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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영성의 삶: 그리스도를 통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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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12-19 ㅣ No.1506

[영성의 삶] 그리스도를 통하여…

 

 

삼종기도나 식사 전 기도 끝에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라는 맺음말을 붙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성무일도나 미사 기도문에도 대부분 이 맺음말이나 비슷한 맺음말을 사용합니다. ‘왜 이런 맺음말을 기도문 끝에 붙일까요?’ ‘이 맺음말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나요?’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버지께 갈 수 없다는 성경 말씀을 떠올리셨거나1) 아니면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고 형식적으로 했던 경우가 많으셨을 것입니다. 이 표현은 큰 의미 없는 단순한 맺음말이 아니라 아주 중요하고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통하여’라는 표현을 곰곰이 살펴보면 얼마나 중요한 표현인지 깨닫게 됩니다.

 

예전에는 “우리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라고 맺음말을 했습니다. 이 맺음말은 예수님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루어 주시겠다는 성경 말씀에 기인합니다.2)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하면 어떤 것이든 다 이루어질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이 충만하시기에 언제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주님 안에 머무는 삶입니다. 주님만이 참된 기쁨과 행복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시기에 항상 마음 안에서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마음이 주님을 향하고 있다면 이미 행복을 찾았고 행복 안에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이름으로 청하라 하신 것은 이렇게 당신 안에서 행복한 길을 찾길 바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내세우기 위해서는 그분의 이름에 합당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뜻 안에 머무는 사람이 그분 이름에 합당한 사람입니다. 또한 예수님 이름으로 청한다는 것은 그분께 합당한 것을 청한다는 것이 됩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무조건 예수님 이름으로 청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뜻 안에 머물면서 그 뜻에 맞는 청원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는 것은 이렇게 그분 이름에 합당한 사람, 즉 그분 안에 항상 머물고 있는 사람, 그분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 그분의 뜻에 맞는 것을 청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부께로 가는 길을 활짝 여셨고, 당신께서 그 길을 직접 걸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주님과 함께 그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주님께 청하기에 앞서 그 길을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것이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할 수 있는 사람도 그분 안에 머무는 사람, 그분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아이들의 놀이 도구인 모양 맞추기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모는 세모 모양의 홈이 난 장난감에 끼워야 맞춰집니다. 만약에 네모를 세모 홈에 끼우면 맞지 않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통하기 위해서는 그분의 뜻과 같아야 합니다. 주님의 뜻은 주님을 바라보고 살아갈 때, 그분 안에 머물 때 더 잘 깨닫게 됩니다.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영성생활은 주님의 뜻을 가장 잘 알기 위한 생활이고, 그리스도를 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바탕이 됩니다.

 

이렇게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는 기도문의 끝맺음은 영성 생활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웁니다. 그저 말 표현만 되풀이하는 기도가 아니라 주님과 함께하는 마음 안에서의 기도가 진정한 기도임을 다시 깨닫게 합니다. 비록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더라도 이 끝맺음을 바칠 때는 그렇게 살겠다는 의지와 결심을 다지면 됩니다. 또한 짧은 순간일지라도 그렇게 살지 못하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된다면 조금씩 그러한 삶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빌 때 한 가지 더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기도를 바치는 모든 이가 주님의 뜻 안에 머물기를 바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기도의 맺음말에는 모든 이가 하느님께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이가 하느님께로 나아갈 수 있기를 희망하며 간절히 청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신앙은 자기 한 사람만의 만족이 아니라 부족하더라도 옆의 사람과 손을 맞잡고 주님께 함께 나아가게 합니다. 교회 공식 기도 맺음말인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라는 표현은 우리 모두 마음을 모아 주님께 나아가자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모든 이가 하느님께 나아가는 것은 그저 같이 모여 기도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세 사람이라도 모인 곳에 함께 있겠다고 하셨는데3) 단순히 몇 명이 모여 기도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몸이 모이는 것보다 마음이 모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의 뜻 안에 함께 머물겠다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진정한 신앙공동체는 한 마음으로 하느님 뜻 안에 모이는 영적 공동체입니다.

 

신앙인은 공동체 정신을 중요시 합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공동체 정신은 자신을 포기하고 남을 배려하며 살아가는 것으로만 인식합니다. 이는 세상에서 모범이 되는 공동체일 뿐입니다. 신앙공동체는 서로 양보하고 맞추며 살아가는 것을 넘어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하나의 신비체인 공동체입니다.4)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지체들의 모임은 그리스도의 뜻 안에서 한 마음으로 모인 공동체입니다.5) 어디에 있든 각자 삶의 자리에서 주님을 바라보며 그분 안에 머물 수 있다면, 이들은 마음으로 하나 된 진정한 영적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빈다는 것은 이렇게 주님의 뜻 안에 머문 이들이 마음을 모아 드리는 기도이고, 또한 그러한 마음으로 살아갈 것을 희망하는 기도입니다. 그저 의례적으로 되풀이했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라는 말을 이제는 그 분의 뜻 안에 머물고자 하는 열망을 담아, 다른 이들과 함께 마음을 모아 바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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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2)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요한 14,13)

3)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19-20)

4)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키시고, 만물 위에 계신 그분을 교회에 머리로 주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모든 면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습니다.”(에페 1,22-23)

5)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1코린 12,27)

 

[월간빛, 2020년 12월호, 서보효 라이문도 신부(교구 성직자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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