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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환경] 생태칼럼: 지구의 날, 지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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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5-13 ㅣ No.1393

[생태칼럼] (9) 지구의 날, 지구하자!

 

 

‘지구하자!’ 지난 4월 22일, 서울에서 열린 지구의 날 주제였다. 심각한 환경오염에서 ‘지구를 구하자’는 뜻으로 만든 구호다. 1970년 미국에서 시작된 지구의 날은 이제 190개국이 넘는 국가에서 지구의 환경을 돌아보는 날이 되었다. 지구를 머릿속으로 그려보며 물어본다. “나는, 우리는 지구에서 어떻게 살아왔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오늘 우리의 현실에 있다. 우리가 지구에서 살아온 결과로 우리의 현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갯벌이 망가질 것이 눈에 보여도 새만금 바다를 막아버린 정부, 우리의 현실이다. 강이 망가질 것이 뻔했지만 기어코 4대강사업을 강행한 정부, 우리의 현실이다. 후쿠시마의 핵발전소가 터져도 지진이 일어나도 활성단층이 있어도 핵발전소 확대정책을 밀어붙이는 정부, 우리의 현실이다. 기후변화와 (초)미세먼지의 주요원인인 석탄화력발전소를 더 짓겠다고 나서는 정부, 우리의 현실이다. 서울 용산미군기지의 기름 오염실태를 제대로 밝히길 꺼려하는 정부, 우리의 현실이다. 서울 상도동의 성대골에 발암물질인 석면 15톤을 10년간이나 쓰레기 산으로 방치해놓은 정부, 우리의 현실이다. 그리고 이 현실에 손 놓고 바라보고 있는 많은 우리들, 슬프고 아픈 우리의 현실이다.

 

이 비정상의 현실을 이끌어온 원동력은 바로 돈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돈이 된다면, 무엇이든 밀어붙이거나 방관해왔다. 참사가, 재난이 터질 때까지 그렇게 했다. 우리는 자연을 단지 이윤과 이익의 대상으로만 취급해왔다. 우리의 현실이, 우리가 그렇게 살아왔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과 근원적 유대라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찬미받으소서」 89항). 지구는 ‘우리 공동의 집’이다(2항). 그러니 우리 모두는 한 집에 사는 식구다. 공동의 집에 맞는 삶의 원리가 있다. 이 원리를 거스르는 방식으로 살면, 문제가 일어난다. 집이 망가지고, 식구들은 아프게 된다. 자연만이 아니라 사람도 앓는다. 세월호 참사,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보라. 광화문 한복판, 건물 옥상의 광고탑 위에 올라가 단식하며 항의하는 해고 노동자들을 보라. 자연을 함부로 대하는 사회는 결코 사람도 존중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아프게 된다. 땅이 울면 사람도 운다(49항).

 

돈과 이윤이 우리 공동의 집을 이끄는 원리일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도 당연한 이 사실을 거부해왔다. 지구의 날은 우리부터 우리 공동의 집에 어울리는 삶의 원리로 살아갈 것을 요청한다. 서로 근원적 유대로 연결되어 있는 우리는 다른 존재들 덕분에 살아간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자신에 대해 겸손하고 타자를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바로 ‘생태적 회심’이다. 우리가 겸손한 존중의 태도로 다른 존재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 무절제한 소유와 낭비가 아닌 절제와 검약의 태도로 살아가는 것, 정부에 돈이 아니라 정의와 평화, 생명과 안전을 먼저 요구하는 것은 생태적 회심의 실천이다. 우리가 이렇게 변할 때, 우리의 현실도 변화할 것이다. 이렇게, 생태적 회심을 다짐하고 실천하는 우리 모두가 지구의 희망이다.

 

[가톨릭신문, 2017년 5월 14일, 조현철 신부(예수회, 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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