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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ㅣ미사

[축일] 남북통일 기원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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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3-25 ㅣ No.1399

[전례돋보기] 남북통일 기원 미사 

 

주님의 평화가 이 땅에

 

 

전세계 유일의 분단국인 우리나라는 6월 25일이나 그 전 주일에 남북통일 기원 미사를 드린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인 이날 한국 교회는 남북한의 진정한 평화와 민족의 화해, 일치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며 통일을 향한 노력을 다짐한다. 아울러 이날을 통해 신자들이 용서와 사랑을 배우도록 가르치고 있다. 

 

 

1965년 이후 해마다 기원 미사 

 

올해로 분단이 된 지 무려 62년째다. 그토록 염원해온 통일이지만 좀체 결실을 맺지 못한 채 긴 세월이 흐르고 있다. 익숙해지지 않아야 할 분단의 상황임에도 시간 앞에서 통일의 절실함이 퇴색되어지는 안타까움이 짙다. 6·25를 겪은 세대들이 역사의 뒤안으로 점차 밀려나면서 분단된 땅에서 태어나 자란 전후 세대는 분단을 익숙하게 받아들인다. 

 

이런 시대의 무심함을 일깨우고 다시금 민족의 화해, 일치를 되새기고자 교회는 해마다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미사를 바치고 있다. 

 

통일 기원 미사의 역사는 깊다. 한국 교회는 1965년부터 해마다 6월 25일에 가까운 주일을 ‘침묵의 교회를 위한 기도의 날’로 정해 미사를 바쳤다. 이후 1992년 그 명칭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로 바꾸었고, 2005년부터는 이날을 6월 25일이나 그 전 주일에 지내기로 하였다. 

 

아울러 교회는 이 미사가 민족통일에 국한하지 않고 우리 삶 안으로 깊숙이 들어오도록 하고자 신자들로 하여금 용서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 한다. 용서로 미움을 없애고 일치로 분열을 이겨내어 주님의 평화가 이 땅에 찾아오도록, 그리고 우리 각자의 삶 안에 스며들도록 권고한다. 

 

또한 고통 받고 있는 북녘의 우리 민족에 대한 주님의 자비를 청한다. 그들의 고통이 곧 내 민족, 내 이웃의 고통임을 보게 한다. 북쪽의 인권상황, 해마다 급증하는 탈북자, 이 땅의 새터민들. 교회는 그들이 모두 우리가 주님의 자비하심 안에서 돌봐야 할 우리 자신임을 일깨워준다. 

 

 

분단은 일치를 원하시는 주님 뜻에 역행 

 

입당송은 분명히 말한다. “나는 재앙이 아니라 평화를 주노라. 나를 부르면 너희 기도를 들어 주고, 사로잡힌 너희를 모든 곳에서 데려오리라”(예레 29,11.12.14). 주님은 평화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재앙, 미움, 분열을 원치 않으신다. 우리의 분단 상황은 주님의 뜻에 어긋나는 모습이다. 

 

전쟁과 분단은 가족을 찢어놓았다. 애타게 가족을 기다리는 노파의 애끓음을 주님은 가엾이 여기신다. “흩어진 사람들을 모으시고 모인 사람들을 지켜 주시니, 남북으로 갈라진 저희 민족을 자비로이 굽어보시어, 평화 통일을 이루어 주시고 흩어진 가족들이 한데 모여 기쁘게 주님을 찬미하게 하소서.” 미사를 시작하며 드리는 본기도는 흩어진 가족들의 염원을 담는다. 남북으로 갈라져 생사도 모른 채 살아가는 고통을 주님은 그 누구보다 안타까워하실 것이다. 62년의 세월은 한없이 길지만 미사를 통해 그 기다림 안에 깃든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작은 희망의 불씨는 <제1독서>를 통해 확연히 드러난다. 신명기 30,1-5의 말씀은 모세의 입을 빌어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다시 모아들이실 것임을 일러준다. 그것은 희망의 말씀이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의 운명을 되돌려 주실 것이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또 너희를 가엾이 여기시어,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흩어 버리신 모든 민족들에게서 너희를 다시 모아들이실 것이다.” 이 얼마나 위안이 되는 말씀인가. 오랜 기다림에 지친 이들에게 이 말씀은 사랑이 가득한 토닥임이며 희망의 메시지다. 

 

화답송 역시 “주님, 흩어진 당신 백성을 모으소서, 이스라엘을 흩으신 분이 그들을 다시 모으시고, 그들의 근심을 거두고 즐거움을 주리라, 내 백성을 내 선물로 가득 채워 주리라”와 같은 위로와 희망을 반복해서 들려준다. 

 

 

용서와 사랑이 민족 통일의 선행조건 

 

이어지는 <제2독서>와 <복음>은 일치와 통일을 이루기 위해 우리 자신이 해야 할 바를 일러주는 수순을 밟는다. 그것은 바로 용서와 사랑이다. 

 

<제2독서>는 “서로 용서하라”는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4,29-5,2)이다.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전쟁이 할퀸 모든 상처, 원한, 반목을 내려놓으라고, 이를 위해 용서하라고 권고한다. 

 

<복음>은 보다 구체적으로 얼마만큼, 어떻게 용서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일러준다. 마태오 18,19ㄱ-22를 통해 예수님은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하고 묻는 베드로의 물음에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라고 분명하게 밝히신다. 이 얼마나 어렵고도 어려운 주님의 말씀이신가. 

 

형제가 형제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민족이 민족을 해친 그 깊은 상처는 잘잘못을 따져서 결코 해결될 수 없다. 오히려 그럴수록 상처는 더욱 깊어질 뿐이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더러 끝까지 용서하라고 요구하신다. 그 길만이 동족상잔의 비극을 마무리 짓고 일치와 화해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출구이기 때문이다. 

 

평화는 누구나 염원하는 바이지만 그 길을 가려면 용서와 화해, 사랑의 강을 건너야만 한다. 6.25는 크나큰 상처다. 하지만 그 상처는 꽁꽁 싸매고 곪아터지도록 두어야 할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치유해야 할 우리 모두의 몫이다. 

 

<영성체송>은 이러한 일치의 염원을 짧지만 강력하게 기도한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주는 끈이니, 무엇보다 사랑을 입어라.” 

 

※ 참조 : <매일미사> (2012.6) 

 

[복음화를 위한 작은 외침, 2012년 7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정리 최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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