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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행복을 찾아서: 친절 - 따뜻한 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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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8-17 ㅣ No.946

[행복을 찾아서 – 친절] 따뜻한 새해

 

 

역사상 가장 친절했던 사람은 누구일까? 흥미롭게도 이에 대한 정설도 논의도 없다. 가장 악랄한 살인마나 최고의 욕심쟁이 등에 대한 이야기는 넘쳐나지만, 가장 따뜻하고 착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다. 억지로 찾아봐도 진부한 위인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친절에 관한 책도 가뭄에 콩 나듯 한다. 어린이용 도서를 제외하면 고작해야 「오늘부터 자신에게 친절하기로 했다」는 식의 달달한 위로서나, 「친절을 파는 15가지 원칙」 등 마케팅과 관련된 책이 있을 뿐이다. 현대인에게 친절은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거나 고객에게 제공하는 서비스 정도로 인식되는지도 모르겠다.

 

 

친절에 대한 오해

 

친절은 따뜻하고 착한 태도를 말한다. 정겹고 착한 행동으로 상대를 만족스럽게 하는 것이다. 물론 어떠한 의도도 없어야 한다. 돈 받고 하는 친절은 그저 용역을 제공하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요구할 뿐, 스스로 친절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따뜻한 태도는 다른 재화와 맞바꾸는 것이니, 거저는 친절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다른 사람의 친절을 보아도 뭔가 속으로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라는 말이 있다. 타인에게 너무 잘해 주면서, 스스로 고통스러워하는 심리적 현상을 말한다. 부당한 요구에도 고분고분하고 순종적으로 행동하다 보니, 정작 남의 뒤치다꺼리만 하면서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인다. 자신도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있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궁금하면 주변 친구에게 “나는 너무 착한 것 같지?” 하고 물어봐도 좋겠다.

 

친절하고 따뜻한 행동 하나하나에 전혀 감정적 손해를 보지 않으려니, 받은 친절과 준 친절 간의 대차 대조표를 마음속에 만들고 있다. 그런데 빌린 돈은 잊어도, 빌려준 돈은 잊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니 세상 사람이 죄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라는 자체 진단을 내리는 것이다. 오진이다.

 

 

현대 사회의 친절

 

친절에 대한 가장 부적절한 사회적 현상이 ‘친절상’이다. 회사나 기관마다 직원에게 친절상을 준다. 서비스 업종에서는 직원의 친절도를 평가하여 성과급을 매긴다. 학교에서 받은 친절상은 대학 입시 때 가점도 받는다.

 

친절상을 두고 싸움도 난다. 서로 받겠다고 하면서 주변 직원에게 자신을 추천하라고 종용한다. 다른 사람이 친절상을 받으면 질투심에 이글이글 타오른다. ‘내가 더 친절한데, 왜 쟤가 칭찬을 받느냐!’는 것이다. 시기와 질투라는 칠죄종에 대비되는 칠추덕이 바로 친절인데, 정작 친절을 두고 시기심에 빠지니 이런 모순이 달리 있을 수 없다.

 

친절, 곧 이타적인 행동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도 마찬가지다. 연구의 방향은 대부분 똑같다. 이타적인 행동이 사실 행동의 공여자에게 도리어 이득을 준다는 것이다. 물론 당연한 말이다. 상식적으로 착하고 친절한 사람은 친구도 많아지고 주변의 보답도 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친절하면 복이 오니 친절하라고 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진짜 착한 사람은 아무도 모르게 친절을 베풀기 때문에 보답받을 방법이 없다.

 

게다가 연구 결과를 보고 ‘아, 따뜻하고 착하게 살면 도리어 이득을 얻는군!’ 하며 생각하니 안타까운 일이다. 심지어 그런 연구를 들이대면서 “얻는 것이 있으니 더욱 친절하시오!” 하는 사람도 있다. 목적이야 어쨌든 친절해지면 좋은 일이니, 상관없지 않느냐고? 처음부터 보상을 바라고 친절을 행한다면 그저 ‘투자’나 다름없다. 진짜 따뜻하고 착한 사람마저 이리에 밝은 투자자로 바꾸어 버리는 것이다.

 

 

진정한 친절을 찾아서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세에는 뭔가 바라지 말고 대신 내세의 복이 있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그 또한 친절상에 욕심내는 직원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상을 주는 주체가 하느님으로 바뀔 뿐이다.

 

대인 관계에서 이득과 손해를 계산하는 심리적 모듈은 유독 인간에게 고도로 발달되었다. 이는 복잡한 사회 구조를 지탱할 뿐 아니라, 나쁜 사기꾼을 물리치는 강한 힘을 가진다. 반드시 필요한 인지적 능력이다. 그런데 따뜻한 배려나 착한 친절은 타인 지향적 가치다. 절제나 근면, 인내 등 내적인 덕목과는 다르다. 그래서 친절을 행할 때는 이득 · 손해 모듈이 자동으로 켜진다. 분명 뭔가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메말라 죽어 가는 풀을 보고 물을 준 적이 있는가? 물을 주면서, 풀이 다시 생생해지면, 물값을 청구할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길고양이에게 먹을 것을 주면서, 금전 출납부에 ‘2019년 1월 1일 멸치 일곱 마리’라고 적어 두는가? 이득 · 손해 모듈이 아예 켜지지도 않는다.

 

우리 마음에 있는 이득·손해 모듈은 유독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만 활성화되는 특징이 있다. 개에게 만 원짜리 사료를 줄 때는 기분이 좋기만 하지만 친구에게 사 준 5천 원짜리 분식값은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러한 비용을 꼭 보상받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사람은 대부분 친절하고 따뜻한 행동을 하고 싶은, 막연하지만 선한 마음이 있다. 그런데 막상 눈앞에서 상대를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이 녀석이 나에게 했던 못된 행동도 생각나고, 왠지 친절하게 해 주어도 돌려받지 못하고 손해 볼 것만 같다. 선뜻 정겨운 행동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이다. 차라리 그 돈으로 고양이에게 줄 멸치를 산다.

 

뭔가를 받으면 반드시 보답하는 친구라는 확신이 들어야 비로소 마음이 움직인다. 그런 것도 없다면 ‘천국 입학시험에 가산점이라도 되지 않을까?’라고 위안을 삼아야 편해진다. 이도 저도 아니면 터무니없는 손해를 본 것 같아서 도무지 견딜 수가 없다. ‘내가 왜 저 고마워하지도 않는 배은망덕한 녀석에게 친절을 베푼 것인가?’라는 생각에 이불을 뒤척이며 밤잠을 설친다.

 

친절은 시기에 반대되는 덕목이다. 착하고 따뜻한 타인 지향적 태도와, 남을 부러워하며 상대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시기심이 공존할 수 없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시기심에서 진정한 친절을 베푸는 심리학적 팁을 얻을 수 있다.

 

시기심이란 스스로 손해를 본 것도 없이 상대에게 미운 감정이 드는 심리적 현상이다. 반대로, 주고 나서 아까워하지 않는 마음이 친절이다. 혹시 살면서 까닭 없이 남을 시기해 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까닭 없이 남에게 따뜻하고 착한 사람이 될 자질은 충분하다.

 

* 박한선 - 정신과 전문의. 신경 인류학자.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강사로 지내며, 서울대학교 비교무화연구소에서 인간의 정신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목동병원, 서울대학교 병원, 성안드레아병원에서 일했다.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를 펴냈다.

 

* 이소영 수산나 - 홍익대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미술학과 동양화전공 미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심홍 이소영의 수묵일러스트레이션」, 「꽃 속에 마음 담은 우리 옛그림」을 펴냈다.

 

[경향잡지, 2019년 1월호, 글 박한선 · 그림 이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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