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종교철학ㅣ사상

과학 교육과 신앙: 벼랑이 완구와 세 밧줄 당기기 놀이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3-18 ㅣ No.318

[과학 교육과 신앙] ‘벼랑이’ 완구와 ‘세 밧줄 당기기’ 놀이

 

 

완구 놀이는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도 재미있어합니다.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것도 그렇습니다. 이러한 놀이 활동과 관련하여 ‘자연을 관찰하고 실험하면서’ 지적 즐거움도 맛보고 과학을 공부할 뿐 아니라, 자연과 과학을 더 크게 생각하는 지혜를 갖도록 할 수 있을까요?

 

실제로 함께 완구 놀이를 즐기고 마당에서 뛰어놀면서 무엇인가 따져보면 좋을 텐데 그렇지 못하면서 글을 쓰는 것의 한계를 느낍니다.

 

또 실험실에서 해야 할 과학 이야기를 글만으로 하려니 얼마나 독자님들과 소통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벼랑이’ 완구 놀이

 

그림 1. 책상 끝에서 멀리 있을 때(왼쪽) 아장아장 걸어오던 벼랑이 완구가 책상 끝에 왔을 때(오른쪽) 딱 멈추는 것은 왜 그럴까요?

 

 

‘벼랑이’ 완구는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참 재미있는 놀잇감입니다. ‘물리’ 공부뿐 아니라 과학의 철학과 ‘묵상’의 과제가 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림 1은 ‘벼랑이’라고 이름 붙인 오리완구로 키는 4cm, 길이는 5cm쯤 됩니다. 오리의 목에 실을 매고 끝에는 작은 돌멩이를 달아 책상 끝에 그림과 같이 늘어뜨려 놓습니다.

 

살짝 건들면 벼랑이는 좌우로 까딱까딱하면서 아장아장 걸어갑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책상 끝에 오면 떨어지지 않고 끝에 딱 멈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누군가 가지고 있는 어린이가 주변에 있다면 한번 같이 놀아보십시오.

 

어떻게 해서 책상 끝에만 오면 딱 멈추는 것일까요? 과학자의 ‘탐구’하는 자세로 여러 번 시도해 보십시오. ‘신기하게도’ 끝에 와서 딱 멈춥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는 걸까요?

 

 

‘세 갈래 밧줄 당기기’ 마당놀이

 

그림 2. 세 밧줄 당기기 설명 : 그림 2-1은 마당에 금을 그은 모양. 그림 2-2는 세 개의 조가 자리를 잡은 모양. 그림 2-3은 밧줄 당기기에서 이기려면 원의 중심에 있는 묶은 밧줄 점을 자기 호를 넘겨야 함을 나타내는 모양의 그림.

 

 

일반적으로 밧줄 당기기는 두 사람 또는 두 조가 양쪽에서 당기게 됩니다. ‘세 갈래 밧줄 당기기’는 다음 그림 2-1과 같이 마당에 원을 그리고 삼등분해서 그림 2-2와 같이 밧줄 세 가닥을 한쪽은 묶고 다른 한쪽을 세 조가 각각 당기는 것입니다. 세 조의 힘이 같다고 하면 움직이지 않겠지요. 어떤 한 조의 힘이 다른 두 조의 힘보다 두 배 강하다면, 다른 두 조는 어떤 ‘작전’을 ‘과학적’으로 짜야 강한 한 조에게 끌려가지 않을 수 있을까요?

 

 

과학실의 한 가지 ‘실험 활동’ 이야기

 

오래전 한국전쟁이 끝난 뒤 대학 실험실에서 행해지던 어떤 실험이 지금도 중학교 과학실에서 행해지고 있다면 믿으시겠어요?

 

그 실험은 용수철저울 3개의 각 끝을 한 점에 모으고 다른 쪽을 세 사람이 각각 다른 방향으로 당기는 것입니다. 당겨서 정지해 있을 때, 세 힘이 평형상태에 있다고 하는데, 곧 두 힘의 합이 한 힘의 크기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용수철에 나타나는 세 힘의 값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두 힘의 값을 더한 것이 한 힘의 값과 같은지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각 용수철의 값에 비례하는 길이와 용수철 간의 사이 각을 측정해서 그림을 그려봅니다. 여러 다른 각으로 당겨서 여러 다른 실험값을 찾아 그려봅니다. 두 힘의 합은 한 힘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세 가지 활동의 ‘물리’

 

위 세 가지 활동 이야기는 초·중학교 과학 시간에 공부한 힘의 합성과 분해를 떠올리시면, ‘아 그것!’ 하시며 웃으실 겁니다. 두 힘의 크기에 비례하는 두 선을 두 변으로 하는 나란한 사변형을 그렸을 때 그 나란한 사변형의 대각선의 길이에 해당하는 것이 두 힘의 합이라는 것 말입니다. 이것이 ‘두 힘의 합’에 대한 ‘물리’입니다.

 

예컨대, 한 물체에 두 힘 3뉴턴과 4뉴턴이 나란하게 작용하면 하나의 힘 7뉴턴으로 작용한 것과 같은 효과가 있지요. 그러나 두 힘을 나란하지 않고 서로 직각이 되게 3뉴턴과 4뉴턴의 힘으로 당기면 어떤 한 힘의 효과와 같은지에 대한 문제이지요.

 

이것은 예를 들면 3cm와 4cm 길이를 두 변으로 하는 직사각형의 대각선의 길이 5cm에 해당하는, 곧 5뉴턴의 한 힘이 대각선의 방향으로 작용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는 것입니다.

 

그의 역도 성립합니다. 한 힘은 그 힘의 크기에 비례하는 직선을 대각선으로 하는 임의의 나란한 사각형의 두 변에 비례하는 힘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것이 ‘한 힘의 분해’에 대한 물리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한 물체를 5뉴턴의 힘으로 당기는 것은 그 물체를 두 힘이 직각으로 3뉴턴과 4뉴턴으로 동시에 당기는 효과와 같습니다.

 

자 다시 벼랑이 완구 이야기입니다. 벼랑이는 지구가 돌멩이를 끌어당기기 때문에 끌려옵니다. 앞에서 공부한 것처럼 실이 오리 완구를 당기는 힘을 책상과 나란한 힘과 그와 수직인 힘으로 나눌 수 있지요(‘힘의 분해’).

 

수평 방향의 힘은 오리 완구를 끌어당겨 앞으로 빠르게 나아가게 하지만, 수직 성분의 힘은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누르기 때문에 마찰 효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합니다.

 

그런데 점점 책상 끝으로 가게 되면 각이 커져서 앞으로 당기는 힘은 점점 적어져 없어지고, 수직 방향의 힘은 점점 커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결국 정지할 수밖에 없는데, 실상 자세히 물리를 따지면 더 복잡하지만 재미있습니다.

 

책상 끝에서 멀리 있을 때와 가까이 있을 때 실과 책상 면의 각이 점점 커지는 것을 예리하게 관찰하는 능력, 각이 달라지면 당기는 힘의 수직과 수평 성분의 힘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지력이 필요하기에, 이것을 키우려고 하는 활동이지요.

 

그림 3. 세 밧줄 당기기 그림에서 노양우와 조영진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당기면 선생님은 손가락으로 당겨도 쉽게 이길 수 있지요.

 

 

세 밧줄 당기기에서는, 힘이 약한 두 사람이 힘이 센 한 사람을 이기려면 둘이 나란한 방향으로 힘을 합쳐 당겨야 유리합니다. 각을 벌려 당기면 불리하지요(‘힘의 합성’).

 

극단의 경우 둘이 반대 방향으로 당긴다면 두 힘의 합은 0이기 때문에 안 당기는 것과 같지요. 두 힘을 합하려면 각을 벌리는 것보다 좁히는 것이 더 좋고, 완전히 나란하게 힘을 모은다면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지요.

 

세상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사람이 힘을 합하면, 백지장도 맞들면, 국민이 단결하면, 각국이 협조하면 큰 힘을 내게 됩니다만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합치는지에 대한 것이지요.

 

혼자가 아니라 이웃과 함께,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두 힘을 합한다면, 각을 벌리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좁혀서, 완전히 나란하게 힘을 모은다면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지요. 언제나 마음과 의견을 합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물리를 공부하고 지도하는 일을 넘어

 

위 활동은 중학교 과학 과목 내용의 극히 일부입니다. 과학을 어렵고 재미없어한다는 것 때문에 나라에서도 야단이고 교사들도 걱정이 많습니다만, 위와 같이 공부할 수 있게 여건을 마련해 주고 열심히 안내하면 어린 청소년들이 재미있게 놀며 공부하지 않을까요?

 

위와 같은 실제적인 체험활동을 한다면 무엇인지도 모르고 외워서 선택하는 과학 공부가 아니라, 또한 ‘시험을 치는 공부’를 넘어서 자연의 사물과 현상에 일정한 법칙이 있다는 것, 그 규칙의 법칙이 언제나 어디서나 멋지게 성립한다는 ‘과학철학’의 주장을 어려운 용어로 설명하지 않아도 가슴으로 받아들이게 되지 않을까요?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이러한 규칙적인 세상을 창조하신 분의 뜻을 담은 ‘말씀’에는 언제나 어디서나 영원한 질서와 그 질서를 바탕으로 한 정의가 담겨있음을 깨닫고 그것을 어린이의 마음에 심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위의 물리 내용을 잘 모른다 할지라도 ‘벼랑이’ 놀이나 그림만 보고도 우리가 세상 욕심에 끌려가다가 어느 사이 구렁텅이에 빠지기 쉬운데, 그 직전에 ‘주님’의 자비로 멈춘다면 우리는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또 멈추는 용기를 주신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묵상할 수 있습니다.

 

완구 놀이처럼 일상의 작은 일에서도 깊은 묵상을 할 수 있으며, 간단한 것을 이해함으로써 온 세상에 적용되는 큰 법칙을 터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박승재 데시데라도 - 과학문화교육연구소 소장. 대구대학교 석좌교수.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미국 노던콜로라도대학교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물리교육과 교수, 한국과학교육학회 회장, 국제물리교육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경향잡지, 2017년 3월호, 박승재 데시데라도]



2,071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