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17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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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수녀원 창가에서: 수녀원의 면회일은 잔칫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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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3-23 ㅣ No.601

[수녀원 창가에서] 수녀원의 면회일은 잔칫날

 

 

종신 서원을 한 지 15년 만에 본원으로 소임이 났다. 수도 생활의 본향으로 돌아온 기분이다. 종신 서원을 준비하려고 본원에서 몇 년간 머문 적이 있지만, 첫 서원을 한 다음 대부분은 분원을 돌며 나그네살이를 했다. 본원으로 다시 돌아온 것은 3년 전이다.

 

옛날과 크게 변한 것이 없는 본원 공동체의 생활 모습은 그대로가 수도 생활의 전통을 말해 주는 듯하다. 분원에서는 할 수없는 본원만의 하루 일과가 역동적이면서도 편안하게 느껴진다. 세상 한가운데서 사도직의 상황에 따라 늘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분원 생활과는 달리 본원에서는 정해진 일과표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삶의 양식이 단순하다. 그러면서도 많은 수녀가 함께하는 데서 오는 역동과 상호 작용이 아주 크다. 활력과 다양함에서 얻는 풍요로움은 큰 공동체의 장점이기도 하다.

 

본원은 수녀원의 중심부인 만큼 모든 중요한 행사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특히 양성소가 수녀원 경내에 있어서 전례와 모든 행사를 수녀들과 양성 자매들이 함께한다. 선배 수녀들은 무엇보다도 젊은 자매들을 보면서 지내는 것이 큰 위안이 된다. 수도 생활을 막 배우기 시작한 자매들을 대하면서 대견함과 함께 깊은 자매애를 느끼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본다.

 

 

그리움을 달래 주는 날

 

본원에서 전례나 수도 생활 전통에 따라 이루어지는 다양한 행사들 가운데 양성자들의 면회일은 빼놓을 수 없다. 아무리 출가에 대한 큰 결단을 내렸다 해도 집을 떠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양성 자매들은 가족과 친구들이 그립기 마련이다. 그 가족들도 마찬가지여서 양측의 그리움을 달래 주는 최고의 날은 면회일이다.

 

이날은 지원기와 청원기에 있는 자매가 가족과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날이다. 시대는 달라도 그들의 설렘은 선배 수녀들이 경험한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 면회일에 한껏 들뜬 양성 자매들을 바라보니 나의 양성소 시절이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양성자들이 많던 그 시절에는 면회실이 부족해서 강당이나 식당, 정원 등 여러 곳에 가족과의 만남 장소를 만들기도 했다. 가족들의 극심한 반대 속에 수녀원에 입회한 나는 선택에 대한 책임감으로 면회 오는 사람들에게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수련기에 접어들면 면회일이 없어진다. 세상과 단절된 채 집중 수련을 받으려는 것이다. 천주교 신자가 아닌 우리 가족, 특히 부모님은 그런 수녀원 생활을 이해하기가 힘드셨던 것 같다. 수련기의 어느 날이었다. 양성장 수녀님이 어머니가 오셨다며 만나 보라고 하셨다. 상황을 들어 보니, 한 수녀님이 수녀원 정문 쪽에서 산책을 하다가 수위실 앞에 앉아 계신 우리 어머니를 발견했다. 어떻게 오셨는지 물으니 이렇게 대답하셨단다.

 

“수련자는 면회일이 없다고 해서 여기 앉아 있으면 혹시라도 우리 딸이 지나가면 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어머니도 규정에 어긋나는 일을 하는 것이 맘에 걸리셨는지 한사코 수녀원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으시겠다고 하셨다. 우리 모녀는 수녀원 동산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버스를 타고 외출하실 때는 늘 아버지와 함께 다니셨는데, 그날은 어머니 혼자 오셨다. 아버지께 말씀드리면 분명히 수녀원에 찾아가서는 안 된다고 하실 것이니 혼자 몰래 나오셨단다.

 

딸을 향한 어머니의 열정은 대단하셨다.

 

“수녀가 되려는 너를 이해하고 싶어서 내가 성당에 다닌다. 집안에 천주교 신자가 없으니 너를 이해해 줄 가족도 없잖니. 네가 외로울 것 같아 내가 신자가 되기로 했다. 요즘 교리반에 나가는데 늙어서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구나. 그렇지만 교리를 가르치는 큰 수녀님이 참 좋은 분이시더라.”

 

입회 전 수녀님들이 해 주신 말이 떠올랐다. 딸이 입회하고 나면 대개 가족이 서서히 신자가 된다는 말이었다. 사실 어머니가 성당에 나가신다는 말씀은 나에게 가장 큰 복음, 곧 기쁜 소식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풍요로운 잔칫날

 

입회 당시에 내 주변에는 친구들도 신자가 아니었다. 한번은 친구들이 면회일에 찾아와서 호기심이 가득한 모습으로 수녀원 생활을 어떻게 하는지 설명해 달라고 했다. 나는 얼떨결에 대답했다.

 

“수도 생활을 설명해 준다고 알아들을 수 있겠니? 와서 보는 것 외에….”

 

세월이 지나 그 친구들은 모두 세례를 받고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한 동료 수녀님은 수녀원 면회일에 친구를 찾아 갔다가 자기도 수녀원에 입회할 결심을 했다고 한다.

 

가족들은 면회일에 그냥 오셔도 되는데 절대 빈손으로 오시지 않는다. 가족을 방문할 때 선물로 정성을 표현하는 우리 민족의 정서 때문인지, 아니면 귀한 딸이 수녀원에서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을 수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모르겠다.

 

돌이켜 보면 우리 부모님도 그러셨다. 이날을 위해 참 많은 것을 준비하셨던 것 같다. 입회 전 나는 내가 어떤 음식을 좋아했는지 몰라도 어머니는 일일이 기억하고 계셨다는 것을 면회 때마다 하나둘 알게 되었다. 그때마다 부모님은 꼭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며 음식을 가져오셨던 것이다.

 

한번은 손수 만드신 도토리묵을 어머니와 언니는 머리에 이고, 아버지는 어깨에 메고 오셨다. 승용차도 없이 몸소 이고 지고 오신 모습이 너무 힘들어 보여 나도 모르게 투덜거렸다.

 

“왜 쓸데없이 이런 것을 가져 오셨어요.”

 

“네가 도토리묵을 너무 잘 먹었는데 수녀원에는 이런 것이 없잖아.”

 

수녀원에 들어온 뒤로 나는 그 전에 무엇을 특별히 좋아했고 잘 먹었는지조차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런데 수녀원에 면회를 오시는 부모님은 내게 추억을 만들어 주셨다. 수녀가 되는 것을 그토록 반대하셨는데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 기억하고 채워주시는 부모님에게 면회일이면 더욱 진한 감사와 잔잔한 감동이 솟아 올랐다.

 

수녀원의 면회일에는 가족과 친구, 친지들의 소식도 듣는다. 수녀원에 머문 시간이 길어질수록 세상에 사는 그들과 수녀원에 사는 우리의 관심사가 점점 달라진다는 느낌도 들지만 동시에 기도거리도 얻게 된다. 또 동료들의 가족도 알게 되어 우리의 가족이 더욱 더 많아진다. 가족들이 들고 온 음식을 수녀원 대가족이 함께 나누어 먹는 이날은 세상에서 가장 풍요로운 잔칫날이 된다.

 

“얼마나 좋고 얼마나 즐거운가, 형제들이 함께 사는 것이!”(시편 133,1)

 

* 전봉순 그레고리아 - 수녀. 예수성심전교수녀회 관구장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8년 3월호, 전봉순 그레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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