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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예수회 수사들의 과학적 업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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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빈 [ssk5762] 쪽지 캡슐

2017-08-13 ㅣ No.333

예수회 수사들의 과학적 업적


 

과학에 관심을 가진 많은 가톨릭 성직자들이 발견된 곳은 16세기 성 이냐시오 로욜라San Ignacio de Loyola에 의해 세워진 예수회였다. 최근 한 역사학자는 예수회 수사들이 18세기에 성취한 업적을 설명하였다.

San Ignacio de Loyola


 

그들은 추시계, 축도기, 기압계, 반사망원경, 현미경 등의 개발, 그리고 자기작용과 광학, 전기와 같은 다양한 과학영역에 공헌하였다. 어떤 경우는 다른 누구보다도 먼저 목성 표면의 아름다운 띠, 안드로메다 성운, 토성의 고리를 관찰하였다. 그들은 혈액순환(하비Harvey와는 독립적으로 / 1578-1657 : 영국의 의사. 혈액 순환의 본질과 심장의 펌프작용을 분명히 밝힘으로써 명성을 얻었다.), 비행의 이론적 가능성, 달이 조류에 미치는 방법, 빛의 파장과 같은 것을 이론화하였다. 남반구의 천체지도, 기호논리, 포Po 江과 아디제Adige 江(둘 다 이탈리아의 강)의 홍수 통제법, 이탈리아 수학에 플러스와 마이너스 기호 도입 등 이 모든 것들이 예수회 수사들의 업적이다. 그리고 페르마Fermat, 호이겐스Huygens, 라이프니츠Leibniz 그리고 뉴턴과 같은 영향력 있는 과학자들 외에도 많은 과학자들이 예수회 과학자였다(Jonathan Wright, The Jesuits: Missions, Myths and Histories<London: HarperCollins, 2004>, 189).


 

게다가 초기 전기과학electrical science의 한 중요한 학자는, 예수회 수도원을 “17세기 실험물리학에 가장 공헌한 사람들”로 묘사했다. “그런 영예는 光學과 같은 다른 과학 영역의 자세한 연구에 의해 강화되었다. 실제로 그 시기의 중요한 논문들은 모두 예수회에서 씌어졌다”(Ashworth, "Catholicism and Early Modern Science," 154)고 말하는 학자도 있었다. 위대한 예수회 과학자들 중 몇은 거대한 백과사전을 위한 데이터 기록이라는 엄청나게 가치 있는 일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그 백과사전은 전 학문사회에 과학적 연구를 보급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만약 과학적 공동연구가 과학혁명 결과의 하나였다면, 예수회 수사들은 그 영예의 큰 몫을 차지해야할 것이다.”

예수회 수사들은 자신들의 학문에 많은 중요한 공헌을 한 많은 비범한 수학자들을 자랑하였다. 첫 번째 수학역사가의 한 명인 샤를 보쉬Charles Boussut(프랑스 수학자 1730-1814)는 B.C. 900년에서  A.D.1800년에 이르기까지의 가장 저명한 수학자들의 목록을 편찬하였는데, 그가 나열한 303명 중에서 16명이 예수회 수사들이었다. 그 수치-2700년이라는 기간에 걸친 모든 위대한 수학자 중의 5%에 해당-는 2700년 중 겨우 200년 동안 예수회가 존재하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더욱 인상적이다. 게다가 달에 있는 35개의 분화구가 예수회 과학자와 수학자의 이름을 딴 것이다.

샤를 보쉬

  예수회 수사들은 서양과학을 중국과 인도 같은 먼 곳까지 도입시킨 최초의 사람들이었다. 17세기 예수회 수사들은 행성운동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유클리드Euclid 기하학을 포함하여 많은 과학지식과 물리적 세상을 이해하도록 하는 정신적 도구를 중국에 소개했다. 한 전문가에 따르면 중국에서 예수회 수사들은 다음과 같은 활동을 했다.


 

대체적으로 과학, 그리고 수학과 천문학이 유럽에서 현대과학이 처음 탄생하던 것과 비교해도 매우 낮은 수준이던 때에 그들이 도착했다. 그들은 서양수학과 천문학 연구를 중국어로 번역하는데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이런 과학에 대한 중국학자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들은 아주 다방면에 걸친 천문학적 관찰을 이루었고, 중국에서 첫 현대적인 지도제작법을 실행하였다. 그들은 또한 이들 고대문화에 과학적 업적을 감사하는 법을 배웠고 그것들을 유럽에 알렸다. 서신 왕래를 통해 유럽과학자들은 중국과학과 문화에 대해 처음 배웠다.(Augustin Udias, Searching the Heavens and the Earth: The History of Jesuit Observatories <Dordrecht, The Netherlands: Kluwer Academic Pubishers, 2003>, 53)


 

에수회 사람들은 아시아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와 중앙아메리카 그리고 남아메리카에서 덜 발달된 국가의 과학적 지식과 기초 토대에 중요한 공헌을 했다. 19세기가 시작되면 이 대륙들에 천문학, 지자기학, 기상학, 지진학, 태양물리학을 연구하는 예수회 천문기상대가 열렸다. 그런 천문기상대들은 이들 장소에 정확한 시간, 일기예보-특히 허리케인이나 태풍이 중요했다-지진위험평가 그리고 지도제작법 등을 제공했다.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에서 예수회는 주로 기상학과 지진학에 관여하면서 이들 학문의 기초를 닦아주었다. 에콰도르에서 레바논, 필리핀에 이르기까지 여러 국가들의 과학 발전은 예수회 수사들의 덕분이다.

많은 개별 예수회들은 수년간에 걸쳐 과학에 자신을 전념하였다. 예를 들어 리치올리Giovanni Battista Riccioli 신부는 많은 업적을 이룬 것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자유낙하물체의 가속도를 결정한 첫 번째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그중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John Babtist Riccioli(1598-1671)

리치올리의 월면도

그는 또한 숙련된 천문학자였다. 1640년경, 리치올리 신부는 자신의 수도회를 위해 엄청나게 큰 천문학백과사전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의 고집과 키르허Athanasius Kircher(독일 태생의 예수회 성직자로 지식을 전파하는 일에 남다른 능력과 열정을 보인 것으로 유명하며 최후의 르네상스인으로도 불린다.)의 후원 덕분에, 그는 자신의 프로젝트를 예수회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었다. 1651년에 발행된 『새로운 알마게스트Almagestum novum』는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배움의 저장고이자 기록”이었다. 그것은 정말로 인상적인 업적이었다. 한 현대학자는 “『새로운 알마게스트』를 무시할 수 있는 진정한 천문학자는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Heibron, 88) 예를 들어 영국왕실의 천문학자인 플램스티드John Flamsteed는 1680년대 천문학에 관한 자신의 강의를 준비하면서 리치올리 신부의 연구를 상당히 이용하였다.

John Flamsteed

『알마게스트』는 정보가 듬뿍 들어있는 완전한 전집이라는 것 외에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천문학적 아이디어로부터 벗어나려는 예수회 수사들의 의지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 사전은 자유롭게 달이 지구와 같은 물질로 만들어졌다 하고 일반적인 지구중심설(천동설)로부터 벗어난 견해를 가지고 있는 천문학자들-프로테스탄트조차도-을 존중하고 있었다.

여러 학자들은 예수회 수사들의 실험과학 실천이 갖는 정확성의 중요함에 대해 아주 예리하게 평가했다. 리치올리 신부는 그 일을 직접 체현했다. 정확한 1초의 진자를 개발하기 위해 그는 가까스로 9명의 동료수사들을 설득하여 하루에 거의 87,000번의 진동을 세도록 하였다(Ashworth, "Catholicism and Early Modern Science," 155). 이 정확한 진자를 이용하여 그는 중력상수를 계산할 수 있었다. 최근의 한 연구는 그 과정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리치올리 신부와 프란체스코 마리아 그리말디Francesco Maria Grimaldi는 로마식 측정으로 3’4” 길이의 진자를 선택하여 밀고는 6시간 동안 그것이 멈추려 하는 동안 왔다 갔다 하는 수를 세었다. 그것은 천문학적 수로 21,706번 왔다 갔다 하였다.  그것은 이론적인 24×60×60/4=21,600과 근접하다. 그러나 리치올리 신부는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 시도하였다. 이번에는 24시간 동안, 그리말디를 포함한 9명의 협조를 받았다. 그 결과, 이론치 86,400에 비하여 87,998번 흔들렸다. 리치올리는 추를 3’4.2”로 늘리고 그 팀의 도움을 다시 얻어 재실험을 하였다. 이번에는 86,999의 수치를 얻었다. 그 수치는 그들에게 충분히 근접한 수였다. 그러나 리치올리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3′2.67″로 길이를 줄이고 오직 그리말디와 철두철미하게 수를 세는 다른 동료와 밤을 새며 각 3일 밤에 스피카Spica(처녀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와 아크투루수Arcturus(목자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의 자오선 교차 사이의 잠시 동안 3,212번의 진동을 얻었다. 그는 이론적으로 3,192를 발견했어야 했다. 그는 요구되는 길이가 3′3.27″이라고 실험도 하지 않고 인정하였다. 그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그것은 처음 것과는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은 중력상수로 보면 955cm/sec2를 의미하였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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