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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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복음으로 세상보기: 함께 사는 것이 그리도 어렵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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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4-02 ㅣ No.1498

[복음으로 세상보기] 함께 사는 것이 그리도 어렵나요?

 

 

<사례 1>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 주민들이 자발적인 모금에 나섰습니다. 각각 직장암과 신장암에 걸린 것으로 확인된 40대 중반의 경비원 두 사람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3년 동안 이 아파트에서 경비와 보안업무를 담당하던 이들이 암 때문에 직장을 떠나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주민들이 앞장 선 것입니다. 불과 한 달도 안 돼 2천만 원이 넘는 돈이 모여 경비원들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금함에는 “꼭 쾌차하셔서 아파트로 돌아오세요.”라는 편지글도 있었다고 합니다.(2018.2.23. 연합뉴스 요약)

 

 

<사례 2>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는 2018년 1월31일부로 경비원 94명을 전원 해고하겠다고 통보하고 새로운 경비용역업체 선정에 나섰습니다. 입주자 대표회의는 경비업무 관리의 어려움과 최저임금 인상 등과 비용 문제를 사유로 들었습니다. 이 아파트 단지는 24시간 격일 근무하는 경비 인원을 28명으로 줄이고, 관리원을 신설해 70명을 고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입주자대표회의 측은 앞으로 경비원 고용은 용역업체를 통해 하고, 현재 경비원들도 용역회사를 통해 재고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경비원들은 용역 전환을 재고해달라고 했지만 결국 해고예고통지서를 받았습니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정리 해고를 위해선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하고,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한 뒤 노조와 성실히 협의해야 합니다.

 

경비원 해고에 반대하는 입주민들도 적지 않습니다. 한 입주민은 가구당 매달 3천570원만 보태면 되는데, 이 정도 부담이 어려운 일은 아닐 거라는 글을 써 붙이기도 했습니다. SBS는 입주자대표회의 측의 입장을 들어보려 했지만, 응하지 않았습니다. (2018.1.5. SBS 보도 정리)

 

 

<사례 3>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아파트 단지 곳곳에서 경비원 해고나 휴게시간 확대 등 각종 ‘꼼수’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서울 광진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아무런 조건 없이 경비원 임금을 올리기로 했습니다.

 

이 아파트의 입주자대표회의에 따르면 이 아파트 주민들은 최근 경비원 월급을 지난해보다 약 30만원 오른 209만원으로 올리기로 의결했습니다. 올해 시간당 법정 최저임금인 7천530원을 적용한 결과입니다.

 

3개 동에 537가구의 이 아파트는 용역업체를 통하지 않고 경비원 8명을 직접 고용하고 있습니다. 경비원들은 24시간 격일제로 근무하며 점심 2시간, 저녁 1시간, 심야 4시간 30분 등 총 7시간30분의 휴게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경비원 임금 인상으로 각 가구에서 매달 부담해야 하는 관리비는 6천 원가량 늘어나지만 이 아파트 주민들은 경비원을 단 1명도 줄이지 않고, 휴게시간을 늘려 임금을 적게 주거나 식대·교통비 등을 삭감하는 편법도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경비원도 한 집안의 가장이고 가족을 부양해 먹고 살 수 있게 사회가 약속한 만큼의 임금을 주는 게 당연하다”며 “비싼 커피 한 잔을 안마시면 충분히 부담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경비원도 주민과 다 똑같은 사람인데 임금을 인상하면 그만큼 아파트를 잘 관리해 주지 않겠느냐”며 “혜택은 결국 주민에게 돌아가게 돼 있고, 이것이야말로 아파트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경비원들은 입주자대표회의 결정을 반겼습니다. 경비반장 임 모씨는 “다른 아파트야 속사정까지 알 수 없으나 TV만 틀면 뉴스에서 경비원을 해고한다는 안 좋은 이야기만 나와서 불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며 “이렇게 결정해준 주민들이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습니다.(2018.1.19. 연합뉴스 요약)

 

각자의 처지와 속사정이 달라서이겠지만 똑같은 문제를 두고 대처하는 방법이 확연하게 다릅니다. 언제인가부터 모르겠지만 모든 것을 돈으로 계산하는 상업주의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얼마면 돼?”라는 말이 흉측한 칼날이 되어 돌아다닙니다. 사람의 생명도, 귀중한 인권도, 포근한 가정도, 뼈를 깎는 노고도 모두 돈으로 환산됩니다. 사고가 나면 보상과 보험금을 따지고, 메달을 따면 포상금을 따지며, 얼마의 이득이 남고 얼마의 손실이 있는지가 모든 것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조차 얼마짜리 신자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평생을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야 할 배우자가 얼마짜리 남편으로 평가됩니다. 먹고 살아야할 음식도, 아프면 받아야할 치료도, 배워서 성장할 교육도 모두 돈귀신, 맘몬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함께 살아가기 참 힘든 세상이 되었습니다.

 

 

임금은 노동자 자신과 그 가족의 생계에 충분하여야한다

 

복음의 예수님께서는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를 통해서 노동의 대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아침에 온 사람도, 한낮에 온 사람도, 저녁이 다 되어 온 사람에게도 한 데나리온의 삯이 지급됩니다. 물론 더 오래 일을 한 사람들은 공평하지 않다고 항의를 했습니다.

 

하지만 포도원 주인은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라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습니다.

 

이 비유의 배경을 보면 조금 더 깊은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선한 포도밭 주인은 일하러 온 이들이 얼마만큼의 일을 한 것에 중심을 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무엇이 필요한지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한 데나리온은 예수님 시대에 한 가족의 생계를 이어나가는데 필요한 금액입니다.

 

교황 비오11세의 회칙 ‘40주년’에서는 적정한 임금에 대하여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임금은 노동자 자신과 그의 가족의 생계에 충분하여야한다 … 가장의 봉급이 불충분하여 가정주부가 자신의 고유한 책임과 의무, 그중에서도 특히 자녀 교육을 소홀히 하고 가사 밖의 일에 취업해야 하므로 혹사당하는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며 전력을 다하여 막아야 한다. 그러므로 가장이 일상적인 가정의 필요를 충당할 수 있는 충분한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만일 현재의 사회 상황에서 이것이 도대체 실현 가능하지 않다면, 사회 정의는 각 성인 노동자가 그와 같은 임금을 받도록 보장하는 개혁을 지체 없이 단행하기를 요구한다. 이 점에 관련해서 본인은 가정의 부담이 증가함에 따라 임금을 증가시키고, 특별한 필요에 대해서 특별한 배려를 하기 위해 고안되고 실천적으로 시도되는 다양한 방식에 대하여 찬사를 보낸다.”(회칙 40주년 32항)

 

모두에게는 모두의 다양한 사정이 있습니다. 최저임금이 올라감에 따라 자영업을 하시는 분들이나 열악한 처지의 작은 일터에서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에 있어서 사람이 중심이 되고, 그 사람이 한 가정을 먹여 살리는 귀한 일을 한다고 생각을 할 때 대처 방법은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잘 사는가에서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것이 더 소중한 가치로 여겨질 때 복음은 세상 속에서 더 행복하게 퍼져나갈 것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4월호, 나승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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