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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교황 눈물: 교황 바오로 6세 회칙 인간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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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2-21 ㅣ No.1349

[생명사랑] ‘교황 눈물’ - 교황 바오로 6세 회칙 ’인간 생명‘

 

 

교황 바오로 6세의 회칙 ‘인간 생명’은 피임 등 인위적인 산아제한을 금지하는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을 확인하는 문서로서 1968년 7월25일에 반포되었다. 그러나 이 회칙은 반포 당시 교회 안팎으로 상당히 거센 저항에 부딪히고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교황의 회칙이 교회 안에서 이렇게 반대를 받는 것은 무척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 내용이 산아제한과 피임에 대한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을 재천명하였기 때문이다.

 

피임의 역사는 기원전 19세기 이집트 파피루스에서도 발견될 정도로 오래되었다. 특히, 산업 혁명 이후 급격한 도시화는 가정과 일터를 분리시켰으며 가장이 부양해야 할 자녀들은 이제 경제적인 짐으로 여겨지도록 하는 경향을 가져왔다. 이와 함께 과학과 의료 기술의 발달은 생식과 관련한 과학적 정보를 제공하였고, 그 결과 더 안전한 피임 방법과 도구가 생겨나게 되었다. 또한 성(sexuality)에 대한 인식도 변화되어 자녀출산과 관련된 성에 대한 이해는 나며 간의 상호관계와 만족과 쾌락의 도구로 상용하는 것이 우선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20세기에 들어서 산아 제한(birth control) 혹은 가족계획(family planning)이라는 용어가 일반화되어 있었고, 1960년에는 경구피임약이 발명되어 미국식품의약국(FDA) 판매 승인을 받아서 널리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같은 시기 여성의 참정권이 늘어나고 여성의 사회진출이 증가하면서 자녀출산과 양육이 짐으로 여겨지고 이를 벗어나고자 하는 요구가 팽배해졌다. 나아가 2차 세계대전 후에 급속한 인구증가에 세계 각국의 정부는 경제 성장을 위한 산아제한 정책을 펴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피임을 통한 출산조절은 당연시되었다. 종교적으로 개신교와 성공회는 중대한 사유가 있을 경우 결혼 안에서 피임을 허용한다고 결정하기도 하였다.

 

 

어떤 종류의 인공 피임도 반대한다

 

이러한 사회환경의 변화는 가톨릭교회 내부에도 영향을 주었다. 변화된 세상에 맞추어 교회도 경구피임약과 같은 피임을 허락해 줄 것이라는 기대가 신자들, 특히 여성들에게 퍼져있었다. 이런 사회 변화에 따라 교회에서도 산아 제한을 허용해야 하는 가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교황 비로 11세는 ‘그리스도인의 혼인에 관하여’라고 부르는 회칙 ‘정결한 혼인(Casti Connubii)’을 발표하여 인공피임은 본질적으로 그르다는 교회의 전통을 확인하였다.

 

교황 요한 23세는 산아제한과 피임에 관한 문제를 다루기 위한 특별위원회 ‘인구, 가정, 출산에 관한 연구를 위한 교황청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특별위원회는 1963년 3월 의사, 인구학자, 사회학자 등 평신도 4명과 성직자 2명으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특별위원회 구성 3개월 만에 요한 23세 교황이 선종하셨고 뒤를 이은 교황 바오로 6세가 특별위원회를 계속 운영하였다. 특별위원회는 1963년 10월부터 1966년 6월까지 총 여섯 차례의 회의가 열렸고,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점점 위원 수가 증가하여, 마지막 회의까지 총 55명이 참여하였다.

 

특별위원회는 1966년 6월 교황께 위원회 최종보고서를 전달하였다. 이 보고서에는 참석위원 55명 중 51명이 피임 허락에 찬성하였고 4명만이 소수의견으로 피임 허용은 하느님의 법을 바꾸는 것으로 교회에게 허용되지 않는다는 전통적인 가르침을 고수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이 보고서를 읽은 교황 바오로 6세는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교황은 2년 동안 숙고하면서 결정을 미루다 마침내 1968년 7월 교회의 전통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어떤 종류의 인공 피임도 반대한다는 내용의 ‘인간 생명’을 발표하였다.

 

회칙 ‘인간 생명’에는 ‘혼인의 신성함과 부부사랑과 부성과 모성의 위대함’ 그리고 ‘자녀출산과 양육의 사명의 거룩함’을 가르치며 ‘자연법을 준수’하고 ‘인간 생명 전달에 있어서 창조주의 섭리’를 따르기 위해 가톨릭 신자들은 ‘피임을 거부하고 자연주기법을 따라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가임기 가톨릭 여성의 4분의 3이 피임기구를 사용하고 있었고, 가톨릭 신자의 80%가 인공피임을 찬성한다고 응답하였으며, 실재로 이 회칙이 발표된 후 많은 이들이 가톨릭교회를 떠났다. 바오로 6세 교황은 이런 상황과 결과를 예측하였기에 2년간 수많은 날들 동안 고뇌하였다. 그리고 교황은 쓰디 쓴 잔을 마셔야만 하셨던 게세마니에서 예수님처럼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가톨릭교회의 인간 생명에 대한 숭고한 가르침과 진리를 지켜냈다.

 

 

오랜 고뇌 끝에 가톨릭교회의 인간 생명에 대한 숭고한 가르침 지켜

 

그리고 교황은 이례적으로 회칙 ‘인간 생명’ 반포 일주일 후인 1968년 7월 31일 ‘카스텔 간돌포’에서 열린 일반 알현에서 당신의 고뇌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였다.

 

“나는 이제 이 회칙과 회칙을 준비하는 동안에 느꼈던 나의 심정을 꾸밈없이 밝히려 합니다. 첫째로 나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문제를 연구하여 이 회칙을 마련하는 데에 필요하였던 지난 4년 동안 내게는 이 무거운 책임감이 계속되었습니다. 솔직히 고백하면서 이런 책임감이 내게 적지 않은 정신적 고통을 주었습니다. … 나는 교회와 전 인류에게 해답을 주어야 하였고, 내게 맡겨진 사도적 사명의 의무와 자유를 고려하여 교회의 오랜 전통, 즉 최근에 세 분 전임 교황들의 가르침을 존중해야 하였습니다. … 이 중대한 문제에 대하여 때로는 권위를 가지고 열광적으로 전개하는 치열한 토론도 알고 있었고, 대중과 출판물들의 요란스러운 여론도 들었으며, 아버지요 목자인 나의 마음을 깊이 감동시키는 수많은 사람들, 특히 존경할 만한 부녀들의 어려운 환경과 심각한 체험들도 들었습니다. 또 전문가의 연구와 위정자들의 계획을 뒷받침하는 세계 인구 문제에 관한 학적 보고서도 읽었습니다.

 

이렇게 산더미같이 모여든 논중 앞에서 나는 몇 번이나 당황하였으며, 인간적으로는 이런 문제를 결정하고 선포해야 할 끔찍한 사도적 사명에 스스로의 부당함을 몇 번이나 다시 느꼈습니다. 시대적 여론에 동의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현대 사회가 어렵게 받아들일 나의 의견을 고수해야 할 것인가? 그렇다면 내 멋대로 부부 생활을 지나치게 괴롭히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딜레마에 빠져 몇 번이나 주저하였습니다.”(회칙 인간 생명 부록)

 

이런 오랜 고뇌와 주저 속에서도 결국 바오로 6세는 “진실한 인간적 사랑의 내적 요구와 혼인 제도의 본질적 구조와 부부의 인간 품위와 생명에 대한 부부의 봉사 사명과 그리스도 신자 부부의 성스러움에서 유래하는 신법을 찾기 위해 노력”한 후 이와 같은 결론을 내렸음을 밝혔다.

 

그런데 놀랍게도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 생명’에서 강조한 ‘빌링스법(Billings Ovulation Method)’과 같은 자연주기법이 개발되고, ‘인간 생명’에서 경고한 피임의 폐해가 현실화되면서 바오로 6세의 결정이 예언자적인 안목이었음을 인정하고 ‘인간 생명’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높이지고 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6년 12월호, 지영현 시몬 신부(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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