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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하는 커피23: 신을 만나러 가는 길 위의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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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10-26 ㅣ No.618

[사유하는 커피] (23) 신을 만나러 가는 길 위의 커피


이슬람 수피교 수행과 의식에 커피는 필수

 

 

신을 만날 수 있을까? 있다면 적어도 두 가지가 있을 성싶다. 하나는 아폴론적이고, 다른 하나는 디오니소스적인 길이겠다. 두 길은 각각 성경을 이성적으로 탐구하며 진리를 더듬어간 교부들의 길과 직관이나 황홀경을 통해 접신을 시도했던 신비주의자들의 순례길이기도 했다.

 

커피가 13세기에 거대한 그룹을 형성한 수피교의 신자들에게 신과 합일로 나아가는 길에 요긴한 음료가 돼 준 것은 운명적인 사건이었다. 이슬람 수피교도들은 불교로 치면 참선으로 해탈을 이루려는 선승이고, 힌두교에서는 고행을 통해 시바신을 만나길 소망하는 요가파 성직자를 닮았다. 영지주의 영향을 받은 측면도 있다. 또 금욕주의를 실천했다는 점에서는 700여 년을 앞서 산 성 베네딕도회 수도사들의 모습이 비치기도 한다.

 

수피라고 불린 이유에 대해서는 ‘지혜’라는 뜻의 그리스어 소피아(Sophia)에서 비롯됐다는 설, ‘순수’를 의미하는 아랍아 ‘사파(Safa)’에서 유래했다는 설, 마호메트가 세운 메디나의 성원(Mosque)에서 맨 앞줄을 뜻하는 ‘수파(Suffa)’에서 왔다는 등 여러 견해가 있다. 수피들은 주로 하얀색 양털 옷인 ‘수프(Suf)’를 입는데,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될 때 입은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커피는 이들의 수행을 도왔다. 식욕을 떨어뜨리는 쓴맛과 텁텁함이 금욕주의 실천을 위해 음식을 멀리하려는 수피들에게는 제격이었다. 그들이 조상으로 여기는 아브라함이 ‘신의 친구’라는 반열에 오를 수 있던 것이 잠을 자지 않고 기도했기 때문이라고 믿었던 점도 커피 전파에 기여했다. 밤새 기도하려는 수피들에게 각성효과로 졸음을 쫓아주는 커피는 실로 ‘신이 내린 음료’였다. 여기에 커피를 마시면 지옥 불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소문도 고단한 순례의 길에 커피를 곁에 둘 중요한 이유가 됐다.

 

결국, 수피들의 의식에 커피가 포함됐다. 이들은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수피댄스를 추며 황홀경에 빠지고 이를 통해 신을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 수피들은 춤을 추기 전에 빙 둘러앉아 빨간색 잔에 커피를 따라 돌려 마신다. 빨간색 커피잔은 ‘신과의 합일에 다다르는 관문’을 의미한다.

 

수피교도들이 신을 만나기 위해 디오니소스적 행동을 보인 것은 사실 불의에 대한 몸부림이었다. 무함마드 사후 물질을 추구하는 한편 구약성경과 꾸란에 대해 극단적 이론화로 치닫는 이슬람에 대한 정화운동의 일환이었다. 이들은 신에 대한 사랑을 통해 신의 뜻을 직접 구하고자 하는 체험 신행을 선택했다. 여기에는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초자연적 존재인 신을 만나긴 힘들다는 인식이 깔렸다. 신이란, 인간이 찾아 나선다고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다. 인간은 사랑을 실천하면 신의 선택 또는 초대를 받아야 한다.

 

수피교는 이슬람을 전 세계에 전파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커피로 전염병을 고치며 수많은 사람을 구한 예멘의 오마르, 커피 씨앗을 몸속에 숨겨 인도로 건너간 바바부단, 아덴의 정신적 지주 게마레딘 등 이슬람을 오지의 마을까지 전하는데 기여한 사람들은 대부분 수피교 수행자들이었다.

 

인간이 죽어야만 영혼이 일어나 신을 만나러 떠날 수 있는 것일까? 이를 인정하기 싫었던 수피교도들은 뇌 속까지 들어가 정신에 작용하는 카페인에 기대를 걸었던 것 같다. 뱅뱅 돌기까지 하면서 뇌를 혼돈에 빠뜨려 몽환적 상태가 돼야 그들은 신을 만났다. 이를 위해 마약까지 먹는 그룹도 있다. 그런 상태에서 신을 만났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실제 신을 만났느냐고 물어보는 것은 더 어리석다. 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만남을 시도하는 것이 무리한 의식과 소음을 만든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10월 25일, 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단국대 커피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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