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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록 읽기 제3권: 아! 진리여, 그대 내 하느님이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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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4-19 ㅣ No.319

[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록」 읽기 - 제3권] 아! 진리여, 그대 내 하느님이시니

 

 

“저는 카르타고로 왔고 거기서는 죄스러운 애욕의 냄비가 사방에서 저를 달구고 튀겼습니다. 아직 사랑하지 못하던 터여서 그냥 사랑하기를 사랑할 뿐이었으며 영문 모를 허전함 때문에 오로지 사랑하기를 사랑하면서 사랑할 만한 거리를 찾아 헤맸습니다”(「고백록」 3.1.1).

 

철학사에서 누구보다 ‘마음의 논리’를 따라서 살았고, 그래서 현대 실존 철학의 원조로 불리는 아우구스티노. 그가 카르타고 극장의 연극에 몰입하고 특히나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스」에 심취하던 대목에서 「고백록」의 독자들은 알아본다, 호머의 주인공 율리시스처럼, 베르길리우스의 주인공 아이네이아스처럼, ‘운명이 지워준 소명’을 향해, 부단히 아른거리는 ‘절대 지평’을 향해 부단히 방황하며 난파하고 다시 솟구쳐 오르는 한 지성인의 눈길을!

 

궁극적인 것, 불변하는 진리,‘ 저녁이 없고 해넘이도 없는’(13.36.51)안식을 찾아가는 여로에서 그는 머물던 땅(타가스테, 카르타고, 로마, 밀라노)도, 사랑하던 여인들도, 수사학 대가와 황실 교수직이라는 출세 가도도, 자기가 섭렵한 당대의 온갖 사상(마니교와 점성술, 아카데미아 회의론과 플라톤 철학)도 뒤로하고 “오로지 사랑하기를 사랑하는” 방랑자였다.

 

 

진리에 바치는 연가 「고백록」

 

알렉산더 제국과 로마 제국을 이룬 두 민족 아테네인과 로마인은 취향이 퍽 달랐다. 예를 하나 들자면, 두 도시 다 흥행을 좋아하여 해마다 5월이면 예선을 거친 작품으로 연극제를 열었는데 수상 작가의 작품들을 4부 연작으로 상연했다. 그런데 아테네인들은 비극 작품 셋과 맛보기로 희극 하나를 공연했고, 로마인들은 비극을 감당 못해 비극 한 편과 희극 세 편을 상연했다.

 

워낙 실용적이고 구상적이던 로마인들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난해한 형식 논리와 뜬구름 잡는 형이상학을 아예 이해하지 못했고, ‘인생철학’에 해당하는 스토아에 겨우 호감을 보였다. 그들에게 언어란 ‘웅변’, 철학이란 ‘삶의 예술’(키케로)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열아홉 살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을 혼자서 독해하던 로마인이 ‘철학 하며 살자!’는 요지로 쓴 키케로의 책 한 권을 읽고서 야심 찬 삶의 진로를 ‘진리 탐구’로 아예 바꿔 버렸으니 바로 아우구스티노다. 철학사는 후대에 그리스와 로마의 문명을 일컫는 ‘헬레니즘’과 유다 그리스도교의 ‘헤브라이즘’을 서구 문명으로 한데 합류시킨 ‘양수리’(兩水里)로 그를 평가한다.

 

“키케로라는 사람의 「호르텐시우스」라는 책이 제 성정을 아주 바꾸어 놓았고 제 소원과 열망을 딴것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때까지 품어 왔던 저의 헛된 희망은 어느덧 모조리 시들해졌고, 저의 마음은 이제 불멸의 지혜를 추구하는 욕구로 믿기지 않을 만큼 헐떡이기 시작했습니다”(3.4.7). 그는 인간이 본질에서 “진리를 찾아내려는 사랑에 사로잡혀 있다.”(「삼위일체론」 15.8)고 단정했다.

 

「성경」을 제외하고 「고백록」이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가장 널리 읽혀 오는 까닭은 진리에 대한 그의 열정이 이 책에 담겨 있어서다. 「참된 종교」(성염 역주, 분도출판사, 1988년)에서 아우구스티노는 로마인답게 강변한다, 철학은 자기 삶을 전부 내거는 무엇, 곧 ‘참된 종교’여야 한다고! 그렇지 못한 철학은 지성의 유희요 호기심에 불과하다고!

 

우리말로 처음 소개된 아우구스티노 전기 소설이 「구원(久遠)에의 불꽃」(조철웅 역, 가톨릭출판사, 1965년)이었듯이, 그에게 철학은 시뻘건 혓바닥을 넘실거리면서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불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나 토마스, 데카르트, 칸트, 헤겔, 비트겐슈타인에게서 보는 형광등의 밝고도 차가운 빛이 아니었다.

 

“오, 진리여, 진리여! 저 사람들이 당신을 외칠 적에, 그렇게도 흔하게 그렇게도 다채롭게 당신을 소리 내어 드러낼 때 제 영혼의 골수가 얼마나 당신을 속으로 사무치게 그리워했습니까!”(3.6.10) 이렇게 고백하며 진리를 애당초 자기가 섬길 ‘하느님’으로 명명한다. “오, 영원한 진리여, 당신께서 저의 하느님이시니 밤낮으로 당신을 향해 한숨짓습니다”(7.10.16).

 

그리고 오랜 사상적 방랑 뒤 나이 서른에 자기가 찾던 진리를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라는 인격 신에게서 발견하고서는 이렇게 선언한다. “이제 당신만을 사랑하니 저는 당신만을 섬길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독백」 1.1.5) 과연 이후 44년 동안 수도자, 성직자, 영성가, 한 시대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그는 이 언약을 남김없이 실천한다.

 

그러면서도 나머지 평생을 두고 끊임없이 되뇌던 탄식이 있다. ‘진리의 연인’다운 철학적 유언이다.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습니다!(sero te amavi) 이토록 오래되고 이토록 새로운 아름다움이시여,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습니다!”(10.27.38)

 

 

호리고 호리며 속고 속이던 마니교도 시절

 

저토록 결연하게 진리를 찾아 일평생 헌신하겠다던 젊은이가 마니교에 빠지다니! “9년이라는 세월, 곧 내 나이 열아홉부터 스물여덟까지 우리는 호리고 호리면서 갖가지 욕정에서 속고 속였습니다. 노골적으로는 자유 학예라고 일컫는 학문을 내세워, 남모르게는 종교라는 거짓 이름을 내세워, 저기서는 오만하고 여기서는 미신을 숭상하면서, 그리고 어디서든 허황하게 쏘다녔습니다”(4.1.1).

 

아우구스티노를 비롯한 그리스도교 교부들의 성토 문학에서만 흔적을 남겼던 마니교는 20세기에 투르키스탄의 투루판과 이집트의 파윰에서 마니교 고문서들이 많이 발견되면서 초대 그리스도교에 영지주의 운동을 일으킨 ‘빛의 종교’로 본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마니교의 요체는 이원론이다. 우주는 빛과 어둠, 선과 악 두 원리가 겨루는 투쟁의 대서사시로 묘사된다. 역사는 어쩌다 어둠의 세력에 사로잡혀 간 빛의 분자를 해방하는 구세사란다, 태초와 투쟁과 해방의 3막으로 된.

 

빛과 선의 세계에는 ‘위대한 아버지’와 ‘위대한 어머니’와 ‘위대한 영’이 삼위일체를 이루어 어둠의 세력과 싸움을 벌인단다. 빛의 원리는 ‘원초 인간’과 ‘생명의 영’, 그리고 ‘제3 사절’을 차례로 우주에 파견하여 물질에 사로잡힌 빛의 분자를 구출하고 해방한다니 신구약에 익숙한 그리스도인들 귀에도 솔깃하였다. 

 

일평생 자기가 저지르는 악의 탓을 누구에게 씌울지 고민하는 청년 아우구스티노에게 무릎을 치게 한 교리는 바로 이 ‘선악 이원론’이었다. “죄를 짓는 것은 우리가 아니고, 뭔지 모르지만 우리 안에 있는 다른 본성이며 그래서 탓이 나에게 없다.”(5.10.18)는 속임수였다!

 

페르시아에서 유래한 폐쇄적 밀교 의식이라는 의혹을 사 로마 제국에서 걸핏하면 추방령을 받는 집단이 교도들끼리는 서로 돕던 끈끈한 유대도 아우구스티노의 마음에 들었다. 사실 카르타고에서 로마로 학원을 옮길 적에 손을 써 주었고, 로마에 가자마자 숙식을 마련하고 중병에 걸린 아우구스티노를 보살핀 사람도 부유한 마니교도 콘스탄티우스였다.

 

더구나 로마 시장 심마쿠스에게 줄을 대 밀라노 황실 교수직을 얻을 때도 그들의 후원을 입었다. 그의 특출한 언변을 밑천으로 황실에다 뛰어난 마니교도 한 명을 심어 놓으려는 계책이었으리라. 그러나 실제로는 이 종교사상의 허구를 깨닫는 날, 유럽에서 마니교를 결정적으로 타파할 인물을 후원하고 있었던 셈이다.

 

카르타고에서였다. 아들이 마니교에 빠져들었을뿐더러 명석한 두뇌와 지도력을 이용해서 많은 지인까지 마니교로 끌어들이는 짓을 보고 그의 어머니 모니카가 어느 주교에게 찾아가 제발 아들을 설득해 달라고 애걸했다. 그러자 “나도 한때 그랬소. 댁의 아들도 잔뜩 들떠 상당수 풋내기를 흔들어 놓고 있는 참이어서 아직 무엇을 배울 만한 사람이 아니오.” 하더란다.

 

그래도 울며불며 매달리는 모니카에게 그 주교가 짜증을 내면서 던진 한마디는 이랬다. “그만 가 보시오. 그렇게나 많은 눈물 바람을 받은 자식이 망할 리 없소!”(3.12.21)

 

* 성염 요한 보스코 - 「신국론」과 「삼위일체론」을 번역하고, 최근 「고백록」을 펴냈으며, 지금도 지리산 자락에서 아우구스티노의 원전 번역에 몰두하고 있다. 1986년 교황청립 살레시오 대학교에서 라틴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와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 주교황청 한국대사(2003-2007년)를 지냈다.

 

[경향잡지, 2017년 4월호, 성염 요한 보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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