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7일 (수)
(백) 부활 제3주간 수요일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본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기타기관ㅣ단체

배움터를 찾아: 수원교구 시복시성추진위원회 순교영성 강학 - 순교로 지킨 신앙의 영성을 찾아서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2-18 ㅣ No.69

[배움터를 찾아] 수원교구 시복시성추진위원회 ‘순교영성 강학’

 

순교로 지킨 신앙의 영성을 찾아서

 

 

교회에는 다양한 강좌들이 있다. 사순시기와 부활시기 등 전례시기에 따른 특강과 성음악이나 성미술, 성경 공부 등은 물론이고, 사진이나 바리스타 교육 등도 한다. 올 한해 「경향잡지」는 교회 내 강좌를 소개하고자 한다.

 

한국 천주교회는 1984년 103위 시성 이후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집전으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의 시복식을 거행했다. 그리고 계속하여 시복시성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하지만 순교자들에 대한 관심을 높지 않은 게 사실이다. ‘강학’을 통해 순교자들과 신앙 선조들의 뿌리를 찾고 지키려는 강좌가 있다. 수원교구 시복시성추진위원회에서 운영하는 ‘순교영성 강학’이다.

 

 

순교영성 강학이란

 

수원교구 시복시성추진위원회에서 운영하는 ‘순교영성 강학’은 2014년 처음 시작되었다.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을 위해 노력하고, 신자들이 순교자들과 같은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해나가기를 바라는 취지에서다.

 

첫해는 교구청에서 한국교회사 강좌로 강학의 문을 열고, 이듬해부터는 교구청과 성남대리구에서 봄가을로 일 년에 두 학기를 운영한다.

 

전체 과정은 모두 4학기(1학기는 3-4개월)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두 시간가량 듣는 강의로 학기당 11회 남짓한 수업이 이루어진다. 학기 중에는 피정이나 성지순례를 통해 순교현장을 찾아 직접 보고 들으며 느끼는 시간도 갖는다.

 

강좌마다 학기를 마치면 수료증을 수여하고, 2년간 모든 강좌를 마친 이들 가운데 추천된 이는 교구청과 각 대리구와 본당에서 시행되는 순교영성 강학에 봉사자로 활동한다.

 

“강학을 진행하는 데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먼저 103위 한국 성인 호칭기도와 시복시성 기도로 시작합니다. 순교자 전기나 순교자에 대한 책을 낭독하고, 참가자들이 이에 대해 함께 나누는 시간이 마련되지요. 그리고 다 함께 구호를 외칩니다. 선창자가 ‘순교로 지킨 신앙’ 하고 운을 떼면, 모두들 ‘선교로 꽃피우자!’ 하고 외치지요. 그러고 나서 본 강의를 시작합니다.”

 

김동원 비오 신부(수원교구 시복시성추진위원회 총무)는 ‘강학’이라는 말은 마테오 리치 신부가 「천주실의」에서 정의한 대로 ‘옛 경전을 배우고 익혀 자신을 수양하는 것’이라며, ‘수양’과 ‘선교’의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순교영성 강학’의 이름 풀이를 해보자. ‘순교’는 하느님과 진리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바쳐 증언하는 행위를 뜻하며, ‘영성’은 어떤 행동이나 특별한 생활양식을 살아가게 하는 동기를 말한다. ‘강학’(講學)은 본디 학문 연구의 한 방법으로 여럿이 모여 공통된 주제를 놓고 질문하고 대답하며 토의하는 방법이다. 주로 조선시대 유학자들 사이에 성행했는데 우리나라 천주교 수용은 이 강학을 통해 이루어졌다.

 

 

무엇을 배우나

 

첫 번째 학기는 기초과정으로 교회사의 통사를, 두 번째 학기는 한역 서학서로서 동북아시아 유교전통 사회에 가톨릭 신앙을 심어준 「천주실의」와 동양에서의 그리스도교 수행론을 담고 있는 「칠극」을 배운다. 세 번째 학기는 심화과정으로 영성 서적인 「성교요지」를, 마지막 학기는 박해시대 순교자들의 교리서인 「주교요지」와 「상재상서」를 다룬다.

 

한국교회사 강의는 한국 천주교회가 설립되기까지의 과정은 물론 박해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개략적인 역사를 통해 한국교회사의 흐름 속에 면면히 이어지는 순교자들의 순교정신을 배우는 시간이다.

 

「천주실의」와 「칠극」 강의는 조선의 선비들이 스스로 천주교 신앙을 깨닫도록 이끌어준 마테오 리치 신부의 「천주실의」와, 죄악의 근원이 되는 일곱 가지 뿌리와 이를 극복하는 일곱 가지 덕행을 다룬 판토하 신부의 「칠극」을 공부하며 순교신심을 배운다.

 

그리고 이벽의 「성교요지」를 통해 신앙의 뿌리를 찾고, 수신제가(修身齊家)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단계로 신앙을 심화하고 발전시킨다.

 

다음으로, 첫 번째 순 한글 교리서인 정약종 복자의 「주교요지」와 그의 아들 정하상 성인의 「상재상서」를 공부하며 그분들의 신앙과 사상을 만나고, 순교영성을 심화시킨다.

 

 

첫 강학의 장소에서 진행된 수료와 파견

 

2016년 11월 29일 겨울 날씨답게 하얀 입김이 나오는 이른 아침에 천진암 성지로 향했다. 한 학기를 마친 이들의 수료식과 네 학기를 마친 이들의 파견식이 이곳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그동안 강학을 통해 순교 선조들에 대한 면학을 마무리하는 날인만큼 피정과 수료를 겸한 파견 미사가 한국 천주교회 첫 강학의 현장인 천진암 성지에서 이루어진다는 건 뜻깊은 일이다. 한국 천주교회의 발상지에 모여 강학회 터를 찾아가 보고, 한국 천주교회 창립선조들의 묘역을 찾아뵈며 그분들의 지난 여정을 다시 한번 새길 수 있으니 강학을 배우는 이들에게는 더 감회가 새로울 것이다.

 

간밤의 서리와 언제 내렸는지 모를 눈이 남아있는 산길을 따라 걸으며 일정을 시작한다. 아직 녹지 않은 눈을 보니 150여 년 전 순교자들이 걸었을 고통과 시련의 길이 떠오른다.

 

조선교구 설립자 묘역에 도착했다. 평신도 지도자 정하상 바오로 성인과 유진길 아우구스티노 성인, 그리고 정철상 가롤로 복자의 묘소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 앞에서 김동원 비오 신부가 묻는다. “순교신심이란 무엇일까요? 바로 성령으로 채워져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생활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시작된 강의는 정하상, 유진길, 정철상의 간략한 생애와 더불어 조선교구가 설립되는 배경에 대한 내용으로 삼십 분간 계속되었다. 이어 한국 천주교회의 창립선조 5인 묘역으로 다시 발길을 돌린다.

 

계곡의 얕은 물소리와 새소리를 귀에 담으며 고요한 숲길을 따라 한참을 오른다. 오르막으로 한참 동안 계속되는 길을 걷는데, 손은 시리고 숨이 찬다. 성인들의 삶을 생각하면 이쯤은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에 다시 힘을 낸다. 천진암 강학회에서 「성교요지」와 ‘천주공경가’를 저술한 이벽을 비롯하여 이승훈 베드로, 권일신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권철신 암브로시오,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의 묘소 앞에 이른다.

 

“이곳이 한국 천주교의 싹이 돋은 곳이지요.” 햇살 따스한 곳에 자리한 묘소 앞에 둘러 모인 이들에게 김동원 신부의 강의가 이어진다. “만물의 기원 문제에 천주교가 명확한 답을 준다고 하여 이곳에서 7일, 14일, 21일, 28일 되는 날 기도와 단식을 하며 천주를 공경하기 시작했습니다.” 순교영성 강학 수업에서 이론으로 배웠던 것을 현장에 와서 다시 되뇌이는 순간이다.

 

점심을 먹고 무려 3만여 평이나 된다는 ‘한민족 100년 계획 천진암 대성당’터를 촛불 행렬로 돌며 정성스럽게 묵주기도를 바친다. 이곳 8천여 평에 3만여 석 규모의 성당이 세워질 예정이다. 크게 두 바퀴를 돌고 나니 5단이 끝난다. 성모찬송을 바친 뒤 각자의 마음속 간절한 기도를 촛불에 담아 15미터 높이의 거대한 ‘세계평화의 모후 상’ 앞에 가지런히 봉헌한다.

 

성모경당으로 자리를 옮겨 124위 복자 호칭기도를 바친다. 한 사람씩 제단 앞으로 나가면 성 앵베르 범 주교의 유해를 이마에 대며 축복을 해준다.

 

문희종 요한 세례자 주교는 수료와 파견 미사에서 순교영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순교자들의 영성을 우리의 삶을 통해 확장시켜야 합니다. 순교영성으로 무장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며 삶의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 말씀을 전하고 증언하며 하느님 나라 확장을 위해 순교하신 우리 순교자들처럼 우리 삶을 통해서 굳건하게 살아갑시다.”

 

이어 수료증과 개근상을 수여하고, 파견 예식과 안수가 이어졌다. 2016년 2학기에 수원교구청에서 실시한 강학에 참가한 「주교요지」와 「상재상서」 수료자는 99명이다. 성남대리구에서 이루어진 「칠극」과 「천주실의」 수료자는 60명이다. 2년간 4학기 과정을 모두 마친 서른 명은 이날 봉사자 파견 증서를 받았다.

 

 

강학을 듣고 나서

 

제목만 들으면 무겁고 어려울 것 같은 이 수업을 들은 이들의 소감은 정작 어땠을까?

 

“「칠극」과 「천주실의」 강학에 매우 만족합니다. 우리 선조들의 천진암 강학에서 천주교의 횃불을 밝힌 그 불씨가 이번 학기 동안 배운 내용의 전조가 되었다는 점에서 아주 뜻깊었습니다. 아울러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의 그리스도교 전파과정까지 공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참으로 좋았습니다.

 

「칠극」을 통해서는 우리 인간들의 본성을 어떻게 극복하여 하느님의 모습대로 되돌아갈 수 있는지는 남겨진 숙제지만 강의하던 수녀님의 영성을 깊이 전해 받고 저도 힘쓰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정영수 마리아 씨(성 마르코 본당)의 소감이다.

 

이문숙 다리아 씨(단내동본당)는 떨리는 목소리로 소감문을 발표하면서 목이 메어온다. “입으로만 기도하던 어느 날 문득 가슴이 뜨거워지며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의 모습과 한국의 순교자들이 참혹하게 죽임을 당한 것이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순교자들의 피와 땀으로 지킨 신앙을 자녀들에게 전해야겠다는 강한 마음이 들었어요.”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수강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나 후회는 없었는지 묻자 유희자 소사 체칠리아 씨(상현동본당)는 화들짝 놀라며 “아니에요. 절대요.”라며 고개부터 젓는다. “정말 재미있어요. 순교영성이라고 해서 죽으라는 건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그이는 환하게 웃으며 말을 잇는다. “강학을 하면 할수록 겸손해져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하느님처럼 자비로운 마음과 사랑의 마음을 주시라고 기도하게 되더라고요.” 소사 체칠리아 씨는 강학을 듣게 된 것도, 온 가족이 한국 순교성인들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된 것도 모두 하느님의 은총이었다며 다른 이들도 강학을 꼭 배우면 좋겠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김청자 체칠리아 씨(평촌본당)는 강학은 물론, 그 안에서 만난 이들에 대해 감사해하며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았다. “순교영성 강학은 차분히 나의 신앙을 선조들의 순교신앙과 비교하며 되돌아보고 내가 몰랐던 선조들의 거룩하고 순결한 신앙을 조금씩 느끼게 하는, 무척 정적이며 깊이 있는 배움의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우리 조원 모두는 이 강학의 참뜻을 잘 이해하고 거기에 부합하는 듯 조용하면서 서로서로 배려하고 사랑하는 아름다운 공동체의 모습을 끝까지 보여주었습니다. 강의도 좋았지만 매주 만나는 그들을 통해 나의 부족한 신앙을 되돌아보게 하여 더욱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강학에 강사와 봉사자로 활동하는 박용식 스테파노 회장은, 이 땅에 천주교가 들어온 것이 선교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 선조들이 학문을 통해 스스로 받아들인 신앙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며 이렇게 전했다. “선조들이 스스로 피우신 신앙의 꽃을 순교로 지켜내셨으니, 우리도 삶으로 신앙을 증언해야겠지요. 그동안 배운 교리와 가르침을 하나라도 실천하려는 의지가 바로 순교의 시작입니다.”

 

한국 천주교회의 발상지에서 순교성인들에 대한 강의와 그분들의 묘소를 다녀오며 느낀 여운이 강렬해서였을까? 강학을 배우고 난 뒤 감사와 순교영성에 충만한 이들과 함께하면서 그 마음이 전해져서 그랬을까? 그곳에 다녀온 지 며칠이 지나도록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이 순교 전에 한 신앙고백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돈다. “나는 천주교인이오, 살아도 천주교인으로 살고, 죽어도 천주교인으로 죽고자 할 따름이오.”

 

2017년 순교영성 강학은 3월에 시작한단다. 1월 중순에 수원교구 주보를 통해 공지될 예정이라고 하니 많은 이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면 좋겠다.

 

* ‘순교영성 강학’ 문의 ☎ 031-548-1121(수원교구 시복시성추진위원회 사무실)

 

[경향잡지, 2017년 1월호, 글 윤정희 기자, 사진 김민수 기자]



2,283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