사, 2017년 9월호, 권정대 베드로]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Redemptoris Mater)

 

 

제3부 어머니의 중재

 

교황 바오로 2세는 회칙의 3분의 1을 마리아 중재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그는 유일한 중개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마리아의 중재는 그리스도 예수의 중개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에 마리아의 중재에 관한 교리, 용어가 신학자들과 교부들의 토의에서 빈번한 주제가 되었다.

 

공의회가 열린 이후에도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재자는 그리스도이심을 감안할 때 마리아에게 중재자라는 칭호가 합당한 것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열띤 논쟁이 벌어졌으며, 신학적으로 대단한 관심의 대상이었다. 논쟁의 결과 「교회 헌장」 8장은 마리아에게 중재자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모든 공의회 교부들의 동의를 얻은 것은 아니지만, 「교회 헌장」은 이 칭호 속에 내포된 진리의 가치를 제시하기 위해 이것을 받아들였다. 「교회 헌장」은 마리아의 중재에 대해 그때까지의 어떤 교회 문헌들보다 더욱 심도있게 다루었다.

 

마리아의 중재에 관한 주제는 의심할 바 없이 많은 신학적, 교회 일치적 토론에서 관심을 끌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미 ‘중재자’라는 위치를 언급하였고 마리아의 중재에 관하여 언급하였다. 하지만 이 주제는 아직까지 교도권 문서에 충분히 전개되지 않았다.

 

이 주제 자체에 관하여 교황 바오로 2세의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는 공의회 가르침을 따르는 전문용어에까지 이르지 않았다. 그러나 교황의 회칙은 공의회의 전제를 심도 있게 받아들여 그 전제를 더욱 연구하고 충실하게 한다.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마리아의 중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주님의 종, 마리아

 

“교회는 바오로 성인의 말씀에 따라 중개자는 한 분뿐이심을 알고 가르칩니다. ‘하느님은 한 분이시고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개자도 한 분이시니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당신 자신을 모든 사람의 몸값으로 내어주신 분이십니다.(1티모 2,5-6)’ 사람들에 대한 마리아의 어머니 임무는 그리스도의 이 유일한 중개를 절대로 흐리게 하거나 감소시키지 않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힘을 보여 줍니다. 곧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중개입니다.”(38항)

 

완전한 중개자의 역할은 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도 부여될 수 없다. 하느님이시며 사람이신 그분만이 하느님의 은총을 인류에게 전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천사적 스승이라 불리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가르침에 따르면, 천사들과 성인들과 예언자들과 사제들도 중재자로 불릴 수 있다. 중재자라는 영예는 마리아께 더욱더 부합한다.1)

 

마리아의 중재는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셨다는 것으로부터 구원에 있어서의 중재를 고려할 수 있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화해를 가져오는 중재는, 예수 그리스도의 활동일 뿐만 아니라 그의 중재 대상인 인간의 참여도 요청된다는 것이다. 마리아는 특별하고 대표적으로 ‘예(Fiat)’라는 신앙의 응답으로 이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이는 본질적 요소가 아니더라도 종속적으로 구속자를 위하여 함께 일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마리아는 중재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중재자, 구속자라는 명칭은 완전한 의미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해당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의미를 약화시킬 수 있는 모든 것은 피해야 할 것이다. 종속적인 의미로 마리아에게 이 명칭을 적용하더라도 자칫 마리아를 예수 그리스도와 동등한 위치로 제시할 위험이 있다. 비록 마리아가 그리스도와 갖는 관계(母子關係)로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개에 참여하는 여타 특별하고 예외적인 성격을 지닌다 하더라도 마리아의 중재는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38항)

 

이 용어들은 공의회 문헌에서 가져온 것으로 다음과 같이 부연된다. 이 역할은 그리스도의 공로의 여분으로부터 흘러서 그의 중재에 놓여있고, 그 중재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그 중재로부터 모든 힘이 비롯된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중재는 그 전구에서 완성된다.

 

칼 라너(K, Rahner)는 모든 사람은 은총과 자비를 받은 하느님의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고 타인을 위하여 존재하는 한 모든 사람을 위해서 중개자가 된다고 주장한다. 중개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을 부르시어 당신의 구원사업에 참여하도록 하신다. 교회 역시도 세상의 구원을 위한 성사, 곧 중개 역할을 떠맡고 있다. 아울러 교회는 사도신경 안에서 성인들의 통공을 가르친다.

 

마리아의 중재는 오래전부터 교회가 사도신경에서 고백하는 ‘성인들의 통공(Communio Sanctorum)’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성모 마리아는 “모든 성인의 통공 안에서 당신 아드님께 전구하시어(「교회 헌장」 69항)”, 우리에게 필요한 은총을 중재해 준다.

 

‘성인들의 통공’이란 전체 교회를 구성하는 이들, 곧 이미 죽어서 하느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는 이들, 연옥에서 단련을 받고 있는 이들, 그리고 아직 세상에 살아 있는 이들이 모두 기도와 희생과 선행으로 서로 도울 수 있게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런 믿음에 따르면, 천상에 있는 이들(성인들)은 살아 있는 이들을 위해 하느님께 빌어 줄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살아있는 신앙을 인간 중재에 의지한다. 그러나 어떤 인간의 중재도 하느님께 다가가는 다리를 만들기에는 부족하다. 인간은 혼자 힘으로는 결코 하느님의 존재와 현존에 관한 절대적 확실성을 가질 수 없다. 하지만, 홀로 현존하시는 그분과 함께할 때 우리는 서로에게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마리아의 중재 또한 다른 인간의 중재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교황 바오로 2세는 이러한 사실을 그저 놓아두지 않는다. 마리아의 중재가 구속 사업에서 우리 인간의 참여와 같을지라도 마리아의 참여는 분명 ‘일반적인 평범’ 이상이다. 마리아의 중재는 우리들의 중재 역할과 달리 유일무이하고 성인들의 통공을 통하여 행할 수 있는 힘을 지닌다.

 

교회는 무엇보다도 성모 마리아의 중재기도를 권장한다. 예수의 첫 번째 기적이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요한 2,1-12) 성모 마리아의 간청으로 이루어진 것은 그 좋은 본보기이다. 그러나 마리아는 혈연관계가 아닌 성부의 뜻에 의한 관계로서 아들 예수의 말을 경청하고 따르며 예수가 그때를 자발적으로 이루도록 기다리는 어머니의 역할을 하였다.

 

회칙은 구세사에서의 마리아의 독특한 위치와 역할이 마리아의 신적 모성에서 비롯된 것이고, 신적 모성에 대한 완전한 진리를 기초로 해야만 신앙 안에서 이해하고 생활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복음도 마리아가 ‘예수의 어머니(마르 6,8; 마태 13,55; 사도 1,4)’임을 분명히 증거하고 있다.

 

‘예수의 어머니’라는 마리아의 호칭은 구원 사업에 있어 마리아의 위치와 역할을 남김없이 설명한다. 마리아는 지상에서 예수의 어머니이시고, 이러한 마리아의 모성은 예수 그리스도 인성의 근거가 된다. 마리아의 신적 모성은 그리스도의 신비로 드러난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신비를 통하여 어머니의 신비가 교회의 신앙 안에 밝혀진다.

 

마리아만큼 하느님께 이끌려 이 신비에 들어간 분은 없다. 하느님의 아들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참으로 우리 중의 한 사람이 되셨다. 마리아는 성령의 능력에 의해 당신 동정의 품 안에 아버지와 본질이 같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시고, 낳으셨기에 ‘천주의 모친(Theotokos)’이다. 마리아 모성의 예외적 특성이 바로 여기서 기인한다. 마리아는 하느님 아들의 어머니이고, 구원사업에서 아들의 ‘헌신적인 동반자’이며 ‘은총의 세계에서는 우리의 어머니’이다.(38항)

 

마리아의 모성적 중재 역할의 시작은 나자렛 동정녀가 어머니 역할을 받아들인 순간에 있다.(39항) 이것은 주님 탄생 예고 때, 하느님의 선택과 마리아의 신앙적 응답으로 이루어진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안에서 영원으로부터 미리 구세주의 어머니로 예정된 것이다. 곧 나자렛의 동정녀가 구세주의 어머니로 선택된 것이었다. 이것은 교회, 더 나아가 인류의 역사를 통하여 마리아의 중재 역할이 필연적으로 나타난 한 사건인 것이다. 예수는 교회만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였다.

 

마리아는 “신앙의 나그넷길을 걸으시고”,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아들과의 결합을 충실히 견지한 분이실 뿐만 아니라, “이분이 네 어머니이시다.(요한 19,27)”라는 말씀으로 아드님께서 갓 태어난 교회의 어머니로 남겨두신 ‘주님의 종’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어머니와 교회의 특별한 유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당신 아드님께서 떠나신 후 마리아의 모성은 교회 안에 어머니의 중재로 머물러 있다. 곧 마리아는 당신의 모든 자녀를 위하여 전구하시면서 세상의 구세주이신 당신 아들의 구원사업에 협력하는 것이다. 이러한 마리아의 협조는 종속적인 특성을 지니며 유일한 중개자이신 구세주의 중개가 지니는 보편성에 참여하는 것이다.(40항)

 

하늘에 올림을 받은 마리아는 이 구원의 임무를 중단하지 않고 계속하여 당신의 수많은 전구로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의 은혜를 얻어준다.(40항)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개에 종속된 중재로 그 보편성 참여의 영속성을 보여준다. 마리아의 중재 역할은 이 세상에 국한되지 않고 죽은 자들의 세계에까지 미치고 있다.

 

성모 승천의 신비로 주님이신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개의 효과가 결정적으로 성취되었다. 마리아는 불가분의 긴밀한 유대로 그리스도와 결합되어있다. 그리스도께서 처음 오셨을 때 마리아가 특별히 그분과 결합되어 계셨듯이 그리스도의 다시 오실 때 그분과 결합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그리스도께서 마지막으로 오시는 날 어머니로서 자비의 중재자 역할도 수행할 것이다.(40항)

 

그러므로 주님의 종, 마리아(38-41항)의 중재가 그리스도의 유일한 구원 중개에 참여하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 마리아의 신적 모성은 ‘주님의 종’이며(38항), 성령의 배필인 신부의 자세이며, 일관한 존재론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의 협력으로서(39항), 성인들의 통공과 함께 인간들의 은총을 위한 영적 모성으로서 전환되었으며, 종말론적 완성에 이르기까지 쉼 없이 이어질 것이다.

 

 

교회와 모든 그리스도인의 생활 안에서 마리아

 

주님의 여종인 마리아는 아들의 인격과 사명에 완전하게 충실하였기 때문에 교회에서 특별한 예식으로 공경을 받는다. 이는 마리아처럼 교회가 하느님의 충실함을 받아들여 스스로 어머니가 되고, 마리아가 육화의 신비 실현에 공헌한 것처럼 교회도 항상 은총을 통하여 사람들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데 이바지하기 위해서이다.

 

복되신 동정녀는 신적 모성의 은혜와 임무로 구세주이신 아들과 일치되시고, 당신의 탁월한 은총의 임무로 교회와도 밀접히 결합되어 있다. 믿음과 사랑 그리고 그리스도와 이루는 완전한 일치의 영역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는 교회의 전형이다. 그것은 마리아가 주님 탄생 예고에서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주님의 종으로서 어머니로서 아들의 인격과 사명에 완전한 충실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믿음과 순종으로 성부의 아들을 세상에 낳았다. 참으로 남자를 몰랐지만 성령의 그느르심을 받아 아들을 낳은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마리아는 교회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로 공경받으며 교회와 깊은 유대를 맺고 있다. 동정녀이시고 어머니이신 마리아는 교회의 ‘영구한 모범’으로 남아있다. 그러므로 특별히 ‘전형’으로서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 현존하시는 마리아는 끊임없이 교회의 신비 안에서도 현존하고 있다.(42항)

 

마리아는 교회의 신비 안에서 일종의 본보기로 현존한다. 교회의 신비 또한 사람들을 불멸의 새 생명으로 태어나게 하는 데에 있고, 그것은 성령 안에서 교회가 지니는 모성이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단순히 교회의 본보기이며 전형만이 아니라 그 이상이다. 마리아는 아들딸들을 “낳아 기르는 데에 모성으로 협력하시기” 때문이다.

 

교회의 모성은 하느님 어머니의 본보기와 전형에 따를 뿐만 아니라 또한 그분의 ‘협력’으로 이루어진다. 교회는 이러한 협력에서, 곧 마리아의 특징인 어머니다운 중재에서 모성을 풍부히 얻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리아가, 아버지께서 “많은 형제 가운데에서 맏아들로 삼으신” 성자의 어머니로서 이미 지상에 계실 때에 교회의 아들딸들이 새로 태어나고 성장하는 데에 협력하였기 때문이다.(44항)

 

나자렛에서 성령으로 인한 그리스도의 육화와 오순절(성령강림) 교회 탄생의 유사성을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이 두 사건을 연결시키는 이가 마리아이다. 곧 성령의 활동으로 이루어진 은총의 구원 경륜 안에서 말씀의 육화 순간과 교회의 탄생 순간은 고유한 일치를 이루고 있으며, 이 두 순간을 연결시켜 주시는 분이 마리아라는 것이다.(24항)

 

따라서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신비에 불가분적으로 속해 있고, 교회가 탄생되는 그 시작부터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를 바라보듯이 또한 예수를 통하여 마리아를 바라본다. 성령 안에서 이루어진 새 모성으로 마리아는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를 통하여 개개인과 모든 사람을 껴안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교회의 어머니인 마리아는 교회의 본보기이기도 하다. 교회는 하느님의 복되신 어머니에게서 그리스도를 온전히 닮은 가장 진정한 모습을 이끌어낼 수 있다.

 

마리아는 인류의 절대적 수렴자(Ricapitolatore)의 어머니이며 다른 어떤 피조물보다도 더욱 영광스럽게 된 어머니인 이상 모든 인류와 개별 인간의 영적 어머니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느님의 어머니와 더불어 구원 신비 안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잇는 끈을 보존하며, 마리아를 인류의 영적 어머니이시며 은총을 얻어 주는 분으로 공경한다.(47항)

 

그러므로 교회와 모든 그리스도인의 생활 안에서 마리아(42-47항)는 복음 선포와 세례를 통하여 성령으로 잉태된 하느님의 자녀들이 불멸의 새 생명을 갖도록 역할을 다하는 교회가 마리아의 모범을 따라 어머니가 되어야 함을 가르친다(42항). 또한 마리아는 은총과 당신의 모성으로 교회에 협력하며, 성령 안에서 인간 개인에게도 당신의 모성을 선물하여 양육과 돌봄을 실천할 수 있기를 갈망하신다(43항). 특별히 자유롭고 능동적인 봉사로서 육화 사건에 자신을 맡기셨던 역사적 사실을 통하여 여성들과 고유한 관계를 맺고 여성들이 참된 자기 발전을 이룩하는 비결을 발견하도록 격려하신다.(47항)

 

 

마리아의 해의 의미

 

“그리스도 탄생 제이천년기를 마감하는 이 시기에 제가 교회 안에 마리아의 해를 선포하게 된 요인은 바로 인류와 이 어머니 사이에 존재하는 특별한 유대입니다.”(48항)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반포와 함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7년 6월 7일 성령강림 대축일부터 1988년 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까지 14개월을 ‘마리아의 해’로 선포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마리아의 해’는 그리스도와 교회 신비 안에서 복되신 어머니의 특별한 현존에 그 중점을 둔다. 이 새로운 마리아의 해의 목적은 단순히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그 역동성을 준비하는 것이다. 마리아의 해의 한정된 현재라는 개념을 떠나 거시적인 안목에서 미래를 지향하고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 육화 2000주년, 곧 새로운 천년기를 맞이하여 마리아의 해를 통해 그리스도 육화 2000년이라는 장엄한 축제를 준비하고 맞이한다는 대림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계속되고 있는 순례의 여정 중에,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채찍질하여 목표를 향해 줄달음치도록 힘을 돋우고 격려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다시 말해 마리아의 해는 2000년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교회로 하여금 새로운 천년기를 준비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인류와 어머니 사이에 존재하는 특별한 연대를 강조하고, 복되신 동정 마리아에 대해 공의회가 말한 바를 더욱 정성껏 읽도록 촉구하려는 것이 마리아의 해의 의도이다.(48항)

 

또한 정교회 신자와 가톨릭 신자를 막론하고 기도로 일치하며 성모 신앙 안에서 공감대를 누리게 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강조하고 있다.(50항)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의 결론에서 놀랍게도 이 시대의 좌표(협력자)라는 실제적인 용어로 규정하고 이것이 마리아의 해의 목적(의의)이라고 하였다.

 

교황 회칙의 개념은 마리아의 해가 단지 감정적 헌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리아의 해는 우리 세대가 이 역사적 시간의 부르심을 인식하고, 많은 어려움 가운데 있을지라도, 죄로부터 벗어나는 길로 향하기를 바란다.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 사이에서, 그리스도와 그 지체인 교회 한가운데서 중재하고 결속하는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전 인류가 깨닫도록 하는 데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바로 구세주를 이 땅에 오시게 했고, 육신을 보살폈으며, 십자가 아래에서 인류의 어머니가 되었고, 교회가 시작되는 순간에도 함께 있었던, 그리하여 이 세상 끝날까지 교회와 함께 순례하는 동정 마리아의 모범을 이 시대의 신앙인들이 생활화하도록 권장한다. 여기서 동정 마리아, 곧 하느님 어머니의 특별한 현존과 도움이 필요하기에 마리아의 해가 된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천주의 모친이시며 사람들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간절한 기도를 바쳐야 합니다. 당신의 기도로 교회의 시작을 도와주시고 이제 모든 성인의 통공 안에서 당신 아드님께 전구하시어, 그리스도인의 이름을 지녔든 아직 자기 구세주를 모르든, 모든 인류 가족이 평화와 화합 속에서 하느님의 한 백성으로 행복하게 모여 지극히 거룩하신 불가분의 삼위일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게 되도록 기도하여야 합니다.”(50항)

 

그러므로 마리아의 해의 의미(48-50항)는 어머니 마리아와 인류의 특별한 유대와 교회의 신비 안에 계신 어머니의 특별한 현존을 강조하며, 마리아 신심을 통하여 마리아 영성의 풍요로움을 경험한 역사를 기억하고, 마리아와 협력하여 미래의 새로운 전망을 하는 데 있다. 이는 마리아를 ‘순례하는 하느님 백성의 확실한 희망과 위안의 표시’로 바라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통을 잇는 것이다.(48항)

 

주1) “Certissime quidem perfecti Conciliatoris nomen et partes alii nulli conveniunt quam Christo, quippe qui unus, homo idem et Deus, humanum genus summo Patri in gratiam restituerit: <>[1Tm 2,5s]. At vero si ‘nihil prohibet’, ut docet Angelicus, ‘aliquos alios secundum quid dici mediatores inter Deum et homines, prout scilicet cooperantur ad unionem hominis cum Deo dispositive et ministerialiter’, cuiusmodi sunt Angeli Sanctique caelites, prophetae et utriusque Testamenti sacerdotes, profecto eiusdem

gloriae decus Virgini excelsae cumulatius convenit.” DS 3320. [성모기사, 2017년 10월호, 권정대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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