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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심리로 풀어 보는 세상사: 행복을 잡는 쉬운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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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5-13 ㅣ No.391

 [심리로 풀어 보는 세상사] 행복을 잡는 쉬운 방법

 

 

심리학의 딜레마

 

“심리학은 과학이다.” 오늘날의 심리학을 있게 만들었다고 평가받는 심리학의 선구자들은 ‘심리학이 과학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심리학은 과학이 되기에는 조건이 아주 열악하다. 어떤 학문이 과학이 되려면 관찰이 가능한 연구대상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객관적으로 측정하고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심리학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연구대상은 대부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우울이나 불안, 행복 등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바로 심리학자가 놓인 딜레마다. 심리학을 과학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정작 연구하고 싶은 대상은 관찰하는 게 불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고자 심리학자들이 사용하는 방법이 바로 ‘조작적 정의’이다. 조작적 정의는 보이지 않는 연구대상을 관찰하고 측정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으로 정의를 내리는 것이다. 조작적 정의를 내리면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게 수월해진다. 심지어는 답을 찾는 게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던 문제에 대한 답도 찾을 수 있다. 왜냐하면 보이지 않아서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것들이 조작적 정의를 통해서 보이기 시작하고, 그래서 잡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이클 조던과 이상민

 

농구 역사상 가장 높은 인기를 구가했던 선수는 누구일까? 수많은 스타플레이어(인기 선수)들이 있지만, 아마도 많은 사람이 미국의 마이클 조던을 꼽을 것이다. 아직까지도 농구 황제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사람은 마이클 조던뿐이라는 사실에 많은 사람이 공감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농구 선수들 가운데에서는 누가 가장 높은 인기를 누렸을까? 신동파, 이충희, 김현준, 허재.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세대에 따라 크게 다르지만, 이상민 선수도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대표적인 선수 가운데 한 명이다.

 

프로 농구가 생기기 전에 우리나라 겨울 스포츠의 꽃은 ‘농구대잔치’였다. 이 대회에는 당시 삼성, 현대, 기아, 상무 등 내로라하는 실업 팀들과 연세, 고려, 중앙 등 대학의 강자들이 모두 참여했다. 대학 팀들은 패기와 체력으로 실업 팀들을 위협했지만, 우승은 늘 프로 팀 창단을 앞두고 있던 노련한 실업 팀들의 차지였다. 하지만 프로 농구 창단을 몇 해 앞두고 대학 팀의 반란이 일어나고 말았다.

 

드디어 실업 팀들을 제치고 농구대잔치의 우승컵을 거머쥔 대학 팀이 나타났는데, 연세대학교 농구부가 그들이다. 이상민, 서장훈, 문경은, 우지원 등의 국가대표급 선수들로 구성된 연세대는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기아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다. 경기장은 이 선수들을 보러온 여학생 팬들로 가득 찼고,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가 공을 잡을 때마다 비명과 환호가 터져 나왔다. ‘오빠부대’라는 단어가 만들어진 것이 바로 이때였다. 특히, 이상민 선수의 인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는데, 그의 깔끔한 외모와 ‘포인트가드’(농구에서 경기를 주도해 시합을 자기편에 유리하게 만드는 역할을 맡는 선수)로 팀을 이끌면서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신이 해결사로 나서서 승리를 결정짓는 플레이는 남성들조차 매료시켰다.

 

이쯤에서 엉뚱한 질문을 해보자. 마이클 조던과 이상민 선수 중에서 누가 더 인기가 높았을까? 사실, 너무 쉬운 질문이다. 답은 조던이다. 인기가 많으면 알아보는 사람도 많다. 세계적으로 농구를 좋아하는 팬들 가운데 조던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 반면 이상민 선수를 아는 외국인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인기가 높을수록 더 많은 연봉과 광고 출연료를 받는다. 따라서 조던과 이상민 선수의 연봉과 광고 출연료만 비교해 봐도 쉽게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조금 더 복잡한 질문을 해보자. 조던이 활약할 당시 미국 농구 팬들이 조던을 좋아했던 정도와 이상민 선수의 활약 당시 한국 농구 팬들이 이상민 선수를 좋아했던 정도를 비교할 수 있을까?  달리 표현하면, 조던에 대한 미국 관중들의 애정을 이상민 선수에 대한 한국 관중들의 애정과 비교했을 때, 누구의 애정이 더 컸을까? 쉽지 않은 질문이다. 아니,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정말 좋아하는 대상을 보게 되면 의식적으로 통제하기 힘든 여러 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환호성도 그중의 하나다. “와~.” 하는 탄성을 터뜨리거나,“  오빠~.”라는 외침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터져 나오는 것이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 등장할수록 환호성은 더 커진다. 한양대 오재응 교수 팀은 1997년도 1월 20일에 열린 농구대잔치 결승전의 선수 소개 때 터져 나온 순간소음을 측정하였다. 환호성의 크기를 측정한 것이다. 그 결과, 이상민 선수는 113 데시벨, 서장훈 선수는 103 데시벨, 조상현 선수는 102 데시벨이었다고 한다.

 

항공기가 이륙하거나 착륙할 때 발생하는 소음이 100 데시벨이라고 하니, 말 그대로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온 것이다. 하지만 마이클 조던이 등장할 때 미국 관중들이 지르는 환호성의 크기는 90 데시벨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이러한 결과는 이상민 선수가 활약할 당시 그에 대한 한국 관중들의 애정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보여준다.

 

동양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이 서양 문화권 사람들보다 감정의 표출을 자제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까지 감안하면, 이상민 선수의 인기는 실제로는 113 데시벨 대 90 데시벨의 차이를 통해 추론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컸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조작적 정의는 답을 찾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던 문제에도 답을 찾을 수 있게 해준다.

 

 

행복에 대한 조작적 정의

 

행복은 우리 모두가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주변에서 행복하다는 사람을 찾기는 그리 쉽지 않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행복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으니 행복을 찾는 것이 힘들고, 쉽게 행복해지는 것도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행복해지려면 눈에 보이지 않는 행복을 눈에 보이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행복을 잡을 수 있다. 행복에 대한 조작적 정의가 필요한 것이다.

 

행복에 대한 오해 가운데 하나는 행복은 우리 인생에 거창한 성공과 행운이 찾아왔을 때 경험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행복은 일상에서 경험하는 기쁨과 즐거움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행복해지려면 미래의 큰 성공과 행운만을 기다리는 대신 작지만 현재의 구체적인 기쁨과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아채고 이를 충분히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똑같은 일상을 살아도 자신에게 주어진 기쁨과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아채고 이를 만끽하며 사는 사람과 이를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는 사람의 행복은 크게 다른 것이다.

 

행복은 단순히 우리의 기분을 좋아지게 만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일종의 자원이다. 행복한 사람은 마음속에 정신적 자원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인생의 위기나 스트레스에 직면해도 더 쉽게 극복할 수 있다. 정신적 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숙제 : 행복 리스트 만들기

 

“오늘 이 글을 읽으신 분들에게는 숙제가 하나 있습니다. 설마 「경향잡지」 보다가 숙제를 하게 될 줄은 모르셨겠지요? 15분 정도의 시간만 투자해 보면 어떨까요. 준비물은 종이 한 장과 펜 하나. 조용히 책상에 앉아서 리스트(목록)를 하나 작성하시는 겁니다. 그 안에는 여러분을 행복하게 만드는 행동이 들어가되 매우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공’ 같은 추상적인 단어는 사용 금지입니다. 만일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 뽑아 마시면서 수다를 떨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와의 수다 떨기가 여러분의 행복 리스트에 포함되어야 합니다. 반신욕도 좋고, 집 근처의 산책도 좋습니다. 한 학생은 자신이 좋아하는 향이 있는데, 매일 아침 샤워한 다음에 그 향이 들어간 스킨로션을 바를 때마다 너무 큰 행복을 느낀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작지만 이런 구체적인 행동이 여러분의 행복 리스트에 포함되어야 합니다.

 

작성을 마치고 나면, 이제는 그 안에 들어 있는 행동 가운데 최소한 세 가지를 일주일 동안 의도적으로 해보세요. 가능하면 자주 그 안에 있는 일을 실행해 보세요. 그것이 행복입니다. 여러분이 경험하는 행복의 총량은 이렇게 작지만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서 경험하게 된 기쁨과 즐거움이 쌓여서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행복을 자주 경험하면 할수록 우리의 마음은 건강해집니다.

 

신체를 단련하려면 꾸준히 운동을 하듯이, 이제는 마음의 건강을 위해 행복 리스트에 써놓은 행동을 계획적으로 실천해 보면 어떨까요.”

 

* 전우영 - 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나를 움직이는 무의식 프라이밍」, 「내 마음도 몰라주는 당신, 이유는 내 행동에 있다」 등을 펴냈다. 현재 무료 온라인 공개강좌 서비스인 케이무크(K-MOOC)에서 일반인들을 위해 쉽게 디자인한 ‘심리학 START’를 강의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7년 3월호, 전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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