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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동양의 진주, 마카오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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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6-24 ㅣ No.1690

동양의 진주, 마카오를 가다


“한국교회 첫 사제의 간절한 기도 서려”

 

 

- 성 바오로 성당. 명실공한 마카오의 얼굴. 화재로 소실되고 석조된 앞면과 돌계단만 남아있다.


- 성 김대건 신부 동상. 카모에스 공원 내에 위치한 김대건 신부 동상. 1985년 10월 4일 한국 주교회의에서 건립했다.


- 펜하 성당. 마카오를 찾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한번씩 들르는 곳. 마카오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대륙 여기서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다’

 

포르투갈이 자랑하는 대서사시인 카모에스(camoes)가 이렇게 읊었던 마카오(Macao). 

 

16세기부터 400여년 동안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다 지난 1999년 중국에 반환된 ‘중화인민공화국 마카오 행정특별자치구’, 주강 입구의 퇴적지인 반도 지역과 타이파 콜로안 섬을 하나로 묶어 일컫는 지명이기도한 마카오는 동서양의 문화 그리고 성(聖)과 속(俗)이 공존하는 묘한 곳이다. 

 

우선 공항에 내리는 순간부터 각종 표지판들이 중국어 포르투갈어로 쓰여진 모습을 목격하게 되면 듣던 바대로 ‘아시아와 서양의 퓨전 지역’임을 피부로 실감한다. 

 

서울의 종로구, 울릉도(73Km)의 1/3 정도 크기에, 도시 끝에서 끝까지 차로 달리는 시간이 30여분에 불과한 이곳. 그러나 도심으로 진입하게 되면 16∼17세기 유럽식 성당 건물들과 관음상, 중국 전통 사원 등 지극히 동양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들이 곳곳에 조화롭게 섞여 있는 광경에서 흥미는 더욱 배가된다.

 

 

한국교회와 마카오 

 

‘유럽의 향기’‘동양의 진주’라는 별칭을 지닌 마카오가 가톨릭 신자들, 특별히 한국 교회 신자들의 이목을 모으는 것은 포르투갈의 보호권(padroado)아래 예수회, 파리외방전교회 등 선교회들의 극동 선교 전초기지로 활용되며 일본 및 중국선교의 중요 거점이었다는 점이다. 

 

선교 단체 중 가장 먼저 진출한 예수회는 1565년 본부를 설치, 성바오로신학교, 성요셉신학교를 설립해서 성직자를 양성하였다. 또 순찰사 발리냐노(Alessandro Valignano)가 파견돼 이곳을 중심으로 극동 각지를 순회하며 선교 업무를 관장했다. 이외에 파리외방전교회 극동지역 대표부는 1732년 대표부를 광동에서 마카오로 이전해 아시아 선교 활동의 교두보로 삼았다. 

 

이 부분에서 마카오는 한국교회와 보다 직접적인 연관을 맺게 되는데, 1808년 북경 구베아 주교에 이어 조선 교회 관할권을 계승했던 수자 사라이바 주교는 1811년 바로 이곳 마카오에서 한국 교회 신자들이 보낸 2통의 편지를 받고 이를 번역해 교황청에 보냈다. 

 

또 1825년경에 쓰여진 조선교회 교우들의 청원서 역시 북경을 거쳐 마카오에 전달됐는데 당시 마카오 주재 포교성성 대표부 부대표 움피에레스 신부가 라틴어로 번역해 교황청에 전달했다. 이는 조선교구 설정의 결정적 계기를 만든 기폭제였다. 

 

이런 상황에서 지리적으로도 마카오는 조선으로 입국하는 선교사들의 경유지로 매우 중요했다. 조선초대 교구장 브뤼기에르 주교를 비롯 거의 모든 선교사들이 마카오를 거쳐 조선 입국을 시도했던 것을 봐도 그렇다. 

 

무엇보다 한국교회 신자들이 ‘마카오’를 연상할 때 빠트릴 수 없는 것은 성 김대건 신부와의 인연이다. 1835년 마카오를 통해 한국에 들어온 모방 신부는 그 이듬해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등 세 소년을 마카오로 유학 보냈는데 1837년 6월 도착한 이들은 1842년까지 6년간 파리 외방전교회 극동 대표부에서 칼레리 데플레슈 신부 등에게서 수학했다. 그 중간에 민란으로 잠시 마닐라로 피신해 있기도 했으나 다시 귀환해서 철학 신학 과정을 이수했다. 

 

마카오의 가장 상징적인 랜드마크로 꼽히는 성바오로 성당(세계 문화 유산) 앞 계단은 김대건 신부가 무릎으로 오르며 기도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때 김대건 신부는 당시 사제들만 통과 할 수 있는 성당 정문앞 돌계단을 무릎기도로 오르면서 ‘반드시 사제가 되어 이 문을 통과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이런 면에서 당시의 김대건 신부를 기억하는 이들은 ‘믿음으로는 안드레아 신학생을 따를 자가 없었다’는 회고를 남기기도 했다. 

 

김대건 신부와의 인연으로 마카오 지역 몇 곳에는 김신부를 기억하는 상징물들이 남아있다. ‘흰비둘기 공원’으로 불리는 카모에스 공원에는 1985년 한국천주교 주교회의가 세운 동상이 세워져 있고 바로 인근 안토니오 성당에는 홍콩의 한 한인 신자가 봉헌한 김신부의 목상이 모셔져 있기도 하다. 

 

카모에스 공원의 김대건 성인상은 처음 공원 뒤편 후미진 곳 담벼락 근처에 세워져 있었으나 한인 신자들이 마카오 관광청에 건의, 1997년 현재의 자리로 이전했다. 동상 앞에는 잔디밭이 깔려있어 성지순례 차 방문하는 한국 신자들이 미사를 봉헌하기도 한다.

 

 

성바오로성당 등 세계문화유산 지정

 

서구 교회 선교회들의 극동지역 포교 활동 전초기지였다는 명성이 무색하게 현재는 7개 성당만이 사목 활동을 하고 있는 초라한 교세다. 사제서품식은 10년째 거행되지 못하고 있다. 방인 사제 양성이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마카오를 통틀어 1년에 영세하는 이들도 300 명 가량이다. 

 

현재 교세는 2만5천에서 3만명 정도. 사제수는 25명이다. 여기에 예수회, 살레시오회 등 수도회 사제를 합치면 40여명이다. 

 

성 바오로 성당을 비롯해 성 도미니코 성당, 성요셉 성당, 성 로렌스 성당이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만큼 성당 유지 관리는 관광 자원 보존 차원에서 관광청 지원을 받고 있다. 

 

예수회 등 수도회들이 오래전부터 진출해 있던 이유로 마카오내 학교시설 50%는 아직까지 교회서 운영하고 있다. 또 사회복지 사업도 잘 이뤄지고 있다. 본당을 통한 사목은 원활하지 못하지만 교육 사회복지를 통한 선교 활동은 활발한 편이라 볼 수 있다. ‘홍콩’‘주해’를 잇는 관광 노선으로 마카오에 대한 이목이 커지고 있는 요즘, 마카오교회는 이같은 호기를 통해 관광사목의 비중을 높이고 위원회 구성 등을 준비하는 중이다. 이를 위한 평신도 양성 과정도 기획하고 있는데 한국교회의 40주간 성서교육을 접목한 ‘80주간 성서 교육’이 실시 중이어서 눈길을 모은다. 

 

마카오교구 주교좌 본당 주임 라우 임 싼 신부는 “마카오와 한국교회는 김대건 신부님 등으로 인해 큰 인연을 가지고 있다”면서 “한국인 성직자의 사목 활동 지원 등 다양한 교류가 양 교회 안에서 이뤄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중국 · 포르투갈문화 조화

 

마카오는 1999년 12월 20일 중국의 ‘1국가 2체제’ 정책에 따라 중국의 특별 행정구(SAR)가 되었다. 이들 행정구는 중국 중앙정부에 종속되지만 행정부, 입법부 그리고 독립적인 사법권 등으로 높은 자치권을 행사하고 있다. 

 

포르투갈인들이 처음 마카오 땅에 발을 디딘 것은 1513년. 조류즈 알바레스가 주강 어귀에 포르투갈 어선이 닻을 내린 이래 이 대륙을 드나들게 된 포루투갈인들은 1553년 중국 무역권을 획득하였고 1557년에는 중국으로부터 마카오를 조차(租借)했다. 일본, 중국으로부터 무역을 독점하기 위해서였다. ‘마카오’라는 지명은 마카오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인 ‘아마사원’에서 유래됐다. 

 

현재 마카오가 지니고 있는 가장 특별한 자산은 450여년 이상 된 중국과 포르투갈 문화의 조화, 또 양국 간 전통 교류로 풍성해진 문화유산(2004년 7월부로 25개 문화유적지 세계 문화유산 등록)을 잘 보존하고 이를 통해 지속적으로 동서양의 교차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새롭게 고층 빌딩이 들어서는 가운데 지속적인 복원을 통해 상당수의 역사적 건물과 거리들 그리고 광장들이 보존돼 있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도 한번 눈여겨 볼만한 점이다. 

 

가톨릭신문투어에서는 6월부터 마카오 지역 성지순례를 실시한다. 마카오 성지순례 문의 02-318-2585, 053-428-5004

 

[가톨릭신문, 2006년 4월 30일, 이주연(가톨릭신문투어 서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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