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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신심서적 다시 읽기: 초남이 동정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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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7-11 ㅣ No.290

[신심서적 다시 읽기] 초남이 동정부부

 

 

유중철 요한과 이순이 루갈다는 전주 초남이 마을에서 하느님의 사랑에 아낌없이 응답하기 위해 주문모 신부의 중재로 동정부부로서 정결한 삶을 살다가 순교하였다.

 

유중철 요한은 1779년 전주 초남리에서 아버지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와 어머니 신희 사이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유항검의 어머니 안동 권 씨는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 바오로의 이모이자 권상연 야고보의 고모이다. 유항검은 윤지충을 통해 천주교 신앙으로 입문하게 된다. 윤지충은 윤선도의 후손이며 윤두서의 증손자이고 고종사촌인 정약전, 정약용 형제와 교유하였다. 또 명례방에서 『천주실의』와 『칠극』을 연구하고 묵상하였다. 특히 아버지 유항검은 삶으로 그리스도를 전하였고 어머니는 예수를 가르침으로 삼고 형벌을 받아 죽음을 영광으로 삼았다. 유중철은 아버지를 통해 하느님을 알게 되었고 부모님의 신앙적 모범을 통해 신앙적 영성을 받았으며 부모님의 허락과 지지로 동정부부의 삶을 살 수 있었다.

 

이순이 루갈다의 친정과 외가는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훌륭한 인물을 배출한 유학자 집안이었다. 아버지 이윤하는 이수광의 손자이자 성호 이익의 외손자이다. 어머니 권씨 부인은 조선 천주교 설립의 토대를 닦은 권철신과 권일신의 누이동생이다. 이 루갈다 남매의 옥중서간을 보면 어머니의 건강한 인성적 종교적 양성을 물려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신자들은 신앙에 관한 기본 교리 및 지식을 습득하고 가톨릭 서적을 통해 신앙생활을 심화시켜 나갔다. 그중에서도 마태오 리치(1552-1610)의 『천주실의』와 판토하(1571-1618)의 『칠극』이다. 천주실의에서 독신문제는 계율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선택해 지키는 것이고 식욕과 색욕을 극복하고 정도를 사방에 펴기 위해 불혼이 효율적이라 했다. 『칠극』에서 말하는 동정은 단지 육체에 관련된 것만이 아니고 삶 전체에 관한 것이라 했다. 정덕은 몸도, 마음도 정결하고, 듣고 보는 것, 말과 용모, 옷과 잠자리도 정결해야만 정덕이라고 했다.

 

동정부부의 영성을 보자.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내어 맡기고 일상에서 하느님의 뜻과 은총을 알아차리고 하느님의 뜻에 응답하는 자세여야 한다.”(1테살 5,16-18 참조) 그리고 “두 사람이 맹세하여 4년을 친남매같이 지내는 도중에 십여 차례의 유혹에 빠질 뻔하다 주님의 성혈공로에 의지하여 능히 유혹을 물리쳤다고 한다. 그리고 육체적인 유혹을 이겨 내기 위하여 매일 함께 기도하고 매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초남이의 동정부부 역시 갈라짐 없이 주님의 뜻을 살기 위해 동정의 삶을 살았지만 또 한 분의 동정부부를 보자. 조숙 베드로와 권천례 데레사 부부다. 이들은 권 데레사가 동정 의사가 전혀 없던 남편 조숙을 설득시켜 15년 동안 동정부부의 삶을 살았다. 이들은 극한에 이르기까지 당신을 내어 주신 그리스도께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드리고 싶어 동정을 선택하였다. 이들 독신의 삶은 혼인의 삶보다 더 갈라지지 않고 흐트러짐 없이 하느님을 온전히 섬기고 헌신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천주교는 부부의 동등한 의무와 남녀평등을 가르친다. 그리고 정덕을 존중하며 동정생활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지만 유교사회는 혼인하지 않는 것은 부부의 윤리를 끊고 인류를 멸절시키는 소행으로 간주하였다. 특히 유교이념인 삼종지도, 칠거지악, 불경이부, 내외법 등이 양반가 여성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이기도 하였다.

 

동정부부의 부부관을 보자. 두 사람은 약속하기를 “집안의 재산과 가업을 상속받게 되면 그 재산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동생에게 후히 주어 양친을 부탁하고, 좋은 세상이 오면 각각 떠나서 살자는 언약을 서로 저버리지 말자.”고 약속했다. 동정부부는 보통의 부부들이 영위하는 삶을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했지만 이 밖의 생활에서는 여느 부부들보다 더 깊고 성숙한 부부애를 표현하면서 살았다. 이순이 루갈다가 유중철을 부르는 호칭은 ‘요안’, ‘오라버님’, ‘요안 오라버님’, ‘충실한 벗’, ‘충실한 벗 요안’이 었다. 특히 유중철이 죽은 후 시신의 옷에서 발견된 편지에 “누이여,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납시다.”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면 요한 역시 루갈다에게 깊은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품고 있음을 보여준다.

 

루갈다의 글을 읽어 보면 단순히 가까운 골육뿐만 아니라 어려운 처지에 있거나 사회적으로 자신들보다 못한 이들에 대해서도 깊은 사랑과 연대감을 갖고 있었다. 특히 초남이의 가족들은 엄청난 부를 소유했지만 이를 자신의 소유로 여기지 않았으며 그것을 기꺼이 하느님 공경과 빈민구제에 사용했다는 면에서 『칠극』의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이들 동정부부의 삶을 보면 자신이 성장한 가정에서 물질적인 베풂과 이웃사랑의 정신을 교육받았고 초남이에서 부부로 살면서도 자연스럽게 실천한 것이리라.

 

유 요한과 이 루갈다의 삶을 그려 보면 이들의 삶은 동정과 봉헌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의 귀감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귀감이라는 생각이다. 두 사람이 동정부부로 살면서 하느님을 향한 숭고한 사랑과 신앙의 깊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사랑으로 충만하고, 다른 이들을 사랑으로 대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신앙의 다른 방법을 보여준 것이리라.

 

책을 덮으며 : 성직자와 수도자가 아니면서도 부부의 연을 맺고 동정으로 산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부모님의 신앙적 모범을 통해 영성을 배우고 그 허락과 주변의 지지와 신앙서적(천주실의와 『칠극』 등)이 가치관 정립에 도움이 컸으리라. 그리고 육체적 유혹을 이겨 내기 위하여 함께 기도하고 감사의 삶을 살아 하느님을 온전히 섬기고 헌신하였다. 유 요한이 순교 후 그의 옷에서 발견된 편지는 “누이여,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납시다.” 이 한마디에 이 루갈다에 대한 깊은 사랑과 존경의 마음이 담겨 있지 아니한가? 이 동정부부의 삶을 보면서 하느님을 향한 숭고한 사랑과 신앙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천주실의』 : 마태오 리치가 중국 귀주에서 펴낸 한역서학서. ‘천주에 대한 참된 토론’이란 뜻으로 8편 174항목이다. 유교적인 중국의 지식인(중사)과 가톨릭과 스콜라철학의 서양의 지식인(서사)이 토론하는 내용을 대화체로 엮은 것이다. 신의 존재, 인성은 선하고 공죄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라 생김, 서구 풍속, 사제 독신 등 8편이다.

 

* 『칠극』 : 스페인 출신의 신부 판토하의 저술. 죄악의 근원이 되는 7가지의 뿌리와 이를 극복하는 7가지 덕행을 다룬 수덕서. 유학의 극기설의 한가지로 본다. 성호 이익의 성호사설에서 죄악의 뿌리가 되는 탐욕, 오만, 음탕, 나태, 질투, 분노, 색과 더불어 이를 극복하는 덕행으로 은혜, 겸손, 절제, 정절, 근면, 관용, 인내의 7가지를 말한다. - 『초남이 동정부부』|김성봉 지음|가톨릭출판사 펴냄

 

* 약력 : 월간 『문예사조』 신인상, 월간 『수필문학』 천료. 한국문인협회, 대구수필가협회, 대구가톨릭문인회원. 수필집으로 『내가 선 자리에서』, 『하얀 바다의 명상』, 『느끼며 살며』 등이 있다.

 

[월간빛, 2016년 7월호, 강찬중 바오로(대명성당,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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