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3일 (화)
(백) 부활 제4주간 화요일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소공동체ㅣ구역반

왜 소공동체인가? - 소공동체가 안 된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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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9-18 ㅣ No.138

[특별기고] 왜 소공동체인가? - 소공동체가 안 된다? (12)



Ⅱ. 복음 중심의 교회
 
1. 복음에서 멀어진 교회
 
2. ‘말씀’의 중요성
 
7)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태 16,15)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요한 11,27)

소공동체를 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모르고 있다.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예수님께서 빵을 많게 하는 기적을 일으키셨을 때 사람들이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요한 6,14)라고 말하면서 그분을 억지로라도 모셔다가 임금으로 모시려고 하였다. 그래서 그분을 놓치지 않으려고 끝까지 그분을 끈질기게 따라 다녔다.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요한 6,26-27) 사람들이 예수님을 잘못 알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썩어 없어질 것들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분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분’이시다.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분’은 과연 어떤 분이신가? 그분은 바로 성경이 말하는 바로 그분이시다.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당신의 고향인 나자렛 마을의 회당에서 당신을 두고 예언한 성경 말씀, 즉 이사야 예언서 61,1-2의 말씀을 읽으셨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

당신은 이사야 예언자가 예언한 바로 그분, 즉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분’임을 선포하셨다. 그리고 당신이 읽으신 두루마리를 시중들던 사람에게 되돌려 주시고 말씀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21)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분’은 바로 이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이시다. 이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이시며 예언자이신 그분은 성경에서 이미 예언된 그분이어야 한다. 아무나 “내가 메시아다.” “내가 그리스도이다.”하고 말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분’이 될 수는 없다.

세례자 요한도 예수님께 자기 제자들을 보내어 묻게 하였다.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마태 11,3) 그러자 예수님께서 요한의 제자들에게 대답하셨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듣는 것을 전하여라.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 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마태 11,4-5) 이 말씀 역시 성경에 예언된 바로 그분이시다. “당신의 죽은 이들이 살아나리이다. 그들의 주검이 일어서리이다. 먼지 속 주민들아, 깨어나 환호하여라. 당신의 이슬은 빛의 이슬이기에 땅은 그림자들을 다시 살려 출산하리이다.”(이사 26,19) 그리고 또 이런 말씀도 있다.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그때에 다리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광야에서는 물이 터져 나오고 사막에서는 냇물이 흐르리라.”(이사 35,5-6)

이 말씀들은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바로 그분’이신데 그분이 오시면 예언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그런 분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내 인생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모두 해결할 수 있는 그런 분임을 말하고 있다. 우리 인생에 가장 큰 숙제는 죽음이다. 이 죽음까지도 해결하실 수 있는 그런 분이어야 한다. 죽음까지도 이길 수 있는 그런 분이어야 한다. 그래서 당신은 죽은 라자로를 살리는 기적을 일으키시면서 그의 동생 마르타를 통하여 당신을 알려 주셨다. 마르타가 고백하였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요한 11,27)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11,25-26)

이런 선언을 자신있게 할 수 있는 분이야말로 진정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분 이시다. 그분이 바로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시다.
 

●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요한 17,12)

특별히 요한복음 사가가 전하는 예수님의 수난사화를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위에 소개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요한 17,12)라는 말씀이 예수님의 수난사화에 7번이나 나온다. 당신이 하신 말씀과 당신에게 일어난 모든 사건과 행동이 우연히 일어나거나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모두가 성경 말씀에 예언된 행동과 사건과 말씀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루카 24,25) 그리고 또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루카 24,27) 그리고 또 말씀하셨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루카 24,44-46) 가장 중요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즉 파스카의 신비가 성경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마태 16,13) 그리고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태 16,15)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베드로가 대답한 그리스도는 세례자 요한이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마태 11,3)라고 물은 바로 그 ‘오실 분’이심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그 질문, 즉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태 16,15)의 질문은 바로 나에게 하신 질문이다. 나도 베드로처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있는 그분’임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진정한 고백을 하고 또 그렇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성경 말씀을 열심히 읽어야 한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그 예수님은 성경이 말하는 바로 그분이시다. 성경을 모르는 것은 예수님을 모르는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분’을 알아야 한다. 소공동체를 통하여 말씀 중심의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중대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월간빛, 2013년 9월호,
박성대 요한(제2대리구장, 주교대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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