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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사목] 가족 여정: 동물들의 프러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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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0-20 ㅣ No.959

[가족 여정] 동물들의 프러포즈

 

 

최근에는 여자가 남자에게 구애, 이른바 ‘대시’를 하는 비율이 좀 높아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남자가 여자에게 먼저 대시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이는 생물학적으로 정자의 수는 무궁무진하게 많지만, 난자의 수는 제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남자가 여자보다 경쟁에 민감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기 쉬우며, 다른 사람과 비교되는 것을 유독 싫어하는 원초적인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자들은 웃자고 시작한 일에 죽자고 달려드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동물들의 사랑 이야기

 

짐승들의 세계도 마찬가지로 수컷이 암컷에게 먼저 대시를 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을 살펴보면 꽤 흥미롭습니다.

 

‘고슴도치의 사랑’에 대해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서로를 찌르기 때문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사랑한다는 낭만적인 얘기입니다. 그런데 만일 고슴도치가 실제로 이렇게 사랑했다면 이미 멸종했을 겁니다. 고슴도치의 진짜 사랑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수컷이 다가오면 암컷은 자신의 가시를 날카롭게 세운 뒤 경계합니다. 하지만 수컷은 이에 굴하지 않고 암컷의 등에 올라탑니다. 이때 암컷의 가시가 수컷의 온몸을 찌르게 됩니다.

 

하지만 수컷은 뜻을 굽히지 않고 가시에 찔린 채로 자신의 앞발을 뻗어 암컷을 조금씩 애무합니다. 그러면 암컷은 서서히 경계를 풀고 자신의 가시를 서서히 거두어들이고 결국 짝짓기에 이르게 됩니다.

 

공작은 자신의 꼬리깃을 크게 펼쳐서 화려한 외모를 뽐냅니다. 실제로 깃에 박혀있는 공작의 문장들을 제거하면 짝짓기 확률이 크게 떨어집니다.

 

프레리도그는 짝짓기를 하려고 모여든 수컷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방방 뛰면서 높이뛰기를 시도합니다. 그중 가장 높이 뛴 수컷이 암컷의 사랑을 얻게 됩니다.

 

호주 서부 해안의 오징어는 덩치가 가장 큰 수컷이 암컷을 산호초 밑에 넣어 가둔 채 다른 수컷의 접근을 막습니다. 그러면 덩치가 작아서 힘이 떨어지는 수컷은 자신의 몸 색깔을 암컷과 같은 색깔로 바꿉니다. 곧, 여장을 하여 암컷에게 접근하여 교미를 시도합니다.

 

무섭고 난폭하게 생긴 악어는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사람이 들을 수 없는 낮은 음역의 진동을 발산시키며 구애를 합니다. 악어가 사랑의 노래를 할 때는 주변에 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오게 됩니다.

 

펭귄은 전망이 좋은 곳에 꽃, 열매, 딱정벌레 등껍질 등으로 예쁘게 꾸민 뒤 암컷에게 선물을 하나 준비합니다. 바로 ‘돌멩이’입니다. 이 돌멩이가 펭귄의 ‘다이아몬드 반지’인 셈이지요.

 

수컷 전갈은 사랑을 얻으려고 덩실덩실 춤을 춥니다. 춤을 잘 추면 사랑을 얻게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암컷에게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수컷 얼룩말이 암컷에게 다가가면 암컷의 아버지가 그 앞을 가로막습니다. 그리고 결투가 시작됩니다. 사위와 장인의 사투가 시작되는 것이지요. 사위가 장인에게 승리하면 장인은 기쁜 마음으로 자신의 딸을 내어줍니다.

 

암수가 한 몸으로 되어있는 편형동물의 짝짓기는 어떻게 진행될까요? 둘이 서로 엉켜 싸우면서 자신의 음경을 상대방에게 먼저 찌르는 쪽이 수컷이 되고, 찔림을 당하는 쪽은 암컷이 됩니다. 수컷이 된 쪽은 자신의 씨를 뿌린 뒤 유유히 사라지고 암컷이 혼자서 모든 뒷감당을 하게 됩니다.

 

붉은등거미는 암컷이 수컷보다 다섯 배나 큽니다. 그래서 암컷이 수컷을 먹이로 착각하여 먹어치워 버리곤 합니다. 수컷은 그런 위험을 감수한 채 암컷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짝짓기를 시도합니다.

 

그런데 좀 섬뜩한 건 짝짓기에 성공하게 된 순간 암컷은 새끼들에게 영양을 공급하고자 수컷을 그 자리에서 먹어치운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수컷은 절대 도망가지 않고 암컷의 먹이가 되어야 하는 숙명을 담담히 받아들입니다.

 

 

초심을 잃지 않으며 살아야

 

수컷들이 암컷의 사랑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더군요.

 

저는 고슴도치처럼 아내에게 다가가는 노력을 했는지 되돌아봅니다. 아내가 힘들어서 날카로운 가시를 뻗었을 때 따뜻한 손길을 건네주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내를 위로하기보다 오히려 나의 가시로 아내를 찌르려고 했던 것도 같습니다.

 

공작처럼 아내를 위해 나 자신의 외모에 좀 더 신경 쓰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자신의 외모를 가꿀 수 있게 해주지 못한 것 같습니다. 돈이 많이 든다며 미용실도 자주 가지 못하고, 파마 한번 하려 해도 남편의 눈치를 보던 아내에게 마땅한 화장대 하나 사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합니다.

 

프레리도그처럼 아내를 위해 강인한 체력을 만드는 데 소홀했던 것 같습니다. 운동을 꾸준히 하고, 아이들에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좋은 생활습관의 모범을 보여주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합니다. 그리고 몸이 약한 아내를 위해 보약 한 제 해준 적도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쓰립니다.

 

어쩌면 저는 그동안 호주 서부 해안의 오징어처럼 아내를 ‘집’이라는 감옥에 가두어두려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지 못해서, 아내의 꿈을 지켜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합니다.

 

악어처럼 아내를 위한 사랑의 세레나데를 마지막으로 부른 기억이 언제였는지도 생각이 잘 나지 않습니다. 결혼 전에는 아내를 위해 노래를 많이 불러주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합니다.

 

펭귄처럼 아내에게 사랑의 선물을 자주 해주지도 못했습니다. 옷 한 벌 제대로 못 해줬고, 밥 한번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도록 단둘이 ‘데이트’를 해본 지도 꽤 오래된 것 같습니다.

 

전갈처럼 아내와 함께 춤을 춰본 기억도 가물가물합니다. 비단 춤이 아니더라도 아내와 함께 여가를 보내는 여유가 사라진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픕니다. 아이들을 키우느라, 먹고사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소중한 것을 잊고 살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봅니다.

 

장인과 사투를 벌이는 얼룩말을 보면서 아내와 결혼하고 싶다며 장인어른을 처음 찾아뵙던 때가 떠오릅니다. 그 누구보다 따님을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떵떵거렸던 모습도 눈에 선합니다. 지금은 하늘에 계신 장인어른께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어쩌면 저는 편형동물처럼 씨만 뿌려놓고 자녀를 양육하는 일에는 많이 소홀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과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더 많이 놀아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붉은등거미처럼 목숨 걸고 사랑하겠다던 사랑의 서약을 삶 속에서 실천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동안 말로만 사랑한다고 떠들고 다녔던 것 같습니다.

 

“먼저 다가가고, 먼저 위로하며, 먼저 사랑하는 남편이 되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으며 살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1코린 13,1).

 

* 권혁주 라자로 - 한 여인의 남편이자 세 아이의 아빠로서 서울대교구 사목국 가정사목부에서 일하고 있다. 「아버지여정」, 「부부여정」 등의 가족관계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6년 10월호, 글 권혁주 · 사진 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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