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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교육과 신앙: 어둠 속 탐구 활동에서 발견한 놀라움 - 빛이 없는 세계의 경험이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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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6-20 ㅣ No.330

[과학 교육과 신앙] ‘어둠 속 탐구 활동’에서 발견한 놀라움 - 빛이 없는 세계의 경험이 주는 교훈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보았을 때 의미 없이 좀 안됐다는 생각을 잠시 했을 뿐, 내가 앞을 보지 못하게 되리라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 수 있을지 상상하기도 쉽지 않지만, 그렇게 살기는 정말 어렵다는 태도로 살았다고 해야겠지요.

 

어떤 이유로 시각 장애 학생의 과학 교육을 공부하게 되어 그들이 자연의 세계와 과학 기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조금씩 장애를 갖고 있지만, 특히 감각 기관과 관련하여 시각 장애는 빛[光]과 눈[眼], 청각 장애는 소리[音]와 귀[耳], 지적 장애는 전기(電氣)와 뇌(腦)등과 관계있습니다. 이것은 대부분 과학의 문제가 아닌가 싶어, 일반인도 어렵다거나 재미없다고 하는 과학 공부를 오히려 장애인들은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학생을 ‘잘 안다’고 해도 ‘잘 지도하기’가 어려운데 학생의 생각이나 처지를 모르고 잘 지도하기란 훨씬 어렵겠지요. 그래서 시각 장애 학생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안대로 두 눈을 다 가리고 하는 활동을 한두 번쯤 경험합니다. 그러다가 갑갑하면 살짝 안대를 벗고 보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지요. 이런 ‘안대’의 경험으로 시각 장애 학생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요?

 

 

깜깜한 암실에서 하는 탐구 활동

 

입구에 이중으로 암막을 설치하여 이 막을 통해 들어오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깜깜하여 자리를 찾아 앉는 것조차 어려운 암실을 마련하였습니다(김학범, ‘암실 속 과학 탐구 활동을 통한 시각 장애 학생의 과학 학습 상황에 대한 인식’, 2015년, 대구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참조).

 

 

이렇게 준비한 뒤 자원한 교사 6명을 암실에 들어가게 했습니다. 벽에 붙은 테이프를 손으로 더듬어 따라가다가 번호가 새겨진 곳에 도착하면 자기 번호가 적힌 책상을 더듬어 찾아 의자에 앉도록 말로 안내를 했지요. 자리에 앉아 책상 앞에 놓인 상자를 더듬어 연 뒤 그 속에 있는 물건을 꺼내 그것이 무엇인지 ‘탐구’하게 했습니다.

 

암실에 들어가기 전에 기본적인 설문조사는 했지만, 암실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전혀 알려 주지 않았습니다.

 

초 · 중 · 고 · 대학에서 과학을 가르치는 사람들이지만, 이런 상황에서의 ‘탐구’는 난감한 일이겠지요. 서로 말로만 의견을 주고받고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쳐 그것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알아’냈지만, 누구도 자신 있게 그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된 것인지 단정하지 못했지요.

 

누가 자연의 세계를, 과학의 이론을 언제 어떻게 완전히 알아낼 수 있을까요?

 

여러 활동 가운데 그나마 좀 쉬운 활동은 ‘눈[眼]의 모형’으로 수정체와 조리개, 망막 등을 분해하고 조립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참가자가 한 번쯤은 교과서에서 보았고, 생물 시간에 크게 색으로 그린 그림이나 사진을 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아마 만지며 분해하고 조립해 본 이들도 있을 것이고, 이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친 교사도 더러 있었습니다.

 

- [사진 5] 눈의 구조 모형을 분해한 것.

 

 

참가자들은 처음에 “지구의(地球儀)인가?” 하고 생각했다가 한참을 더듬어 보더니 “아닌 것 같다.”면서도 쉽게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사람이 “눈의 모형 같다.”고 하니, 몇 명이 동조했고 이미 보고 알았던 것을 상기하며 얼마 뒤에는 조심스럽게 분해하기도 했습니다. 전에 보고 공부한 것이어서 그나마 늦게라도 알 수 있었지 전혀 보거나 듣지 못한 상황이었다면 모형만 만져 보고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었을까요?

 

두 번째 과제는 얼음 모형이었습니다. 참가자들은 물의 모형 같다거나 그렇지 않다고 하는 등 여러 의견이 있었는데 끝까지 ‘얼음 모형’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의 교과서에는 얼음 모형이 거의 실려 있지 않으며, 그에 대한 ‘공부’도 하지 않았음을 뒤에 알게 되었습니다.

 

아는 것도 상황이 조금 달라지면 알아차리기 어렵지만, 일부 상황을 알아도 복합적인 새로운 것을 알아내기는 어렵습니다. 더구나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엇인가 알아낸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한계가 있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누가 인체의 신비를, 우주의 질서를, 변하는 사회의 미래를, 창조주의 뜻을 완전히 알아낼 수 있을까요?

 

 

암실에서 과학 활동을 한 뒤의 반응

 

한 시간 동안 눈과 얼음의 구조 등 탐구활동을 한 뒤 불을 켜고 토론했습니다. 지적으로 흥미롭고 중요한 내용은,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새로운 경험과 느낌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과학 학습 지도에 대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 반응이었습니다.

 

첫째, 세상에 나서 처음으로 놀랍고 독특한 경험을 했다는 것입니다. 어둠 속에서 자신이 그렇게 무력하다는 점을 처음 느꼈다는 것과 겸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평상시에 느끼지 못했는데, 정말로 아름다운 이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에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활동에 참여한 시각 장애 학교 교사는 자신이 시각 장애 학생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체험을 통해 그렇지 않다는 점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넷째, 거의 모든 참가자가 교사로서 공부를 못하거나 싫어하거나 안 하는 학생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며 가르치고 있다는 생각을 성찰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섯째, 이 어둠 속 탐구 활동이 과학 교사나 맹학교 교사뿐 아니라 예비 교사들에게 대단히 유익한 경험이 될 것이라는 반응과 주장이었습니다.

 

시작할 때는 시각 장애 학생의 과학 교육을 생각하며 작은 일로 여겼는데, 교육의 연구와 실천에 많은 교훈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교사가 아니더라도 자녀를 기르는 부모나 죄인을 돕는 수도자, 서민을 모르는 정치가, 아니 모든 사람이 한번이라도 경험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여건이 된다면, 이러한 활동을 계속 연구하고, 이 활동이 과학관의 한 가지 체험 활동으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학교와 성당에서 ‘죽으면 그만!’이라거나 ‘죽어서 천당 가라.’는 말 대신에, 지하실에 놓인 관에 들어가는 체험을 하는데 이런 반응을 ‘연구’하면 더 낫겠다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어둠 속 과학 활동을 넘어서

 

광활한 우주 속에서 나는 어떻게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 무슨 복이 있어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을까? 상상하면 ‘끔찍한 일’이지만, 관에 들어가 눈을 감고 생각할 수 있다면,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기뻐했던 일을 생각하며 웃을 수 있을까? ‘여러분, 행복하게 지내십시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눈물을 흘리며 후회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제부터라도 무엇을 ‘잘하겠다’고 결심하며 실천할 수 있을까?

 

아름다운 세상을 창조하신 전능하시고 인자하신 하느님께서 왜 모든 사람을 죽게 하셨는지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아마도 우리의 잘못을 깨닫게 하시려고 또 한번의 기회를 주시는 ‘자비의 일’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부님, 죽기 전에 깨닫고 실천하게 하소서!’

 

* 박승재 데시데라도 - 과학문화교육연구소 소장. 대구대학교 석좌교수.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미국 노던콜로라도대학교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물리교육과 교수, 한국과학교육학회 회장, 국제물리교육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경향잡지, 2017년 6월호, 박승재 데시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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